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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4(창녕·함안·밀양·김해·양산·부산 )부산, 태평양으로 가는 낙동강낙동강4(창녕·함안·밀양·김해·양산·부산 )

낙동강4(창녕·함안·밀양·김해·양산·부산 )
목마른 부산, 태평양으로 가는 낙동강


500리를 흘러온 강이 길게 드러눕는다. 낙동강은 남지철교를 지나 창녕함안보에서 쉬었다 밀양강을 받아들이면 부산과 김해의 물이 된다. 경부선은 가마솥을 엎어놓은 부산을 동쪽으로 돌아 구포에서 삼랑진을 지나는 동안 잠깐 낙동강을 만난다. 왜관에서 낙동강을 건널 뿐 그다지 인연이 없다. 바다로 가는 마지막 하구, 부산은 물에 관한한 가장 불리하다. 하구둑이 가로막아 물 흐름이 느려졌다 해도 다대포 바다 그 짠물의 내습 또한 만만치 않으니 어찌 방도가 없다. 낙동강에 기대 사는 사람들에게 저 강은 을숙도의 노을만큼 황홀하지는 못한 게 현실이다

 

낙동강은 삼랑진을 지나 물금까지 유독 기차와 자전거에게만 길을 허락한다

 

 

이른 아침 남지를 떠난다. 남지는 전 지역이 200m 이하의 구릉이나 평지인 하안 충적지로 농업지역이면서 교통의 요충지다.
남지 옛철교는 남지를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일찍이 일제는 1931년에 구마(대구~마산) 국도가 낙동강을 건너야 하는 남지에 철교를 건설했다. 상부 철골 트러스트는 물결치듯 보여 이 시대에 만든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145호(2004년)가 되었다. 1935년에 이미 일본인 741명이 거주할 정도였고, 조선신탁과 동양척식회사를 앞세운 일인들의 대규모농장이 들어섰던 곳이다. 



창녕 남지, 낙동강 주운의 거점
남지철교는 배로 강을 건너던 사람들의 변고도 지켜보았다. 첫 번째가 1942년 강 건너 용화산 절벽 청송으로 나들이 갔던 처녀들 26명의 목숨을 앗아간 나룻배 전복 사고였다. 두 번째는  1969년 추석장을 보고, 의령 지정 쪽으로 가던 발동선이 스크루에 수숫대가 감겨 표류하다 철교 교각에 부딪혔다. 탑승자 116명중 76명이 사망·실종되는 큰 사고였다. 원인은 무허가 도선업, 정원 60명의 2배나 되는 승선, 그리고 경찰의 단속 소홀 등 단골메뉴였다. 창녕경찰서장은 파면되고 말았다.


수수한 함안보와 낙동강 사이 온천 맥
요강나루, 덕촌나루가 있던 마을 흔적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이내 어시미산(324m)을 등지고 자리 잡은 창녕함안보에 다다른다. 수력발전까지 하는 4대강 보 가운데서 가장 수수한 얼굴을 하고 있다. 유별난 치장이 없다. 이러저러한 액세서리 따윈 아예 배제된 설계다. 

바닷물이 들어온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임해진 나루를 축으로 남쪽 시오리에 마금산 온천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등장한 연조 깊은 온천이나 1940년대 일본인들이 본격 개발했다. 수온35~55°C 약알칼리 식염천이다. 북쪽 시오리에 그 유명한 부곡온천이 있다. 1973년 발견되어 늦깎이로 대열에 합류했으나 수온 78°C 약알카리 유황온천이다. 조금 시들해지긴 했어도 여전히 부곡온천은 27도에도 못 미치는 미지근한 물을 데워 온천이라고 주장하는 요즘 온천들과는 격이 다르다. 이 고장사람들 중엔 마금산온천과 부곡온천은 낙동강을 사이에 둔, 같은 줄기일거라고 믿고 있는 이도 있다. 

창녕함안보를 건너 창녕 길곡으로 나있는 자전거길은 본포교에서 다시 강을 건너와 남단으로 붙는다. 하남읍 수산교에서 다시 강북으로 가는 것은 순전히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크게 생기가 느껴지지 않지만 이런 소읍이 중간 중간에 있어 강마을을 지나는 데는 적잖은 위안이 된다. 

