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슈호를 본 감동은 잠깐구시로까지 기나긴 우중 고행

한번에 전모를 보기 어렵다는 마슈호의 장관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날씨 운은 여기까지인가. 내내 흐리던 하늘은 일본 최대의 칼데라호인 굿샤로호를 떠나 구시로 습원 가는 길목에서 기어이 빗방울을 쏟아낸다. 기대했던 구시로습원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비에 갇혀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  
글·사진 오재홍(대전중앙중 교사)

노스케반도 진입도로. 노스케반도는 새우가 허리를 구부린 듯 22km 가량 가늘고 길게 뻗은 특이한 지형이다

7일차, 라우스(羅臼)~시베쓰(標津) 

야영 후 출발하자마자 바닷가로 나선다. 표지판은 시베쓰까지 48km 남았음을 알려준다. 날씨가 흐릿하여 마음이 밝지는 않으나 그저 페달에 몸을 싣고 왼쪽에 한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니 점차로 누그러진다. 
출발한 지 2시간반만에 시베쓰 입구에 도착했다. 길목에 시베쓰사적자연공원이 있어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다. 선사시대 유적지가 있고 뒤편에는 습지가 크게 펼쳐져 있어 생태 연구지로도 쓰이는 듯했다. 우리나라 순천만 습지와 흡사했다.  
시내에 진입하니 아담한 붉은색 건물인 시베쓰 시청이 나온다. 도시로 진입했다는 신호지만 도시라기보다는 아담한 시골 동네다. 시청 건너편을 좀 지나 하얀 일본식 건물의 소바전문점 후쿠즈미(福住)를 만났다. 실내는 깔끔하고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없었다. 음식 모형을 다양하게 만들어 놓은 진열대가 입구에 있어서 우리는 굳이 메뉴판을 볼 필요도 없이 주문을 했다. 
인근 관광안내소 아가씨의 안내를 받아 오늘의 잠자리로 결정한 ‘나리타 여관’을 찾았다. 아담한 시골 여관으로 건축은 오래되었으며 60대 중후반의 인자한 인상의 주인아주머니가 우리를 맞아준다. 
휴식 후 우리는 바다로 길게 뻗은 노스케반도를 찾았다. 왼쪽으로 바닷가가 계속 옆으로 따라오는 한가한 국도를 30여분 달려서 노스케반도 입구에 다다른다. 노스케반도는 노스케만(灣)을 만들었는데 식생연구지로 꽤 가치가 있는 곳이다. 새우가 움츠리고 있는 듯한 특이한 지형은 풍화작용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이다. 
관광지의 면모가 엿보이지만 퇴색된 여관들이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낸다. 낡고 폐가가 된 곳도 있어서 그다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 같다. 인가도 별로 없다. 덕분에 원래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회귀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중간 지점에 제1전망대가 있는데, 전망대라기보다는 소박한 주차장에 안내판만 덩그러니 있어서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왼쪽은 태평양을 향해 있고 오른쪽은 만으로 휘어 들어온 바닷물이 도열하듯이 밀려든다. 

바다 깊숙이 뻗어난 노스케반도 
제2전망대를 알리는 표지판에 해당화 그림이 화사하게 그려져 있다. 진입한 지 10km가 넘는다는 작은 표지판도 만난다.
가장 멋진 곳, ‘나라와라’라는 지점에 도착했다. 주차장은 건너편 수림(樹林)이 멋지게 바라보이는 곳에 있다. 관광 온 자동차와 사람들이 일부 있는데, 쌍안경으로 건너편 수림을 바라보는 사람도 보인다. 바다에 길게 펼쳐진 평지 위로 자작나무 같은 나무들이 도열해 있고 그 사이로 살그머니 사슴들이 엿보인다. 이곳은 동물들이 평화롭고 안전한 생활을 최대한 보장받고 살 수 있는 곳이다. 
인근의 작은 마을에는 화재 시 대피소 안내 표지가 있다. 이런 곳에 대피소를 굳이 알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일본인들의 섬세함과 꼼꼼함을 엿볼 수 있다. 노란 야생화가 바람에 가냘프게 흔들거리고 키 작은 잡초들이 바닷가 습지에 넓게 퍼져서 잔잔하게 깔려 있다. 해발 3m를 알리는 표지판에 바닷가 바로 위라는 것을 실감한다. 
잠시 후 ‘토도와라’라는 곳이 나온다. 고사목이 잘려진 작은 밑동만이 늘어져 있는 곳으로 이곳이 생성된 지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엿보게 한다. 
아스팔트 끝지점에서 넓은 주차장이 나오면서 포장도로는 끝난다. 대략 입구에서 18km 지점이다. 그 이후는 비포장길로 이어져 있다. 우리는 맞은편에 보이는 등대를 향해 자전거를 몰았다. 아담하고 흰 등대는 외로이 바닷가를 지키고 있다. 
이제는 을씨년스런 날씨를 등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앞서 지나쳐온 노스케반도 탑을 만났다. 탑 옆에는 ‘북해도유산’이라 쓰인 표지판에 노스케만에 서식하는 식생과 크루즈 유람선 그림이 그려져 있다.

