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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전설과 초원의 나라, 몽골①바람과 양떼 벗 삼아 광막한 초원 위 하나의 점이 되어

바람과 전설과 초원의 나라, 몽골①

바람과 양떼 벗 삼아 광막한 초원 위 하나의 점이 되어

매연에 찌든 수도 울란바토르는 실망스러웠지만 시내를 벗어나는 순간 기대했던 대초원이다. 한반도의 7배나 되는 면적에 겨우 300만명이 사는 이 광활한 대지는 끝없는 초원에 점점이 흩어진 가축과 말, 허공을 가르는 바람만이 주인이다. 사상 최대의 강역을 일궜던 칭기즈칸의 나라. 그 후예들은 아직도 말과 더불어 초원을 질주한다. 이제 또다른 작은 말이 되어 몽골의 바람과 초원 속으로 스며든다
글 이홍희(前 해병대 사령관)  사진 ‘설래는 영혼’(김상봉 : 뚜르 드 몽골)   
현지 지원 MONGOL MATE(mongolmate.com)

 

 

이홍희 전 해병대 사령관이 13일간 몽골 중부지역을 라이딩을 포함한 여행을 하고 돌아온 후기를 3회에 걸쳐 싣는다. 이 전 사령관은 2008~2010년 제29대 해병대 사령관으로 재임했고, 재임 당시부터 ‘자전거 타는 장군’으로 알려질 정도로 열혈 자전거 매니아였다. 지금도 국내외를 자전거로 누비며 인생 2막을 
자전거여행으로 채우며 지낸다 <편집자>



  여행 개요                                  
  * 기  간 : 2017년 8월 2~14일(12박13일 간 라이딩과 여행 병행)
  * 지  역 : 몽골 중부지역(초원지역 라이딩과 일대 명소 관광)
  * 참가자 : ‘Tour de World’ 동호회 회원(일부 초대 회원 포함)
  * 숙  식 : 게르 캠프 숙박과 텐트 이용한 야영. 게르 캠프식(食)과 야전 취사
  * 기  타 : 초원코스(포장, 비포장)와 산악코스 라이딩(8일간 총 553km). 주요 명승지 관광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2일 정오, 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간다고 북새통을 이룬 인천공항에 자전거 복장을 한 일단이 전국으로부터 집결해 탑승수속을 밟는다. 몽골 초원지대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팀이다. 휴가철이라 인천공항은 엄청나게 붐볐지만 일행은 드넓은 초원에서의 라이딩에 대한 기대감에 짧지 않은 탑승 대기시간도 즐겁기만 하다. 

인천공항을 출발한지 3시간반 만에 몽골에 도착한다는 기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도착한 공항의 이름이 ‘칭기즈칸’이다. 칭기즈칸이 몽골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흔히 몽골을 얘기할 때 ‘칭기즈칸’에서 시작해서 ‘칭기즈칸’으로 끝나는 나라라고 하지 않는가….
 

몽골의 수도이자 관문인 울란바토르의 국제공항 이름은 ‘칭기즈칸’이다. 800년이 지났지만 칭기즈칸은 몽골의 상징이자 전설로 곳곳에서 살아 있다

 

 

기대와 다른 모습의 울란바토르
하늘에서 내려다본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모습은 몽골을 처음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좋은 이미지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 매연에 가려져 파란 하늘과 푸른 초원의 나라일 것이라는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울란바토르는 ‘붉다’는 뜻의 ‘올란(Ulaan)’과 ‘영웅’이란 의미의 ‘바타르(Baatar)’가 합쳐진 것으로, ‘붉은 영웅’이란 의미다).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했던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은 중앙아시아 고원지대 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7배나 되는 광활한 땅이지만 인구는 300만 정도에 불과하다. 1년에 8개월이 겨울이고, 연교차도 70°나 되어 사람이 사는데 결코 만만치 않은 여건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몽골 여행은 우리나라 기준으로 여름철에 집중된다. 

몽골을 단적으로 표현하기를, ‘온통 파란 하늘과 맞닿는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사이에는 바람뿐인 나라’라고들 한다. 그런데 이 말로 몽골의 전부를 얘기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다. 여기에다 초원 위에서 목가적으로 풀을 뜯는 가축들,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볼 수 있는 곳,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 있는 곳 정도를 더 보탠다 해도 과한 것은 아닐 것이다. 

