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산골에 취하고, 강에 빠지다

일본의 산골에 취하고, 강에 빠지다

일본의 높고도 미려한 산에 비하면 오카야마의 산은 이름그대로 나지막하다. 그러나 키비코겐(吉備高原)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은 울창한 숲과 계곡을 품고 있다. 삼나무와 대나무 숲 사이로 난 임도는 하늘이 가로막혀 어둡다. 입에 쉽게 달라붙지 않는 산골마을 이름을 외우는 건 부질없다. 그냥 산길을 오르고 내리다 드디어 마주친 산촌에서 일본의 수줍음과 정갈함에 마음을 풀어 놓으면 된다. 그러다 큰 강, 요시이가와(吉井川)를 만나면 “아하~” 소리가 절로 나온다. 미세먼지가 접근하기엔 머나먼 태평양의 바람과 검정비닐 한 조각 볼 수 없는 강둑길이 만나는 그 정밀(靜謐)에 탄복해서다

카타테츠 로만가도는 요시이강을 따라 달린다. 남한강 따라가는 중앙선 폐철도 자전거길과 많이 닮았다

키비추오초 중심 산간 임도 및 골짜기 마을 코스 답사

키비고원지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아무런 시설이 없다. 오카야마의 상징나무인 홍송이 멋지다.

 

 

일본에서도 강수량이 적다는 오카야마에 비가 내린다. 정확한 일기예보가 밉다. 여장을 풀지 못한 여행자에게 비는 낭만이 아니다. 공항세관을 빠져나오자 ‘자전거생활’ 팻말이 맞아준다. 일본 최대여행사 JTB 오카야마지사의 다무라 씨와 전민수 타비피아 대표가 우리의 안내자다. 우리로 말하면 시골읍사무소 관광과에 근무하는 두 일본 청년과도 인사를 나눈다. 낯선 타관에서 맞아주는 이들과는 금방 친구가 된다. 국도변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는다. 간단한 도시락이지만 겨울을 채 벗어나지 못한 이때 샐러드용 채소를 마음껏 먹도록 해 놓은 것도 시골답다.

일본은 마을마다 신사가 있다. 일본여행에 신사는 피할 수가 없다

 

지진과 태풍에서 안전한, 복 받은 땅
오카야마는 일본에서 대표적으로 복 받은 땅이다. 무엇보다 지진이 드문 곳이다. 가장 최근 후쿠시마 동일본 대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본 뒤 수도를 오카야마로 이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진전문가들이 30년 이내에 다시 관동지역에 대지진이 올 수도 있다고 예측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게다가 해마다 일본을 강타하는 태풍도 이 지역은 시코쿠가 막아주는 바람에 피해가 적은 편이다.
연평균 17도라 쾌적하고, 강수량(1300mm)만 해도 일본 평균보다 적어 맑은 날이 많다. 유명한 일본 전래동화 속 모모타로(桃太郞)의 본고장이 오카야마여서 온통 복숭아 상징물과 기념품 천지다. 씨 없는 포도가 잘 자라 아사히 맥주가 운영하는 와이너리까지 있다. 포도에 관한한 우리나라로 말하면 영동 같은 곳이다. 오카야마의 나무가 우리 금강송과 닮아, 쭉쭉 뻗은 홍송(紅松)인 것만 봐도 단단한 땅이다. 화산 토양이 대부분인 일본에서 화강암을 채취할 수 있는 드문 곳이라 어느 재일교포는 묘소단장 용으로 1억엔어치의 돌을 사갔다는 얘기도 있다. 

