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TRAVEL
반변천(영양·청송·안동)일월산의 영험, 낙동강에 더하다

한국의 강둑길56  반변천(영양·청송·안동)
일월산의 영험, 낙동강에 더하다


일월산은 글자그대로 ‘해와 달’의 산이다. 천지신명께 정화수 떠놓고 빈다면 그 대상은 일월성신(日月星辰)이다. 빌고 빌어 눈을 뜨면 일월의 힘이 더해져 밝은 세상이 열린다. 무속인들은 몇날 며칠을 엎드려 그 영검한 일월의 기를 받아 다시 세상으로 내려간다. 거기 반변천의 시원이 있다. 조지훈, 오일도, 이문열 같은 시인, 문사들의 기혼도 일월에서 내려 받았을 것이다. 퍼덕이며 휘감아 산협을 돌아가는 통에 좀해 속살을 보기 어려운 강, 그나마 임하댐에 절반은 가라앉았다. 강둑이라 할 것도 없는 길을 가면서도 낙동강에 정령을 보낸 강물이 더욱 검푸르게 보인다
 

 

늦가을 반변천 옛길로 접어드는 건 풍경화 속 여백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반변천 발원지로 가는 길은 태백산맥의 깊은 심장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마지막 남은 가을볕이 단풍을 말리고 있다. 된서리 오기 전에 사과를 따는 농부의 손길이 분주하다. 대티골로 내려서기 전에 낙엽송 사이로 난 길, 이정표가 유혹한다. 일월산 정상으로 가는 7.5km 산길이다. 공군부대와 황씨부인당을 함께 안내하는 이정표는 묘한 대비를 이룬다. 

숨을 헐떡이는 차를 몰아간다. 1000m 가까이 솟아오르자 이미 거긴 겨울이 와 있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잎은 없다. 한 겨울 매서운 북풍에 지레 겁을 먹고 떨어져 엎드려 있다. 일월산의 남쪽 산록으로 돌아서자 공군부대와 산신각이 맞이한다. 일자봉(1218m) 아래에는 공군부대가, 월자봉(1205m) 아래에는 산신각과 황씨부인당집이 나란히 이웃하고 있다.


경북에서 가장 높은 산, 일월산과 황씨부인의 원혼
민간설화의 당집이 높은 산 정상에 자리 잡고 앉은 것도 드문 일이다. 몸이 안 좋아 젊을 때부터 당집에 기거했다는 초로의 말은 그랬다. 400년 전 이야기다. 청기면 당리 우씨 집안으로 황씨부인이 시집온 첫날밤, 달빛에 흔들리는 대잎을 연적의 칼로 오해로 해 신랑이 겁을 먹고 도망 가버렸다. 초야도 치르지 못한 채 소박맞은 황씨부인은 남편을 여러 해 기다리다 억울해 일월산에서 목을 매 죽는다. 결국 마을에 흉사가 잇따르자 마을 선비에게 선몽한 대로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 산 정상에 황씨부인당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 땅 도처에 흔한 원귀의 한(恨), 결원(結怨)을 신원(伸寃)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 정서의 바닥으로 도도히 흐르는 물길일지도 모른다. 황씨부인의 영험함 때문일까, 겨울 누비옷을 입은 여성 무속인들이 이날도 비좁은 산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기도발이 떨어질 때쯤이면 이곳에서 치성을 드리면서 기를 받아 사바의 중생 곁으로 다시 가기위해서다. 세상사 답답한 가슴 어디다 풀 것인가. 아낙의 마음은 아낙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반변천 발원지 대티골, 용화의 세계
대티는 큰 고개를 말한다. 서울 강남 ‘대치’가 곧 대티다. 대티는 ‘한치’와도 같다. 충남 청양에는 대치면(大峙面)하고도 큰 재 아홉 개를 넘어야 하는 마을 구치리(九峙里)도 있다. 인생길 힘든 여정을 상징하기에 고개만한 것이 어디 있으랴. 자전거가 고개와 씨름하고 고개를 내려가면서 온몸에 와 닿는 그 시원한 바람에 푹 빠지는 것은 인생살이와 닮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륵과 부처의 기운은 대티골의 지명, 용화리(龍華里)에도 담겨있다. 미륵불의 정토세계가 바로 용화세계이니 이 깊고도 깊은 골짜기를 바람 많은 세상사 피하기에 더 없는 도솔천 너머 세상으로 본 것이리라.

