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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백성의 인문탐사기행 이베리아 반도를 넘어 북아프리카까지-스페인 자전거여행‘순례길’이라지만 무더운데 발가벗고 바다에 뛰어든들 어떠리

차백성의 인문탐사기행 이베리아 반도를 넘어 북아프리카까지
스페인
‘순례길’이라지만 무더운데 발가벗고  바다에  뛰어든들 어떠리


이제는 스페인 북부지방이다. 북부지방을 이루는 네 개 지역 중에 아스투리아스를 지난 기록이다. 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이 거쳐 가서 도보와 자전거로 여행하는 순례자를 쉽게 볼 수 있다. 뙤약볕 아래 지치면 한적한 해변에서 홀로 누드 해수욕을 즐겼지만 비도 많아 고역을 겪을 때도 흔했다. 유서 깊은 도시 오비에도에 우디 앨런의 동상이 선 이유는 뭘까. 협곡의 댐을 보고는 군복무를 한 춘천의 풍광과 추억이 떠올랐다

 

북부의 험준한 산길. 올라온 길이 아득하구나

 

스페인 여행도 어느덧 종말을 향해가고 있다.
지난 40여일 중부, 남부를 돌아 북부에 온 나는 빌바오를 여행의 시발지로 삼았다. 북부는 동(東)에서 서(西)로 바스크(Basque), 칸타브리아(Cantabria), 아스투리아스(Asturias), 갈리시아(Galicia) 등 크게 네 지방으로 나뉜다. 이번호는 아스투리아스를 달린 기록이다.



순례길 속으로
스페인 북부여행 하면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을 빼놓을 수 없다. 험준한 아스투리아스 지방에 들어서니 순례자들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더러는 자전거로 가는 순례자도 만났다. 모두 갈리시아 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에 있는 대성당을 목표로 가는 사람들이다. 이곳은 로마, 예루살렘과 더불어 기독교 3대 성지로 통한다. 성당 안에 스페인의 수호성인 야고보의 유해가 있기 때문이다.

북부 길은 다 순례길로 통한다. 보통 순례길 하면 약 800km에 달하는 프랑스 남부 생장에서 출발하는 ‘프랑스길(Camino Frances)’을 뜻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택하는 루트인데, 사실 길은 여럿 존재한다. 대표적인 루트로는 프랑스 길을 비롯, 아스투리아스의 오비에도(Oviedo)에서 출발하는 ‘프리미티보 길(Camino Primitivo, 265km)’, 산 세바스찬에서 출발하여 대서양 연안을 따라가는 ‘북쪽 길(Camino del Norte, 815km)’, 안달루시아 지방 세비야에서 출발하는 ‘은의 길(Via del la Plata)’ 등이다.

나는 가톨릭 신자(信者)가 아니다. 하지만 산탄데르에서 크레덴시알(Credencial,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았다. 그 순간 ‘순례 자전거여행자’가 되었다. 들리는 도시마다 성당이나 알베르게(Albergue, 순례자 숙소)에서 페레그리노(Peregrino, 순례자)로서 세요(sello, 확인스탬프)를 받았다. ‘자전거순례자’로서 경건한 마음으로 북부의 어떤 길을 달리든, 산티아고에 도착하여 대성당에서 스페인 여정을 마무리할 것이다. 그리고 성당 사무국에 크레덴시알을 제출하면 ‘순례증명서’을 받을 자격이 생긴다. 이때 사무국은 세요에 근거하여 순례거리를 산정하고, 어떤 수단으로 왔는지도 증명서에 기입해준다. 기준은 대성당으로부터 최소 1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와야 하며 도보나 자전거, 휠체어 구별하지 않는다. 드물게 말을 타고 오는 순례자도 있다고 한다.