몽골이란 나라 전체를 더 큰 그림으로 개관해보면, 중앙지대는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무한대로 펼쳐진 초원지대로 이루어져 있지만 남쪽은 고비사막이, 북쪽과 서쪽은 울창한 산림으로 형성된 산악지대, 동쪽은 척박하다고 알려진 몽골에서도 비교적 곡류생산이 많은 곡창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day1 울란바토르

영웅을 넘어 전설이 된 칭기즈칸                               
몽골에서 맞는 첫날의 숙소가 울란바토르에서 가장 중심인 ‘수하바타르 광장’에 인접해 있어서 일행은 호텔에 짐을 푼 다음 시내 구경을 나선다. 수하바타르 광장은 1921년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중국을 몰아내고 1924년 몽골인민공화국을 세운 국민 영웅 수하바타르(Suhbaatar)를 기리기 위해 명명된 곳으로 우리나라의 광화문광장과 비슷하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광장 주변에는 러시아가 지배할 당시 세워진 러시아식 건물들이 많이 있기도 하지만, 1989년 공산주의 몰락을 가져온 첫번째 민중집회가 열렸는가 하면 지금도 국가 중요 행사가 많이 열리기도 하며, 몽골 국민들의 휴식공간 역할도 하고 있다. 


광장 중앙에는 국회의사당이 있는데 의사당 건물 정면에는 칭기즈칸의 동상이 있고, 동상 주변에는 쇠줄을 설치하여 일반인들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새 인생을 출발하는 신혼부부들은 이곳에서 웨딩촬영을 하면서 칭기즈칸에게 신고(?)를 한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새 출발을 축하하기 위해 쇠줄을 걷어주는 것은 물론 심지어 군인들이 직접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단다. 

대부분의 몽골인들은 스스로 칭기즈칸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존경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속에 칭기즈칸의 피가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800년이 지난 지금도 몽골 국민들의 생활 속에 살아있는 칭기즈칸은 몽골인들에게 영웅이라기보다는 전설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마두금 연주와 흐미 노래는 한번 들으면 잊지 못할 기억으로 각인된다
“야, 초원이다!” 산악국가에서 온 한국인에게 몽골의 대초원은 너무나 반갑고 신기해서 환호가 절로 터져나온다
공기놀이, 가위바위보, 비석치기, 씨름 등 우리와 비슷한 놀이문화가 너무 많아 놀랍기만 하다

 

 

day2 울란바토르 ~ 멀척 엘스

마두금 연주와 흐미 노래에 취해 초원 속으로 
오늘(8월 3일)은 실질적인 여행 1일차로, 오전에 ‘몽골 민속촌’에 들러 몽골 유목민들의 생활모습을 둘러본 다음, 오후에는 포장도로 50km를 라이딩 하고 ‘룽’마을까지 이동해 야지에서 텐트로 캠핑할 계획이다.
일찍 호텔을 나서 버스를 타고 끝없이 펼쳐진 초원 속으로 들어간다. 울란바토르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그림이나 다름없는 광활한 초원이 펼쳐지자 일행 모두는 탄성을 지른다. 우리가 생각하고 그려오던, 가슴 설레게 하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다들 차를 세우고 내려서 사진 찍기를 원한다. 가이드는 이런 우리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눈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지금 지나가고 있는 이런 정도의 풍경은 앞으로 계속 접하게 되는 일상의 풍경이고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그렇지만 산악이 70% 이상이나 되는 나라에서 와서 초원을 처음 접하는 우리들에게는 정말 생소한 풍경이 아닐 수 없으며, 무엇보다 그 풍경 속에 점점이 있는 양과 염소와 말 등의 가축들이 더욱 인상적이다.


