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다 좋아하지만 자전거가 주는 성취감이 최고예요”

자전거 타는 전직 장관 & 영원한 배우 유인촌

“운동을 다 좋아하지만 자전거가 주는 성취감이 최고예요”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스스로도 밝히듯이 영원한 배우다. 3년간이나 장관을 지내 ‘장관 유인촌’도 친숙하지만 사람들은 무대와 브라운관, 스크린을 누비던 배우와 탤런트 유인촌을 더 기억한다. 일선에서 물러났어도 만능 스포츠맨으로 트라이애슬론 경기에 출전하고 모터사이클도 즐긴다. 자전거와 연극무대로 나이를 잊은 유인촌 전 장관을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전원일기’의 무대 남양주 능내역에서 만났다 
글 김병훈(본지 발행인)  사진 이상윤 기자
 

 

2015년 ‘두바퀴로 달리는 新조선통신사’ 행사에서 단장을 맡았을 때의 모습. 이때 이상윤 기자가 단원으로 참가했다

 

 

profile
1951년   전북 완주 출생
1980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
1986년   중앙대학교 대학원 연극학 석사 
1974년   MBC 공채탤런트 6기
1997년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조교수, 교수
2002년   유씨어터 대표
2004년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2008~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2011년   대통령실 문화특별보좌관
2012년   예술의 전당 이사장

남양주 능내역으로 약속장소를 잡은 것은 ‘전원일기’의 무대여서 유인촌 전 장관(이하 유 장관)이 친숙한 곳기 때문이다. 남한강 자전거길도 지나가 장관 재임시절 4대강 자전거길 조성에 기여한 뒷얘기를 듣는 데도 적당할 것 같았다. 

약속시간이 지났는데도 모습이 보이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아 조금 걱정하며 취재팀은 능내역 앞에서 팔당댐 방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한번은 헐렁한 옷차림에 모자를 쓰고 지나는 남성을 유 장관으로 착각하고 손을 들어 반기기까지 했다. 자전거를 오래 탔다고는 하지만 우리 나이로 67세이고 알려진 공인이기도 해서 편안한 차림으로 혼자 나타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 장관님. 이런 차림으로 오셨어요!?”
유 장관은 최신 로드바이크에 몸에 꼭 끼는 타이트한 저지를 입고 5명의 젊은 라이더와 함께 팩을 이뤄 갑자기 취재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전거를 타면 당연히 이런 복장이지, 어떻게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유 장관은 오히려 유쾌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상급자 포스가 물씬한 20~30대 젊은이들과 보조를 맞춰 여기까지 오려면 상당한 실력이 아니면 어렵다. 

“어휴, 젊은 친구들이라 역시 따라가기가 쉽지 않네. 계속 평속 30km 이상으로 달렸어요.”
옆에 중년 여성 라이더들이 쉬고 있었지만 아무도 유 장관을 알아보지 못했다. 배도 거의 나오지 않았고 탄탄한 체격과 날렵한 맵시는 40대 정도의 베테랑 라이더로 느껴진다. 헬멧과 고글을 썼으니 더욱 젊고 스포티해 보인다.  

 

인터뷰 전에 질문서를 진지하게 읽어보는 유인촌 전 장관
소탈하고 진솔한 성품이어서 대화가 즐거웠다

 

 

몸도 마음도 젊은, 영원한 청년 
유 장관은 작년 10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각료와 주요 인사들, 동호인이 함께 한 남한강 자전거길 라이딩 때 처음 만났다. 그때 가벼운 몸놀림으로 경쾌하게 자전거를 타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자전거 관록이 대단했다. 최근까지 철인경기에 출전할 정도로 체력이 탁월한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자전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인연이 되어 유 장관은 그해 말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연극 ‘페리클레스’에 나와 본지 필진을 초대했다.

