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이색 자전거에 빠지다

클래식과 이색 자전거에 빠지다
박경철씨의 특별한 사랑

박경철 씨는 특별한 자전거를 좋아한다. 남들이 잘 타지 않는 자전거만을 수집하고 즐기는 그가 가장 아끼는 모델은 19세기 후반을 주름잡은 페니파딩(penny-farthing)이다. 영국에서 탄생한 페니파딩은 오디너리(Ordinary)라고도 하며 앞바퀴가 커서 ‘빅휠’이라고도 부른다. 국내에서는 광고 마케팅의 영향으로 ‘빈폴 자전거’라는 엉뚱한 별명으로 통한다. 보기에는 아름다워도 타기는 쉽지 않은 이 페니파딩에 능숙하게 오르내리며 대전 시내를 누비는 박경철 씨를 만나보았다
 

트레일러를 단 리컴번트를 탄 모습

 

“아니, 이 많은 자전거를 어떻게 보관하십니까!?”
11월 12일 대전 엑스포시민광장에서 열린 ‘공영자전거 활성화축제’에 갔다가 기자는 자신이 소장한 이색 자전거를 전시하고 있는 박경철(59) 씨를 보고 깜짝 놀랐다. 리컴번트를 중심으로 10대가 넘는 자전거가 모두 개인 소유라는데 보관문제부터 걱정이 앞선 것이다.

“여기저기 보관해요. 대신 자동차가 없거든요.”
박 씨에게 특히 관심이 간 것은 가장 앞에 내세운 페니파딩(penny-farthing) 때문이다. 페니파딩은 1871년 영국의 제임스 스탈리가 개발한 자전거로, 그 이전에 있던 벨로시페드를 개량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체인이 개발되지 않아 벨로시페드는 지금의 어린이용 세발자전거처럼 앞바퀴를 직접 돌리는 방식이었다. 이 벨로시페드를 기본으로 속도를 더 내기 위해 앞바퀴를 극단적으로 키운 것이 페니파딩이다. 페니파딩이란 이름은 당시 영국에서 사용하던 동전에서 따왔다. 페니가 크고 파딩이 작아서 페니와 파딩을 연결한 것 같은 모양이라고 빗댄 것이다. 페니파딩을 계기로 자전거가 일상적으로 보편화되면서 오디너리(Ordinary, 일상적인)라는 이름도 붙었다. 큰 앞바퀴로 빅휠(Big wheel)이라고도 한다.    

박 씨 앞에는 이 페니파딩이 2대나 서 있다. 19세기 오리지널 모델은 아니지만 외형적으로 잘 복원되었고, 탈 수도 있다. 자세히 보니 앞뒤에 장식한 램프는 낡은 황동제의 오리지널이다. 100년 이상된 램프는 양초와 카바이트, 오일을 사용하는 것으로 해외에서 구해 어댑터를 가공해 달았다고 한다. 원조 양초 램프는 기자도 처음 본다. 현재 제작중인 엄복동 영화에도 소품으로 협찬했다고 한다.

 

 

“이색적인 걸 좋아해요”
날씬하고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의 박 씨는 그 커다란 페니파딩에 훌쩍 올라타서 광장을 몇 바퀴 돌았다. 지름이 52인치(132cm), 50인치(127cm)나 되어 일반 자전거의 두 배나 되는 바퀴 위에 높직이 올라앉아 있으니 하늘에 붕 떠서 움직이는 것만 같다. 해외에는 이런 클래식 모델을 복원해서 판매하는 업체가 있으나 국내에는 없는 것으로 알았는데, 천안에 페니파딩을 직접 만든 사람이 있어서 구매했다고 한다.
그가 보유한 자전거는 총 13대. 리컴번트가 가장 많고 세바퀴를 단 트라이크, 페니파딩 2대 그리고 일반 자전거라고 해도 특별한 축에 속하는 브롬톤과 스트라이다 등이다. 

“12년 전에 트레일러를 구하다가 그때 갓 들어온 리컴번트를 알게 됐습니다. 원래 특이한 것을 좋아하고 몰입하는 성격이라 그걸 계기로 특이한 자전거를 모으고 타게 되었어요. MTB나 로드바이크는 없습니다.”

학교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하는 그는 여행을 특히 좋아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시도를 즐겨 이색 자전거와 궁합이 잘 맞았다. 페니파딩은 4~5년 전에 마련했다. 페니파딩은 장단점이 분명하다.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이기도 하지만 앞바퀴 바로 위에 앉아서 앞으로 꼬꾸라질 위험이 높기도 하다.
“페니파딩의 특징은 클래식한 빈티지 풍과 우아한 미감이지요. 저는 느린 스타일의 여행을 즐깁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직접 타는 느낌은 정말 각별합니다. 좀 더 오리지널에 가깝게 빈티지 풍을 살리려고 핸들바를 개조하고 옛날 램프도 구입했어요. 자세가 높다보니 시야가 트이고 공기도 좀 달라요.”
당연한 말이지만 페니파딩을 타고 나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이런 것도 박 씨는 독특한 관점으로 즐긴다. 보는 사람들에게 유쾌하고 즐거운 기분을 주는 것도 좋은 일 아니냐는 것이다. 일종의 재능기부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그래도 현대생활에 자동차가 없으면 매우 불편할 텐데 가족이 어떻게 감수하고 있을까. 슬쩍 걱정이 들었다가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떡인다.
“아내도 같이 자전거를 탑니다. 그러니 굳이 자동차가 필요 없고 집안이 자전거로 어지러워도 서로 이해하지요.”

볼일을 보거나 여행을 갈 때도 자전거는 항상 동반이다. 장거리는 대중교통을 활용한다. 주로 리컴번트를 많이 타고 필요하면 브롬톤이나 스트라이다 같은 접이식 미니벨로도  이용한다. 

 

양초를 사용한 램프. 100년 된 오리지널 제품이다

 

오일을 넣는 램프. 해외에서 박씨가 직접 구매했다

 

 

불편까지 즐긴다 
리컴번트나 페니파딩을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박씨의 생각은 좀 다르다. 

“불편을 즐깁니다. 사실 장애물이 없다면 우리 인생도 의미가 없지요. 불편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부닥치면서 해결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그게 인생 아닐까요.”

국내에도 페니파딩을 타는 사람이 극소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세기 영국신사 풍으로 고풍스럽게 차려입고 타는 것은 그뿐일 것이다. 영국에서는 옛날을 재현하며 클래식 바이크를 타는 ‘트위드 런(tweed run)’ 행사가 있다. 순모(트위드)로 짠 옷과 모자를 착용하고 클래식 바이크를 타는 이벤트로 그야말로 빈티지풍의 완벽한 재현이다. 박 씨의 꿈은 그런 행사를 국내에서 여는 것이다.
앞만 보고 바쁘게 사는 한국인에게 특히 부족한 것이 느림의 미학인데, 클래식은 가장 좋은 치유제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클래식 자전거를 타면 여행도 달라집니다. 요즘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주행거리나 속도를 내세우는데 그건 여행이라기보다 운동이지요. 풍경과 세상, 사람들과 가장 편안하고 깊게 만나는 여행방법이 자전거잖아요.”

그의 다음 계획은 페니파딩을 한 대 더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카고바이크에도 관심이 간다고.
“퇴직 후의 목표는 페니파딩으로 세계를 여행하는 겁니다. 페니파딩은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기가 정말 좋거든요. 누구나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니까요.” 

 

타슈 축제 때 선보인 10여대의 보유 자전거

 

능숙하게 페니파딩을 타는 박경철 씨

 

19세기 영국신사 복장으로 페니파딩을 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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