울란바토르를 출발한지 약 1시간 만에 55km 떨어진 ‘노마딕(Nomadic) 민속촌’에 도착한다. 이곳 민속촌에서는 몽골 유목민의 독특한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몽골 초원 어디를 가더라도 유목민의 생활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곳은 그리 흔치 않다고 한다. 몽골 유목민들이 양과 염소, 말 등의 가축을 기르며 살아가는 모습, 일상생활 속의 놀이문화, 신과 교감하기 위한 춤과 노래 등을 하나하나 재현하면서 보여준다.
우리와 비슷한 외모와 비슷한 풍습을 갖고 있는 그들을 만나게 되어 한없이 가깝고 반갑게 느껴지지만,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초원을 보면 참으로 낯설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몽골의 전형적인 풍경인 게르와 양떼 모습. 헐벗은 산에 지나는 뭉게구름도 인상적이다

 

 

우리와 유사한 전통놀이 수두룩
민속촌에서 본 유목민들의 놀이 풍습 가운데는 우리나라와 같거나 비슷한 것이 아주 많아서 놀랍다. 공기놀이, 가위바위보 놀이, 비석치기, 굴렁쇠 굴리기, 씨름, 여인들의 머리 수건 쓰는 것, 음식 먹기 전의 고수레하는 문화, 신부의 몸 장식, 어린아이들의 돌잡이는 물론 ‘몽골반점’까지 같거나 유사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이는 고려 때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몽골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 

몽골 유목민들의 놀이문화 외에 특히 인상적인 것은 유목민들의 음악이었다. 그 중에서 마두금(馬頭琴)이란 악기 연주와 흐미(Khoomi)라는 노래는 정말 사람의 마음을 쏙 뺏는다. 마두금(머링 호르)의 형상과 재료는 물론 전설까지 말과 관련이 많다고 한다. 악기의 맨 윗부분에 말 머리 형상의 장식이 있어서 마두금이라고 하며, 현과 활을 모두 말총으로 만들며, 형상은 우리나라의 해금과 비슷하다. 악기의 음색이 매우 풍성하고 애절한 소리를 낸다고 하여 ‘초원의 첼로’라고도 불린다. 마두금 연주는 듣는 사람에 따라서 몽골 초원에서 부는 바람소리, 야생마의 울음소리, 말이 달릴 때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소리처럼 들린다고 한다. 

흐미 노래(창법)는 사람의 후두와 목, 위, 입천장 등 신체 내부의 깊은 곳에서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를 동시에 내는 몽골 특유의 전통 노래(창법)로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분명히 한 사람이 노래를 하는데 굵은 저음과 청명하고 신비한 고음의 두 소리가 조화롭게 함께 들린다. 그래서 흐미는 한번 들으면 완전히 매료된다. 

처음에 그냥 들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을 수도 있지만 몽골의 아름답고 드넓은 초원을 생각하면서 들으면 마음 깊이 매력적인 감흥이 솟아난다. 몽골 초원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다시 이 음악(흐미)을 들으면 초원에서 보냈던 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광활한 초원에서 가축을 부르는 소리이자 신호이기도 하지만 하늘·강·바람과 같은 자연의 소리를 표현한 자연의 노래이기도 하단다. 몽골에 가면 빼놓지 말고 노래하는 것을 보고 와야 한다고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게유목민 게르촌을 방문했을 때 집주인이 이번 라이딩 투어대장에게 대표로 코담배(허륵) 냄새를 맡게 하는 의식을 통해 환영하고 있다
석양빛이 어리는 초원에서의 만찬

 

 

게르에서 보낸 첫밤
유목민들의 민속문화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일행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다. 자전거 안장 위에 앉아 몽골의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초원을 달릴 준비가 되어있는데 날씨가 받쳐주지 않을 듯싶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제법 굵은 비로 변했고 쉽게 그칠 것 같지가 않다. 몽골은 분명 물이 부족하고 비가 많이 오지 않는 나라지만 한번 오기 시작하면 그냥 쏟아 붓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날씨로 인해 오늘 계획된 50km의 라이딩은 내일부터 이틀에 걸쳐 반반씩 나누어 달리기로 조정하고, 텐트로 캠핑하려던 계획도 부랴부랴 게르로 변경하지 않을 수 없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게르를 구할 수 있었는데, 게르로 이동하면서 보니 조금 전에 왔던 집중호우로 인해 도로 여러 군데가 침수되고 조금 전까지는 없었던 하천이 물살을 이루며 초원 위를 흘러가고 있었다.  