키비추오초, 작은 소읍의 산간 정취
일본은 특유의 친절과 청정으로 2020년 4000만 외국인 관광객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시골 소읍의 자전거길 개발노력은 외국의 자전거마니아들을 겨냥해 앞을 내다보는 한, 두 점 바둑 포석과 같다. 이제 일본 오카야마현 키비추오초(吉備中央町)가 초대하는 산간자전거길 개발 팸투어를 나선다. 키비(吉備)라는 이름이 오카야마에 자주 보이는 것은 에도시대 오카야마의 옛 이름이기 때문이다. 난이도에 따라 초·중·상급 3개 코스가 준비되었다. 산간 읍 단위에 관광과가 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 더구나 자전거길 개발담당까지 두고 있다니.
첫 번째 코스는 키비고원도시 주변의 비교적 평탄한 산길과 평원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 이홍희 여행가와 기비주오초 관광과 자전거담당인 고시로 군이 안장에 오른다. 일본에서 자동차와 길을 나누면서 가는 것은 안전한 편이다. 자동차는 절대 경적을 울리지 않고 기다려준다. 키비추오공원에서 출발해 나루다키 댐을 중심으로 나루다키삼림공원과 유엔(裕園), 요시가와야하타큐(吉川八幡宮) 신사를 돌아오는 코스다.
두 번째 코스는 우리나라로 말하면 대관령 횡계 정도로 높지는 않지만 키비추오지역이 고원지대라 온통 목장의 푸른 초지와 포도밭으로 이어져 있다. 아무 시설도 없지만 기린을 닮은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전망대에서 눈 아래 펼쳐진 고원지대의 풍경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모노스고이(굉장한)’한 조망을 기대했다간 실망할 수도 있다. 숲속으로 들어가 만나는 ‘오치아이(落合) 댐’도 작지만 아담하다. 일본의 계곡에서 수없이 만나는 홍수조절 저수지다.
세 번째 코스는 유료도로 카모가와엔죠 도로역에서 출발해 키비삼림식물원과 오카야마승마클럽이 있는 고원지대를 지나간다. 키비삼림식물원에서는 매니저가 맞아주며 에도시대부터 내려오는 ‘고케마끼’라는 부귀초 이끼분재 만드는 걸 직접 가르쳐 준다(체험비 500엔). 어찌나 친절한지 “후지오카 상은 욘사마(배용준)를 닮았다”고 칭찬하자,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한국의 이보영을 정말 좋아한다.”고 숨김없이 답한다.
표고가 높아 상급자 코스로 언덕길이 많지만 한국의 산악자전거코스를 생각하면 그다지 어려운 길은 아니다. 군데군데 만나는 임도에서 손바닥 세 개를 펴도 감을 수 없을 정도의 굵은 대나무 숲도 만난다. 바람소리와 골짜기를 흐르는 맑은 물소리에 일상에 지친 마음을 헹굴 수 있으니 일본까지 자전거를 가져온 보람이 있다. 모든 코스에서 아무리 좁은 산촌의 농로나 임도라도 모두 포장이 되어 있다. 흙을 전혀 밟을 수가 없으니 비포장길이 귀한 존재다. 일본의 도로 인프라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신사를 피해선 일본여행을 할 수 없다
신사(神社)는 일본의 상징이다. 신사에 모셔있는 신이 어떤 신앙인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경배할 뿐이다. 이 조그만 산촌 소읍에서도 오와진쟈, 히요시진쟈를 비롯해 여러 개가 있어 일본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을 이룬다. 자연재해에 끝없이 노출되어 있는 일본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마을마다 자리한 신사밖에 없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관광지가 된 대형 신사가 아니라 생활 속의 신사를 만나면서 마음의 고요가 더 깊어진다. 그들의 신은 다분히 실용적이고 기복적이다. 현세를 존중하고 내세까지 이어지는 강건한 믿음의 존재에 위로받는다.

오카야마 공항, 비가 적은 고장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자전거는 비와 일단 상극이다
나루타키 댐은 일본에서 만날 수 있는 많은 홍수조절용 댐 중 하나다
화강암이 귀한 일본에서 오카야마는 돌이 많이 생산된다. 뒤로 포도밭이 보인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속에서도 자전거코스를 의논하고 있다
작은 산길도 다 포장되어 있다
대나무 숲 사이로 들어가면 대낮에도 컴컴하지만 시원한 맛을 잊을 수 없다
키비삼림공원에서 부귀초 이끼말이 체험을 해보고 있다
키비추오공원의 화장실. 창고처럼 보여도 내부는 깨끗하기 그지없다