 

남지철교는 1931년 구마국도가 낙동강을 건너가는 다리로 건설되었다. 물결치듯 아름다운 트러스트교량으로 근대문화유산이다(함안 칠서)
남지철교에서 본 낙동강벼랑, 아름다운 경치에 넋을 잃는다. 능가사는 기막힌 곳에 자리 잡았다(함안 칠서)
김해 이북제에서 만난 싱가포르 중학교 수학 선생님(왼쪽). 맘껏 달릴 수 있어 좋다고 활짝 웃었다(창원 대산)

 

눈에 어른거리는 노무현 대통령, 생태늪 화포천
자전거길을 버리고 다시 수산교를 건넌다. 낙동강 남쪽에서 하남읍 명례리로 건너가는 유등나루까지는 어수선하던 강둑이 ‘이북제’(堤)부터 말끔하다. 아하, ‘이북’이라는 이름이 남아있구나.  
본시 이북은 분단의 언어이자 냉전의 고립 그 자체다. 실향민의 고향이 이북(以北)이지만 무장간첩의 출발지 또한 이북이었다. 김해 이북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상북면과 중북면을 합치면서 ‘이북(二北)’이 되었다. 같은 자모로 묶여 있다는 우연 속에, 이 기분 나쁜(?) 단어는 1987년 이름을 바꿔 한림면(翰林面)이 된다. 덩달아 태안반도 서북쪽 끝 북일면과 이원면을 합해 이름 지은 서산 이북(梨北)도 본래 이름 이원면(梨園面)으로 되돌아갔다. 


이북제가 끝나는 지점에 ‘시산(匙山)’이 있다. 그저 작은 강마을 동산에 불과한 곳을 기억하는 것은 ‘자전거생활’ 김병훈 발행인의 이메일 주소가 soolmeee@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좀 기괴한 주소의 내력이 시산에서 출발했다. 유식한 체 하자면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숟가락 시(匙)’자가 한글로 ‘술’이다. 밥 한 술의 ‘술’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한자어로 만들자니 면 호병계(戶兵係) 서기가 ‘술뫼’를 시산리(匙山里)로 바꾸었고, 중모음에 약한 갱상도 사람들에게 ‘뫼’(山)는 ‘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술미 마을이 그의 아내의 고향이니 처가동네다. 이쯤 되면 두 손 두 발 들 수밖에 없는 아내사랑의 종결판이 아니겠는가.

술미 벌판에 ‘똥뫼’가 있고, 그 뒤로 ‘대항 마을’이 있다. 대항은 이즈음 치질 전문병원에 등장하는 독립된 분야인 대장항문과의 약칭이다. 아무 연관도 없는 이름들이 한 두름으로 엮이는 것은 한글이 주는 음운의 연대감이다. 똥뫼는 들판에 홀로 떨어진 독산(獨山)이 한자와 한글로 섞여 재미있게 변성된 단어다.

모팅이재(모정고개)를 넘기 전  한림배수장을 돌아나가자, 고 노무현 대통령의 화포천을 안내한다. 고갯마루에 올라 화포천과 봉화산을 다시 본다. 대통령을 퇴임하고 낙향한 유일한 대통령,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꾼 대통령의 두툼한 손을 잡았던 기억이 새롭다. 부엉바위 투신에 얽힌 고뇌와 절박을 다시 말하는 것은 지금 이 여정에서 적절하지 않다. 밀짚모자를 쓴 채 자전거를 타고 화포천으로 달려가던 길은 ‘대통령의 자전거길’이 되었고, 생가를 되사들이지 못해 뒷 감나무 밭에 새로 지은 사저는 길지(吉地)가 아니었다는 설도 노대통령이 세상을 등진 뒤 그럴듯하게 조립되어 돌아다녔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묘비 하나 세우면 족하다는 마지막 뜻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 허무의 뜬구름이 아니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임을 곱씹으며 삼랑진 철교로 내려간다.