일월산에서 문암삼거리까지는 소하천의 범주에 넣으리만치 도랑의 촌티를 못 벗는 것이 반변천이다. 드문드문 강둑길이 나타나기는 하나 벼랑에 막히고 버려져 애초 들어설 생각이 나지 않으니 그냥 산골길을 달려갈 뿐이다. 그나마 영양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는 31번 국도는 태백으로 북행하는 차들이 드물어 일월면 소재지까지는 한적해 고맙다.

본래 강을 따라가다가 웬만하면 지선으로 접어드는 일은 피해왔지만 주실마을만은 그럴 수 없다. 장군천을 따라 3km를 서북향하면 시인 조지훈이 태어난 주실마을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느티나무의 기운에 압도된다. 한 그루가 아니라 수백그루의 느티나무 군락이 장군처럼 서있다. 소나무숲이 도도한 기품을 뽐내는 것이 보통인데 느티나무의 위세에 눌려 그저 차렷 자세다. 이 소나무숲 또한 6·25 전란의 폭격을 피해가지는 못해 큰 피해를 입고 난 나머지라 했다. 

‘입장료가 없다’는 안내는 시인의 근엄한 부름 같아 과객의 옷매무새를 고치게 한다. 나 또한 조지훈을 국어책에서 배워 외웠다. 두꺼운 뿔테 안경, 경성 모던 보이의 양복 칼라, 한복을 입은 그의 단호함이 문학관 안에 시대별로 배열되어 있다. 본명 조동탁, 원래 그의 호는 ‘지타(芝陀)’였다. 경기여고 국어 선생 시절 첫 수업 시간에 자신을 ‘조지타’로 소개하는 그 앞에서 십대 소녀들이 웃음을 참기는 어려웠으리라. 아무래도 거시기한 발음 탓에 ‘지훈’이 탄생했다고 시인은 스스로 말했다. 청록파 3시인 가운데 늘 한 가운데를 걸어가던 시인, 우뚝 솟은 지사적 삶의 자세, 술을 신선의 정자로 끌어낼 수 있는 관조가 그의 문학에서, 생활에서 향기를 낸다. 어름을 뚫고 솟은 강미나리 새 순 맛을 보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시인의 정서에 민족이 담기고 서정이 흐른다.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적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양 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완화삼’ 전문)


박목월에게 보낸 이 시에 대한 답장이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로 유명한 바로 그 시 ‘나그네’다. 과문한 나는 고등학생 때, ‘완화삼’을 처음 읽고는 목월의 시를 슬쩍 해 온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길, 칠백리, 술 익는, 강마을, 저녁노을, 단박에 그려지는 강마을 풍경, 이 단어들은 운(韻)이 되어 청록파 시인들의 교감을 더욱 굳게 하고, 시조풍의 리릭(lyric)을 이루는 배경이 되었다. 지조론적 선비정신에다 해학의 여유까지 가진 그가 쉰 고개도 못 넘기고 세상을 떠났으니 어찌 우리 문학사의 큰 손실이 아니었겠는가.

 

일월산 아래, 대티골은 용화세계의 은둔처다. 반변천이 일월의 정기를 품고 있다는 이유는 자세히 봐야 안다(영양 일월)

 

일월산 월자봉 아래 황씨부인당으로 들어가는 무속인들, 정면에는 일월산신을 모신 산신각이다(영양 청기)

 

황씨부인당 제단에 고이 모셔온 삼색과일을 차리는 무속인들. 일월산의 기운을 받아가려고 전국에서 몰려든다(영양 청기)

 

장승을 세우는 작업이 막 진행 중이다. 산신에, 황씨부인 혼령에, 장승까지 있으니 대티골은 든든하겠다(영양 일월)

 

가지가 찢어질 정도로 사과가 열렸다. 31번 국도가 지나지만 울타리도 없다. 주인아주머니가 “안 사도 좋으니 먹어보라”고 권한다(봉화 소천)

 

장군천이 감아 도는 배산임수의 주실마을. 조지훈 시인의 부친이 제헌의원을 지낼 정도이니 참 좋은 양택이다(영양 일월)

 

 

산나물, 고추 그리고 별, 청정 영양의 견줄 데 없는 테마
인구 1만8천명이 채 못 되는 산골, 임야가 85.6%인 영양에 산나물이 풍성한 것은 당연하다.    2015년 경상북도는 아예 ‘국가산나물클러스터’를 만들기로 작정하고 돈(548억원)을 들이기로 작정했다. 어차피 산촌이니 청정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먹고 살 길이다.