역에서 시작해서 역에서 끝난다
일본사람들의 역(驛) 사랑은 유별나다. 여러 가지 형태의 기차가 오가고, 사랑도 이별도 인생도 그렇게 다가오고 떠나는 상징부호에 대한 향수가 역을 사랑하게 만든다.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대나무 숲길을 빠져나와 미찌노에키(道の驛) 카모가와엔죠에 다다른다. 역에서 기차역만 떠올리는 것은 다분히 한국적이다. 기차역 신호등과 역장실이라는 표지만 보고 지금은 폐선된 어느 철도역인가 했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미찌노에키(도로역)’라고 따로 이름을 붙였다. 도로가 이어지는 곳곳에 휴게소를 겸한 역참(驛站)의 개념이 그대로 살아 있다.
아직 소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아이 둘이 재잘거리며 걸어온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멈칫 부끄러워하더니 다시 우산으로 장난치면서 사라졌다. 수줍음은 우리네 아이들에게는 거의 사라진 표정이다. 그저 예쁘다. 군청색 교복은 아이들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입었던 시절의 색상 그대로다. 우리네 원아복이 개나리를 상징하는 노란색 일변도의 자유분방함이라면, 그들의 빛깔은 “남에게 폐가 되지 말라.”며 ‘메이와쿠(迷惑)’를 제1의 덕목으로 가르치는 일본사회 공공의 색상이다. 공원 화장실은 더욱 실용적이다. 무슨 창고인가 했다. 우리나라 공중화장실은 시설로는 세계적이지만 일본의 화장실은 무거운 청결(淸潔)이 지키고 있다. 보다 나은 시설로 바꾸는 게 능사가 아니라 깨끗하게 사용하는 공공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자부다.
 

시골 온천탕에서 만나는 옛 일본
비에 젖은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토요오카(豊岡) 강가에 있는 유노세(湯の瀨) 온천에서 몸을 씻는다. 우리에겐 오래전 사라진 옛 온천장은 검은 판자 이층집 그대로다. 도무지 영업에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숨어있는 진정한 온천’, 서너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차버리는 탕, ‘독탕 전세’라는 댓글이 이 온천장의 매력을 말해준다.
여탕에 들어간 전대표가 남탕에 있는 한·일간의 대화를 뚫린 천장으로 통역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팔십이 넘은 안주인은 빛바랜 쇼와(昭和) 시대의 수질검사서 액자 아래 수건 한 장을 건네며 굽은 허리를 연신 숙여가며 인사한다. 온천장여관의 1박2식 9000엔 가격표는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는 할머니의 세월 속에 정지된 화면일 뿐이다. 이 느긋함을 어디서 다시 만나겠는가.

불단이 모셔진 다다미방에서 남자 다섯이 잤다
밖은 영하, 코가 시려 이불을 덮어쓰고 뜨거운 물주머니 ‘유담뽀’를 안고 잤다
멧돼지고기 전골냄비를 만들어 주는 안주인. 모두들 맛있다고 그릇을 다 비웠다

 