강인한 아스투리아스 사람들
스페인에서 ‘우직하며 강인하고 끈질긴 사람들’이라면 당연 아스투리아스 인들이다. 아랍 정복자에 대항해 ‘레콘키스타(Reconquista, 국토수복)’의 본거지였기 때문이다. 722년 아스투리아스의 왕 팔라요(Pelayo)는 ‘산투아리오 데 코바동가(Santuario de Covadonga)’ 전투에서 아랍군을 격퇴함으로서 피레네를 넘어 서유럽으로 침공하려던 아랍 정복자의 계획을 무산시켰다. 이를 계기로 가톨릭교도들이 단합해 1492년 알람브라 궁을 탈환할 때까지 무려 800여년 끈질기게 싸워왔다. 따라서 이에 대한 아스투리아스 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지세(地勢)가 이런 강인한 인물들을 길러냈나 보다. 아스투리아스 지방은 지금까지 지나온 바스크나 칸타브리아에 비해 험준하다. 이 말은 자연경관이 훨씬 아름답다는 말과 통한다.
2500m 이상의 준봉들이 즐비하다. 유럽 최후의 야생 산악지대라는 ‘피코스 데 에우로파(Picos de Europa)’도 있다. 이러니 5~6km 정도의 오르막은 자주 나타났고, 긴 것은 15km까지! 짜릿한 다운힐로 오르막의 고통을 보상 받기는 하지만…. 


폴라 데 알란데(Pola de Allande), 그란다스 데 살리메(Grandas de Salime) 같은 작고 앙증맞은 산촌(山村)을 지나갔다. 다시 한번 와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국도 AS14 나 AS217은 2차선 도로지만 교통량이 적어 자전거로 달리기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래도 다운힐에는, 특히 노면이 젖어 있을 땐 극도의 주의를 요한다.

 

북부지역은 드문드문 인가가 나오고 산악지대가 많아 우리의 강원도 같다
혼자 집을 지키는 백구도 정겹다

 

예비 배터리를 가져올 걸…
하루에 산길 80~100km를 전진하려면 시간과 배터리 소모를 최대한 아껴야했다. 그런데 어떤 날은 행동식을 마다하고 제대로 된 식당에 들어가 느긋하게 식사를 즐겼다. 문제는 이런 식당이 잘 안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도에는 분명 마을로 표시되어있지만 농가주택 몇 채 나타나고 끝이다. 그만큼 ‘깡촌’이란 말인데, 급할 땐 농가에라도 들어가 부탁할까 생각도 해보았다. 배터리 충전 말이다.

어쨌든 작은 식당이라도 나타나면, 일부러 천천히 식사를 하며 ‘중간급유’를 시도했다. 물론 종업원이나 주인의 양해를 구한 다음 콘센트를 사용했다. 1시간 정도 충전하면 10km 정도는 더 갈 수 있다. 그리고 숙박지까지 완전 방전된 채 갈 순 없고, 한두 칸 정도는 남겨야했기 때문이다. 더 나은 해결책은 용량은 작더라도 예비 배터리를 하나 더 가져오는 것이 좋을 뻔했다.

만약 방전이 된다면, 짐 포함 50kg가 넘는 자전거로 업힐은 할 수 없고 끌고 올라간다면 산중에서 밤을 새워야할지도 모른다. 이런 낭패를 미연에 막기 위해 북부지방에서는 하루 주행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세워야했다. 주로 사용한 지도는 미쉐린(MICHELIN)에서 발간한 2017년판 <ESPANA & PORTUGAL 1:350000>였다. 가격은 22.9유로.

 

자전거 순례자와 도보 순례자가 갈린다
바닷길을 택한 순례자
자전거 순례자를 만나면 반갑다

 

대서양에서의 물놀이
대서양에 면한 아스투리아스 바닷가는 단애(斷崖)를 끼고 있는 해변만도 무려 600여개에 이른다. 내가 말하는 해변이란 수심이 얕고 백사장이 있어 해수욕을 할 수 있는 곳을 말한다.
무더운 날 오후 언덕을 몇 개 넘다보면 바로 옆의 바다가 유혹한다. 활처럼 휘어져 들어온 작은 만(灣)이다. 그러면 진입로를 찾아 속칭 ‘끌바’로 내려가 절벽에 ‘애마’를 세워둔다. 그리고 옷을 벗어 자전거에 걸어 놓고는 바다에 들어가 몸을 식히곤 했다. 