세상에 요상한 단체도 많다지만 ‘국제밤하늘협회’(IDA)가 2015년 영양군 수비면 수하계곡 ‘지푸네마을’(深川) 일대를 ‘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했다. 미국·독일·스코틀랜드·헝가리 등 세계 30개 지역에만 지정한 곳 중 하나다. ‘별빛이 밝은 밤하늘을 갖고 있는 고장’에 주는 훈장이다.  육안으로 천체관측이 가능한 ‘실버(silver)’ 등급이니 은메달이다. 이 수하계곡은 영양 땅이지만 수계로 보면 전혀 다른, 동해로 흘러가는 왕피천의 최상류 장수포천에 속하는 보물이다. 청정과 반딧불이는 한 공간에 산다. 반딧불이생태학교, 반딧불이사육장까지 있는 심산구곡이니 따로 떼어 넉넉하게 완상할 자연이다.

돈 되는 인삼밭 검은 차양막이 산골짜기를 뒤덮어 가고 있는 것은 우리 산하의 보편적 풍경이다. 그 가운데서도 영양의 고추밭은 유난히 돋보인다. 연중 900㎜ 안팎에 불과한 강수량 때문에 고추재배에 적격지이기도 한데다 전국에서 고추재배 특화비중이 가장 높다. 

‘청양고추’에 얽힌 이야기는 재미를 넘어선다. 원래 청양고추는 제주산 고추에 태국산 하늘초를 교접한 신품종인데 임상재배지를 청송과 영양으로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재미는 충청남도 청양이 톡톡히 봤다. 해마다 ‘청양고추축제’까지 열리고 있으니 말이다. 하기야 우리나라 어디 할 것 없이 고추를 재배 안하는 곳이 있는가. 게다가 청양고추 최대산지는 밀양이란다. 우리 선조들은 고추 없이 어찌 살았을까 싶다.
영양읍을 지나고부터는 반변천이 감입곡류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물길이 휘감아 도는 곳곳에 단애를 이루고 기암이 생겨난다. 영양의 대표 풍광인 선바위는 청기면으로 올라가는 동천과 반변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절묘하게 자리 잡았다. 관광호텔까지 선바위유원지에 들어서있고, 행정지명도 입암면이 되었다.


조선의 반촌 두들마을과 음식디미방
청송군 경계가 다가오자, 영양 석보로 가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반변천으로 합류하는 화매천변 두들마을은 조선의 반촌으로 이미 알려져 있다. 병자호란이 나라의 수치라고 은거한 석계 이시명의 자손들이 440호 1000여명의 재령이씨 집성촌을 이룬다. 오늘날 그런 역사는 아득하고 반촌 음식의 대물림이 도드라진다. 

어딘들 대대로 내려오는 규방의 솜씨가 없을까마는 한글로 전해오는 석계의 정부인 장씨 계향의 ‘음식디미방’은 소중하다. 1600년대 경상도 반가의 음식 146가지 조리법이 꼼꼼히 적혀 있으니 경상도 음식이 빈약하다고 쉬이 하지 못하리라. 말미에 “시집 간 딸들은 책을 가져가지 말고 베껴가라”고 적혀 있으니 예로부터 딸들에게 친정은 만만한 존재였던가 보다.