한적한 산촌에서 만나는 일본의 인심
나루다키(鳴龍) 댐 근처의 농가 민박이 하룻밤 예정되어있다. 집으로의 초대는 일본에서 오래전 사라진 문화다. 며느리나 사위가 와도 불편할까봐 근처 호텔에서 자고 오라는 일본에서 남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무는 것은 귀한 일이다. 돈을 내기는 하지만 산촌의 농가에서 하룻밤은 일본 생활 20년이 넘은 전대표도 처음이라니 말이다.
안주인 다나카미쯔코(田中美津子, 66)는 유쾌한 아주머니였다. 이홍희 여행가가 해병대사령관을 지냈다는 말에 일본사람다운 격한 반응과 함께 거수경례를 하며 맞아주었다. 이름조차 없는 메뉴, 멧돼지고기에다 갓 따온 버섯과 야채를 넣은 찌개는 일행 모두 배를 두드리게 했다. 뭐든 더 주려고 했다. 그저 넉넉한 인심이다.
저녁상에 함께 마주한 중학교 1년생과 소학교 4학년생 소년들이 궁금했다. 손자들인가 했다. 아니었다.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오래 전 부모와 함께 왔던 아이들이 동경과 오사카에서 각자 다니러 왔다. 혼자 보내는 부모나, 혼자 와서 지내는 아이들이나 대단하다. 비염이 있어 코를 훌쩍이는 꼬마는 오늘은 목공일을 했고, 내일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버섯 따러 산에 갈 거라 했다. 4월에도 타이완 고교생들이 수학여행을 와 이 마을 8군데 집에 나눠 묵을 거란다. 신과 조상을 함께 모시는 흑주교(黑住敎)의 불단이 놓인 다다미방에서 남자들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시린 코를 어찌할 수 없어 이불을 덮고, 발치에는 뜨거운 물을 넣은 유담뽀(湯たんぽ)로 온기를 만들었다. 고등학교 때 탄약통으로 만든 유담뽀에 몸을 녹이며 잤던 도서관 생활 이후 처음이다. 밖은 드물게도 3월에 영하 1도를 기록하며 된서리가 내리고 얼음도 얼었다.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쇠로 만든 유담뽀 2개를 기어이 사서 들고 왔다.

키비추오초 자치단체에 남은 숙제
이런 산촌의 자연과 적막, 때 묻지 않은 농가 인심을 자전거와 접목시켜 관광자원화 하려는 키비추오초(町)의 노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코스를 다양하게 하려고 준비했으나, 안내 표지판이나 노면 표지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가이드가 없으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외국에서 자전거를 가져와 타는 정도의 라이더라면 제시된 3코스 중 2개 정도는 하루에 소화할 수 있으므로 연결코스로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현지에서 보고 듣는 뉴스는 더욱 생생하다. 일본이 20년 불황의 늪에서 빠져 나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아베총리가 부인이 관련된 국유지 사학재단 매각과 관련한 문서조작 건으로 상처를 입고 있으면서도 견딜 수 있는 건 ‘아베노믹스’ 성공의 힘일지도 모른다. 일본의 관광 또한 활황 경제 속에서 더욱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다.
주코쿠(中國), 큐슈(九州), 시코쿠(四國)가 둘러싸고 있는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의 아름다운 풍경 다음은 어디로 갈 것인가? 적어도 자전거는 이제 일본의 산 속에서 길을 찾고, 산마을에서 사람을 찾는 길을 달려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어디나 귀엽다. 수줍음이 가득한 표정, 우리나라에선 귀하다
유노세 온천탕. 네 명이 들어가니 꽉 찬다. ‘독탕전세’라는 말이 실감나는 산골짝 온천이다
산길을 넘어가면서 일본의 고갯길 적막을 즐긴다
키비고원지대는 유명 별장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홍매화가 눈길을 끈다. 역시 산간지대라 평지보다는 늦다
도로역 ‘미찌노에키엔죠’에서 잠시 휴식이다
도로역에 기차역처럼 신호기가 설치되어 있다. 당연히 기차는 없다

 

삼나무 숲길로 들어서면 삼림욕을 이런 기분에서 하는구나 실감한다
농가민박집의 저녁상. 두 명의 소년이 함께 했다. 그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다. 산촌체험을 보낸 부모나, 혼자 온 소년들이나 대단하다

카타테츠(片鐵) 로만가도
‘아카이와 복숭아길 라이딩 2018’ 참가기

◈ 1일차 : 23.1km
유나하라광산공원→캣아이요시이(吉井)공장→비젠후쿠다(備前福田)역→와케(和氣)게이트볼 돔구장
◈ 2일차 : 29km
와케(和氣)게이트볼돔구장→구마야마(熊山)영국정원→사뽀로맥주오카야마 와이너리→아카이와(赤磐)농수산원예직매장

