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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전설과 초원의 나라, 몽골②제국의 수도는 폐허로 남았고, 초원에는 수많은 복병이 도사렸는데…

바람과 전설과 초원의 나라, 몽골②

제국의 수도는 폐허로 남았고, 초원에는 수많은 복병이 도사렸는데…

초원의 진면목은 예상과 달랐다.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평탄할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거센 맞바람에 가파른 업힐이 이어지고, 길가로는 가시 돋친 풀이 위협하며, 비온 후에는 물웅덩이와 개울이 길을 막아선다. 몽골제국의 첫 수도였던 카라코룸은 옛 영화를 잊고 폐허로 남았다. 일행은 적막강산에 빛줄기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초원의 밤을 야영으로 흠뻑 즐긴다 

글 이홍희(前 해병대 사령관)  사진 ‘설래는 영혼’(김상봉 : 뚜르 드 몽골)   
현지 지원 MONGOL MATE(mongolmate.com)

 

한국인에게는 경이적으로 느껴지는 풍경 속으로! 들판과 초원이 드문 우리나라에서 몽골의 대초원은 단순히 이국풍을 넘어 비현실적인 환상경이다

 

 

day4  비양노르 솜 ~ 어기호수

바람과 힘겨루기 하느라 초원을 느낄 겨를이 없다. 
너무 힘이 든다…


오늘(8월 5일)은 실질적인 자전거 여행 3일차다. 첫째 날 비로 인해 달리지 못한 부분을 포함하면 어제 달렸던 거리와 비슷한 120여km를 가야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몽골에서 아주 큰 축에 드는 ‘어기호수(Ugii Lake)’라는 곳인데 수평선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목적지 직전에 있는 30km 정도의 코스가 완전한 초원이어서 몽골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초원에서의 라이딩을 즐기게 된다.   

아직 해가 뜨려면 제법 많은 시간이 남았는데 다들 일찍 일어나서 이른 아침시간을 즐기고 있다. 부지런한 사람은 텐트를 걷으며 라이딩을 준비하느라 부산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유와 멋을 아는 사람들은 모닝커피 한잔과 함께 대평원에서의 멋에 빠져있기도 하다. 어젯밤 기온이 약간 쌀쌀하기는 했지만 다들 초원에서의 첫 야영에 흡족해 하며 아주 편안하게 푸욱 잘 잔 것 같다. 

“맞바람을 각오하라”
어제 잠자리에 들 때 다들 “내일 아침에는 오늘의 아름다운 일몰에 못지않은 일출의 장관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들 희망했지만, 지평선을 따라 구름이 낮게 끼어 일출을 볼 수 없어서 많이 아쉽다.
식사 후 투어대장으로부터 오늘 라이딩에 대한 설명과 주의사항을 전달받는다. 이미 예고됐던 것처럼 오늘 라이딩도 결코 만만하지 않을 것 같다. 오늘 라이딩만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어제도 12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왔고, 오늘도 어제와 비슷한 거리를 가야한다. 무엇보다 완전히 맞바람을 맞으면서 달려야 하는 코스라 더욱 힘든 하루가 될 것 같다.

 

대지에 물결이 일듯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언덕 너머로 먹구름이 피어오르고, 두바퀴 말은 초원을 질주한다

 

 

