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흘러흘러 영일만까지

경주의 젖줄은 형산강이다. 63km밖에 되지 않는 짧은 강이지만 경주분지를 적시고 북류해 포항을 거쳐 영일만으로 흘러든다. 형산강 자전거길은 경주시내와 포항을 이어주는 도시간 노선이다. 소개하는 ‘형산강길’은 형산강 동안의 자전거길을 따라 포항 경계 형산(257m)까지 갔다가 양동마을을 거쳐 서안 강둑길을 통해 되돌아오는 순환코스다. 정겨운 흙길이 포함되어 있고 형산 정상의 기원정사에서는 포항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경주는 영남지방의 상징이었다. ‘경상도’ 명칭도 경주와 상주에서 따왔고 초기 신라의 영역은 영남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영남지역 대부분이 낙동강 유역에 포함되는데 비해, 경주는 별도의 강줄기인 형산강 유역에 속한다. 영남의 주요 도시 중 낙동강 유역이 아닌 곳은 형산강을 낀 경주와 포항 그리고 태화강 유역의 울산뿐이다. 
형산(兄山)이라는 명칭은 포항과의 경계에 솟은 형산(257m)에서 따왔다. 강 건너 북쪽에는 ‘동생산’ 제산(弟山, 182m)이 사이좋게 마주보며 강폭이 좁은 병목을 이룬다. 신라 때는 이 두 산이 경주를 지키는 북쪽 방어선이기도 했다. 지금도 형산 정상에는 북형산성 터가 남아 있다. 
형산강은 경주와 포항시내를 관통해 강변에는 두 도시를 연결하는 30km 정도의 자전거길이 나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형산강길’은 형산강 자전거길을 따라 형산을 올랐다가 되돌아오는, 55km, 150리 장정이다. 

 

 

광활한 평지숲, 황성공원  
경작지나 거주지로 쓸 평지가 적은 우리나라는 해안 방풍림을 제외하고 평지숲이 극히 드물다. 황성공원은 내륙에서는 국내 굴지의 대규모 평지숲이다. 각종 체육시설이 들어서고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축소되고 있지만 지금도 길이 800m, 폭 500m 정도로 약 30만㎡(약 9만평)의 규모를 자랑한다. 황성숲으로 통칭되지만 예전에는 고양수(高陽藪) 혹은 논호수(論虎藪)라고도 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성왕 때 김현이 처녀로 변신한 호랑이와 정분을 맺었다가 호랑이 덕분으로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고, 호랑이의 은혜를 갚기 위해 호원사(虎願寺)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호원사가 여기에 있었다. ‘논호수’에 호랑이 호(虎) 자가 들어간 유래다. 그윽하고 울창하며 독특한 이 황성숲이 코스의 출발점이다. 마침 보랏빛 맥문동이 꽃을 피워 숲은 동화적인 몽환경이다. 
황성숲 서편에 들어선 시민운동장에 무료 주차장이 있으며, 맞은편 실내체육관 옆으로 경주예술의전당을 지나면 바로 형산강변이다. 시내 외곽이라 둔치는 아직 공사중인 데가 있지만 도로변에도 자전거길이 잘 나 있다.     
시내 최북단의 용강동 일대는 아파트단지가 쏙쏙 들어서며 경주 시가지를 북으로 확장하고 있다. 시가지를 완전히 벗어나자 산이 가까이 다가서고 강물은 갈대와 수초가 무성한 습지로 변모한다. 

 

 

저 산은 어디, 저 마을은 또 어디 
미지의 먼 곳은 언제나 그리움과 매혹의 원형이다. 저편에 보이는 산은 높이가 얼마나 되고 어떤 풍경을 안고 있을까. 저 들판끝 마을은 이름이 무엇이고 어떤 유래와 사연을 품고 있을까. 강 건너 높은 산은 금곡산(521m), 그 북쪽은 무릉산(472m)이다. ‘무릉’은 중국 설화에 이상향으로 등장하는 무릉도원의 차용인데, 국내도 그런 은둔지를 품고 있는 곳에 흔히 붙이는 지명이다. 저 무릉산에는 어떤 비경이 숨어 있을까.  
호기심이 일지만 굳이 가보지는 않을 것이기에 상상과 그리움으로 남기고, 잠시 쉴 때 지도를 보며 위치와 이름을 확인한다. 나의 발길, 눈길이 닿지 않은 그 숱한 장소는 이 좁은 땅에도 지천이니 일평생 동경과 매혹이 고갈될 일은 없을 것이다.
호명리 일대는 들판이 꽤 넓고 둑방 자전거길은 무한 평면으로 한가롭다. 저 앞으로 보이는 아치교는 포항 가는 KTX 선로가 안강에서 흘러온 칠평선을 건너는 철교다. 
점점 하류로 가는데도 물줄기는 늪과 진배없고 폭은 겨우 50m 남짓인데 둑의 폭은 350m나 되니 홍수 때는 돌변하나 보다.   
안강(安康)은 경주에서 독특한 곳이다. ‘편안하고 온화하다’는 이름부터 뭔가 특별한 매력을 숨긴 것 같고 경주에서 가장 넓은 현풍들을 낀 평지마을도 특이하다. 조선시대 전통마을인 양동마을은 강동면에 속하지만 현풍들 동단에 있어 안강의 일부로 느껴지는 것도 절묘한 매혹을 더한다. 