TV에서는 유 장관을 많이 보았지만 연극무대는 처음이었는데, 솔직히 감동을 넘어 매우 놀랐다. TV나 스크린에서 보지 못했던 엄청난 카리스마와 시원한 목청, 위트와 묵직한 스타일까지… 그는 실로 배우였다. 진정한 대배우구나 실감했다.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자전거를 사랑하고, 자전거길을 만드는데 기여한 그를 좀 더 알고 싶어서였다. 알려진 것과 달리 사석에서 그는 대단히 소탈하고 진솔해서 인간적으로 호감을 주었다. 친절하고 겸손한데다 배려심도 몸에 배어 있었다. 역시 대배우로 성공하고 일국의 장관까지 한 인물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연히도 유 장관은 함께 취재를 나간 이상윤 기자를 잘 알았다. 

“아니, 상윤이가 여긴 어쩐 일이야?”
“단장님, 안녕하셨어요!”

알고 보니 2015년 한 신문사가 주최한 ‘두바퀴로 달리는 新조선통신사’ 행사에서 유 장관은 단장을 맡고 이 기자는 단원으로 참가한 인연이 있었다. 단원이 50명을 넘었는데도 이기자를 잊지 않고 다른 단원들의 이름을 대며 꼭 연락하라고 말하는 유 장관의 모습에서 후배들을 챙기는 진심이 느껴졌다. 이 기자도 유 장관이 자신을 기억할 것으로는 생각지 못한 듯 내게 그 사실을 미리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가만히 보니 그가 타고온 자전거와 착용한 용품이 모두 국산이다. 자전거는 위아위스, 헬멧은 HJC, 의류는 NSR, 유일하게 신발만 외국 브랜드다. 

“국산품을 애용하시는군요!”
“우리 브랜드가 있으면 당연히 우리 걸 써야죠. 근데 신발이 없어 아쉽네.”
능내역 일원에서 잠시 촬영을 마치고 근처의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헬멧과 고글을 벗으니 그제야 연륜이 느껴진다.       

ᅳ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건강하고 연세보다 젊어 보이십니다.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 
“세월 따라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거지요. 아직은 건강하니까 그때그때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뿐이에요. 일부러 노력하는 건 없어요. 생활패턴이 (활동적이고 해서) 젊게 보이지 않나 싶어요.”

ᅳ 특별한 비결이나 노력은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한가지 있다면, 좀 불편하게 살아요. 사서 고생을 한다는 개념인데, 주로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요. 그렇게 끊임없이 움직여요. 마음을 그렇게 가지니 어딜 가나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아요.”
‘어딜 가나 불편하지 않다’는 말은 사실이다. 올해 8월 한여름에 유 장관은 후원하는 청소년들과 함께 부산~서울 간을 일주일간 자전거로 캠핑하며 완주한 적이 있다. 직접 스탭을 맡아 청소년들과 캠프를 차리고 비도 맞아가며 전 구간을 함께 달렸다. 이런 일은 결코 쉽지 않다. 
    
ᅳ 최근까지 철인경기에도 출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육체적 한계를 테스트하는 매우 고된 경기인데 출전하시는 특별한 목표나 이유가 있습니까. 
“이런저런 운동을 하다 보니까 철인경기는 세가지를 같이 해서 한번쯤은 해봐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8개월 정도 열심히 연습해서 통영대회에 출전해 (올림픽 코스를) 3시간반 안에 완주했어요. 그후 한 2년 간 시합은 못나갔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훈련을 하고 있어서 기회가 오면 또 나갈 생각입니다. (풀코스인) 아이언맨 코스도 도전하면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부상이라도 입으면 곤란하니까 거기까진 안할 생각입니다(웃음).”  

 

마치 선수처럼 두 손을 들고 능내역에 ‘골인’하는 모습. 자전거를 타고 있으면 6순의 나이를 짐작키 어렵다

 

 

모터사이클 즐기고 중장비 자격증까지


ᅳ 만능 스포츠맨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밖에 어떤 스포츠나 운동을 즐기시는지요. 
“옛날에는 정말 많이 했어요. 펜싱, 승마는 배우 활동을 위해서 배웠고, 윈드서핑도 했지요. 젊을 때는 구기종목은 거의 다 했어요. 그 분야 베테랑들이 아, 저 사람도 여기서 활동했지 라고 인정할 정도는 했어요. 그러다 방송활동을 하면서 스케줄이 불규칙해져서 구기종목은 팀으로 모이기가 어려워 개인종목을 주로 하게 됐어요. 지금은 자전거, 수영, 걷기를 주로 합니다. 모터사이클도 타는데, 이것도 속도와 균형,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기 때문에 운동이 많이 됩니다.”