바람과의 악전고투, 초원을 즐길 틈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출발하자마자 엄청난 맞바람이 일행을 반긴다?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평균시속 10~15km 남짓으로 전진할 수 있을 뿐이다. 어제 평균시속 25km 이상으로 달리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힘이 든다. 그러니 앞사람과 뒷사람 간의 간격은 물론 조(組)와 조의 간격도 벌어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달리는 것 자체에 치중하다 보면 주변에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 있어도 즐길 여유가 없고 눈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또한 힘이 들면 들수록 자주 쉬어야 하고 휴대한 간식과 물로 에너지를 보충하는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 조(組)는 향도 임무가 해제되어 맨뒤에서 따라간다. 앞바람이 너무나 강하게 불어서 앞 조와의 간격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결코 만만치 않아, 아예 전체 대형 유지를 포기하고 우리끼리 체력을 안배하며 천천히 가기로 했다. 그랬더니 좀 더 여유가 생기고, 중간 중간 절경을 만나거나 가축들이 지날 때는 사진도 찍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말과의 동행
초원에 둘러싸인 도로를 한참 달려가는데 도로 옆 풀밭에서 풀을 뜯던 말들이 우리를 보자마자 같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우리 일행을 위한 환영의 에스코트라도 하는 것인가? 아니면 말의 습성이 원래 그런 것인가? 동물들은 무리 중에서 한 마리가 어떤 행동을 하면 나머지도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마치 겨울밤 시골동네를 찾는 낯선 사람을 알아챈 개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온 동네 개가 너나 할 것 없이 다 같이 짖듯 말이다. 어쨌든 말들이 그렇게 한참을 함께 달려주니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 우리와 함께 달리고 있는 저 말들은 13세기 당시 몽골군들이 유라시아를 주름잡을 때 함께 달렸던 선배 말들의 DNA를 과연 어느 정도 이어받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과거 몽골군들은 병사(兵士)들도 강하게 훈련시켰지만 말은 더 혹독하게 훈련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병사도 중요하지만 부대 기동력의 핵심인 말을 제대로 훈련시켜 놓지 않으면 전투에서 승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말의 폐활량을 증대시키기 위해 말의 입에 재갈을 물리지 않았으며, 먹이가 제한되는 전쟁터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습성을 익히도록 평소부터 끓인 먹이를 아예 먹이지 않아 전쟁터에서 풀뿌리와 같은 척박한 먹이를 먹으면서도 전투에 참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야간 작전 때 적에게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풀숲에 바짝 엎드려 매복할 수 있는 능력도 배양시키고 말들끼리 대화도 하지 못하게 훈련시켰다니 얼마나 전투적으로 훈련시켰는지 참으로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유럽 말들은 야간에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입에 재갈을 물리고, 야간 매복작전 시에는 땅에 바짝 엎드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 말의 발을 묶어서 엎드리게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매복을 하다가 긴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즉각적인 공격을 포함해서 효과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면에서 볼 때 몽골 말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몽골 말(馬)은 칭기즈칸 당시 유럽을 원정했을 때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에도 참전해 연합군의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 독·소전(獨蘇戰) 당시 소련에서 말이 부족해 약 50만 필의 몽골말이 소련군에 제공되어 소련군이 기동력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전사(戰史) 기록이 있다. 까다롭지 않고 참을성이 많은 몽골말은 유럽말보다 극한의 전선(戰線) 여건에 잘 적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몽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에 대해 말 외에도 전차, 항공기는 물론 양털,) 가죽옷, 현금 등 몽골 국가예산의 절반 정도를 지원했다고도 하는데 이는 당시 미국이 소련에 지원한 규모에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그렇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자전거를 따라 함께 달리는 말떼. 800년 전 세계를 제패했던 선조들의 DNA를 물려받아 체질이 강인하다

 

 

초원에서 만난 자전거 여행자 
이번에 몽골 초원을 라이딩 하면서 우리처럼 초원을 라이딩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은 속도가 있어서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오늘은 완전히 풀 패킹(야외에서 취사와 야영에 필요한 장비와 비품을 다 휴대한 상태)을 한 일행을 만났다.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2~3명이 보통 한 달 이상을 라이딩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 중간 집결지(점심장소) 부근에서 만난 2명의 라이더(프랑스와 미국 젊은이)도 벌써 6주 째 라이딩 중인데 앞으로 몽골을 횡단한 다음 중국으로 들어가고, 여건이 되면 베트남을 거쳐서 싱가포르까지 갈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간혹 이렇게 장기간 동안 해외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그렇게 흔한 편은 아닌 것 같다. 당장 직장을 생각해야 하고 가족도 생각해야 하니 말이다. 

외국 젊은이들과 함께 점심을 나누면서 많은 대화를 나눈다. 둘 중 미국 젊은이는 한국에서 영어학원 강사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서 나름 한국에 대한 애정이 많은 것 같고 얘기도 잘 된다. 

도보여행이든 자전거여행이든 여행을 하면서 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가 친구가 되는 것이다. 특히 몽골의 이 광활한 초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나가던 사람을 세워서 얘기를 나누고 식사를 같이 한 것은 참으로 잘 했다 싶다. 대규모 자전거 여행팀인 우리들과 함께 한 짧은 시간도 그들에겐 좋은 얘깃거리가 되지 싶다.

점심을 먹으며 에너지를 충분히 보충했다. 이렇게 라이딩 중간에 힘이 들 때의 에너지 보충은 엄청 중요하고 즐겁다. 에너지 보충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시간을 이용해 라이딩으로 지친 몸을 충분히 쉬게 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에너지 충전을 마친 다음 서서히 페달을 밟으며 가속시킨다고는 하지만 여전한 기세를 보이고 있는 앞바람과의 힘겨루기는 힘에 겹다. 페달을 밟고 밟으면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몽골을 자전거로 여행 중인 미국과 프랑스 젊은이와 함께. 우리 젊은이들도 이들처럼 모험적인 여행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지원차를 만나면 반갑다. 물과 휴식이 있기에

 

 

고개 너머 멀리서 반겨주는 호수와 게르촌 
점심식사를 하고 출발한지 3시간이 다 될 즈음에 포장도로에서 비포장 초원길로 접어들었으니 목적지가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목적지에 거의 다 온 것이 틀림없는데도 최종 목적지인 어기호수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가이드도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 맨 선두에 선 향도가 길을 찾아서 제대로 목적지로 안내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통신이 잘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목적지가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 여러 갈레의 초원길에서 아무 방향으로나 전진하는 것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많다.
한참이 지나서야 가이드와 합류한다. 사전에 답사를 직접 하지 않았는지 가이드도 여기저기 연락도 하고 길을 물은 다음에야 겨우 목적지를 알아낸다. 이제 정말 목적지에 가까워졌나 보다.