옛 광산철도를 따라가는 낭만의 자전거길
오카야마현 아카이와시가 자전거협회와 함께 주관하는 ‘카타테츠 로만가도 아카이와 피치라이딩2018’에 자전거생활의 편집위원 자격으로 우리 두 사람도 참가했다. 홍콩, 타이완에서도 젊은 파워블로거들이 초대되었다. 오사카에서도 단체 20여명이 전세버스로 야나하라(柵原) 광산공원에 도착했다. 출발 행사를 하기 전에 폐선된 기치가하라(吉ヶ原) 역사와 철도박물관을 둘러보며 이제는 사라진 광산철도에 대한 추억을 함께 하는 자리를 가졌다.
‘카타테츠(片鐵)’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카타카미(片上)철도’는 이곳에서 나는 유화철광석을 세토나이카이의 카타카미항으로 실어내기 위해 1931년에 만들어졌다. 광산 경기가 죽자, 지역의 발이기도 했던 열차는 1991년 어쩔 수 없이 폐선되었다. 지금도 매월 첫째 일요일이면 기차는 300m 떨어진 고후쿠야나하라(黃福柵原) 역까지 왕복운행을 하며 관광객을 맞는다. 그냥 박제된 옛 기관차와 객차가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일단 숨을 쉬고 있다.
간단한 출발의식이 있었다. 아카이와 시장까지 참석해 축사를 했다. 아카이와시 자전거협회 관계자들이 스탭으로 조장을 맡아 5개 조로 나누어 출발했다.

우시마도 올리브 공원에서 내려다본 세토나이카이의 시원한 풍경

세계적인 자전거용품 브랜드 ‘캣아이’ 요시이 공장견학
출발한지 7km만에  캣아이 요시이 공장에 들어선다. 자전거용 라이트를 비롯해 속도계와 반사지 등을 생산하는 세계적인 메이커가 ‘캣아이’다. 일본인다움이 묻어나는 설계와 장비시험까지 꼼꼼하게 설명하는 과정은 자신이 넘쳐 보였다.
확실히 일본은 고양이 천국이다. 고양이 캐릭터가 도배를 한다. 최근 한국도 고양이를 키우는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지만 일본인의 열정과 사랑에는 못 미친다. 사진을 찍으며 고양이 소리를 흉내 낼 때 ‘냐~오옹’ 소리를 끝까지 내면 한국 사람이고, ‘냥’까지만 내면 일본사람이다. 자전거를 타고 카타테츠 로만가도를 지나다가 문제가 생기면 회사에 들러 도움을 받고 가라고 권한다. 자연스레 자전거와의 교감을 통해 본연의 사업도 연결하는 발상이 신선하다.
  다시 얼마가지 않아서 옛 비젠후쿠타(備前福田) 역에 선다. 옛 역사터에 새로 만든 쉼터 벽면에 여행자들이 자기 이름을 새겨서 걸어 놓도록 만들었다. 수첩에 스탬프를 찍어가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가 돋보인다. 

남한강자전거길을 닮은 옛 철길로 달리다
요시이강(吉井川)을 건너면서 본격적으로 아름다운 강변풍경이 펼쳐진다. 간이역 니가키(苦木)에서 잠시 쉴 수도 있고, 비젠야타(備前矢田) 역에는 몇 개의 신호기가 남아있어 추억의 배경이 되어 있다. 한때 물자를 실은 큰 배들이 들어와 닿던 강나루장터(大舟着川市)에 잠시 머문다.    여기서부터 아마세(天瀨) 역까지는 벚꽃이 피는 철에는 절경을 이룬다. 모두 신다하라이(新田原井堰) 호가 품은 물 덕분에 꽃 그림자가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이 물은 요시이강에 만들어진 가동식 수중보로 길이 220m, 높이 8.2m로 일본 유수의 저수량을 자랑한다.
  거대한 와케돔이 오늘의 종착지다. 노인들의 게이트볼 전용구장으로 이만한 시설을 시골 읍 단위에서 운용할 수 있다는 것도 국력 덕분이다. 가까운 와케우시고쿠(和氣鵜飼谷) 온천에서 몸을 씻는다. ph.농도 9.5의 강알칼리단순천이라 피로회복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탕 안이 갑갑하면 노천온천도 추울 때는 제격이다.

