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문화의 짙은 향기일본 시코쿠 일주(2)  
요염한 아와오도리 몸짓에 매혹의 바닷길

시코쿠 동부에 자리한 도쿠시마의 옛 지명은 아와(阿波). 일본 역사·문화의 중심지인 긴키(近畿) 지방과 인접하고 있다. 굉음을 내며 소용돌이치는 나루토(鳴門) 해협이 신비롭고 88개 사찰을 일주하는 시코쿠 헨로의 제1번 사찰 료젠지도 여기에 있다. 애교 섞인 함성을 지르며 가장 극적으로 여성미를 보여주는 아와오도리의 요염한 춤사위, 미나미아와 산라인의 환상적인 바닷길에 전신의 감각은 숨 돌릴 틈이 없다 
글·사진 김병훈(본지 발행인)

소녀 같은데 이미 귀여움을 넘어 요염함을 발산한다. 옷차림은 몸을 거의 다 가리고 있고 기묘한 모자까지 썼는데도 은근히 도발적이다. 남성과는 완전히 다른 ‘인종’인 여성의 신체적 특성, 혹은 미감을 극도의 단계로 끌어올린 춤사위. 탱고나 블루스, 살사처럼 직접적이고 야하지 않으면서 이토록 요염하고 선정적일 수 있을까. 

탄성 있게 흘러내린 얇은 속곳(지반, ジバン)은 몸매의 곡선을 드러낼 듯 말 듯 감싸고 가녀린 동작을 따라 은근하게 낭창인다. 한쪽이 터진 치마 매무새 사이로는 다리가 올라갈 때마다 하얀 정강이가 수줍다. 빨간 게다(下馱) 끈이 하얀 버선(타비, 足袋)으로 곱게 감싸인 발가락을 둘로 가르며 삐딱하게 발을 감아쥔 모습도 말할 수 없이 고혹적이다. 

이렇게 짧고 사소한 노출과 지극히 단순한 몸짓으로 이토록 눈길을 홀리고 마음을 흔드는가.

아와오도리에 체현된 일본일본성  
지금 나는 도쿠시마(德島) 현의 중심도시 도쿠시마 시내에 있는 아와오도리회관(阿波おどり會館)에서 도쿠시마가 자랑하는 아와오도리 공연을 감상하는 중이다. 예전에 잠시 영상을 본 적이 있어 기대를 하긴 했지만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절제되고 단순한 몸짓으로 시선과 마음을 뒤흔드는 데 적이 당황하면서 한편 감동하고 있었다. 

200석 남짓한 작은 공연장의 맨 앞자리에 앉았으니 무희들이 눈앞을 지날 때는 그들의 몸짓으로 시야가 가득 차고, 옷자락의 펄럭임과 바닥에 닿는 게다, 살짝 거칠어진 숨소리 등등 소리의 밑바닥까지 들려온다. 

무희가 머리에 쓰는 기묘한 삿갓은 토리오이가사(鳥追い笠)라고 하는데, 논밭의 새를 쫓기 위해 썼던 반달 모양이라 햇빛 가리개다. 새를 쫓는 실용성은 사라지고 여성미를 강조하는 귀여운 소품으로 변신했다. 삿갓을 앞으로 눌러 기우뚱 하게 쓴 덕분에 하얗고 앙증맞은 목덜미가 드러나 묘하게 선정적인 기모노 특유의 고혹미와 조화를 이룬다.      

춤 중간중간에 외치는 함성에는 강렬한 교태가 응축되어 콧소리로 발산된다. 먼저 “얏토사!” 라고 외치면 “아, 얏토 얏토!”라고 화답하는데 “잘 지냈어?”하고 묻고 “아, 잘 지냈어”라고 답하는 사투리 표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단순한 말을 무희들이 교태로운 콧소리로 합창을 한다. 얼핏 보아 어린 소녀도 있지만 숙녀도 보이는데 너무나 앳된 목소리에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공연이 끝나고 물어보니 전문 무희도 아니고 취미로 춤을 추는 직장인이라고 해서 더 놀랐고 부러웠다.  

1시간의 공연을 보면서 나는 “아와오도리에도 일본 특유의 ‘부조화의 조화,’ ‘극단의 융합’이 존재하는구나” 감탄했다. 일본은 예로부터 군사와 건축, 사상, 복장 등 모든 분야에서 그 미학(美學)을 궁극의 단계로까지 밀어올렸다. 그러나 최후의 선은 넘지 않으면서 극도로 인위적인 절제의 미덕을 발휘하며 가파른 절벽 끝에 선 듯, 매우 긴장되고 완벽주의 취향의 일본적 미감을 완성한다. 현존하는 일본 전통의 성곽, 건축, 정원, 복장, 차도(茶道) 모두가 그렇다.     