지금부터 가파르지는 않으나 모래가 많이 섞인 제법 긴 업힐을 오르기 위해 마지막 힘을 쏟아 부어야 한다. 저 멀리 고개 정상 부근에 지원차량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거의 다 오기는 온 모양이다. 먼저 도착한 지원인원들이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는 동료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초원의 업힐 도로 자체도 힘이 들지만 모래가 섞이면 더욱 힘이 들고 나아가는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 

혼신의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아 드디어 고개 정상에 올라선다. 고개 정상에 오르니 시야가 탁 트이고 드디어 저 멀리 호수가 보이고 호수 주변 여기저기에 게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 고개 정상으로부터 오늘 우리가 묵을 게르까지는 내리막길이다. 체력이 고갈된 것 같아도 내리막이라 단숨에 달려 힘겹게 도착한다. 

체력이 거의 고갈되어서야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어기호수 가에 자리 잡은 게르촌에 도착한다. 속도계를 보니 오늘도 어제와 비슷한 127km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거리를 달려온 것이다.
‘어기’는 손위 여성을 부르는 존칭이자 ‘내어준다’라는 의미이므로 ‘내어주는 어머니 호수’라는 뜻이라고 한다. 둘레가 25km나 되고 대부분의 몽골인들이 숭배하는 호수이며 바다가 없는 몽골에서 수평선을 볼 수 있는 귀한 장소이기도 하단다. 이곳 호수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어종이 살고 있다고 안내 표지판에 적혀있다. 


바다가 없는 대륙국가인 몽골에서는 민물고기를 얻을 수 있는 곳이 흔치 않기도 하지만, 몽골인들은 가축을 통해서 필요한 대부분의 영양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기 때문에 물고기는 그렇게 환영받지 못한다고 한다. 물고기를 먹거리로 생각하는 것은 멀리서 계절 따라 이동하면서 이곳 호수에서 일정기간 머무르는 철새들과 외국에서 온 여행자들뿐이란다. 하지만 우리 팀은 매일매일 결코 쉽지 않은 거리를 소화해야 하므로 한가로이 낚싯줄을 던질 여유가 없다.

오늘 맞바람을 맞으며 달린 라이딩, 엄청 힘이 들었지만 참으로 멋진 라이딩이 아니었던가? 힘든 만큼 머릿속에 더 오래 남을 것이고, 몸의 근육이 기억하는 법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도 참 재미있었지…. 게르의 샤워실에서 졸졸졸 흘러내리는 물에 하는 둥 마는 둥 샤워 흉내만 낸 다음, 휴게소 발코니에 두런두런 둘러앉아 맥주 한 캔씩을 들면서 오늘 일정을 또 복기해본다. 그게 자전거 타는 것보다 더 재미 있을 때가 많다.



day5  어기호수 ~ 호찌르트
몽골 초원을 평지로만 알았다가는 큰코 다친다. 
몽골의 옛 수도 보기가 만만치 않네   


오늘(8월 6일)은 실질적인 여행 4일차다. 하루의 시작부터 엄청난 업힐이 있다고 한다. 만만하지 않은 라이딩이 될 것이고, 이 과정을 겪고 나서야 옛날 몽골제국이 세웠던 수도(首都)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첫날 일정의 변경으로 인해 달리지 못했던 거리는 어제까지 이틀의 라이딩을 통해서 모두 소화했으므로 오늘부터는 원래의 계획에 따른 라이딩이 진행된다. 오늘은 어기호수를 출발해 초원길 30여km를 달린 다음 몽골제국의 옛 수도 ‘카라코룸(Karakorum, 하라호름)’을 거쳐 ‘호찌르트(Khujirt)’까지 총 100여km를 주파하는 라이딩이다.

 

둘레가 25km나 되는 어기호수 옆에서 야영을 하고 출발하기 직전

 

초원 업힐의 고역
게르촌을 출발하자마자 시원한 어기호수를 만난다. 호숫가를 따라 한참을 달리고 달린다. 국내의 동해 바다를 끼고 해파랑 길을 달릴 때와 같은 느낌으로 호숫가를 달리니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기분이 최고다. 