 

자연스런 감각으로 설계된 자전거도로. 낙동강 하류의 넉넉함이 돋보인다(밀양 삼랑진)
참 밋밋한 창녕함안보. 화장기 없는 처녀의 볼살처럼 맑다(함안 칠북)
일제가 개발한 마금산온천. 어쩐지 온천 경기가 예전만 못하다고 불평이다(창원 북면)
춘정을 이기지 못한 마공. 죄송하지만 이것도 자연의 이치라 반사적으로 셔터를 눌렀다(창원 대산)

 


삼랑진, 세 물결이 만나는 나루
밀양강이 합류한다. 세 물이 만나니 삼랑진(三浪津)이다. 밀양 신공항으로 10년을 시끄러웠던 땅이 밀양 상북과 하남 명례다. 박근혜 정부가 매듭지었던 문제가 다시 분화하기 시작한 활화산이다. 부산시장 선거공약으로 등장한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인접 자치단체장 당선자들의 견해는 온도차가 크다. 김해공항 확장이 가져올 소음문제도 그놈의 ‘한 표’와 직결된다. 

가덕도 매립에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 대구 통합신공항 후보지가 팔공산 너머로 결정되어 영남의 동력도 반으로 쪼개져 버렸다. 정부도 타당한 절차를 거친 일을 다시 뒤엎으면 “정권을 넘어 이어지는 국책사업은 어찌 하란 말이냐”는 입장이라니 두고 볼 일이다. 참 두고 볼 일이 많은 세상이다.


원동 호리병 같은 물목, 부산의 먹는 물
낙동강은 삼랑진을 지나면서 허리를 비틀어 사명산과 가야진나루가 있는 목을 지나간다. 낙동강 하구둑을 만들기 전 이야기지만 지리산에서 쏟아내는 남강 물과 낙동강 본류의 장마까지 합세한 물이 양산 원동을 빠져나가기 전 병목에서 주춤거릴 때, 함안 법수 드넓은 수박밭은 물에 잠기고 말았다. 더구나 만조가 되어 다대포 바닷물이 역류하면 그 피해는 더 커지고 말았었다. 감조하천 낙동강이 짠물 맛을 보는 일반적인 한계선은 삼랑진에 설정되었다. 

삼랑진에서 물금 구간은 경부선 열차나 자전거가 아니면 접근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만큼 자전거에게는 아름다운 풍광을 각별히 선사한다. 신라가 가야를 치기 위해 건넜다는 가야진나루는 지금도 용왕제가 열리지만 그 옛날 하서면 면소재지가 있었던 번성은 사라졌다. 그저 가야사(伽倻祠)를 복원하고, 표지를 해놓은 수준이다. ‘물구미’로 불렸던 물금(勿禁)은 “낙동강 모든 나루가 폐쇄되었어도 여기만은 금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덧붙여 있지만 그게 가능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부산 사람들의 깨끗한 물에 대한 열망은 소원 수준이다. “낙동강 물로는 쌀도 씻지 말라”고 한 어느 국회의원의 말이 돌아다닌다. 부산 사람들 식수 90%는 낙동강 물이다. 원동·물금·매리취수장에서 퍼 올린다. 350만 거대도시의 갈증을 풀어주기에 단일 취수원은 불안하다. 진주 남강댐에서 물을 끌어오자는 계획도 “우리 먹을 물도 부족하다, 댐을 높이면 위험하다”는 경남의 반대에 부딪혀 지지부진하다. 급기야 2014년 기장 앞바다 물을 담수화하는 시설을 완성하고 미국 FDA 품질인증까지 받았으나 논란 속에 가동이 중단되어 있는 형편이다. 

낙동강에 15년간 2조8천억원을 투입했지만 물금취수장의 원수 수질은 악화일로다. 이제 남은 것은 포항 형산강과 대구 낙동강과 같은 방식으로 김해 상동 용산지구 하중도에 800m 짜리 터널 4개를 만들어 강물을 여과하는 방식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1886년(고종 23년)에 나무 도수로를 설치한 부산상수도 130년 역사치고는 갑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슬라브 옥상에 푸른 물탱크를 이고 있는 부산 단독주택은 부산의 물 부족을 설명해 주는 상징이다. 24시간 풍족한 물이 공급되니 오염이 심각한 물탱크를 철거하라고 권유하는 진풍경도 요즈음의 일이다.