이런 취향은 아와오도리에서도 그대로 구현되고 있다. 여성성을 최고조로 드러내는 교태와 요염함을 절제된 동작과 복장으로 표현한다. 남자 춤도 있지만 아와오도리에서 남자는 여성의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 

아와오도리는 우리의 추석에 해당하는 오봉(お盆)에 추는 일본의 3대 봉오도리(盆踊り)에 꼽히며, 양력 8월 15일에 열리는 아와오도리 축제에는 130만 명이나 몰려 도쿠시마 시내가 마비될 정도라고 한다.   

아와(阿波)는 도쿠시마의 옛 이름이지만 지금도 도쿠시마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시코쿠 동쪽에 반은 세토내해에, 반은 태평양에 걸쳐 있는 이 바다와 산의 땅에서 사람, 그것도 여자에서 극적으로 체현된 일본을 본다. 새하얀 분칠과 가는 눈매를 에워싼 반달눈썹, 극도로 화려하고 정교한 옷차림, 또각거리는 종종걸음으로 골목을 누비는 교토의 게이샤(藝者)가 은밀한 내실의 여성미를 극대화한 것과 대비된다. 아와오도리가 밝고 집단적이며 야외풍이라면, 게이샤는 어딘가 그늘지고 고독하며 내밀스럽다. 

도쿠시마는 이렇게 사람으로 표현되는 극도로 일본적인 전통과, 풍성하고 신선한 해산물 그리고 세토내해와 태평양이 맞서며 빚어낸 자연경관으로 눈과 귀, 냄새까지 모든 감각을 매혹한다.               

나루토우치노우미 총합공원~료젠지(15

나루토(鳴門)  코스
카가와를 벗어나 도쿠시마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나루토(鳴門) 해협이다. 시코쿠에서 세토내해를 가르며 오사카 고베(神戶)까지 길게 뻗은 아와지시마(淡路島) 섬의 남단과 도쿠시마 나루토 시 사이에 형성된 좁은 해협이다. 가장 짧은 곳은 1.3㎞ 정도인데 여기에는 고베아와지나루토 자동차도로가 지난다. 해협 위에 걸린 길이 1629m의 오나루토대교가 웅장하다. 

이 해협에는 지리적 명물이 있다. 바닷물이 소용돌이 칠 정도로 거센 조수(潮水)가 흐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섬 사이의 메시나(Messina) 해협, 캐나다 밴쿠버 섬과 콰드라 섬 사이의 세이모어(Seymour) 해협과 함께 세계 3대 조수로 꼽힌단다. 간만의 차는 1.5m에 불과하지만 좁은 해협을 통과하는 물살이 병목현상처럼 한 번에 몰려들어 빠르고 급격하게 흐르면서 지름 20m의 대형 소용돌이까지 생겨난다. 해수면이 단차를 두고 급류하며 울부짖는 것이 장관이다. 웅장한 오나루토대교가 걸려 있는 40m 절벽 위 전망대에서 보아서인지 풍경의 스케일이 압도적이다. 오나루토대교 하부에는 바닥이 유리로 된 전망대도 설치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진도와 육지 사이의 울돌목(명량)과 비슷한 지형인데 지명마저 울 명(鳴)자를 같이 쓰고 있다. ‘물이 운다’는 표현은 시적(詩的)이기보다 비장하거나 신비롭다.

전망대의 이름은 센죠지키(千疊敷)인데, 다다미 1천장을 깔 정도의 평지라는 뜻으로 일본 전역에 비슷한 지명이 다수 있다. 전망대 한켠에는 1908년 히로히토(裕仁) 천황이 황태자 시절 이곳을 찾았다는 기념비가 서 있다. 순한문으로 기록된 비석은 “(황태자가 찾은) 그날 날씨가 맑고 기운이 밝아 조수는 북 치는 소리를 내고 파도는 춤을 추듯 했다”며 다소 신비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메이지유신 이후 점점 신격화되고 있던 천황의 위상을 순한문으로 새긴 비석의 장중함으로 과시하고 있는 듯하다.    

지중해 속의 지중해 
나루토 해협 일대는 지형이 아주 특이하다. 센죠지키 전망대가 육지의 끝단 같지만 실은 오게시마(大毛島)라는 섬이다. 이 오게시마와 함께 연접하고 있는 시마다시마(島田島)는 또 하나의 지중해인 우치노우미(內海)를 만들고 있다. 이름 그대로 내해인데, 얼핏 보면 호수 같지만 폭 2㎞가 넘는 바다다.  

이 내해의 남쪽에 면한 나루토우치노우미 총합공원에서 라이딩을 시작한다. 센죠지키 전망대에서 출발하면 8㎞ 가량 거리가 늘어난다. 목적지는 지난호에 소개한 고보(弘法)대사 구카이(空海, 774~835)의 연고지를 따라 88개의 절을 찾아가는 시코쿠 헨로(四國遍路)의 제1번 사찰인 료젠지(靈山寺)다. 거리는 15㎞. 