유 장관은 장관시절에도 교통체증을 피해 주말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전국 각지를 누비며 현지 사정을 돌아보았다고 한다. 행사장이라도 있으면 즉석 출연하기도 해서 지방에 따라 일화가 많이 남아 있다.   

ᅳ 지게차와 굴삭기 같은 중장비 자격증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왜 따셨는지요? 
“공직에 있으면서 늘 생각했지만 실현하지 못한 것 중의 하나가 환경이 좋은 지역에 제대로 된 문화공간을 만드는 거예요. 내손으로 공연장도 만들고 토목공사도 직접 하고 싶은 마음에 굴삭기와 지게차 면허를 땄지요. 계획만 했고 아직 현장에서 쓰지는 못했어요. 언젠가는 직접 내 손으로 땅을 파서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ᅳ 저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럴 것 같은데, 국민 드라마가 된 ‘전원일기’에 20여년간 둘째아들 용식이 역할을 해오신 장관님은 나이와 무관하게 언제나 젊은 청년 같은 이미지가 있습니다. 용식이 역할이 약간 철부지 같은 느낌도 있지 않았습니까. 
“철부지라기보다는 농촌에서 태어나 대학을 못가고 고등학교만 나와 아버지 뒤를 이어 땅을 지키는 청년이었지요. 형은 대학 나와 공무원을 하는데 왜 나만 고생하나, 그러면서 아버지에게 대들기도 하지만 결국 떠나지 않고 땅을 지키는 그런 둘째 역할이었지요.”

ᅳ 저도 장관님 연세를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적은 나이는 아니지요(멋쩍은 웃음). 전원일기가 1980년에 시작해서 2002년에 끝났어요. 내가 서른에 시작해서 쉰둘에 끝났는데, 쉰둘에도 청년회장하고 청년 역할을 했으니 그런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웃음).”
  

ᅳ 개인적으로는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역사스페셜’ 진행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정확한 발음과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높은 신뢰감을 주었습니다.   
“역사스페셜은 매주 입시공부하듯 준비했어요. 내용을 모두 암기해서 원고나 스크립트 없이 내용을 이해하고 진행했지요. 6년 정도 했는데 매주 입시공부처럼 역사공부를 해서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그중에도 고구려 얘기를 3회 연재한 적이 있는데 북경까지 직접 갔어요. 요동벌판을 지배한 그런 내용이어서 기억에 남습니다.” 

ᅳ 원래 역사에 관심이 있었는지요?
“내가 관심 있고 좋아했기 때문에 했지요. 그때는 드라마 같은 것 다 포기하고 역사스페셜만 했습니다. 솔직히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개런티는 적었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오랜 시간을 지켰어요. 프로그램이 갑자기 끝났을 때는 시청자 항의가 거셌어요. KBS 시청자위원회에서 이를 받아들여 1년 뒤에 고두심 씨 진행으로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방송 프로그램까지 영향을 받는 일이 있지요.” 

ᅳ 특별히 기억나시는 영화, 방송, 연극 작품이 있으시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MBC에서 방송된 ‘장희빈’이 기억납니다. 내가 숙종 역할을 했는데, 이미숙, 이혜숙 같은 배우가 거의 신인 때 출연했고 시청률도 굉장히 좋았어요. 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연산일기>를 꼽고 싶네요. 드라마는 많지만 미니시리즈 ‘불새’ ‘최후의 증인’이 시청률도 높아 기억에 남습니다. 연극은 ‘햄릿’이지요.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작품입니다. 최근에 했던 연극 ‘톨스토이의 홀스또메르’도 좋은 작품이에요.”   