강물을 막아선 형제산 
칠평천 합수점을 지나면 북상하던 물줄기는 동쪽으로 크게 방향을 틀어 포항으로 향한다. 저편으로 강줄기를 막아 세울 기세로 양쪽에서 모아드는 두 산, 형제산이 보인다. 포항으로 접어들기 직전의 병목지점이다. 신라인들이 서라벌 북동쪽 방어선으로 잡은 것은 지당하다.     
남쪽에서 합류하는 왕신천을 건너 형산으로 진입한다. 정상 북단에 자리한 기원정사(옛 왕룡사원)가 오늘의 반환점이자 고비다. 기원정사 높이가 해발 220m여서 한참 힘든 업힐을 해야 한다. 길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으나 초반 경사가 상당하다.  
절이 가까워지자 포항시내가 서서히 드러난다. 얼마나 넓은지 감이 오지 않는 포항제철(포스코)의 구조물들이 저 멀리 광활하다. 포항은 그냥 포항제철과 동의어 같다. 
전망이 트인 이런 산꼭대기에 자리한 절은 많지 않은데, 기원정사는 특히 포항 조망이 압권이다. 사찰의 본당인 무량수전에 모셔진 삼존불에서는 내부에 숨겨진 복장유물로 보물급 고문헌 30여점이 발견되기도 했다(조선초기인 1466년 작). 경내를 가로지르면 갓을 쓴 약사여래 불상이 좌정하고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겨우 220m 높이인데 눈앞에, 발아래 놀라운 조망이 펼쳐진다. 바다를 향해 완만하게 구비치는 형산강과 빽빽한 포항시가지, 하늘을 향해 숱한 포문을 열고 있는 포스코의 구조물 그리고 영일만까지…. 포항 야경과 영일만 일출 전망대로 지역에서는 이미 유명한 이유를 알겠다.    

 

 

양동마을의 여름 
기원정사에서 내려오다 보면 중간에 갈림길이 있는데 왼쪽으로 진입하면 형산의 동쪽인 국당1리로 내려서 다시 형산강변으로 나서게 된다. 강변길에서 우회전하면 포항, 좌회전 하면 경주로 되돌아가는 길이다. 형산과 제산 사이의 병목은 강폭이 100m에 불과하고 산세가 가팔라 천연의 방어선을 이룬다. 강변이 정돈되지 않은 옛날에는 소로만 겨우 있었을테니 지키기는 쉬워도 공격하기는 아주 힘든 난공불락이었을 것이다.    
국당2교를 건너 북쪽으로 넘어가면 강동면이다. 경주에 있는 조선시대 민속촌, 양동마을이  지척이다. 기계천 합수점에서 기계천을 따라 조금 북상하면 곧 양동마을이다. 하지만 마을 전체를 배타적 공간으로 만들어 차량을 통제하고 자전거도 출입금지이며 입장료도 내야 한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여타 민속촌과 달리 자연스럽게 유지된 자연마을이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출입했는데 아쉽게 됐다. 밀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결국 양동마을도 박제되고 있는 셈이다.  
입구를 지나쳐 후문쪽에 있는 관가정만 잠시 보고 간다. 언덕 높직한 곳에 있는 관가정(觀稼亭)은 1514년에 지은 누각이다. 관가는 ‘농사를 지켜본다’는 뜻으로 풍류와 서정보다는 직접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사대부가 농민들을 감시하는 인상을 줘서 약간 마뜩치가 않다. 그냥 ‘관야정(觀野亭)’ 또는 ‘관풍정(觀風亭)’이라고 자연미에 방점을 뒀으면 어땠을까.   
관가정 인근의 안락교를 통해 기계천을 건너 남하하면 다시 형산강 본류다. 

