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 2위의 준봉, 이 땅을 부강시키고 지키는 산

남해안 2위의 준봉, 이 땅을 부강시키고 지키는 산
창원 · 김해 불모산 802m

창원과 김해 사이, 남해안에 웅장하게 솟은 불모산은 서해와 남해를 통틀어 해안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해발 802m에 불과하지만 해변에서 솟구친 절대 높이와 사방으로 갈래를 뻗은 장대한 능선은 실로 거산(巨山)의 면모를 과시한다. 정상에 있는 통신시설과 군부대로 이어지는 길이 있어 창원과 김해 두 방향에서 오를 수 있다   
 

정상이 출입금지된 대신, 바로 아래에 설치된 노을전망대가 불모산 정상을 대신한다. 진해와 남해 방면 조망이 실로 장관이다. 발밑으로 웅산~장복산 능선 너머로 진해 시가지가 포근히 안겨 있고, 고성~통영 일원의 산들이 아득한 스카이라인을 그린다

 

 

“이거 정말 800m 산 맞아?!”
창원과 김해 경계에 솟은 불모산(802m) 중턱에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산 바로 아래에 자리한 김해 장유신도시에서 한참을 올랐는데 아직도 정상은 까마득하고, 저 멀리 김해평야 쪽으로 흘러내리는 능선은 장대하기 그지없다. 내륙의 웬만한 1000m급 산을 능가하는 스케일이다. 

고도를 높일수록 기온이 떨어져 곱아드는 손가락을 녹여가며 오르는 사이, 길은 능선 위로 올라서서 발 아래로 창원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연장 12km로 국내 최장의 직선도로라는 창원대로가 광대한 분지에 자리한 시가지를 반분하며 천주산 방면으로 직진한다.  

이윽고 군부대가 주둔한 화산(799m)과 불모산 사이의 안부에 도착한다. 뜻밖에 해발 700m 일대에 상당히 넓은 고원지대가 펼쳐진다. 여러 기의 통신탑이 왕관의 장식처럼 하늘을 찌르는 정상이 바로 저편이다. 정상은 출입이 막힌 대신 바로 아래에 ‘노을전망대’를 조성하고 정상 표지석을 세워놓았다. 다시금 터지는 감탄사. 웅산(703m)을 거쳐 장복산(582m)으로 이어지는 장중한 능선에는 겹주름이 부채살처럼 흩어져 내리고, 진해 앞바다에는 섬이 점점이 떠 있고 통영과 고성의 산들이 아득한 스카이라인을 이룬다. 한때 해병 훈련병들이 뛰어 올랐던 천자봉(502m)은 뾰족한 시루봉(653m) 뒤편으로 푹 가라앉았다. 

 

정상 아래의 암벽에 선 이윤기 이사. 왼쪽의 산줄기는 웅산에서 장복산을 거쳐 마산 앞바다로 이어지는 불모산 십자능선 중의 서릉이다. 능선 왼쪽은 진해, 오른쪽은 창원공단

 

 

홀로 구름을 거느리는 고산의 풍모
불모산은 특히 부산, 김해, 창원 사람들에게 각별한 존재다. 부산에서 보면 김해평야 저편에 가장 높이 솟은 산, 김해에서는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 창원에서는 창원(구 시가지)과 진해를 품은 진산이기 때문이다. 육안으로는 1000m를 넘어 보이는 헌칠한 높이와 장중한 산세는 한라산이나 지리산처럼 다른 곳은 맑을 때 홀로 구름을 거느리며 신비감을 더하기도 한다. 이는 남해안에서 올라오는 해무(海霧)가 산에 막혀 구름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고, 주변의 광활한 산림지대에서 내뿜는 수증기만으로도 단독 구름을 만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거산의 풍모를 가진 불모산이지만, 정밀 측량기로 잰 높이는 해발 802m에 불과하다. 해변에서 곧장 솟아 그만큼 더 높고 웅장해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도 802m의 높이는 서해안과 남해안을 통틀어 두 번째로 높다. 가장 높은 산은 하동 금오산(849m)으로 불모산보다 약간 더 높지만 원뿔형의 독립 산체여서 산세는 그리 크지 않다. 서해안 최고봉은 보령 오서산(791m)을 꼽지만 해안에서 10km 이상 떨어져 있어 해변을 실감하기는 조금 어렵다. 