또 한 사람, 우리시대의 문사, 이야기꾼 이문열의 고향이 이곳이다. 갓난아기 때와 10대 때 잠시 살았지만 선조들의 고향, 두들마을의 자부는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영웅시대>, <변경>, <선택> 등 그의 소설 곳곳에 묻어난다. 아버지의 월북으로 인한 고통이 그의 일생을 비틀리게 지배할 수도 있었으련만 그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민족적 휴머니즘으로 승화 시켰다. 보수에 서면 불리한 문단의 풍토에도 개의치 않고 전통의 가치에 대한 논쟁을 자초했다. 남성본위주의라는 페미니즘의 총공세 앞에서도 가치의 큰 그림을 그리며, 진정 자유롭기 위해 최전선에 선 문사의 용기를 보여주었다.
광산문학관이 이곳에 있다. 두들마을 기행 또한 반나절은 족히 걸리니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다.

 

주실마을 안에 있는 ‘조지훈문학관.’ 인적도 드물어 고요히 조동탁의 문학세계로 차분히 들어갈 수 있다(영양 일월)

 

조지훈의 연보를 보면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부러움이 느껴진다. 쉰도 못 넘긴 생애지만 천고에 남을 것이다(영양 일월)

 

강둑은 없지만 더러 친절한 갓길도 있어 잠시나마 편안하다(영양 입암)

 

반변천이 병풍처럼 감도는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경북북부교도소. 청송교도소라는 말이 외지인에겐 훨씬 익숙하다(청송 진보)

 

 

4개의 교도소가 있는 마을, 청송 진보
진보는 예부터 안동에서 영덕으로 넘어가던 길목의 장터였다. 청송읍보다 더 생기가 도는 소읍이다. 외지 사람들에게 ‘청송교도소’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81년 ‘청송제1보호감호소’로 출발한 4개의 교도소는 2010년 ‘청송=교도소’의 이미지를 벗자고 경북북부교도소에 일련번호를 붙여 개명했다. 

뒤편 광덕산과  반변천이 물돌이를 하며 만든 단애가 겨울바람을 막아주는 병풍이다. 강을 건너야하는 고립의 땅에 만든 교도소다. 전두환 대통령시절 삼청교육대 미순화자 수용목적으로 만든 교도소 내에서 매일 조직간 싸움이 발생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 유명한 탈옥범 신창원이 수감되었던 제1교도소 등은 단 한명도 탈옥에 성공하지 못한 철옹성교도소다. 특히, ‘경북북부제2교도소’는 1992년 ‘범죄와의 전쟁’을 계기로 신설되었다. 두 평도 채 못되는 독방(6㎡ 내외)이 무려 756개나 되고, 혼거실이 90개인데다 CCTV로 24시간 밀착감시 하는 곳이니 ‘감옥중의 감옥’으로 불릴 만하다. 고독이 얼마나 무서운가. 말할 수 있는 그 누가 없다는 징벌, 담장 밖으로 사과가 익어가고, 단풍이 피를 토하는 계절도 그들의 시계와는 무관하게 돌아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교도소는 지역경제에 적잖은 도움을 준다. 젊은 9급 교도관들이 다른 도시의 교도소보다도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문화적 혜택도, 자녀 교육도 어려움이 있으니 승진하면 다른 곳으로 가길 소망하지만 지금은 그저 퇴근하고 남는 시간에 공부밖에 할 게 없다는 적적함이 진보의 고요를 말해준다.



물길을 잃어버린 반변천, 임하댐
진보를 지나면 반변천은 깊숙이 몸을 숨긴다. 이제 반변천으로 가는 길은 없다. 임하댐의 영향권에 들어오자 새로 만든 국도 34번은 하늘 높은 교각을 여러 개 건넜다. 원래 반변천은 청송 쪽으로 흘러가면서 지례와 지리(支里) 앞에서는 진보로 가거나 청송 파천으로 가는 신작로와 동무했었다. 고가(古家)는 더러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어 이축되기도 했고, 더러는 물속에 그냥 잠기고 말았다. 

한때 길안면에 속하기도 했던 지례는 ‘지례예술촌’이 아니었더라면 아예 이름마저 간직하기도 어려울 뻔 했다. 꼬불꼬불 산길을 20리나 가야하는 ‘지례예술촌’도 수몰의 산물이다. 부활한 한옥에다 만든 창작마을이다. 호젓한 장소에서 예혼을 불태우는 사람들에겐 제격이라 외국인들까지 둥지를 틀고 있다. 옛 물길로 말한다면 진보를 지나 청송 파천면에서 용전천과 합류하는 반변천이 바라다 보이던 곳이다.