낙동강의 옛 이름 황산강을 지나간다. 소설가 김정한이 쓴 <수라도>의 배경을 꼼꼼히 알리는 안내판이 인상 깊다. 불교의 수많은 지옥 중 하나인 ‘아수라도’에서 따왔다. 근대사가 아귀다툼의 연속이라는 상징성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빳빳한 기상으로 민족문학작가회의 초대 회장까지 지낸 김정한은 민족수난사를 통해 역경을 극복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의 소설 속에 그렸다. 낙동강에 기댄 농촌이 배경이다. 냉거랑다리, 태고나루, 황산베리끝, 미륵당돌부처가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를 중심으로 한 실제 공간이다. 반가의 자손으로, 독립운동 집안의 며느리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가야부인의 임종을 통해서 손녀 분이가 그려낸 회상, 그 속에는 고등계 형사였다가 광복 후에 국회의원이 되어 득세하는 친일의 끝판왕도 등장한다.

 

부산 사람들 먹는 물 90%는 낙동강 물이고, 그중 26%는 물금취수장에서 퍼 올린다(양산 물금)
자전거 타고 가는 데만 열중하지 말자. 해설이 붙어 있는 안내판은 여행자의 인문학을 살찌우는 좋은 길잡이다. 천천히 읽고 쉬어 가자(양산 물금)
낙동강제방 벚꽃길. 벚나무 그늘에 취해 가다보면 도심이 가깝다는 것도 잊어버린다(부산 모라)
다대포의 석양 모래등이 등판을 내놓고 있다. 바닷물은 멀리 마실 나갔다(부산 다대)

 

“내 배 사이소” 구포역의 추억
화명생태공원을 지나면서 구포대교가 멀리 눈에 들어온다. 원조 구포교는 낙동강에서 가장 먼저 1932년에 준공된 다리다. 2003년 태풍 ‘매미’로 유실되어 제 수명을 다하고 76년을 살다 갔으나 1060m라는 상징은 구포교에서 구포역에 이르는 번지수에도 1060-1, -2로 여전히 살아 있다. 1993년 아들 격인 구포대교가 이미 대를 이을 준비를 한 터라 추억이 사라졌다는 걸 빼곤 그다지 애달플 것도 없다. 

구포역은 부산진역을 출발해 동쪽으로 감돌아 나온 서울행 완행열차가 머물렀다 가는 낙동강 강변역이었다. 광주리에 배를 이고 플랫폼에서 부산 아지매들이 외친다. “물이 질금질금 나오는 내 배 사이소!” 과일을 선물하는 단위가 한 줄 망으로 팔던 시대였다. 김해 대동에서 건너온 배는 주먹보다 컸다. 짓궂은 사내가 농을 던졌다. “내가 아줌마 배를 샀으니, 내가 아줌마 신랑이요.” 돈을 받아 쥔 아지매는 “잘 가거래이! 내 새끼야, 그 배가 내 배에서 나왔으니 니는 내 새끼데이~.” 기차는 떠나고 농익은 육담만 역두에 흩어졌다는 찐득한 이야기도 있다.

또 하나, 구포는 ‘구포국수’로 지금도 유명하다. 70년대에는 30곳까지 국수공장이 번성했다. 지금은 구포동 일대의 국수를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지명 자체가 브랜드가 된 최초의 사례다. 1988년 한 공장이 ‘구포국수’로 독자 상표를 추진하다 제동이 걸려 공동상표가 생겨났다. 

일제 때부터 제분·제면 산업이 성했던 구포는 면을 가늘게 뽑는 피난민의 기술에다 건조과정에 낙동강의  염분과 수분이 적절히 배합되어 쫄깃한 맛을 자랑한다는 것이다. 이미 조선조부터 감동진나루에 조창(漕倉)이 있어서 일꾼들이 국수를 즐겨 먹었고, 6·25 전란으로 국수는 밥 대신 허기를 견딜 수 있게 해주었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도 ‘잉어표 국수’로 시작해 구포국수 3대를 이어가는 곽씨 집안이나 60년 전통의 구포시장 안 ‘이가네 구포국수’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원동을 지나기 전 낙동강은 호리병 목처럼 좁아진다. 우측이 김해 생림 사명산이다(밀양 삼랑진)
데크를 놓아 낙동강(황산강) 베리는 기차에 이어 자전거에게도 길을 열었다(양산 원동)
애물단지처럼 말하는 낙동강하구언이지만 바닷물의 역습을 막은 공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듯하다(부산 하단)