‘멀척 엘스(Moltsog Els)’의 ‘루너바 게르 캠프(Lunoba tourist Camp)’에 도착해 숙소를 배정받았다. 이번 여행 중 각자가 맡은 직책과 나이에 따라 비슷한 사람들끼리 게르 동료가 정해진다. 처음 들어와 보는 게르가 참으로 신기하다. 원래 게르는 계절마다 가축의 먹이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유목 생활을 위한 이동식 가옥으로 연중 4~5번 이동하면서 생활한다고 한다. 가축의 먹이가 떨어지면 새로운 초지(草地)를 찾아 철새처럼 떠나야 하는데 그게 초원에서 지내는 유목민들의 삶이다. 가족의 수에 따라서 2~3동 단위로 짓는데 게르 당 5인 내외가 생활한다고 한다. 

게르의 출입문은 대부분 정남(正南) 방향으로 설치하는데 내부로 들어가면 중앙에 난로(화로)가 놓이고, 오른쪽(동쪽)은 여자의 공간으로 식자재와 주방기구들이, 왼쪽은 남자들의 공간으로 가축 관련 도구들이 비치된다. 정면인 북쪽은 게르 공간 중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집주인의 소중한 물건, 무기, 악기, 가족사진들을 넣은 사진틀 등을 걸어놓고 있다.
최근 들어서 몽골에는 유목민들이 직접 사용하기 위한 게르 외에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 목적의 게르도 더러 있다. 수입이 변변치 않은 몽골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관광객들을 유치함으로써 얻는 수입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둘째날 비가 내리는 가운데 라이딩 출발 준비를 마치고 기념촬영

 

 

두바퀴, 초원의 말이 되다 
게르에 짐을 정리한 다음, 자전거를 조립하고 나서 항공기 수송 과정에서 야기될 수도 있는 문제점을 점검하기 위해 시범 라이딩을 나간다. 멀리까지 갈 수 없어 10km 정도의 초원을 고삐 풀린 말 마냥 달리면서 초원에 대한 기분을 내본다. 처음 접하는 초원을 달리노라니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향기롭다. 초원에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이름 모를 허브들 덕분인 듯하다.
초원은 원래 자전거로 그렇게 달리기가 쉬운 곳이 아닌데다 길에 모래가 많이 섞여있어 더욱 힘이 든다. 그렇지만 초원을 달린다는 기분에 젖어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다. 야트막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초원 라이딩의 맛을 한껏 느껴본다.


한참 라이딩을 즐기고 있는데 지나가던 한국인 일행이 차를 멈추고 인사를 건넨다. 많은 한국인이 몽골 초원에서 단체로 자전거를 즐기고 있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한국인이라 반갑기도 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호스태(Hustai) 국립공원’에 살고 있는 세계적 희귀종인 몽골 야생마 ‘타이(Thai)’를 보기 위해 가고 있다고 한다. 보통사람들 생각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여행 콘셉트를 잡은 것 같다.
말의 기원이 된 야생마인 ‘타이’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살고 있고, 관광객은 야생마로부터 300m까지만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몽골에만 300여 마리가 남아있는 멸종 위기의 동물이다. 크기는 작아도 힘과 지구력이 강하다. 13세기 몽골이 유라시아를 평정할 수 있었던 1등 공신은 다름 아닌, 초원이 낳고 바람이 키운 말이 아니었나 싶다. 초원의 후예인 말과 몽골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 관계인데, 그런 ‘타이’를 직접 볼 수 없어 많이 아쉽다.


게르를 갑작스럽게 잡는 바람에 식사 준비가 안 되기도 했고, 처음 계획이 텐트 야영이어서 지원팀에서 야외식사를 준비한고 한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 천막을 치고 저녁을 먹는데 언제 바람이 불지, 언제 비가 올지 걱정을 하면서 지원팀에서 준비한 훈제 닭 바비큐를 주(主) 메뉴로 하는 만찬을 즐겼다(지원대장의 친구가 호텔에서 조리한 경험이 있단다). 초원에서 이런 호사를 즐기니 앞으로 전개될 자전거 라이딩 여정도 기대가 크지만, 자전거 외적인 부분에서도 더 크게 기대가 된다.



day3 멀척 엘스 ~ 비양노르 솜

해맑은 눈을 가진 목동과 양떼를 만나다  
오늘(8월 4일)은 실질적인 여행 2일차로, 전날 비로 인해 달리지 못한 50km를 오늘과 내일 이틀에 걸쳐 감안해서 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의 여정은 ‘멀척 엘스’의 캠프를 출발해 ‘바양노르 솜(Bayannuur sum)’ 일대까지 125km의 힘든 도로 라이딩이다. 
어제 약 10km의 시범 라이딩을 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자전거를 조립한 다음, 이상 유무를 확인·점검하기 위한 것이었고, 본격적인 라이딩은 오늘이 첫날이다.  