높은 고개는 아니지만 가랫재를 넘는 길은 고되다. 유난히 불친절한 국도다. 갓길은 자전거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다. 국도 아니면 갈 수 없는 유일한 길에서 푸대접은 울화가 치미는 일이다. 지나가는 자전거 몇 대도 간신히 노견의 하얀 표지선을 따라 곡예한다. 차들의 굉음이 뒷덜미를 잡아당긴다. 도로 위의 ‘을(乙)’ 자전거에겐 무지한 폭력이다. 

중평삼거리를 지나 임동교를 건너야 임하호가 얼마나 큰 호수인지 실감하게 된다. 임동면 소재지인 중평리는 지금은 수몰되어 볼 수 없는 챗거리 장터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너무나도 잘 아는 ‘안동 간고등어’ 이야기다. 영덕 강구항에서 잡힌 고등어를 안동으로 보부상들이 지고 넘어오는데 이틀이 걸리는 터라 중간을 넘기는 임동 챗거리장터에 이르면 고등어가 상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때 소금 간을 하는데, 간잽이(고등어 내장을 발라내고 소금을 치는 사람)가 소금물에 담그는 습식염장과 마른소금을 뿌리는 건식염장 솜씨에 따라 고등어 맛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국민 생선 고등어의 귀족 ‘안동 간고등어’가 제사상에 오를 정도로 대접받는 것도 생선이 귀한 내륙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라서다.

임하댐은 낙동강 하류의 홍수조절과 중·상류의 용수공급을 위해 만들어진 다목적 사력댐이다. 1993년에 완공되었으니 비교적 젊은 댐에 속한다. 수몰지역만 3개군 6개면 41개 마을이니 물밑에 가라앉은 산천은 물론,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용궁으로 사라졌겠는가.
 

진보교 위에서 내려다 본 반변천. 감입곡류의 전형이라 강둑길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청송 진보)

 

이런 불친절한 국도를 만나면 자전거는 흰줄타기 곡예를 해야 한다. 자전거는 안중에도 없음에 틀림없다(청송 진보)

 

임동교를 지나는데 벌써 해가 서산에 기운다. 멀리 물속에 임동 챗거리 장터가 잠겨 있다(안동 임동)

 

지방하천 구간에 잠시 나타나는 강둑길, 그리 멀리 가지 못해 벼랑에 막힌다(영양 일월)

 

 

경북 북부 내륙의 가장 큰 도시, 안동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이 있는 마을을 지나면  반변천은 의성과 청송 사이의 물을 안고 내려오는 길안천과 힘을 모은다. 강폭은 드넓어서 갈대꽃이 지천이다. 이내 안동대학교를 지난다. 국립대학인 이 학교는 인문대 안에 한문학과 동양철학과 같은, 다른 대학교라면 이미 폐과했을 학과를 열어놓고 있다. 골짜기마다 세월을 지켜가고 있는 수많은 종택들, 안동사람의 양반 정신, 뿌리 깊은 조상모시기의 제례 원형들이 든든한 배경이다. 특히, 민속학과는 독보적이다. 이 땅에서 이미 사라진 것, 막 사라져 가고 있는 것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하기에 안동만한 곳이 없다. 

겨울해가 짧긴 짧다. 6시에 벌써 햇구멍이 막혔다. 어두우면 몸 누일 곳을 찾아야하는 게 타관 땅이다. 안동의 불빛이 대처답게 휘황하다.  

 

길안천과 합류하는 지점, 갈대꽃이 지천으로 피어 강물을 볼 수도 없다(안동 임하)

 

겨울 해는 짧아 벌써 달이 떴다(안동)

 

 

참고 자료
1. 신 낙동강시대<25>, 안동지리, 매일신문, 2011. 1. 5.  
2. 조지훈이 쓴 내고향, 동아일보, 1962. 3. 26
3. 블로그 <직업을 인터뷰하다>, 교정공무원 편  

4. 영양군청 홈페이지  
5.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2012

 

 

 

 

 

 

 

 

 

조용연 편집위원  choyy@nate.com

<저작권자 © 자전거생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용연 편집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