안강이여, 다시 한 번 
안강읍내를 거쳐온 칠평천 합수점에서 잠시 주저한다. 안강읍내로 가서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맛볼 것인가, 아니면 잠시라도 시간을 줄여 바로 경주시내로 향할 것인가. 원래는 어차피 읍내 초입의 근계교까지 가서 칠평천을 건너야 해서 안강읍내를 들렀다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합수점에 있는 칠평교에 예상치 못한 자전거길이 나있어 잠시 고민하게 된 것이다. 기대하지 않은 자전거길이 눈앞에 있으니 가보지 않을 수 없다. 핸들이 저절로 돌아간다. 안강이여, 다시 올 핑계를 만들었으니 서운해 말기를. 
칠평교를 건너 둑길을 따라가면 길은 곧 비포장으로 바뀌고 여름날 하루에도 불쑥 자라는 잡초가 뺨까지 어루만진다. 이제부터는 자전거도로가 따로 없고 강변 상황에 따라 둑길이나 도로를 번갈아 이용해야 한다. 
물을 충분히 준비했지만 폭염에 식수 외에도 얼굴과 몸을 식히는데 쓰면서 바닥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미지근한 수온은 오히려 갈증을 증폭시킨다. 아직 시내까지는 한참을 가야 하는데 도중에 마을조차 없아 난감하던 차에 작은 주유소가 나타났다. 사정을 얘기했더니 이런 날씨에 자전거를 타는 내가 가여워 보였는지 시원한 식수와 수돗물 세수까지 친절하게 제공해 주었다. 이렇게 또 한 번 고마운 도움을 받는다. 
더위를 피해 일부러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코스가 길어 어느새 태양은 중천에서 이글거리고, 경주 시내는 아득히 가물거린다. 

 

 

공존 그러나 부조화  
형산강 서안길은 일부 제방이 잡초로 길이 묻혀버렸고, 도로 연결도 말끔하지 않아 다소 불편하다. 하지만 강변을 따라간다고 생각하고 길을 찾으면 큰 무리는 없다. 
이윽고 맞은편으로 용강동 시가지가 보이지만 형산강 동안길은 시내까지 조금 더 가야한다. 오류리 철교를 지나면 비로소 시내로 접어드는데 00동(洞)이 붙은 시내가 아니라 현곡면 금장리에 속한다. 어수선하던 강변은 갑자기 돌변하면서 서울 한강과 차이가 없는 세련된 둔치공원으로 바뀐다. 강변에는 현대적인 고층아파트가 즐비하다. 저 앞으로 차량이 빽빽한 금장교를 건너면 출발지인 황성숲이다. 
우리는 경주를 세계적인 역사도시로 생각하지만 문득, 경주도 결국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도시라는 걸 실감한다. 1000년간 도읍이었으니 유적이 엄청나게 많고 도처에 전설이 절절하지만 역사는 도시와 어울리지 못하고 산란되어 있는 느낌이다. 공존은 하되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할까.                          
황성숲으로 돌아와 김후직의 묘를 찾다가 숲에서 동떨어진 시가지 가운데 있어 깜짝 놀랐다. 10여 년 전만 해도 황성숲 안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김후직 묘는 그냥 평범한 신라인의 무덤이 아니다. 진평왕이 사냥에 빠져 정사에 소홀하자 끝가지 충언을 한 이가 바로 김후직이다. 진평왕이 듣지 않자 김후직은 유언으로 왕의 사냥길에 자신의 무덤을 쓰게 했다. 어느날 진평왕이 사냥을 가는 길에 그의 무덤에서 소리가 났는데, “대왕은 사냥을 멈추시라”는 간언처럼 들렸다고 해서 그의 묘를 간묘(諫墓)라고 한다. 역사와 전설을 간직한 이런 숲이 줄고 있는 것도 ‘역사도시’ 경주의 현실적 한계를 보여준다. 유럽이나 일본, 중국의 고도를 가면 다방면에서 공존과 조화를 실감할 수 있는데 비하면 아쉽고 실망스럽다. 
공존을 넘어 ‘조화’의 실마리는 어디서부터 찾아야할까. 자전거여행은 정서적 공감 측면에서 조화의 첫 단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Tip
코스는 55km로 다소 길지만 형산 기원정사 외에는 업힐이 없는 평지다. 비포장 구간이 다소 있어서 MTB나 그래블바이크가 적당하다. 시내를 벗어나면 양동마을이나 안강읍 외에는 식당과 가게가 없어 식수와 간식을 충분히 준비한다. 안강읍내는 형산강에서 1.5km 가량 들어가야 하지만 색다른 소읍 풍경을 보고 싶다면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안강읍내 초입의 무다리식당(안강읍 비화동길40, 054-762-9931) 추천. 국물이 있는 독특한 돼지두루치기를 내놓는다(소 1만5000원). 

 

 

저작권자 © 자전거생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