얼마나 대서양 물이 차가웠던지 허리춤 이상은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정도만으로 만족해야했다. 수영 좀 할 줄 안다고 더 들어가 심장마비라도 온다면… 그래서 파도에 휩쓸려 먼 바다로 나가버린다면 ‘자전거여행가 차백성 실종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을 것이다. 이런 꼬리를 무는 망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모든 것이 홀로 여행에서 오는 불안한 잠재의식의 발로 일 것이다. 

어쨌든 오직 태양만 머리 위에 있는, 넓은 해변에 오직 혼자 전라(全裸)로 유영하고 모래에 누워 ‘꼬추 말리는’ 기분은 짜릿했다. 어린 시절, 시골 실개천에서 아이들끼리 발가벗고 신나게 멱감던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서울에서 왔다고 팬티는 내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얀 삼각팬티를 입은 채로 같이 놀던 그때 그 시절 삼각팬티는 ‘서울내기의 특권’이었으니.

 

해변 단애에 형성된 나홀로 해수욕장

 

비 많은 북부 지방
대서양 물놀이에 지쳐 다시 페달을 돌리면 푸르른 녹색지대가 펼쳐진다. 방목하는 소들이 여유롭고 아담한 농가주택이 목가적이다. 내륙의 산악지대는 고도가 높아 푸른 초목과 울창한 삼림으로 계곡은 길고 깊다.

북부지방은 태양이 뜨겁게 내리쪼이는 남부지방과는 달리 사계절 내내 비가 내려 대체로 시원한 편이다. 하루걸러 비를 만났다면 약간 과장된 표현일지 모른다. 팬티 속까지 젖은 때도 있었다. 그러면 체온을 뺏겨 한기에 치를 떨기도 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면 그날은 ‘하늘이 주신 휴일’이지만, 달리는 도중 비를 만나면 난감했다. 그래서 북부를 여행하려면 우장(雨裝)을 갖춰야하고, 일교차가 심해 잘 때도 보온에 신경써야한다. 북부에서는 새벽 찬 기온 때문에 늘 코감기를 달고 다녔다.

여행기간이 길어져 긴장이 풀린 탓도 있지만, 먹는 것이 부실한 것도 한 원인일 것이다. 북부 산촌들은 식당도 잘 안 나타나고, 대형마트 찾기도 더더욱 어려웠다. 비를 피하느라 시간에 쫓겨 주로 길바닥에서 ‘행동식’으로 넘어갈 때도 많았다. 간이식당에서 한 잔의 맥주와 타파스나 하몽으로 한끼 때우면 그나마 운 좋은 날이었다.
 

비가 많은 북부 산간지방에서는 비옷이 필수다

 

 

스페인  음식 이야기
음식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여행 중 즐겨먹던 먹거리 몇 가지를 소개한다. 스페인은 지방마다 전통음식의 재료와 조리법이 각기 발달해 프랑스만큼은 아니지만 맛있고 다양한 요리들이 많다. 의외로 내 입맛에 맞는 것이 많아 여행 중 음식에서 오는 불편은 없었다. 소도시에도 일식이나 중식 식당이 있기는 하나 ‘타이밍’이 맞지 않아 그냥 지나치곤했다.
대체로 음식 가격은 저렴했다. 특히, 북부일대는 순례자들이 많아 ‘배려차원’이란 생각도 들었다.