하룻밤을 보낸 게르 정문에서 이번 여정의 안전 라이딩을 다짐하기 위해 하이파이브를 하고, 다함께 함성도 외치며 사기 백배해서 출발한다. 큰 도로(포장도로)까지 연결되는 길은 6km 정도의 모래밭길이라 결코 쉽지가 않다.                                                      
큰 도로에 나와 조(組)별로 대형을 형성한 다음 천천히 라이딩을 시작한다. 초행길이고 처음 시작하는 길이라 다들 조심하지만, 조금 지나자 이내 어제 달리지 못했던 아쉬움을 한껏 발산이라도 하듯 엄청난 속도를 내면서 힘차게 달려 나간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실력은 주행 스피드, 업힐 능력, 하루에 주파할 수 있는 라이딩 거리 등에 의해 정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서 해외 라이딩을 다녀온 경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전국적으로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왕성하고 다양한 경험이 있는, 상당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이들과는 첫 라이딩인지라 대단한 속도에 겁이 벌컥 난다.
 

 

남루한 차림이지만 순박한 표정의 목동, 초원에 점점이 흩뿌려진 양떼와 염소떼, 아득히 멀리 물러선 헐벗은 산줄기…. 이 한 장의 사진이 몽골의 전형적인 풍경을 모두 말해주고 있다

 

 

유유자적 도로를 횡단하는 양떼 
오늘 라이딩은 약간의 바람을 등지고 달려서 주행속도가 생각보다 많이 빨랐지만 그렇게 힘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제 비를 뿌렸던 비구름이 우리가 가는 방향으로 걸려 있어서인지 많이는 아니어도 계속 비가 오락가락한다. 비 때문에 라이딩에 약간의 지장은 있으나 장거리 여행을 하다보면 비는 흔히 만날 수 있는 것이고, 이렇게 비를 맞는 것 자체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마음도 라이딩도 편해진다.
도로 옆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이 펼쳐져 있어 자꾸 눈이 옆으로 돌아간다. 라이딩 중간 중간 자전거를 멈추고 서서 사진을 찍고 싶지만 지금의 주행속도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잠시 멈추기라도 하면 나머지 일행은 저만큼 멀리 사라질 것이고, 일행을 다시 따라잡으려면 너무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아 참고 갈 수밖에 없다.


신나게 달려가고 있는데 한 무리의 양떼와 해맑은 모습으로 양떼를 관리하는 목동을 만난다. 도로 옆의 목가적인 초원 위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떼를 본 것이 아니라 무리지어 도로를 천천히 횡단하는 양떼를 만난 것이다. 도로를 횡단하는 양떼도, 양떼를 관리하던 목동도 급할 것이 없다. 자기들의 길을 자기들이 가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는 할 수 없이 가던 길을 멈춰 서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양떼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본다. 

‘맞아! 저 양들이 이곳의 주인이고 우리는 이방인이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니 우리의 마음도 급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도로 위에 로드-킬을 당한 동물의 흔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이곳 몽골에서는 그런 모습을 전체 여행기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지나는 모든 차량들은 유목민들과 가축들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동물들이 보이면 속도를 줄이고 동물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준다. 이 동물들이 초원의 주인이고 몽골의 가장 중요한 재산이기 때문이 아닐까. 