서울에서 부산 가는 비행기를 타면 대개는 불모산 상공을 휘돌아 김해공항에 착륙한다. 그때마다 웅장한 산세와 정상까지 이어진 실타래 같은 길이 매혹을 더했다. 예전에 ‘창원시 자전거코스 지도집’을 제작할 때 이윤기 이사와 함께 창원 방면에서 MTB로 오른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김해 방면인 장유신도시에서 오르기로 한다.  
 

불모산 업힐 도중 주능선에 올라서면 창원공단과 국내에서 가장 긴 직선도로인 창원대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거대한 컨테이너항인 부산 신항과 가덕도 저편으로 아침 햇살에 황금빛으로 물든 바다

 

오른쪽 둔중한 봉우리는 군부대가 자리한 화산(799m)이고, 그 너머로 김해평야가 펼쳐진다

 

 

남방불교 전래 현장 
불모산은 ‘부처님의 어머니(佛母山)’라는 특별한 이름의 유래부터 궁금하다. 이는 김해에 자리했던 고대왕국 가야(伽耶)와 관련이 깊다. 정상의 안내문에는 <세종실록>(1454)에는 부을무산(夫乙無山), <경상도속찬지리지>(1469)에는 취무산(吹無山)으로 기록되어 있고, 부을무산이 불모산으로 음차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불모산이란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처음 등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취무산의 ‘취’는 ‘불다’는 뜻이어서 불무산, 불모산과도 통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불모산이 가야의 전설에서 유래한 명칭이라고 생각한다. 

서기 42년 김수로왕이 처음 가야를 세운 이후 9년째인 서기 48년 배 한척이 불모산 남쪽의 해안에 도착한다. 이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이 바로 인도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許黃玉)으로 김수로왕의 비가 되었다는 내용이 <삼국유사>에 전한다. 함께 온 그녀의 오빠는 장유화상으로 가야에 불교를 전했고 김수로왕과 허황옥 사이에서 난 7형제를 출가시켜 불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 7형제가 함께 수도하다 성불한 곳이 지리산 칠불사다. 일곱 아들이 성불해서 부처가 되었으니 허황옥은 불모(佛母)가 되었고, 그녀의 전설이 얽힌 이 산의 이름으로 남았을 것이다.  

우리 역사는 불교가 이 땅에 처음 전래된 것은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장유화상은 그보다 324년이나 빠르니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장유화상 전설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의 불교 전래는 1세기 중반으로 크게 앞당겨 지지만 기록과 유물, 유적이 부족해 공인받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불모산 일대에는 허황옥와 장유화상의 흔적과 전설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정상 북쪽의 용지봉(723m) 정상 아래에는 장유화상이 창건했다는 장유사에 그의 사리탑과 가락국장유화상기적비, 그가 수도했다는 토굴이 남아 있다. 허황옥과 장유화상이 처음 도착한 곳도 불모산 동남쪽의 용원동으로 추정되고, 김수로왕과 허황옥이 처음 만난 곳에 세운 왕후사 역시 불모산 동쪽 자락 어디쯤에 있었을 것이다. 불교를 번성시킨 모태가 되었으니 불모산이라는 이름이 더욱 그럴 듯하다. 

 

불모산 정상에는 대규모 통신시설이 왕관처럼 들어서 있다

 

 

거대한 십자능선의 중심  
불모산은 하나의 봉우리가 아니라 지리산 같은 거대한 산군(山群)으로 봐야 한다. 하늘에서 보면 불모산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산줄기가 뻗어나 웅장한 십자가 형태를 이룬다. 가장 긴 북쪽 능선은 용지봉~비음산~정병산으로 이어지며 창원과 김해를 경계 짓고, 서쪽 능선은 진해항을 병풍처럼 두르며 마산 앞바다로 향한다. 동릉은 굴암산~보배산~봉화산을 거쳐 서낙동강에서 멈추고, 가장 짧은 남릉은 웅산~천자봉을 거쳐 남해안에서 갈무리된다.  