8일차, 시베쓰(標津)~마슈호(摩周湖)·굿샤로호(屈斜路湖) 

기온은 따스하고 코끝에 스치는 공기는 상큼하다. 오늘 여행은 즐거운 기분으로 시작되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점심 도시락까지 이른 아침에 싸주신 여관 주인 할머니와 작별하고 길을 나섰다. 
오늘은 마슈호(摩周湖)까지 가는 여정이다. 시베쓰에서 272번과 13번 국도를 이용해서 데시카가(第子屈)로 가서 마슈호를 돌아볼 예정이다. 일단 오늘 마슈호까지 가기 위해 구시로(釧路)와의 갈림길인 데시카가를 중간목적지로 하고 출발했다. 오르막이 그다지 없는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좌우에는 초원이 펼쳐진 목장지대가 지천이다. 녹색의 초원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간혹 터널도 나타나기도 하나 터널에 진입하면 도로변에 넓은 자전거길이 있어서 자동차의 주행에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다. 
날이 흐려서 주변 초원지대가 칙칙한 느낌이 들었는데, 맑은 날이었다면 인가도 그다지 많지 않은 도로여서 훨씬 더 낭만적인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출발한 지 6시간이 지나서 데시카가에 도착했다. 데시카가 다운타운에 가보니 마슈호 온천지대의 관광지가 펼쳐져 있다. 제법 관광지의 풍모가 느껴질 만큼 많은 여행객들이 오가고 관광안내센터에는 한국어 안내책자도 있다. 기념품점과 매점 한쪽에는 마슈호와 인근의 굿샤로호를 담은 멋진 사진들이 사계절을 보여주고 있었다. 광장 한쪽에 족욕탕이 있어 내가 사는 유성의 족욕탕이 연상이 되었다. 이곳 매점의 소문난 것 중의 하나가 사슴햄버거이다. 호기심에 하나를 사먹었는데 약간의 노린내가 나서 별 맛을 못 느꼈다. 느긋한 휴식을 마치고 드디어 마슈호에 도전. 

아름다운 호수를 가슴에 품다
이곳은 아칸(阿寒)국립공원지대에 속한 곳이다. 한적한 도로로 접어들었는데, 곧바로 업힐 10km를 알린다. 이제 죽었다. 지금껏 80여km를 달려온 체력은 더욱 힘겨움을 더 하고 있었다. 갈수록 경사가 심해진다. 산 중간을 넘어 오르니 발아래에 아까 머물렀던 마슈호 관광지는 보이지도 않는다. 초지(草地)를 배경으로 키 작은 관목들이 스치는 길에 도열해 있다. 힘들었던 오르막도 시간과 힘겨움 속에 극복이 되고 드디어 마슈호에 도착했다. 정상부에 다다르니 매우 쌀쌀한 날씨로 변했다. 
주차장을 넘어 언덕을 오르니 마슈호다. 