대부분의 목동들은 통상 말을 타고 다니며 가축들을 관리하는데 이 어린 목동은 걸어 다니며 가축을 관리한다. 그런데 간간이 보면 아예 시대의 흐름에 맞게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가축들을 관리하는 경우도 가끔씩 목격할 수가 있다. 몽골인에게 말과 말 타기는 삶의 전부나 다름없어서, 아이가 태어나 1년이 되면 어른이 함께 말을 타고 다니면서 말과 친해지도록 한다. 몽골에는 ‘세 걸음 이상의 거리는 말을 타고 간다’는 말이 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지평선의 일몰. 태양은 모나지 않은 하늘 전체를 온전히 밝히고 마지막으로 화려한 인사를 남긴다
초원의 캠핑. 어디나 똑 같은 지형이니 마음 편하게 텐트도 자전거도 편하게 누웠다. 먹구름 사이로 터진 저녁 햇살이 싱그럽다

 

 

한국이 지원하는 길이 3700km의 숲 프로젝트   
라이딩 도중에 반가운 간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한·몽 그린벨트 프로젝트사업’이라 씌어져있고 간판 양쪽에는 두 나라의 국기가 그려져 있다. 사연을 알아보니 몽골지역에서 발생하는 황사와 사막화를 방지하기 위해 한국과 몽골이 합동으로 시행하는 사업이라고 한다.

몽골은 2007년 기준으로 국토의 약 70%가 사막화 영향을 받고 있고, 그대로 방치할 경우 2080년이 되면 국토의 90% 정도가 사막화되어 동북아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주며, 우리나라가 입는 피해도 연간 5~6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과 몽골은 사막화 진행을 억제하기 위해 몽골 국토를 횡으로 연결하는 총연장 3700km의 지역에 400~600m에 달하는 폭으로 30년간 3단계로 나누어 그린벨트 사업을 연차적으로 조성하고 있는데, 현재 조성된 나무의 높이는 사람 키를 넘기는 것도 꽤나 많다. 현재 조성 중인 이 사업은 우리나라의 황사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편이 되기도 하지만, 더 크게 보면 우리 인류의 삶의 터전을 보호하는 일이고 우리의 국격(國格)에  걸맞는 좋은 사업이 아닐까 싶다.

원래 향도(嚮導) 조에 속해서 라이딩을 했는데 이 사업에 관한 ‘간판 사진’을 찍느라고 뒤로 한참 처졌고 다시 향도 조에 복귀하느라 혼쭐이 났다.
뒷바람이 불어주고 업다운이 반복되는 125km 구간을 아무 탈 없이 완주하고 야영지에 잘 도착한다. 중간 중간 제법 많은 비를 맞는 등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첫날 여정을 다들 훌륭하게 완수한 것이다. 


 

한국정부의 도움으로 몽골의 사막화를 막기 위해 총연장 3700km의 그린벨트를 조성중이다

 

 

밤을 감싸는 궁극의 적막감 
이제는 야영준비를 해야 한다. 해가 넘어가거나 비가 오거나 하면 야영 준비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오늘은 이번 여행에서 야외에서, 그것도 초원의 한 가운데서 텐트를 치고 보내는 첫날이다. 다들 설레는 가운데 야영 준비가 끝나갈 즈음에 나타난 일몰의 장관은 일행의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한다. 모두들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아름다운 일몰 사진을 담기에 분주하다. 

이국적인 분위기 속에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오늘 라이딩을 복기(復棋)한다. 바둑도 골프도 복기가 즐겁지만, 하루 종일 자전거로 달려온 여정을 되돌아보는 것 또한 엄청 신나는 일이고, 하고 싶은 말도 많다. 그것도 처음 접한 초원을 끼고 달린 하루의 여정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신나는 분위기가 그렇게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는 않다.
깊어가는 몽골 초원에서의 밤은 정말 아름답다. 인공조명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으니 더욱 적막감이 든다. 이 적막감 속에서 단지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람뿐이다. 


몽골에 오는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풀밭에 누워 쏟아지는 별을 보기를 바라듯이 우리도 별을 보기를 원했지만, 오늘이 마침 달이 매우 밝은 음력 13일이라 큰 별밖에 볼 수가 없을 것 같아 많이 아쉽다. 

우리 여행의 주목적이 자전거 라이딩이지만 그래도 쏟아지는 별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별을 구경할 수 있는 시기에 오는 것도 고려하였지만 일행 중 제법 많은 인원의 휴가 일정 상 여의치 않아서 이렇게 잡을 수밖에 없었다.
내일 갈 길도 오늘과 비슷할 것이다. 초원이 주는 매력에 빠졌던 하루를 이렇게 정리해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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