남북 25km, 동서 30km에 달하는 장대한 능선이 불모산을 중심으로 뻗어나 있으니 일대를 하나의 산군으로 불러도 마땅하다. 지역 등산 동호인들은 이 산줄기 종주를 특별히 즐기고 아낀다. 국내 굴지의 공업도시인 창원과 국내최대의 수출입항구인 부산 신항, 국내 최대의 진해 해군기지는 모두 볼모산이 품고 있고 불모산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모산 정상에 대규모 통신탑과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는 것도 이들 산업지대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고 보면 불모산은 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또 지키는 최전선에 있는 셈이다.    

겨울에도 갇히지 않는 곳 
“이렇게 가파르고 긴 업힐을 일반 MTB로 어떻게 올랐을까요? 그땐 우리가 젊었던 건지, 그새 우리가 늙은 건지….”
끝이 없을 것처럼 모퉁이를 돌고 돌아 하늘로 올라가는 산길에서 우리는 탄식 했다. 전기 MTB로도 만만치 않은 이 길을 예전에 일반 MTB로 거뜬히 올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제는 체력이 부족해서, 시간이 아까워서 아니면 경치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라도 다시는 그렇게 못할 것 같다.     

전국의 유명 산 중에서 정상에 이처럼 거대한 기지가 들어서 있는 곳은 가평 화악산, 양평 용문산 정도가 아닐까 싶다. 정상 일대는 통신탑과 건물 등으로 다소 어수선하지만 이상하게 눈에 거슬리지 않는 것은 마치 왕관처럼 산정을 장식하는 상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불모산의 입지가 주는 엄청난 혜택에 공감하는 순간 정상을 뭉개고 앉은 철탑은 정상에 씌워진 왕관으로 느껴질 것이다.   

차가운 강풍을 견디며 노을전망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냥은 돌아설 수 없는 엄청난 장관과 조망을 제대로 눈과 마음에 담기 위해서는 시간과 마음의 정리가 필요했다. 부산 신항의 거대한 컨테이너 부두 너머 가덕도 저편으로 태평양이 눈부신 신기루처럼 아른거린다. 

바로 동쪽에는 화산이 비슷한 높이로 둔중한데 군기지 쪽으로 길이 빤해 하산 길에 들러보았다. 하지만 불모산~화산 사이 안부에서 1km 정도 가면 센서가 작동해 갑자기 방송이 나와 출입을 막는다. 화산 일대의 고위평탄면은 지형적으로 아주 특별한 경관이다. 

이제 출발지인 장유신도시까지는 10km에 달하는 다운힐이다. 기나긴 다운힐을 꼭 반길 수만은 없는 것이, 추위 때문이다. 그래도 불모산은 혹한의 겨울이 엄습하지 않는다. 한겨울에도 푸른 모습을 유지하고 눈은 쌓일 일이 없으며 길은 말끔하게 보존된다.
이 겨울, 동토가 되지 않는 남국의 산은 한층 매혹적이다. 

 

창원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상점령(420m)에 상세한 이정표가 서 있다. 창원 방면은 비포장길이다

 

 

여정
불모산은 창원 성주동 벧엘교회 쪽에서도 오를 수 있지만 주능선의 상점령(420m)까지 험준한 비포장길이고 주말에는 등산객이 많아 라이딩이 다소 불편하다. 김해 장유신도시에서 출발하면 길이 모두 포장되어 있고 조망도 트인다. 장유계곡에서 상점령 방면으로 진입할 때 창원터널로 연결되는 금관대로(자동차전용도로) 아래 굴다리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유의하자. 불모산터널로 이어지는 남해안대로는 고가도로로 넘어간다. 숙식장소는 장유계곡 일대와 장유신도시 내에 다수 있다. 장유신도시에서 정상까지는 약 10km, 화산 초입을 돌아오면 왕복 25km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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