이어서 만나는 시원한 초원길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초원길이 30km나 된다고 한다. 어제까지는 포장도로 주변의 초원을 느꼈다면 오늘이 어쩌면 실제적으로 초원길 라이딩을 처음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늘 접하는 초원길을 초원이라고 한다면, 어제까지의 초원은 오히려 광야나 다름없는 수준의 초원으로 격(格)이 완전히 다르다.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상쾌함과 쾌감,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다. 이 맛을 위해 이곳 몽골에까지 오지 않았는가. 

두 번에 연이어 나타나는 엄청난 업힐이 우리를 반기며 괴롭힌다. 아마 최소 12~15%의 경사가 아닌가 싶다. 일반 도로가 아니라 초원의 업힐이라서, 출발하자마자 아직 몸이 풀리기도 전에 만나는 업힐이라 더욱 힘이 들고 숨이 목에까지 차오른다. 다들 댄싱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안간 힘을 쏟아낸다. 대부분이 업힐 정복에 성공하지만 일부 대원들은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라갈 수밖에 없다. 땀을 흘리고 숨을 몰아쉬며 올라 온 만큼 보상을 받는 것이 업힐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힘들게 올라온 정상에서 발 아래로 내려다보는 초원은 정말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업힐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푸른 초원, 초원과 조화를 이루며 펼쳐져 있는 어기호수의 풍경은 사람을 꼼짝 못하게, 자리를 쉽게 떠날 수 없게 잡는다. 갈 길이 급하기는 하지만 모두가 신이 난다. 무한대로 펼쳐진 푸른 초원과 주변 풍광을 내 기억 속에, 내 카메라에 집어넣기에 바쁘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풍경이 멋지다는 핑계로, 사진 찍는다는 핑계로 업힐을 하느라 고갈된 에너지를 충전한다고 엉덩이가 무겁고 자전거도 무겁다. 
 

대몽골제국의 영화를 누렸던 첫수도 카라코룸은 명나라의 침공으로 일부 성벽만 제외하고 폐허로 남았다. 대신 그 자리에 ‘베르덴루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거리 가늠이 안된다? 
이제는 내려가야 할 때다. 올라올 때도 중요하지만 내려갈 때가 더욱 중요하다. 올라올 때 힘들었던 것과는 달리 내려갈 때는 더욱 위험하기 때문이다. 비포장의 초원길은 얼핏 보아서는 노면이 고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노면이 고르지 않고 중간 중간 굴곡이 많을 뿐만 아니라 빨래판(?)과 같아서 속도를 제대로 내기 어렵고, 자전거가 많이 흔들려 그로 인한 충격이 팔에 그대로 전해진다. 

내리막길이라 속도가 빨라지기 마련이고 중간 중간에 모래가 쌓여있어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긴장의 연속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길이 아닌 초원의 풀밭으로 들어갔다가는 눈에 쉽게 띄지 않는 복병을 만나기 십상이다. 자그마한 크기의 풀이지만 가시가 있는 풀이 많이 자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짐승들이 파놓은 조그만 구멍들이 많기 때문이다. 풀밭에서도 어려움 없이 라이딩할 수 있는 타이어로 교체하고 왔지만 그래도 조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고개를 다 내려와서 초원을 한참 더 달리고 나서야 포장도로를 만난다. 

승차감이 훨씬 좋다. 이래서 문명이 좋은 것 아닌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포장도로만 탈 때는 비포장도로를 그리워하지만, 비포장도로를 한참을 달려 안장통을 느낄 정도가 되면 포장도로가 그리운 법이다.
한참을 또 달려서 오늘의 중간 목적지에 다다른다. 오늘 가는 거리가 그렇게 부담이 되지 않으므로 여기서 점심을 먹으면서 충분히 쉬기로 한다. 


이렇게 초원을 달리다 보면 거리개념이 흐려진다. 앞에 보이는 언덕까지의 거리가 얼마인지 가늠하기가 여간 힘들지가 않다. 처음에는 기껏해야 얼마정도 되겠지 싶지만 막상 달려보면 상상을 훨씬 넘어가니 속도계를 자꾸 의심하게 한다. 자그마한 업힐이겠거니 하고 달려가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그만큼 거리 개념이 없어지는 것이다. 


몽골제국의 첫수도 카라코룸에 서다
오늘 라이딩 구간에서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옛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과 그 자리에 세워져 있는 티벳 불교의 상징 ‘에르덴주 사원’을 둘러보는 것이다.
카라코룸은 몽골 북쪽 ‘오르혼 江’ 주변에 위치한 옛 몽골제국의 첫 수도로서 ‘하라호름’이라고도 한다. 한때는 세계의 수도로서 엄청나게 번창했지만 지금은 몇몇 유적만이 남아있는 폐허 그 자체일 뿐이다. 