파에야(Paella)
파에야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고기와 각종 해산물, 토마토와 쌀을 넣어 끓인 스페인식 볶음밥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향신료 사프란(saffron, 붓꽃과에 속하는 식물)은 독특한 향이 있다. 과거 태국,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를 여행할 때 그곳 특유의 향신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파에야는 쌀농사를 많이 짓는 발렌시아 지방을 대표하는 음식인데 지금은 스페인 어디를 가도 맛볼 수 있다. 해산물을 많이 넣으므로 해안지방, 즉 남부 지중해연안이나 북부 대서양 연안이 당연 신선하고 맛있다. 쌀이 들어있어 좋기는 한데 밥이 아니다. ‘뜸’의 개념이 없는 이들의 조리방식을 이해하고 잘 씹어 먹어야 한다. 주문하면 20~30분 정도 걸리므로 갈 길 바쁜 점심에는 적합지 않고 집 생각나는 저녁에 가끔 먹어보았다. 일반적으로 상당히 짠 편이다. 그래서 나는 주문할 때 “덜 짜게 해주세요”라고 부탁하곤 했다.

 

먹음직스런 파에야. 그러나 짜고 기름지다

 

타파스(tapas)
‘타파스’는 스페인어 타파(tapar) 즉, ‘덮다’의 뜻에서 유래했다. 식욕을 돋워주는 애피타이저의 일종이다. 종류는 무척 다양해, 꼭 우리 김장할 때 쓰는 꼬리꼬리한 맛의 곰삭힌 멸치젓도 있다. 하여간 해산물이 많다. 연어, 대구, 꼴뚜기, 멸치를 튀겨 마요네즈나 케첩, 치즈 등에 버무려 먹는다. 올리브나 치즈와 함께 차게 먹거나 오징어 등 해산물과 튀겨서 먹기도 한다. 
나는 타파스를 간식으로 생각하고 먹었다. 양이 작아 이쑤시개에 꽂아 나오는데 나중에 이쑤시개 숫자로 값을 치른다. 회전초밥 접시숫자 세듯이.



하몽(jamon)
뭐니 해도 하몽은 스페인의 국민 음식이다. 한마디로 스페인식 전통 햄인데 식당이나 카페, 마트에 들어가면 천장에 굵직한 돼지 다리들이 걸려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각종 요리와 술안주, 샌드위치에 넣어 먹는다. 하몽은 대패 삼겹살처럼 얇게 썰어야지 절대 두껍게 써는 법이 없다.
일반 가정에도 소금저장고와 염장(鹽藏)하는 수조를 가지고 있어 직접 만들어 먹는다. 우리가 매년 김장하고, 메주 걸어놓고 장 담그듯 말이다. 6개월에서 길게는 3년까지 기름을 빼며 숙성시킨다. 
하몽이 국민음식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기후에 있다. 스페인은 서유럽과는 달리 건조하고 맑은 날이 많기 때문이다. 좋은 하몽은 진한 붉은 색을 띠며 마블링이 있어야 상품(上品)이다. 숙성도에 따라 와인이나 코냑처럼 등급이 있다. J(호따)표 하나에서 다섯까지 5등급으로 나뉘며 그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와인 감별사 소믈리에가 있듯 하몽전문가 하모네로(Jamonero)가 등급을 결정한다. 
일반적으로 많이 먹는 것이 하몽 세라노(jamon serrano)인데, 흔한 흰 돼지다리로 북부의 추운 날씨에 건조 숙성시켜 약간 쫀득하거나 질긴 식감이다. 이에 비해 고급으로 치는 하몽 이베리코(jamon iverico)는 연하여 입안에서 살살 녹아 부드럽게 넘어간다. 이베리아 반도 토종 흑돼지로 비육기간에 방사(放飼)해 도토리를 주로 먹여 살찌운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도토리나무가 많은 안달루시아 하부고(Jabugo) 지방이 ‘하몽의 성지’로 불린다.
덥고 습기 많은 날씨에 상할까봐 그때그때 자주 사먹다 보니 비싼 ‘이베리코’에는 손이 잘 가지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먹기에는 그게 그거 같은데, 값 차이는 5배에서 많게는 10배까지! 같은 다리라도 앞다리는 뒷다리의 절반 값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소금에 절였기 때문에 상당히 짜, 건강식으로 그리 추천할 만하지 않다. 다만 땀 흘려 달린 후, 아구아(agua, 물) 대신 시원한 세르베사(cervesa, 생맥주) 한잔에 하몽 몇 점 먹으면 갈증은 물론 피로까지 싹 사라졌다. 간식으로 거리에서 지도를 보며 쉴 때, 또르띠야(통밀전병)에 하몽 몇 점을 얹어 둘둘 말아 먹으면 간단히 한 끼 넘기곤 했다. 스페인 여정을 마무리할 즈음, 이 두 음식의 찰떡궁합에 중독(?)되어 거의 매일 먹었다.