ᅳ 작년 11월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신 ‘페리클레스’를 보고 과연 배우구나 싶었습니다. TV 화면이나 스크린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웅장한 목소리까지… 대단했습니다. 연극이야말로 진정한 배우의 무대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난 사실 영상보다는 무대가 맞아요. 영상에서 보던 걸 무대에서 보면 새롭지요. 무대는 기본적으로 훈련을 많이 해야 합니다.” 

 

여행작가로 활동중인 조용연 전 울산경찰청장(왼쪽)과 자전거여행가 차백성(오른쪽) 씨도 자리를 함께 했다

 

 

장관이 된 배우, 배우가 된 장관


ᅳ 배우 출신으로는 지금까지 정부의 최고위직에까지 오르셨는데 장관 재임 당시 에피소드가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언론과 세간의 주목도 한몸에 받으셨지요. 때로는 거침없는 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원래 과감하고 직선적인 성품이신 것 같습니다. 
“좀 직선적이지요. 둘러서 얘기하지 않아요. 직위에 걸맞는 품위도 있겠지만 내 이미지 관리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옛날에 탤런트 할 때도 노조위원장을 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이걸 왜 하지 그랬지만, 한다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이지요. 하지만 같은 일을 두 번 하지는 않는다는 신념은 지킵니다. 노조위원장도 주변에서 더 하라고 했지만 한번으로 끝냈어요. 장관할 때도 더 이상 할 생각이 없었어요. 당시 장관 임기는 보통 1년이었는데 1년 하고 더 이상 할 거 아니라면 확실하게 하자, 내 관리나 하고 타협해서 좋은 게 좋은 거로 넘어가며 칭찬만 듣고 싶지는 않았어요. 문화예술 현장은 내가 너무나 잘 알기에 어떻게든 개선을 해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다만 정무적인 경험이 없어서 약간의 실수는 있었어요. 내가 한 수없이 많은 일들이 있는데 그런 건 수면 아래로 숨겨지고 겉으로 말썽난 것만 부각되었어요.”

여기서 유 장관은 억울하고 아쉬운 점이 많은지 목소리를 약간 높였다. 인기 배우로 장관이 되면서 반대파의 정치적인 타겟이 되어 본의 아니게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말썽도 아닌 걸 왜곡해서 말썽으로 만든 거예요. 그런 게 너무 많았어요. 당시 문화부 건물 앞에서는 시위가 많았는데 그러면 직원들이 괜히 시끄러워질테니 뒷문으로 출입하라고 안내합니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피해다녀요. 그 사람들 얘기나 좀 들어보자는 생각에 한번도 피해간 적이 없어요. 그런데 무슨 일인지 내가 먼저 말을 걸어도 듣지도 않아요. 대화가 시작이 안돼요. 그래서 그냥 돌아서면 대화 안한다고 뭐라 그러고. 이런 일의 악순환이었죠. 꼬집히고 트집잡히고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그래도 하고 싶은 만큼 일을 다 했고, 내가 생각했던 것 다 정책화 했어요. 장관을 3년 했으니 예산을 짜고 그걸 집행도 하고 결산까지 여러번 했지요. 1년 하고 나오면 자기가 세운 예산은 써보지도 못해요. 후회는 없어요.” 

ᅳ 공개해도 괜찮으시다면 MB와의 인연 뒷얘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세간에서는 장관님이 ‘야망의 세월’에서 MB 역할을 한 것이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봅니다만…
“인연이 아주 오래됐어요. 원래는 정주영 회장 때문에 만났지요. 정회장이 전원일기를 너무 좋아해서 전원일기 가족을 가끔 초대해 식사도 하고 배구시합도 하고 그랬어요. 그 자리에 MB도 항상 같이 해서 친해졌지요. 그러다 드라마 ‘야망의 세월’(1989년)에서 내가 MB 역할을 하며 더 가까워졌어요. 하지만 정치적인 관계는 아니었어요. MB는 그 한참 후에 정치를 했으니까요. 서울시장 나올 때도 나는 선거운동을 안했어요. MB가 서울시장 때 문화정책을 제대로 하는 민간기구로 서울문화재단을 만들었는데 내가 그 자리에 가면서 정치적인 인연이 시작됐지요. 나는 행정하려고 갔지만 정무적인 일도 연관되어 있었거든요. 재단 대표를 3년 했는데 직원도 내가 뽑고 생각한대로 원하는대로 많은 일을 해서 참 행복했어요. 신생 재단이라 골격을 갖춰야 해서 쉽지 않았지만 매우 보람있었어요. 첫해 예산은 500억으로 시작했는데 나올 때는 1400억 정도로 커졌어요. 직원도 35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100명으로 늘었죠.” 