초창기 몽골의 중심지였던 ‘오논 江’ 지역이 몽골 동북쪽에 치우쳐 있어(현재의 러시아와의 국경선 일대) 칭기즈칸의 아들 ‘오고타이 칸’이 현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 서쪽 약 400km에 위치한 이곳에 몽골제국 전체의 수도로 정했다.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서방나라들이 앞을 다투어 사신을 파견하며, 세계 곳곳에서 상품과 대상(隊商)이 몰려오던 몽골제국의 첫 수도였던 것이다. ‘쿠빌라이 칸’이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기기까지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전성기 땐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인종이 모여들던 세계의 중심이기도 했다. 

쿠빌라이 칸 통치기에 몽골을 왕래했던 이탈리아의 여행자 ‘마르코폴로’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코폴로보다 20~30년 앞서 다녀간 프란체스코파 수도사 ‘플라노 드 카르피니(Plano de Carpini)’와 ‘월리엄 루브룩(William of Rubruck)’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들이 방문한 기록을 통해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룸과 몽골의 모습이 서방에 생생하게 전해졌다. 

카라코룸은 13세기 몽골제국의 수도로서의 역사적 의미가 크다. 현재 몽골은, 수도인 울란바토르 한곳에만 집중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라코룸으로의 수도 이전 필요성에 대한 얘기가 199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했고, 카라코룸을 몽골제국 수도로 정한 800년이 되는 해인 2020년까지 수도 이전 문제를 해결하려 하나 국가 재정 문제로 인해 불투명한 상태라고 한다.) 

 

초원은 평탄해 보이지만 힘든 언덕이 적지 않다. 바람과 언덕은 대초원의 복병이다

 

고갯마루에는 우리나라의 성황당에 해당하는 돌무덤이 있다. 투어의 안전을 기원하며 돌 하나를 얹었다

 

티베트 건축 양식을 본뜬 몽골 최초의 불교사원인 에르덴주 사원

 

 

에르덴주 사원과 티베트불교 
그렇게 화려했던 카라코룸의 과거 흔적은 명나라(홍무제)의 침공으로 인해 완전히 사라지고 아무 것도 없이 폐허로 남아 있다가, 1586년에 이르러서야 그 폐허 위에 티베트 건축 양식을 본뜬 몽골 최초의 불교사원인 ‘에르덴주 사원’이 세워진 것이다. 카라코룸의 무너진 성채의 석재 일부가 이 사원을 지을 때 사용되었다고 하며, 사원에는 108번뇌를 상징하는 108개의 불탑이 주변을 감싸고 있고 일부 건물에는 이슬람 문화의 양식까지 혼합되어 있다고 한다. 

소련의 영향을 받았던 사회주의 정권 때 많은 탑과 사원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수많은 승려가 목숨을 잃기도 했지만 소련이 붕괴된 이후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티베트불교가 몽골에 들어온 것은 13세기였는데 이 사원을 짓고 나서야 비로소 불교가 급속하게 전파되었다고 한다. 이후 이렇게 급속히 확산하게 된 데에는 정치적 절실성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북경에 수도를 두었던 원나라가 명나라에게 망하고 그 잔존세력이 ‘북원’ 즉 몽골초원으로 퇴각하고 나서 이 세력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등 내부 갈등도 있고 단합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이때 몽골의 지배자들은 백성을 단합시키고 자신들이 지도자로서 권위를 부여받을 정신적 기반이 필요했던 것이다. 거기에 딱 맞아떨어진 것이 티베트불교이고, 그래서 세워진 에르덴주 사원은 몽골이 본격적으로 불교국가가 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해설자가 전해준다. 그러나 해설자의 설명과 지금 남아있는 몇몇 유적만으로 과거 융성했던 카라코룸의 모습을 그려내기는 쉽지 않다.

몽골의 옛 수도인 카라코룸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고 오늘의 목적지인 호찌르트를 향해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카라코룸을 출발한지 2시간 정도가 지나 야영지를 잡아야 할 곳에 도착하는데, 야영지 주변에 ‘나담 축제’의 뒤풀이라고 하는 인근 마을의 소규모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나담 축제는 몽골 국민 혁명일인 7월 11일 부터 사흘간의 국경일 동안 남성 3종 경기(말타기-마술, 활쏘기-궁술, 씨름-유격술)에서 최고를 겨루는 대회인데, 원래는 종교적인 의식과 유사하게 치러졌다가 현재는 축제 형태로 즐기고 있다고 한다. 과거 칭기즈칸의 몽골제국 당시에도 군 전력 증강과 사기 진작을 위해 세 종목의 대회를 개최했다는 기록이 있어 현재의 나담 축제의 기원을 읽을 수 있다. 