 


낙동강 하구둑, 바다를 건너다
구포역을 지나면 삼락생태공원이다. 삼락지구는 원래 모래섬 사이 세 물줄기가 흐르는 곳이라 삼차수(三叉水)라 불렀다. 1930년대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제방 공사를 하여 강폭 넓은 유두강은 사라지고 삼락천이 생겨났다. 원래 퇴적 사질토로 딸기가 유명했다. ‘군자3락’만 있는 게 아니라 ‘낙동강하구 3락’은 강물 위 시원한 바람(江上淸風), 갈대밭에 지는 낙조(蘆田落照), 원두막 아래 딸기밭(樓下苺田)이었다.

낙동강 하구 충적지에 들어선 사상공단은 비만 오면 장화를 신어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 신발산업의 메카인 부산도 세월 속에 외국으로 떠나버린 대형 메이커들의 자리가 컸다. 말표, 왕자표, 기차표, 타이야표 통고무신이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 발바닥을 지켜주었는가. 이제 사상공단 아파트형 공장으로 다시 신발을 만들겠다고 돌아오는 세월이다. 

쇠갈밭섬이 있던 엄궁동은 한때 부산의 오지였다. 6·25 피난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낚시를 했다는 말이 전해오는 동네. 난리통에 낚시질할 정신이 있었겠는가. 아니다. 그 여백 속에서 노(老) 대통령은 다시 북진을 준비했으리라 믿겠다.

강 건너 을숙도는 강폭이 넓어 아득하고, 하구둑은 온갖 비난과 구설에도 묵묵히 바닷물을 막아주고 있다. 낙동강의 혼탁이 “너 때문이야”라는 사람들에게 항변이라도 하듯 침묵으로 응시한다. 하구둑 언저리, 하단을 지나 다대포까지는 자전거가 심심할 정도로 곧은길이다. 김해공항으로 내려앉는 여객기들이 몇 분 간격으로 다대포 앞바다에서 석양의 휘장 아래로 몸을 낮춘다.

시인 강은교는 낙동강을 말하는 어느 지명 하나 넣지 않고 절절하고 아프게 이 강을 노래했다.


그대 있는 곳을 나는 아네/ 그러게 이리 정신 없이 /
몸 흔드는 게 아닌가 /
그대 잠들지 않는 이유를 나는 아네 /
그러게 이리 한 많은 소리로 /
뼈 부서지는 게 아닌가 / 살이 살을 뜯는 거리에서 /
울음떼 무성한 언덕쯤에서 /
출렁임이 또한 출렁임 낳아 /
돌아가지 못하는 것들이여 /
오늘은 돌아가지 못하는 것들 끼리 /
저무는 해를 만지고 있는데 /
그대 가는 곳을 나는 아네 /
얼었다 녹으며 녹았다 얼며 /
이 구름 밑 / 살지 못해 죽는 그대 /
오, 죽지 못해 사는 그대
(강은교, ‘낙동강 강바람’ 전문)



이 산하의 강 어디라고 낙동강만큼 시퍼렇게 멍들지 않은 물이 있으랴. 다 제 노래인 듯 부르리라. 바닷물이 나들이 간 다대포의 모래등 위로 낙조가 진다. 섬이지만 연육되어버린 ‘몰운대’ 저 너머로 하루해가 또 몸을 누인다. 

 

다대포의 석양과 노을은 을숙도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완성된다(부산 다대)
하루의 여정을 불빛 아래서 적는다. 힘든 기록 속에 머리가 맑아진다(부산 다대)

 


기술·용품 협찬 : 태능한성바이크(02-971-7206)
자전거협찬 : 알톤 스트롤 전기자전거
강둑길 동행 : 이홍희(자전거여행가)


참고 자료
1. <한국의 발견>, 경상남도, 뿌리깊은나무,1989 
2. 영남권신공항 재추진, 매일경제, 2018. 6. 29. A8
3. 주경업이 만난 낙동강 사람들3, 부산일보, 2012. 1. 13.  

4.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서울대출판부, 2004
5. blog. 무호제, 어머니의 친정, 남지 마산정 중 6.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2013

 

 

 

 

조용연 편집위원  choyy@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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