ᅳ 오랫동안 후배와 연극 홍보를 위해 운영해오셨던 유씨어터 자리가 최근에 자전거 트레이닝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유씨어터는 1999년에 오픈했는데 당시만 해도 강남에 전문 연극 공연장이 없어 새로운 관객을 만나보자는 생각에 시작했어요. 많이 힘들었죠. 공연장을 개인이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그걸 사재를 들여 오랫동안 끌어왔죠. 공직할 때는 거의 무료로 빌려 줬고, 그 다음에는 하루에 만원 받고 대관해주기도 했어요. 어려웠지만 사람은 많이 키웠지요. 하지만 더 이상 개인의 힘으로 끌고 가기는 어렵다 싶어 바꾼 겁니다. 이제는 정식 공연장이 아닌, 스튜디오 개념의 새 공간을 준비하고 있어요.”    

ᅳ 작년 10월 남한강에서 MB와 라이딩 때 뵈었는데 자전거 타시는 폼이나 실력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자전거는 언제부터 타셨는지요. 
“언제부터 탔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어렸을 때부터 계속 타왔어요. 서울문화재단에 있을 때나 장관 때도 자전거로 출퇴근 했지요. 철인삼종 준비하면서는 훈련 개념으로 열심히 타기도 했지요.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이후부터 같아요.” 

 

20~30대 건각들과 함께 팩을 이뤄 능내역에 도착한 유장관 일행

 

 

자전거의 최고 매력은 성취감


ᅳ 어떤 자전거 장르를 좋아하시는지, 주로 어디서 즐겨 타시는지요. 
“근교는 사이클을 타고, 장거리는 아무래도 MTB가 편해요. 원래 3대가 있었는데 MTB를 다시 하나 장만할 생각입니다.” 

ᅳ 4대강 사업은 MB 정권의 최대 업적이면서 여전히 정치적인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건설된 자전거도로망에 대해서는 국내외 모두 호평 일색입니다. 자전거길을 만들 때 장관님께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공사하기 전부터 많이 다녔어요. 장관할 때 자전거텔이나 야영장 같은 편의시설 예산을 마련했지만 야당에서 반대가 많아 결국 예산이 삭감되어 완성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요. 이번에 청소년들과 부산~서울 국토종주 할 때 야영을 하며 올라와보니 샤워장이나 화장실이 제대로 없어 불편했어요. 시설이 갖춰진 보 근처에 자려고 하면 하천관리법 때문에 텐트를 못치게 해서 하루에 2, 3번 쫓겨나기도 했지요. 보 근처에 야영장을 만들면 좋겠어요. 함안보에서는 주차장에서 재워줘 아주 고마웠어요.”   

ᅳ 요즘은 외국인들도 많이 찾을 정도로 4대강 자전거길은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 아이템이 되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지요. 
“부산 쪽에는 일본인이 많이 오더군요. 도중에 중국, 홍콩, 싱가폴, 유럽인 등 외국인이 꽤 많았어요. 한결같이 영어 안내판이 왜 없느냐고 불편해 했어요. 아직도 할 일이 많아요. 자전거로도 관광사업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이왕 해놓은 것이니 잘 유지·발전시켜야 좋은 자산이 됩니다. 그런데 반대론자들이 말하는 녹조만 해도 그래요. 부산 낙동강 하구언과 바로 위의 물금 사이에만 녹조가 있었어요. 거긴 4대강 공사와도 무관하고 대도시를 끼고 있는데다 축산폐수 등이 모여드는 곳이지요. 지류지천만 잘 정비하면 여기도 괜찮을 텐데 이런 곳의 녹조 사진을 찍어서 4대강 전체가 오염된 것으로 선동해요. 올해는 바이칼호에도 녹조가 생겼다는데 여름철 기온이 올라가면 녹조는 자연스런 현상의 하나이기도 해요. 그 무더위와 가뭄에도 함안보 이상은 물이 넉넉하고 아주 깨끗했어요.”
유 장관은 전국의 자전거길을 다 갔지만 아직 오천길, 제주도, 동해안 길을 남겨둬 그랜드슬램은 달성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ᅳ 평생 배우시지만, 장관을 지내셨기에 ‘장관님’이란 타이틀이 따라다닐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그게 좀 불편해요. 다 손을 털었고 잊어버렸는데 만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 봐요. 좀 불편하기는 해도 요새는 별로 신경 안 쓰고 받아들입니다.”