야영할 때 샤워를 해결하는 비법(?)
오늘도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한다. 이번 여행 중 숙박은 하루는 게르에서 자고 그 다음 날은 텐트에서 야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서 반복한다. 전체 여행기간 동안 텐트에서 야영하면서 몽골의 자연을 느껴보는 좋은 점도 있으나 샤워와 빨래 등을 위해서는 게르에서 잘 수밖에 없다. 게르에서는 기본적으로 난로를 피울 수 있고 온수 샤워가 가능하며 화장실도 갖추어져 있어 세탁도 할 수 있다. 

반대로 야영을 할 때는 이것들 모두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어쩌다가 흐르는 개울이라도 있으면 그래도 괜찮지만 가축들의 배설물로 인해 오염된 경우가 많고 비누 등을 이용한 행동이 철저히 규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야외에서 자면서 씻는 것이 제한되는 경우에는 ‘물티슈’를 이용해 ‘물티슈 샤워’를 하는 것이다.

네팔에서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할 때는 물도 물이지만 샤워로 인해 체온을 잃지 않고 고산증세를 예방하려고 트레킹 내내 ‘물티슈 샤워’를 한 적이 있다.   

오늘은 주행거리가 짧아 다른 날에 비해 일찍 야영지에 도착했다. 바람이 덜 부는 장소를 선정한 다음 각 조별로 텐트를 설치하는 등 야영 준비를 빨리 마쳤다. 야영지에서 내려다보는 초원이 너무나 아름답다. 미리 도착한 지원팀이 특식을 마련하느라 엄청 분주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오늘 지원팀에서 정성껏 준비한 특식은 ‘호르혹(Horhog)’이라는 몽골 최고의 음식이다. 

호르혹은 몽골 사람들도 자주 먹는 음식이 아니고 귀한 손님이 올 때나 특별한 행사 때나 먹는 귀한 음식이라고 한다. 숫양을 잡아서 내장을 제거한 다음 요리하는데, 불에 뜨겁게 달군 돌의 열기를 이용해서 고기를 익혀내는 몽골 전통 음식이다(암컷은 새끼를 낳아 개체 수를 늘려야 하기 때문에 절대 잡지 않는다). 양념은 소금이 전부지만 정말 구수하고 담백하다. 이 음식의 맛과 냄새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특이한 맛이다. 직접 경험해보는 방법 외는 없으니 몽골을 여행한다면 꼭 한번 즐겨볼 것을 추천한다. 

몇 잔의 술(몽골 보드카)을 곁들이며 호르혹의 맛을 즐기느라 푸르던 초원이 금세 붉게 물들고 한 순간에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줄도 몰랐다. 

이제는 주변을 둘러보아도 불빛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가끔씩 저 멀리서 지나가고 있는 차량의 불빛이 빛의 전부다. 더 있다면 텐트 속에서 하루를 정리하는 헤드랜턴 정도일 뿐이다. 이 랜턴 불빛도 내일의 라이딩을 위해서 금방 꺼질 것이다. 그러면 주변은 완전히 어둠이 된다. 오늘 하루도 힘들었지만 이렇게 맛난 음식 호르혹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으니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다. 초원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잠은 그래서 더욱 달기만 하다.
 

고된 라이딩을 마치고 몽골 특식인 ‘호르혹’으로 초원의 만찬을 여유롭게 즐긴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대초원에서 그늘은 귀하고도 고맙다

 

 

day6 호찌리트 ~ 바트얼지
몽골 초원에는 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며칠 째 내린 비로 초원길이 엉망이다   


오늘(8월 7일)은 정말 본격적인 초원 라이딩을 하는 날이다. 아침에 호찌르트를 출발해서  30km 내외의 포장도로를 달린 후 완전한 초원길 56km를 달려 ‘바트얼지(Batulzii)’까지 가는 부담 없는 거리의 코스다.
오늘은 그렇게 부담되는 거리가 아니어서 출발도 느지막이 하고 라이딩 중에도 쉬엄쉬엄 쉬면서 여유를 부려본다. 그런데 어라 이게 아니네…. 막상 달려보니 약 30km의 포장도로이지만 지금때까지 달린 도로 중에서 가장 경사가 심하고, 업힐 거리 또한 만만찮다. 쉽게 보고 시작했는데 업힐에서 많은 대원들이 크게 혼이 나고야 만다. 


