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거친 업힐, 길고 장쾌한 다운힐 22km

의령 한우산 (836m)
짧고 거친 업힐, 길고 장쾌한 다운힐 22km

높은 산이 드문 경남 중부에서 제왕처럼 솟은 자굴산(897m)과 쌍봉을 이루는 것이 한우산(836m)이다. 자굴산~한우산 일대에는 임도가 많이 개설되어 있으며 자전거에 반가운 것은 완전 개방되어 있다는 점이다. 해발 800m까지 길이 있어 정상에 서는 것도 어렵지 않다. 풍력발전소가 늘어서 있는 동릉을 따라 가면 장장 22.5km에 달하는 다운힐이 심심산골을 구비친다

 

서쪽을 등지고 한우산 정상 표지석에 턱 걸터앉은 이윤기 이사. 대기가 흐려 지리산은 보이지 않는다. 표지석 옆으로 봉긋한 합천 허굴산(681m)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높은 산은 산청과 합천 경계의 황매산(1108m)이다

 

 

서쪽은 지리산(1915m), 북쪽은 가야산(1430m), 동쪽은 영남알프스(최고봉 가지산 1240m)로 둘러싸인 경남의 중부지역은 무주공산의 저지대 구릉지로 느껴진다. 낮은 산들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가운데 900m 턱밑의 고공으로 솟구친 자굴산(897m) 일원은 경남 중부의 지형적 랜드마크로 우뚝하다. 

자굴산과 2.3km의 거리를 두고 쌍봉을 이루는 한우산(836m)은 기실 독립 산이라기보다 자굴산의 제2봉 느낌이 강하다. 두 산은 고도 600m의 안부(쇠목재)로 이어져 있고 산자락은 광대하게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처음 만나는 자굴산~한우산은 800m급 산이라고 믿기지 않는 고도감과 영역에 감탄한다. 자굴산은 충의와 부(富)의 고장 의령을 일궈낸 진산이다. 곽재우가 이곳 출신이고, 국내 굴지의 기업가 여럿도 의령 출생이다. 혹자는 의령읍 동쪽 낙동강변에 솥 모양으로 떠 있는 정암(鼎巖)이 끊이지 않는 복록을 만들어낸다고 하는데, 자굴산과 낙동강이 의령의 물산과 인물을 길러내는 것은 지리적으로도 사실이다.

 

동북릉의 풍력발전소에서 바라본 한우산. 천상으로 향하는 듯 실낱같은 길이 시선과 가슴을 뒤흔든다

 

 

전국에서 가장 개방된 산 
개인적으로 자굴산과 한우산을 좋아하는 것은, 산세가 웅장하기도 하지만 국내에서 가장 개방된 산이기 때문이다. 사방팔방으로 임도를 뚫어 놓았고, 쇠목재는 포장까지 되어 있으며 풍력발전소와 철쭉밭, 둘레길 등 산과 인간의 접점을 대단히 다채롭고 폭넓게 열어 놓았다. 거미줄 같은 임도는 차단기가 없어 자동차도 진입할 수 있어서 전국에 이렇게 열린 산은 다시 없을 것이다. 

다들 환경보호니 산불조심이니 하면서 인간의 출입을 막는데만 열을 올리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문제는 속으로 곪아터지기 마련이다. 자굴산과 한우산은 인간과 넓고 깊게 교감하며 자연의 넉넉한 품으로 고단한 삶들을 안아준다. 인간과 무관한 자연이란 화성이나 달처럼 버려진 천체, 의미 없는 흙덩이일 뿐이다.   

 

정상 아래 한우정 일대는 봄이면 철쭉이 만발한다. ‘철쭉 도깨비숲’이라고 이름 짓고 산책로도 만들어 놓았다

 

 

전국에서 가장 개방된 산 
개인적으로 자굴산과 한우산을 좋아하는 것은, 산세가 웅장하기도 하지만 국내에서 가장 개방된 산이기 때문이다. 사방팔방으로 임도를 뚫어 놓았고, 쇠목재는 포장까지 되어 있으며 풍력발전소와 철쭉밭, 둘레길 등 산과 인간의 접점을 대단히 다채롭고 폭넓게 열어 놓았다. 거미줄 같은 임도는 차단기가 없어 자동차도 진입할 수 있어서 전국에 이렇게 열린 산은 다시 없을 것이다. 