야나하라광산공원 철도건널목에서 라이딩을 시작했다
야나하라광산자료관. 철광석 광산이다
키치가하라 구역사. 변소라는 표지가 옛 건물임을 말해준다
지금도 운행하는 기차를 팸투어 팀에게 설명하는 철도원
세계적인 ‘캣아이’를 생산하는 요시이 공장을 방문해 각종 헤드라이트와 계측기의 제작공정을 알게 되었다

 

 

일본의 강둑길, 길에 빠져 길을 잃다
둘째 날 아침이다. 어제보다 조금 긴 코스에 언덕도 있다고 한다. 와케죠에서 요시이강은 90도 우향우다. 강둑길이 이어진다. 일본의 강은 그리 긴 편이 아닌데다 협곡 사이로 도로와 기차까지 차지해 강둑길이 들어서기가 쉽지 않다. 넓은 충적지가 나와야 마을이 형성되고, 강둑을 쌓아 농경지를 보호하는 것이다. 차량까지 다니는 강둑길이지만 아무런 시설이 없다. 하구 끝까지 얼마나 남았다는 작은 표지 외에 어떤 표지판도 없다.
우리나라처럼 4대강 사업을 한다고 사람 하나 구경하기 힘든 강둑에 스테인리스 가드레일을 설치하고, 덕지덕지 속도규제 표지판을 심어 놓고 ‘제 할일 다 했다’는 관청의 시각과는 전혀 다르다. 아마도 안전시설을 제대로 해 놓지 않았다고 한소리 듣거나 소송 당하기 싫어서 면피용으로 만들었다고 하면 지나친 비판일까. 강둑은 강둑답게 시원하게 남겨두어야 한다.
자동차든 자전거든 안전을 스스로 지키지 못한 책임은 운전자 스스로 지면 된다. 흡사 과보호를 해야 직성이 풀리듯 과잉행정을 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 대열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사진을 찍다보니 멀어지기 시작했다.
JR 산요혼센(山陽本線) 철도 건널목에서 족히 70량은 될 듯한 긴 화물열차에 가로막혔다. 기차가 긴 철교로 요시이강을 건너자, 한 청년이 삼각대를 설치하고 기차를 촬영하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그는 철도사진 마니아였다. 휴일이면 아름다운 기찻길 포인트를 잡고 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열차시각표에 대해서도 빠삭하다. 그와 몇 마디 나누고 나자 눈앞에서 자전거 대열은 완전히 사라졌다. “앗또 이우마니(ぁっと言う間に, 눈 깜빡할 사이에)”라는 말을 배웠다.  “무슨 맥주공장에서 머문다했는데….” 강둑길을 더 나아가자 기린맥주 오카야마공장이 강둑 아래에 있다. 공장 정문 수위에게 물어보니 오늘 견학 온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단다. “아차, 놓쳤구나.” 낯선 곳에서 길을 잘 모를 때 기차역은 자기 위치를 설정하는 주요한 좌표다. 만토미(万富) 역에서 먼저 간 일행에게 위치를 알렸다. “영국정원을 아느냐?”는 질문에 역무원은 들어본 적이 없다했다. 택시 기사가 “알고 있다”며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검색하는 사이 한참 만에 지원팀이 차를 몰고 왔다. 수고를 끼쳐 미안하지만 “길을 잃어봐야 길을 알게 된다.”는 말은 진리다.