88개의 사찰은 대부분 해안을 따라 있는데, 이 료젠지부터 시계방향으로 일련번호가 붙어 있다. 료젠지가 1번이 된 것은 고대 일본의 중심지였던 긴키(近畿, 오사카·나라·교토 일원) 지방에서 아와지시마를 거쳐 올 경우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루토를 ‘시코쿠의 현관’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지리적 입지 때문인데, 지금도 오헨로(お遍路, 시코쿠 헨로를 줄여서 부르는 말) 순례자들은 가능하면 이 순서를 따라 료젠지부터 들린다. 

나루토우치노우미 총합공원에서 남쪽으로 향하면 곧 ‘작은 나루토해협’ 이란 뜻의 고나루토해협이 나오고 그 위로 아름다운 사장교인 고나루토대교가 걸려 있다. 11번 현도(縣道, 우리의 지방도)는 대교를 건너 터널을 만나고 터널을 지나 11번 국도로 좌회전하면 나루토시내 서쪽 외곽지대로 들어선다. 

나루토선 철길과 나란히 하며 서쪽으로 가면 점점 시가지를 벗어나 전원풍경으로 바뀐다. 워낙 많은 인구가 해안선을 따라 밀집해서 살기 때문에 주요 교통축선인 철도를 따라 마을이 모여 있는 것은 다른 지방과 다르지 않다. 일본의 전체 해안지방은 조금 과장해서 철도를 중심으로 하나의 시가지로 이어져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마을이 끊어지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나루토시 서쪽의 오아사초(大麻町)에는 오타니야키(大谷燒) 모리토오키(森陶器)라는 도예점이 있다. 도예 제작과정을 견학하거나 직접 체험할 수 있는데, 한쪽에는 눈에 익은 경사 가마가 보인다. 조선 특유의 오름가마로 언덕을 따라 경사지게 가마를 설치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노보리(登り) 가마라고 부르며, 불이 위로 올라가는 성질을 이용해 화력을 높이는데 유리한 방식이다. 

임진왜란 때 수많은 조선도공이 끌려와 특히 규슈지역에 수많은 가마를 만들어 일본 요업의 원류가 되었는데 노보리 가마도 이때 들어왔다. 

오랜 세월 강한 불에 가마를 만든 흙까지 도자기화 되어 이슬맺혀 떨어지는 물방울이 영롱한 종소리를 내는 신긴한 현상도 체험할 수 있다. 역시 오타니야키도 1780년 규슈 태생의 도자기 기술자가 이쪽으로 건너와서 가마를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고난의 순례길, 여기서 시작되다 
오타니야키를 나와서는 차량이 많은 12번 현도를 버리고 집이 뜨문뜨문 이어지는 마을 뒷길을 따라 서쪽으로 향한다. 평일 낮의 주택가는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텅 빈 듯 인적이 없다. 우리와 막상막하로 ‘일중독’으로 유명한 일본답다. 

이윽고 마을 끝에 자리한 료젠지에 도착했다. 산문 입구에는 ‘시코쿠 제1번 료젠지’ 석각이 자랑스럽게 서 있다. 오후 늦은 시간인데도 경내에는 흰 수의와 삿갓 차림에 나무 지팡이를 쥔 순례객들로 붐빈다. 1번 사찰답게 수의와 삿갓, 지팡이 같은 순례 용품도 팔고 있다. 분위기 그윽한 산사라기보다 전통 공원 같다. 본당에는 불상도 보이지 않는다. 일본 사찰은 불상을 따로 보관하고 불전에는 빈 연화대만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마저 신사(神社)처럼 내부로 깊숙이 배치되어 있어서 일반 참배객은 가까이 갈 수도 없다. 교회처럼 의자가 놓인 본당 내부는 따로 돈을 내고 예약까지 해야 들어갈 수 있단다. 

일본인에게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생활의 지침 정도로 느껴진다. 독실한 불자(부처님도 수많은 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전국적으로 10만 개 이상의 사찰이 있고 불교 인구가 9천만이라지만 보통의 일본인들은 절과 신사를 동시에 참배하고 생활 속의 의례로 삼는 정도로 보인다. 같은 불교라고 해도 수많은 종파가 있고 불교에서 유래한 유사종교도 흔하다. 이렇게 신이 많고 수많은 귀신을 모시는 나라이니 승려가 결혼하고 사찰을 대대로 물려받는 비승비속(非僧非俗)의 현상도 이상하지 않다. 