광활하다! 웅장하다! 그리고 속이 시원하다!
통나무를 깎아서 만든 의자에 마슈호라는 큰 글씨와 오늘 날짜가 흰색으로 쓰여 있다. 호수 건너 멀리 커다란 마슈산은 움푹 단애(斷崖)를 이루며 멋진 모습으로 여행객을 맞이해 주고 있다. 이곳은 투명도에서 세계 3대 호수다. 맑기로 유명해서 수심 40여m까지 바라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호숫가에는 접근할 수가 없었다. 물가는 멀리 발아래 떨어져 있었다. 
오늘 드디어 북해도에 온 목적에서 두 번째를 이루었다. 시레토코에 이어 마슈호에 도착한 것이다. 마슈호에는 전망대가 3개 있는데 지금은 1전망대이고 다시 길을 따라 휘돌아간 오르막을 10여분 오르면 3전망대가 나온다. 주변에는 조릿대화 야생화가 부드럽게 펼쳐져서 여행객들을 반기고 있다. 1전망대에서 3전망대 가는 길은 군데군데 흰색 자작나무가 멋진 자태로 마슈호를 따라 자라고 있다. 
3전망대에서는 마슈호 전체를 모두 조망할 수 있다. 이름 모를 야생화도 지천으로 깔려있다. 마슈호는 백두산 천지와 닮은 화구호로, 평소에 맑은 날이 많지 않아 호수를 보기가 어렵다는데 우리는 오늘 처음 도착해서 전체 호수를 볼 수 있어서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굿샤로호로 향한다. 길은 지금부터 오로지 자전거의 브레이크만 필요하다. 10km 남짓한 길을 신나게 내려간다. 지금까지의 고행을 덤까지 얹어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유황으로 뒤덮인 이오산 
신나는 다운힐이 끝나고 평지에 이르면서 한적한 길에 철도 건널목이 나타났다. 건널목을 지나 굿샤로호 방향으로 가다 조그만 시골역이 골목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와유(川湯)온천역이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뜻밖의 광경을 접하게 되었다. 좌측에 이오산(硫黃山)이라고 적혀 있어서 호기심에 핸들을 돌렸다. 나무 사이를 지나서 눈앞에 펼쳐진 모습에 깜짝 놀랐다. 건너편에 벌거숭이산이 거대한 불덩어리를 품고 있는 듯 흰 연기가 온 산을 휘감아 덮은 채 하늘로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연기는 산의 숨결이 살아있는 듯 춤을 추었다. 
매캐한 유황 냄새가 코끝에 역하게 스쳐서 숨쉬기가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산 전체가 유황으로 인해서인지 군데군데 노란색으로 덮여 있다. 이런 장관을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만나니 무척 행운인 듯하다. 
이오산을 빠져나와 굿샤로호로 향하면서 굿샤로호 주변에 야영장을 허겁지겁 찾아 어둠이 이미 내린 시간에 텐트를 쳤다. 호숫가에 붙어 있는 스나유(砂湯) 캠핑장이었다. 주말이라 이미 많은 캠핑족들의 텐트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어둠 속에 굿샤로호는 조용히 잠들어 있는데, 초면에 만나서 아직은 진면목을 알아 볼 수가 없다.

9일차, 굿샤로호(屈斜路湖)~구시로(釧路)