ᅳ 장관님이 생각하시는 자전거의 장점이나 매력은 무엇일까요
“성취감, 보람이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내 힘만으로 이렇게 먼 거리를 올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성취감을 줍니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보람도 크지요. 사고만 나지 않는다면 최고의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철인경기에도 출전할 정도로 운동으로 다져진 만능 스포츠맨이다
“내 성격이 좀 직선적이에요. 둘러서 얘기하지 않아요.”

 

 

연극은 영상과 완전히 다른, 수련과 자기완성의 무대


ᅳ 자전거 타다 다치신 적은 없는지요. 
“역주행 하는 사람과 부딪혀 팔이 부러진 적이 있어요.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기본적인 안전교육이 너무 안되어 있어요. 갑자기 방향을 틀거나 멈추고, 유턴을 하면 뒤따라가다 피할 수가 없잖아요. 우측교행도 모르는 사람도 많아서 기본적인 소양교육이 꼭 필요해요.”

ᅳ 요즘은 주로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작년은 연극을 많이 했어요. 작품 3개를 했으니까요. 방송은 OBS의 ‘명불허전’이 유일한데 3년 이상 하고 있지요. 연극과 관련해서는 젊은 친구들과 연습을 많이 합니다. 시간 날 때는 자전거를 타지요. 이제는 가능하면 사회를 위해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것만 하려고 해요. 내가 필요하다면 어디든지 갑니다. 도와달라고 하거나 역할을 해주기 바라면 가능하면 갑니다. 강연도 많이 다녔는데 요즘은 연극에 집중하려고 대중강연은 많이 하지 않아요.”

ᅳ 장관이 된 배우에 이어 배우로 돌아온 장관이십니다. 연극의 본질, 매력은 뭘까요. 
“연기는 자기완성이에요. 겉보기에는 영상과 비슷한 것 같지만 속은 완전히 달라요. 영상은 해외든 어디든 배경과 무대를 바꿀 수 있지만 연극은 좁은 무대 공간에서 그 모든 배경을 관객들에게 상상하도록 만들어줘야 해요. 그 방법이란 게 배우의 몸뿐이죠. 그래서 많은 훈련과 창의적인 생각, 노력이 필요해요. 그만큼 더 압축적이죠. 손을 살짝 움직여도 관객은 거기서 뭔가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길거리 캐스팅으로는 안돼요. 끼나 재주보다는 오랜 기간의 수련이 필요해요. 하지만 요즘 대학로에서는 라디오 드라마 같은 가벼운 연극을 많이 해서 조금 아쉬워요. 스케일도 있고 현실을 압축해서 표현해야 하는데….”
 

ᅳ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자전거와 더불어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 
“자전거생활 잘 보고 있어요. 내용이 참 좋아요. 잡지도 잘 됐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격려하고 걱정해주는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 이날 취재에는 여행작가인 조용연 전 울산경찰청장과 차백성 씨도 자리를 함께 했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들며 한담을 나눈 뒤 유 장관은 다시 출발채비를 했다.
함께 온 5명의 건각들과 함께 팩을 이뤄 달려나가니 영락없는 40대 베테랑 ‘포스’다. 저런 건강과 열정, 소탈함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장관이었던 배우 유인촌, 라이더 유인촌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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