88사 순례는 일본인의 정서에 확고한 틀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복장마저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어서, 관광버스를 타고 잠시 돌아보는 경우도 상의만은 수의를 입고 다닌다. 일본의 놀라운 전통 보존 능력은 기록과 보존을 넘어서는 ‘문화의 화석화’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료젠지를 옆에 끼고 조금 북상해 다카마쓰고속도로 아래를 지나 다이큐노사토(第九の里) 미치노에키(道の驛)에서 라이딩을 마무리했다. 미치노에키는 일본 정부가 지정하는 공식 도로휴게소로 전국적으로 2016년 5월 기준 1093곳이 있다. 일정한 시설기준을 갖춰야 지정받을 수 있으며, ‘미치노에키’ 간판이 있으면 주차장과 화장실, 매점 또는 간이식당, 휴게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제9(다이큐)’라는 특이한 이름에는 사연이 있다. 휴게소 옆에는 유럽식 석조건물이 서 있는데, 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영국과 동맹국이어서 독일 포로 일부가 나루토에 수용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수용소를 기념해 2004년 이곳에 독일식 건물을 짓고 박물관 겸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당시 독일군 포로들이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일본에서 최초로 연주해서 ‘제9(다이큐)’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근처에는 독일 병사들의 무덤도 있다. 

까마득한 1차 대전(1914~1918) 때 독일군 포로가 이곳에 수용되어 있었다니 처음 듣는 사실이다. 아마도 아시아쪽에서 생긴 포로를 가까운 일본에 보낸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서 나라가 없어져 버렸지만 일본은 세계최강의 영국과 동맹을 맺고 역시 유럽의 강국인 독일 포로를 수용할 정도로 세계화 되어 있었음을 여기 도쿠시마의 시골구석에서 새삼 확인한다. 

태평양을 바라보는 해안길의 웅자

미나미아와 산라인(南阿波 sunline) 코스
솔직히 말해서 해안길의 경관은 우리나라 동해안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기암절벽과 백사장, 해송이 어우러진 700㎞ 바닷길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확신했다. 일본은 산악 경관은 우리보다 더 높고 웅장하지만 해안 경치는 우리 동해안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도쿠시마 동남쪽, 태평양을 면한 짧은 바닷길에서 그런 확신이 무너져 내리는 걸 어쩔 수 없었다. 

‘태양이 뜨는 길, 태양의 길’ 이라는 선라인(sunline) 이름부터 명랑하고 기운차다. 도쿠시마현 남단에 자리한 가이후군(海部郡)의 해안절벽 지대에 조성된 이 관광도로는 시코쿠 해안길의 백미라고 해도 좋다. 길이는 18㎞에 불과하지만 적당한 업다운이 연속되고 해발 100m 정도의 산기슭을 따라 나 있어 길과 바다가 내내 아름답게 조망된다. 산줄기가 쏟아질 듯 바다로 떨어지는 급사면을 지나가서 길은 구절양장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완전한 태평양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바다, 세토내해에 별처럼 흩뿌려져 있던 섬들은 이제 채 몇 개 보이지 않고 수평선 아득히 오직 바다만이 광활하다. 이 광대무변한 바다를 보며, 육지는 물에 잠기지 않은 땅일 뿐이라는, 시한부 느낌을 받는다.    

급사면에 길을 내다보니 아찔한 수직 축대나 협곡을 넘는 까마득히 다리가 줄을 잇는다. 길을 따라 4개의 전망대가 있는데 제1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센바카이가이(千羽海崖)는 높이 250m, 길이 2㎞에 달하는 엄청난 해안절벽이다. 이름 그대로 태평양을 향해 천 개의 날개를 펼쳐 육중한 몸매를 드러내고 있다. ‘신일본관광지 100선’에도 뽑혔다니 대단한 장관임에는 틀림없지만 제대로 보자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한다. 

이 환상적인 바닷길은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눈은 쉴 새 없는 호사에 어디 한 곳에 초점을 맞추기 어렵고, 내내 벌어진 입에서는 신음 같은 감탄사만 흘러나온다. 그렇게 멍하니 아찔한 풍경과 멋진 도로에 몸과 마음을 뺏긴 채 페달을 돌리다보니 어느새 끝이다. 극도로 즐겁고 만족스런 시간은 느낄 새도 없이 화살처럼 흐른다.        

이 길은 새로운 ‘오헨로’에 포함되어 조용히 걷는 사람도 있다. 그러게. 이 길에서는 자전거마저 너무 빠르다. 

점심을 든 미나미초(美波町) 히와사(日和佐) 항 해안도 놀라웠다. 마을을 벗어난 해안절벽에 우뚝 자리한 ‘하얀 등대(白い燈臺)’ 호텔은 이름 그대로 하얀 건물과 입지가 등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하얀 테라스에 서면 쏟아지는 청량한 햇살과 전신을 감싸는 부드러운 해풍에 눈이 지긋이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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