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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고속열차 SRT로 부산 당일치기

업무 보고해운대서 놀아도 하루가 남네

서울 강남구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SRT는 더 빠르고, 더 친절하고, 더 섬세하고, 더 정확했다. 객차 사이 복도 공간도 넉넉해서 자전거 3대 정도는 포장해서 실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로드와 미니벨로를 가지고 SRT를 타고 부산을 하루만에 다녀왔다. 업무 미팅과 해운대 산책, 부산오뎅과 곰장어 구이를 맛보고도 넉넉한 하루였다
글 · 사진 김병훈(본지 발행인)

 

강남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평택이었다.  
“이렇게 긴 터널을 언제 다 뚫었지?”

“순식간에 수도권을 벗어나니 홀가분한데!”
새 고속철도 SRT(Super Rapid Train)는 수서역을 출발하자마자 국내최장, 세계 3위의 초장대 율현터널로 들어서서 수도권을 훌쩍 벗어나 평택 지제역에서 지상으로 나왔다. 터널 길이는 장장 50.3km. 시속 200km 이상으로 질주하니 18분 만에 서울 강남에서 평택으로 순간이동을 해버린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면 시내를 종단해야 해서 겨우 광명역을 조금 지날 시간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인구 2500만의 거대도시권이 주는 중압감과 밀폐감에 언제나 ‘도시 탈출’을 꿈꾼다. 하지만 자동차는 도시를 벗어나는 데만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고, 전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은 ‘탈출 과정’이 느리고 점증적으로 진행되어 ‘탈출’ 본연의 쾌감을 맛보기 어렵다. SRT는 50km의 터널을 벗어나면 갑자기 도시가 보이지 않는 평택의 들판으로 나와 버린다. 아, 벗어났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디테일을 살린 실내 
수서역은 강남 교외에 자리하고 있다. 전철 3호선과 분당선이 지나고 경부고속도로와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에서 인접한, 양재대로와 잠실~분당 간 동부간선로가 있어 수도권 동부지역에서 접근이 편하다. 개통한 지 며칠 되지 않았고 평일인데도 손님이 많다. 역사는 널찍하지만 웅장하지는 않은데 대합실과 플랫폼 모두 지하에 있기 때문이다. 전용 주차장은 종일주차가 2만5000원으로 비싸지만 SRT 이용객은 30% 할인해 준다(1시간 6000원). 
플랫폼에 서 있는 열차는 KTX를 기반으로 해서 기관차와 객차의 외관은 크게 다르지 않다. 차분한 와인 컬러와 기관차에 새겨진 SRT 로고로 구분될 뿐이다. 
일부러 객차의 맨 뒷자리를 잡아서 등반이 뒤쪽에 자전거(로드)를 두었다. 미니벨로는 복도의 짐칸에 넣고 자물쇠를 잠갔다. 스마트폰의 SRT 앱으로 예약할 때 KTX보다 더 편했던 것은 좌석지정 방식이다. 호차마다 휠체어 좌석, 기저귀교환대, 자판기, 유아/어린이 동반석 등을 구분해서 선택할 수 있다. 진행방향이 표시되어 있어 출발 시간에 따라 햇빛이 덜 들어오거나 좌우 원하는 방향의 자리를 쉽게 잡을 수 있다. KTX는 오랫동안 이게 되지 않아 개인적으로 민원을 넣은 적이 있을 정도로 개선에 긴 시간이 걸렸다(지금은 방향 표시가 됨). 

1호차에는 휠체어 공간이 있어 이를 자전거 적재공간으로 활용해도 된다. 자전거는 미니벨로는 접으면 언제든지 승차가 가능하고, 일반 자전거는 분해해서 가방에 넣어야 한다.        
실내는 분위기가 다르다. 좌석간의 간격이 넓어져 다리 공간이 넉넉하고, 객차 사이의 복도 공간도 널찍해 자전거 3대 정도는 둘 수 있다. 화장실 문과 변기도 조금 더 편해졌다. 
좌석의 선반도 비행기 타입으로 고급스럽고 더욱 튼튼하게 지탱된다. 선반 뒤쪽에는 객차 별 편의시설 안내도가 붙어 있어 알아보기 쉽다. KTX는 객차 사이 복도에만 붙어 있다. 두 자리에 하나씩 콘센트가 있어 휴대폰 충전이나 노트북 사용에도 편하다. 의자는 발로 밟아 방향을 돌릴 수 있어 일행과 마주보고 갈 수 있다. 구형 KTX 같은 원치 않는 역방향 좌석은 없다. 
이동판매원이 없는 대신 자판기를 설치했다. 화장실과 자판기는 객차마다 있는 것은 아니어서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필요하면 예약할 때 가까운 자리를 잡으면 된다. 특히 마음에 든 것은 모니터에 항상 표시되는 현재속도다. KTX는 시속 250km를 넘어야만 표시된다. 고속열차를 타면 속도가 궁금하기 마련인데 초고속 상태만 표시하는 건 뭘 숨기는 것 같아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일부 SRT는 KXT-산천 객차를 함께 사용해서 실내구조가 비슷하다. 특실의 경우, SRT 전용 객차는 짐칸이 비행기처럼 밀폐식이어서 물건이 쏟아질 염려가 없는데 반해 KTX-산천 객차는 예전과 같은 선반식이다. 
비행기처럼 SRT 잡지를 비치해 놓았는데 매우 고급스럽고 내용이 알차다. 승무원들은 솔직히 좀 더 친절하고 더 아름답다. 차장은 수시로 객차를 오가며 손님들을 살피고, 보안요원도 순찰을 다닌다. KTX로서는 경쟁자를 만나 부담스러울지 모르지만 손님으로서는 덕분에 한층 향상된 서비스를 누린다.