굿샤로호는 둘레가 57km에 달하는 일본 최대의 칼데라호로 일본에서 6번째로 큰 호수이기도 하다. 코발트블루의 호수가 신비로움을 자아내는데, 흐린 날씨로 인해 진면목을 볼 수는 없었다. 
어제 어둠 속에서 미처 발견 못했던 것을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신기하기만 하다. 호숫가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머물렀는데 호수 가장자리가 그야말로 무료 천연온천이었던 것이다. 어설프지만 오목한 물웅덩이를 파내어 임시로 탕을 만들면 바로 온천이 되었다. 웅덩이마다 삽이 하나씩 꽂혀 있는데 웅덩이 만들 때 쓰라고 둔 것이다. 들어가 보니 은근히 뜨겁다. 호숫가 안쪽의 뭍에서 뜨거운 유황물이 호수 방향으로 흘러나가는 것이다. 웅덩이에서 호수 안쪽 방향은 시원한 찬물이다. 
캠핑장 중심에는 관광상품점이 있고 캠핑장 관리소와 호수에서 즐길 수 있는 오리배가 여러 대가 묶여 있었다. 특이한 것은 캠핑장에 나무로 만든 작은 오두막집들이 여러 채 있는데 자세히 보니 분리수거함이다. 안내글에는 한국어도 보였지만 한국인 몇 명이나 이곳에서 캠핑을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시원한 아침 자연 속의 온천욕을 마치고 이제 오늘의 목적지 구시로(釧路)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호숫가를 따라서 돌아나가는 길은 차량 통행이 드물어 한적하고 좌우로 길게 뻗은 수목들 속에서 모처럼 자연인으로 돌아가 여유를 즐기며 여행의 참맛을 맛볼 수 있었다. 
잠시 후 만난 곳은 정말 멋졌다. 그냥 지나가려다 오른쪽에 문득 작은 푯말이 온천을 알리기에 호기심에 들렀다. 이케노유(池の湯) 온천인데, 역시 노천탕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아침에 온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꽤 잘 꾸며져 있고 깨끗해서 갈 길을 제쳐두고 다시 온천욕에 빠져 들었다. 
굿샤로호(屈斜路湖)의 중심에는 나카지마(中島) 섬이 있다. 이 섬은 일본의 호수 가운데 있는 섬 중에서 최대라고 한다. 흐릿한 날씨 속에 호수 중심부에 나카지마 섬으로 추정되는 평평한 섬이 뒷산을 배경으로 호수 위에 떠 있다. 맑은 날이라면 무척 아름다울텐데 아쉽기만 하다.

다시 찾아온 빗길 고행
구시로 가는 길 좌우로는 끊임없이 초원과 목장이 연속해서 나타난다. 녹색 초원으로 가득한 자연은 심신에 편안함을 주어 비록 몸은 여행으로 지쳐 있지만 마음만은 행복감으로 가득했다. 
서서히 물방울이 얼굴로 내려앉는다. 지난번 몬베쓰에서 도코로로 오면서 하루종일 비와 씨름했던 달갑지 않은 기억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아직도 구시로까지는 꽤 멀리 남았는데 걱정이 된다. 비옷을 입고 트레일러도 비닐로 덥고 우중 라이딩 모드로 바꾸었다. 자동차가 쏜살같이 옆을 지나칠 때마다 내리는 빗방울과 함께 두 배로 몸을 괴롭힌다. 
오후로 되면서 빗줄기는 사라졌지만 기온이 내려앉아 서늘하다. 구시로 습지는 많은 기대를 했지만 흐린 날씨에 멋진 광경은 보기 어려울 듯했다. 시베차에 도착해 동네 뒤편에 흐르는 강물이 시원스레 보여서 잠시 한숨을 고르고 강줄기를 따라 이면도로로 접어들었다. 
구시로로 내려가는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자주 나타나 페달링이 그다지 편치 않았다. 1시간쯤 지나 구시로습원국립공원(釧路濕原國立公園)과 시라루토로 호수 캠프장의 안내 표지판을 만났다. 나비의 숲 전망대가 있다고 쓰여 있는 우측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작은 간이역인 카유나(茅沼)역이 나왔으나 주변 풍경은 보잘 것 없어서 다시 발길을 돌렸다. 국도를 통해 구시로 방향으로 길을 재촉했다. 구시로습지는 람사르조약에 등록되어 있는, 면적 2만8000ha의 일본 최대 습원으로 다양한 생태계를 볼 수 있고 그 중에서도 특별천연기념물인 두루미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제 본격적인 구시로 습원지대로 접어든 것 같았다. 우측으로 ‘시라루토로호수’가 나타났다. 습지에 키 높은 풀들이 무성하게 우거져 산재해 있다. 좌측으로 ‘도로(塘路)호’가 길게 동쪽으로 꼬리를 물고 끝을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우리는 ‘호소오카 대전망대’가 우측으로 7km 들어간다는 푯말을 보았지만 시간이 4시를 향해서 움직이고 흐린 날씨로 인해 조망을 포기하고 계속 구시로로 향했다. 호소오카 대전망대는 구시로 동쪽을 대표하는 전망대로 구시로강과 습원, 건너편 오아칸다케산, 메아칸다케산이 보이는 곳이다. 
오후 5시에 드디어 구시로 시내에 도착했다. 구시로역으로 가서 관광안내소에 들렀다. 나이가 꽤 드신 노인 분이 서툰 영어로 숙소를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해안가에 위치한  저렴한 민박집 ‘은린장(銀鱗莊)’을 찾았다. 오래된 건물로 꽤 허름하지만 오로지 숙소만 제공하는 곳이다. 자신의 침낭을 가지고 숙박하면 1인당 1000엔으로 하룻밤을 해결할 수 있다. 샤워와 세탁은 모두 유료다.  여장을 풀고 난 후 날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고 밖은 이제 하루를 마감하는 비가 내린다.