역시 강자는 업힐에서 가름이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간 고수라고 인정되던 분들이 역시 소리 없이 강하다. 숨소리 한번 내지 않고 10여km의 업힐을 가뿐하게 올라선다. 그리고선 격려의 박수를 치면서 후발주자들을 맞이해 준다. 고수 앞에서 함부로 라이딩을 어쩌구 저쩌구 토를 달아서는 안 된다. 업힐 정상 부근에서 휴식을 하며 숨고르기를 한 다음 나머지 평탄한 포장도로를 가볍게 완주하고 초원길로 접어든다.

 

그저께 내린 비로 초원 곳곳에 생겨난 물웅덩이와 물길 때문에 라이딩이 힘겹다

 

 

어느 길로 갈 것인가?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는 정해진 길이 없다. 가는 곳이 길이 된다. 초원에서의 라이딩은 목표지점이 있으면 꼭 정해진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목표 방향으로 나있는 수많은 길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해서, 많게는 약 2km 폭에 걸쳐서 나있는 10여개의 길 중에서 나아가는 것이다. 그 많은 길 중에서 어느 길을 택하느냐는 전적으로 향도에게 달려있고, 향도가 선택하는 길에 따라서 라이딩이 쉬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번 몽골 라이딩은 자전거를 타는 ‘라이딩 팀’과 라이딩 팀에 대한 식사와 야영을 지원하는 ‘지원팀’으로 구성되었는데, 두 팀이 같은 경로를 따라 함께 이동하는 것이 좋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씩 발생하기도 한다. 


초원 곳곳에 숨은 복병, 물웅덩이와 하천 
초원이라고 항상 풀만 있어 편안하게 달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 초원도 기상에 따라서 많은 변화가 있게 마련이다. 그저께 내린 비로 인해 초원의 풀밭 여기저기에 물길이 새로 생겼고 배수가 잘 되지 않아 물웅덩이도 남아있어서 라이딩에 지장을 많이 준다. 물론 웬만한 크기의 물길은 달리는 탄력을 잘 이용하면 그냥 타고 건널 수 있지만 자칫하면 개울을 건너다 중간에서 넘어지기도 한다. 아예 자전거를 타고 건널 자신이 없으면 신발을 벗고 자전거를 끌고 가든지 아니면 둘러메고 개울을 건너면 된다. 자전거를 끌고 건너면 자전거에 묻은 먼지며 흙이 자동적으로 깨끗하게 씻기기도 하고 발에 쌓였던 피로까지 풀 수 있어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라이딩 팀’은 이렇게 해서라도 초원에 형성되어 있는 개천과 하천들을 건널 수 있지만, 차량으로 구성된 ‘지원팀’은 사륜구동 차량이 아니어서 대부분이 진흙으로 이루어진 개울을 건너거나 흙탕물인 초원길을 이동하기가 만만치 않은 경우가 많다. 브레이크나 액셀을 밟았을 때 차가 미끄러지든지 몇 바퀴를 헛도는 등 운전자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차가 움직이기도 한다. 

라이딩 팀과 지원팀이 같은 코스로 이동하기가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분리하여 다음 집결지까지 이동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늘 지원팀은 원거리로 둘러가고 라이딩 팀은 그대로 개울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진흙길을 개척하면서 초원을 가로지르기로 했다.    

바트얼지까지 가는 오늘의 라이딩 방향과 거의 나란히 해서 몽골에서 제일 큰 강인 ‘오르혼 강(江)’이 흐르고 있다. 이 강에는 크고 작은 지류가 함께 형성되어 있어 오늘처럼 차량이나 자전거의 이동에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맨 선두에서 달리는 향도 입장에서는 물길을 거너야 할 경우 나머지 라이딩 팀원들이 물을 건너기에 가장 적절한 지점(도하지점)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다. 

향도가 진로를 잘 개척해서 동료 라이더들이 신발을 벗고 물을 건너지 않도록 길을 잘 찾아서 나가고 있지만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 가고 있는 이곳이 국내도 아니고 모두에게 새롭고 낯선 이국땅이기에 더욱 그렇다. GPS에 의존하고 그간 닦은 라이딩 경험을 바탕으로 직감을 발휘해서 가는 수밖에 없는데 그게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국내 같으면 세부 도로까지 나오는 내비게이션이 있지만, 몽골의 초원에는 어제 있던 길도 오늘이 되면 사라지는 경우가 많고 우리나라와 같은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신발을 벗고 오르혼 강의 지류를 건너는 일행. 그나마 물이 얕아서 다행이다

 

 