다들 환경보호니 산불조심이니 하면서 인간의 출입을 막는데만 열을 올리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문제는 속으로 곪아터지기 마련이다. 자굴산과 한우산은 인간과 넓고 깊게 교감하며 자연의 넉넉한 품으로 고단한 삶들을 안아준다. 인간과 무관한 자연이란 화성이나 달처럼 버려진 천체, 의미 없는 흙덩이일 뿐이다.   

 

‘철쭉 도깨비숲’에서 바라본 동북릉의 풍력발전소

 

 

북쪽 벽계계곡 따라 올라 동쪽 유곡리로 하산  
순환코스를 최대한 길고 재미있게 꾸미기 위해 북쪽의 벽계리에서 계곡을 따라 올랐다가 능선을 타고 동쪽으로 하산하는 길을 잡았다. 벽계계곡 길은 다소 험하지만 최단거리로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계곡 초입은 벽계관광지로 조성되어 있는데 ‘의령9경’ 중 제4경에 드는 명승지다. 계곡 하류에는 제3경인 봉황대 절벽이 있다. 자굴산과 수도사까지 합쳐 의령9경 중 4곳이 자굴산 일대에 모여 있으니 자굴산이 곧 의령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벽계계곡으로 진입하는 초입을 포함해 한우산의 북쪽 자락은 궁류면에 든다. 아픈 상처이긴 한데, 이곳을 지나면서 그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1982년 이른바 ‘우순경사건’ 이라고 궁류지서에 근무하던 우순경이 총기를 탈취해 주민 62명을 사살한 끔찍한 사건이다. 이미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풍경도, 사람도 바뀌었지만 막상 그 현장을 지나니 기억이 되살아나고 만다. 

출발지는 봉황대 절벽이 저편으로 보이는 의령예술촌으로 잡았다. 벽계저수지와 벽계관광지를 지나 해발 300m 산기슭에 자리한 벽계마을을 벗어나면 계곡으로 접어든다. 계곡길은 점점 경사가 급해지지만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어 라이딩이 안락하다. 계곡을 지나 주능선으로 올라붙는 마지막 구간은 지그재그를 그리는 급경사다. 예술촌에서 9.1km 지점에서 주능선의 임도와 합류한다. 

우회전해서 2.2km 가면 정상 바로 아래 해발 790m 지점의 한우정 쉼터에 이른다. 쉼터에는 푸드트럭 2대가 서있고 승용차도 와있어 실컷 힘들게 올라왔더니 산꼭대기가 아니라 어디 유원지에 온 것 같아 허탈감도 든다. 외모와 달리 마음이 약한 이윤기 이사는 푸드트럭 두 집에서 각각 커피와 간식거리를 사들고 오며 투덜거린다.
“어떻게 두 집이 마주 붙어서 똑 같은 메뉴를 파는지 모르겠어요.”
    
   
 최고의 명산 조망터, 그러나 대기가 탁하다
한우정 쉼터에서 정상까지는 300m 남짓. 고도차는 45m에 불과하니 작은 언덕 정도다. 다만 임도는 끝나고 데크 등산로를 올라야 한다. 이 이사는 자전거를 거뜬히 메고 오른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구간은 좌우가 급전직하로 떨어지는 칼날 능선이어서 고도감이 대단하다. 하지만 대기가 탁해 조망은 20km 정도밖에 안될 것 같다.  