10일차, 구시로(釧路) - 빗속에 갇히다 

밤새 비가 내린다. 자전거여행의 최대 적을 만난 것이다. 어제에 이어 앞으로 며칠간 비소식으로 일기예보가 원망스러웠다. 북해도는 맑은 날씨가 많고 비는 거의 없는 곳이라는 것을 믿고 왔건만 몬베쓰를 지나면서 수시로 괴롭힌 비가 이젠 정말 지겹기만 하다. 여정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일단 비가 가라앉을 때까지 오늘 하루 휴식 겸 구시로 시내관광을 하기로 했다. 비가 내려도 여전히 우리는 유일한 운송수단인 자전거를 이용하기로 했다. 
우선 삿포로의 도요히라교, 아사히카와의 아사히교와 함께 홋카이도 3대 다리 중 하나인 ‘누사마이교’를 먼저 찾았다. 다리 좌우 난간에 두 명씩 실물 크기 여인의 나신(裸身)이 내리는 빗방울에 노출되어 있다. 사계절을 상징하는 브론즈상으로 일본 대표 조각가의 작품이다. 각 작품 아래에 한자(漢字)로 춘, 하, 추, 동이라는 글자가 마치 명함처럼 붙어있다. 구시로는 ‘안개의 도시’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데 안개 속에 누사마이교는 더욱 멋지다고 한다.  
다리를 돌아 모퉁이에 있는 커다란 건물은 ‘구시로 피셔먼즈 워프 MOO’라는 곳으로 음식과 기념품을 판매하는데, 구시로의 대표적인 종합쇼핑센터이다. 밤 10시까지 영업해서 늦은 시간까지 구시로 강변가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옆에 EGG라는 건물이 붙어 있는데, 돔 모양으로 된 온실이다. 쇼핑과 산책으로 피곤한 몸을 쉴 수 있는 간이 삼림욕장이라 볼 수 있다. 
갑작스런 소낙비에 우리는 속수무책 가던 길을 중단하고 비 맞은 생쥐처럼 처마 밑으로 몸을 피했다. 기온마저 내려가서 차가운 공기는 한술 더 뜬다. 
잠시 후 지도를 보고 찾아간 곳은 ‘하루토리(春採) 공원.’ 첫 번째 찾은 것은 ‘구시로시립박물관’이다. 하루토리 호숫가에 두루미가 날개를 펼친 것 같은 외관이 특징으로 구시로의 지리, 역사, 풍토 등을 알 수 있는 곳이지만 마침 휴관이라 아름다운 건물만 감상하고 돌아섰다.  
하루토리 호수 아래로 내려오니 도선장에 인적은 없는데 작은 배 한척이 호수를 배경으로 쓸쓸히 묶여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호수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오후는 비로 인해 잠시 수면을 취하고 날이 저물어 밖으로 나왔다. 야경 감상을 위해 구시로역과 강변을 돌아보았다. 구시로역 옆에 교회 건물이 당당히 자리잡고 있었다. 여태까지 일본에서 교회를 본 것은 처음이라 무척 신기했다. 일본인 중에 기독교인은 불과 5%도 안 된다는 것을 들었는데 그 영향으로 교회를 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하코다테 쪽에는 교회 건물이 꽤 있다고 한다.  
다시 누사마이교를 찾았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시로 피셔먼즈 워프 MOO는 눈부시게 밝은 불빛을 쏟아내고 상가는 흥청거리는 소음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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