정시도착, KTX보다 빠르고 저렴     
율현터널을 나온 열차는 팽성읍 즈음에서 KTX 본선과 합류해 곧 천안아산역에 도착한다. 정시도착이다. 끝까지 정시도착을 할 수 있을지 호기심이 인다. KTX를 많이 탔지만 정시도착을 지킨 경우가 드물어서 단 1분의 오차도 없는 일본 신칸센을 탈 때마다 부럽고 안타까웠는데 SRT가 얼마나 개선했을지 궁금했다. 
오전 10시에 수서역을 출발한 SRT 323편은 동대구역에 정시에 도착하고 정시에 출발했다. 열차의 최고 장점은 시간을 지키는 것인데, 지금까지는 완벽하다. 과연 부산역에도 정시에 도착할까. 울산역에 이어 부산역에도 정시에 도착했다. 혹시나 약간 연착할 것을 생각하고 시간계획을 잡았다가 단 몇 분이라도 시간을 번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광대한 부산역에는 지역의 맛있는 명물이 많이 입점해 있다. 구포국수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맞은편 부산오뎅은 나중에 돌아 갈 때 맛볼 예약(?)을 해둔다. 
약속한 업체에서 마중을 나와줘 편안하게 해운대 근처 센텀시티로 이동해 미팅을 가졌다. 1시간 정도 회의를 마치고 국내최고의 초고층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는 마린시티에서 라이딩을 시작했다. 70~80층의 초고층 빌딩이 빚어내는 마천루의 향연은 이국풍을 넘어 미래도시에 온 분위기다. 서울 사람도 해운대의 스카이라인에는 슬쩍 주눅이 든다. 
동백섬 일주도로는 도보 관광객이 많아 안전을 위해 자전거 출입이 금지되었고 해운대 해변길도 자전거 승차가 제한되었다.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걸으며 이 멋진 풍광을 즐기노라면 시간이 아깝지 않다. 시속 300km로 비축한 시간은 이런 데서 쓰는 것이다. 
산뜻하게 정비된 해운대시장 골목에서 곰장어구이를 맛보았지만 관광지여서 가격도 맛도 성에 차지 않아 부산역으로 이동했다. 로드는 분해해서 포장하면 택시 뒷자리에 실을 수 있고 미니벨로(브롬톤)는 접어서 트렁크에 넣으면 된다. 
예전에 가본 역전 포장마차는 역시 가격도 맛도 기대한 대로다. 자갈치를 못간 것이 아쉽지만 당일치기로 이 정도 다닌 것만도 감사할 일이다. 열차에 오르기 전 부산오뎅을 후식으로 맛본다. 역시 쫄깃한 맛이 다르다. 
저녁 7시30분 열차에 올라 잠시 책을 뒤적이는 사이, 열차는 어둠의 터널을 뚫고 다시 율현터널을 질주하고 있다. 이번에도 완벽한 정시도착이다. 당연한 것인데도 서울~부산 400km를 단 1분도 틀리지 않다니 신통스럽다. 
열차를 이용하면 주차요금이 30% 할인된다고 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할인되는지 몰라 정산기 앞에서 앱으로 승차권을 다시 찾느라 허둥거리고 있는데 안내원이 다가왔다. 
“그냥 차 번호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할인됩니다.” 
“예? 승차권도 확인하지 않고 열차를 이용한 걸 어떻게 알죠?”
이 놀라운 시스템은 또 뭔가. 일본 기술이라는데 차량을 주차하고 열차를 탈 때까지 사람의 이동을 감지해서 자동으로 할인여부를 판단한단다. 반드시 열차에 타야 할인이 된다는데 수많은 사람 중에 그걸 어떻게 추적한단 말인가. 시속 300km가 시큰둥하게 느껴질 만큼 온갖 기술이 쾌속으로 발전하고 있다. 편리하면서도 한편 따라가기에 벅차기도 하다. 
저쪽에서 비행기 파일럿처럼 멋진 차림으로 걸어가는 SRT 기관사의 보무가 당당하다.


자전거생활  bicycle_lif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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