“아이구, 이젠 나이 들어 이런 것도 힘드네~.”     
그러면서도 이 이사는 2m 가까운 정상석에 턱 올라앉는다. 이런 포즈를 취해도 거만하거나 우스꽝스럽지 않기는 쉽지 않은데, ‘자연인 이윤기’는 그저 잘 어울린다.
대기가 맑으면 지리산과 가야산, 영남알프스까지 모두 보일텐데 한우산 주변을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정상 주변은 억새밭이 고원지대 특유의 소슬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어떤 길목에서의 갈등. ‘쏜살 같이 질주해버릴까, 아니면 바삭거리는 낙엽 소리 들으며 느긋하게 지날까’

 

 

심심산골로 끝없이 이어지는 다운힐
이제 내려간다. 도로와 만나는 용소사거리까지는 고도차 600m, 장장 22.5km에 달하는 에픽(epic) 스케일의 다운힐이다. 물론 조금씩 기복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내리막이다. 중간중간 갈림길에는 이정표가 있는데 ‘용소사거리’ 방면으로 가야 한다. 

동부 능선에는 26기에 달하는 풍력발전기가 도열해 이국적이면서 낭만적인 향취를 더해준다. 총높이가 100m에 육박하는 백색 풍력발전기가 능선을 타고 줄지은 모습은 단순한 기계의 배치가 아니라 공학과 미학, 서정이 믹스된 독특한 감동이다. 일부러 능선을 되올라 풍력발전기 아래를 달려본다. 막상 가까이 다가서면 “윙윙~” 대는 풍절음만이 삭막하다. 

동부능선의 풍력발전기를 벗어나면 남쪽의 갑을리로 내려가는 갑을삼거리다. 좌회전해서 600m 더 내려가면 북쪽의 입사마을로 가는 입사삼거리가 나온다. 여기까지는 자동차나 사람이 곧잘 다닌 듯 길이 반듯하지만 우회전해서 다시 산으로 올라붙는 길은 인적이 뚝 끊어지면서 황폐하다. 혼자라면 언제라도 멧돼지가 출현할 것 같아 내키지 않을 분위기지만 동행이 있으니 서로 믿고 전진이다. 

하지만 라이딩 재미 측면에서는 이제부터가 진짜다. 장쾌하고 쾌적한 다운힐과 흥미를 더해주는 짧은 업힐, 탁 트인 민둥산록의 아찔한 고도감까지, 실로 숨막히는 라이딩이었다. 이렇게 재미있게 라이딩을 즐긴 적이 또 있을까 싶다. 이 이사도 동감이다.
“여기 정말 또 오고 싶은데요. 경치도, 코스도 정말 끝내줍니다!”
산줄기는 이미 500m급으로 낮아졌고 길은 해발 400m를 넘지 않지만 강원도 산골과 진배 없는 깊이감에 아기자기한 재미까지 더한다. 골짜기를 조금만 내려가면 마을이 있으니 심리적으로도 안도감을 준다.   

용소사거리에서는 도로를 따라 내려가 1011번 지방도를 타고 출발지인 의령예술촌으로 되돌아가지만, 맞은편 임도로 직진하면 유곡면 세간리 곽재우생가 근처까지 장장 15km의 산길이 더 이어진다. 예술촌으로 바로 가도 일주거리는 43.4km나 된다.   
배터리도 넉넉한데 더 달리고 싶은 마음이 왜 없을까만은, 풍족한 라이딩의 기분 좋은 포만감이 은근한 자제력을 발휘한다. 

 

동릉 능선을 따라 길게 도열한 풍력발전기. 백색의 거인은 자연과 인공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고, 풍경의 임팩트와 깊이도 더해준다

 

벌채로 맨 바닥을 드러낸 산기슭을 도려내고 뚫은 길은 하늘 위를 달리듯 아찔한 고도감을 더해준다

 

 

여정
벽계면 의령예술촌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창녕IC에서 접근하면 빠르다. 낙동강 자전거길을 이용할 경우, 이화령 다음으로 악명 높은 박진고개를 넘자말자(부산 방면으로) 우회전해 곽재우 생가를 거쳐 가면 의령예술촌까지 18km 정도 된다. 자굴산과 한우산 일대의 임도를 다 타보려 면 하루 일정으로는 무리다. 벽계관광지 주변에는 펜션이, 평촌리 봉황대 주변에는 식당이 여럿 있다. 

 

 

 

 

 

 

 

 

저작권자 © 자전거생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