바이칼호로 흘러드는 오르혼 강을 따라 
진흙으로 이뤄지고 여기저기 개울이 있는 초원길을 달리고 달려 중간 집결지인 점심식사 장소에 도착했다. 바로 옆에 흐르고 있는 저 강이 오르혼 강이며, 흘러 흘러서 아시아에서 가장 큰 민물호수이자 세계에서 가장 깊은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로 흘러간다고 한다.
이 오르혼 강을 따라서 펼쳐진 초원은 많은 유목민들이 말과 양을 키우며 자자손손 살아가고 있는 최고의 유목지역이다. 또한 이 강을 따라 펼쳐진 이곳이 ‘오르혼 계곡’인데, 우리가 볼 때는 별로 대수롭지 않지만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아 ‘세계자연·역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약 2만 년 전에 화산폭발과 용암분출로 인해 주변에 폭포가 있는가 하면, 화산석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서 자전거 라이딩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오늘은 어제처럼 라이딩 거리가 길지 않아서 여유가 많은 편이다. 오르혼 강가에서 점심 겸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나서 자연·역사보호구역이자 국립공원 내에 있는 오늘의 야영지로 향한다.
이제부터 야영지까지는 초원을 벗어나서 나름대로 만들어져 있는 도로를 따라 가는데 이 길이 초원길보다 그렇게 좋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물웅덩이가 깊게 파여 있어 길을 정확히 알 수도 없고, 가끔씩 마주 오는 차량이 있을 때 서로 길을 양보한다지만 불편하고 위험하기는 초원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은 것 같다.
오늘의 야영지는 조그만 마을(면 소재지) 주변의 야산에서 텐트를 치기로 했고, 한참을 달려 야영지가 있는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단체로 이동하는 자전거 행렬이 신기한 듯 쳐다보는가 하면, 동네 아이들은 우리 일행을 따라서 숙영지까지 에스코트라도 하듯 같이 달려준다. 옛날에 우리가 어렸을 때 귀한 자동차가 어쩌다 시골 동네에 들어서기라도 하면 친구들과 함께 자동차를 따라서 무작정 따라 뛰었듯이, 그리고 해가 넘어갈 저녁 즈음 마을을 소독하기 위해 들어온 소독차를 따라 뛰어갔듯이 말이다.

그렇게 안내를 받으면서 마침내 야영지에 도착한다. 야영지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기 때문에 주변보다 조금 높은 곳을 정해서 바람을 막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재빨리 텐트를 설치하는 것이다. 바람을 막을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하면 텐트 설치 방향을 잘 정해서 바람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야 텐트가 밤새 안전하고 밤을 편히 보낼 수 있다. 바람이 자꾸 바뀌어 방향이 확실치 않으면 주변 유목민들이 사용하는 게르의 출입문 방향을 보고 같은 방향으로 텐트의 출입구를 두면 실수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들이 이곳에서는 누구보다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야영장은 바트얼지 마을 옆 언덕으로 잡았다. 황혼의 햇살이 마을을 물들이고 있다

 

캠프 옆에서는 소가 자유롭게 풀을 뜯는다

 

 

휴대폰이 연결된다!
목적지에 도착에서 야영준비를 한다. 아니다 다를까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의를 입고 비바람 속에서도 텐트를 칠 수밖에 없다. 그게 가장 편한 방법이다. 다들 바쁘게 텐트를 치고 야영준비를 한다. 비바람 속에서 텐트 치기를 서두르는데 여기저기 휴대폰에서 ‘카톡 소리’가 난다. 휴대폰이 연결되는 곳인가 보다. 이 마을이 그래도 이제껏 지나온 마을 가운데서 제일 큰 곳이라 통신회사 대리점도 있고 해서 휴대폰이 통하는 모양이다. 제일 반가운 것은 카톡을 통해 가족친지들과 연락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큰 횡재인가.  

이번 여행 중 휴대폰, 요술상자요 바보상자인 텔레비전, 재빠른 자동차 등 문명의 이기(利器)와 분리된 생활을 한번 해볼까도 생각했는데 그래도 가족들에게 연락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면서 마음이 약해진다.
비가 많이 내리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원팀이 저녁을 잘 준비해주어 너무 고맙다. 비도 내리고 해서 지원차량 주변 나무와 연결해서 천막을 설치해 비를 피한 상태에서 저녁을 급하게 먹는다. 밥을 먹고서는 오붓한(?) 2부 행사도 없이 각자의 텐트 속으로 직행이다.


오늘 밤은 비가 제법 많이 내리기도 하지만, 다들 텐트 안에서 가족친지와 연락을 하며 그간 지나오면서 찍었던 아름다운 초원의 모습을 보내는 등 할 일이 있어서 늦게까지 잠을 못 잘 것 같다. 자전거를 타는 동료들과의 오붓한 시간도 좋지만 그래도 가족과의 수담(手談 : 카톡)이 더 좋은 모양이다. 가족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다음호에 계속) 

 

 

 

 

 


이홍희 편집위원  bicycle_lif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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