비젠후쿠타 역사 자리 쉼터에 여행자들이 자기 이름을 걸어 놓고 가도록 해놓았다
중간 폐역은 좋은 쉼터다. 벚꽃이 피면 화사한 꽃길이 된다
정다운 부녀 모습이다. 일본인다운 조심성이 갓길에 붙어가는 아이의 조신함에도 엿보인다
시골읍 단위에서 이렇게 큰 게이트볼 돔구장을 운영하는 것도 일본의 힘이다
요시이강을 건너가는 산요혼센 철도, 만토미역 근처다
강 둔치 숲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젊은 직장인들. 그렇게 한 주의 스트레스를 날린다
우리나라 국토종주자전거길을 완주했다는 사진파일을 보여주는 와카이와자전거협회 임원들. 노익장의 자신감이 넘친다
와카이와 시장과 함께. 지방차지시대 시장은 이래저래 고달프다
옛 기차칸에 올라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를 느껴본다
일본의 자전거 주차질서는 자전거 대국의 면모를 보여준다


영국식정원과 포도 와이너리가 있는 풍경
영국정원은 구마야마(熊山) 역에서 우회전하여 산을 넘어가는 길이다. 폐교된 고노다(小野田) 소학교를 다시 영국식 정원으로 만든 노력이 돋보인다. 약 250종 800그루의 다양한 장미와 다년초 허브가 주종이다. 연기나무나 보라색 꽃이 아름다운 블랙로커스트에다 영국정부가 2002년 ‘영·일녹색협약’을 기념하여 기증한 오크나무도 있다. 아무래도 장미꽃이 활짝 피는 5~6월이 제철이지 싶다.
그다지 높지 않은 언덕이 오늘의 난코스 전부란다. 그래도 장거리 주행이 처음인 몇몇에겐 힘든 언덕이다. 삿포로맥주는 오카야마 와이너리까지 운영하고 있다. 씨 없는 포도가 유명한 오카야마에 유명 맥주회사가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것은 일본와인을 새롭게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다. 묵직하고, 가볍고, 다양한 맛을 시음하면서 쉬어가는 언덕은 평온하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독일의 숲’을 홍보하기 위한 데스크도 임시로 설치되어 있다. 독일의 시골마을, 목장, 꽃밭, 먹고 놀거리까지 만들어 놓았다는데 역시 늦봄·가을이 제격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관광객 유치 노력은 눈물겹다
이후 아카이와 시내까지는 차량과 뒤섞여서 달려야 하는 그저 그런 길이다. ‘아카이와 농수산물직판장’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나서는 이내 해산이다. 신선한 농수산물을 바로 구입해서 편안하게 마련된 바비큐장에서 직접 구워 먹는 방식이다. 1인당 3kg(야채포함 2200엔)이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소시지에 식사까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영국식정원이나 포도와이너리, 농수산물직거래센터 등을 홍보하기 위해서 코스를 잡다보니 자전거는 좀 싱거운 길을 지나와야 했다. 이해할 만한 일이다. 개회식은 물론, 저녁 만찬장을 ‘일본의 에게해’로 불리는 세토나이카이의 작은 항구 세토우시마도(瀨戶牛窓)의 한 호텔에 준비했다. 아카이와 시의 토모자네 타케노리(友實武則) 시장이 직접 마술까지 보여주면서 관광 포인트를 알리려는 노력은 파산도 불사하는 일본의 지방자치를 실감케 한다. 지방자치라는 소명이 시장의 그 고된 일정을 거뜬하게 만든다 생각하니 존경심마저 든다.
해단식을 하고 오카야마로 돌아오는 길은 아사히강(旭川)을 따라 내려온다. 오카야마는 요시이강(吉井川), 아사히가와강(旭川)과 다카하시강(高梁川) 3개가 감싸고 있는 복 받은 땅이다. 세토나이카이 코스에다 카타테쓰철도 로만로드를 연결하는 코스를 짜 보는 것도 색다른 맛이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래도 한국의 강둑길 연재가 끝나가는 터라 일본의 강을 따라가는 자전거여행이 또 다른 유혹이다. 이내 오카야마행 비행기를 타고 싶어 좀이 쑤실 게 분명하다. 

키 작은 이정표만 서 있는, 깨끗한 강둑길. 너무 부럽다. 안전은 각자 책임이다
매화꽃이 핀 언덕에서 팸투어 팀은 잠시 쉬고 떠난다
삿포로 맥주 와이너리에서 오카야마 포도의 깊은 맛을 느낀다
‘일본의 에게해’라 불리는 세토우시마도항의 석양. 리마니 호텔에서 만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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