 

숙성중인 하몽
정육점에 걸린 스페인 국민음식 하몽. 부위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다

 

 

유서 깊은 예술의 도시, 오비에도(Oviedo)
인구 20만 정도의 오비에도는 아스투리아스의 주도(州都)이자 중심지역이다. 옛 아투리아스 왕국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규모는 작지만 오랜 전통과 특유의 매력을 간직한 도시다. 17세기 초에 이미 대학교를 설립할 정도였으니. 

훌륭한 역사적 건축물로는 1388년부터 짓기 시작한 ‘구세주성당(Catedral de San Salvador)’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프레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고딕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것인데, 아스투리아스만의 고유건축양식이다.
우선 도심으로 나가보았다. 중앙에 시원스레 넓은 공원이 있어 쉬어가기 딱 좋았다. 인근에 현대식 상가가 늘어서있어 구경거리도 많았다. 


대성당 앞의 알폰소 2세 광장과 그 옆 포를리에르 광장(Plaza de Porlier)을 달리다보면 이곳저곳에 서있는 재미있는 현대 조각상들이 많다. 조각상이라면 과거 동유럽을 여행할 때 무수히 만났던 기억이 있다.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발트 3국…. 러시아가 오래 지배한 나라들이었다. 상(像)이란 우상숭배와 상통해 1인 독재 공산주의의 잔재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어쨌건 스페인 땅 오비에도 동상이 많다. 하나, 둘 세다가 잊어버릴 정도였다. 한 30여개는 족히 될 것 같다. 작가의 심오한 의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예술품도 있고, 그냥 의미 없는 흥미위주의 평범한 것도 많았다. 그중에 내 눈에 확 들어오는 익숙한 상이 서 있었다. “아니 이 사람이 여기 왜 있지?”하며 다가갔다.
작은 키에 유대인 랍비 같은 얼굴에 굵고 검은 뿔테안경을 쓴 독특한 외모의 주인공.  바로 영화감독 우디 앨런이었다. 그는 시나리오도 많이 썼고 수많은 영화를 만들어냈다. 상도 많이 타 세계적 명감독 반열에 든다. 부인도 미아 패로(Mia Farrow)라는 유명배우다. 


내가 유독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수년전 세간의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딸과 결혼’을 한 것이다. 신부의 입장에서는 어릴 때부터 따르던 아빠가 남편이 되고, 엄마가 ‘형님’이 되어버린 ‘괴이한 일’이 미국에서 벌어졌다. 이들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예술의 도시 오비에도
오비에도의 역사 깊은 산 살바도르 성당
영화감독 우디 앨런 동상이 오비에도에 있는 까닭은
걷는 자와 자잔거 탄 자. 비가 오면 누가 더 힘들까

 

“아빠냐, 엄마냐?”
미아 패로는 딸 순이가 스무살 되던 어느 날, 남편의 소지품에서 순이의 누드사진을 발견하고는 남편과 대판 싸움을 벌였다. 딸도 족쳤다. 잘못했다는 사과는 받았지만 그래도 분을 참지 못해 이 사실을 언론에 알리고 말았다. 당연 파경의 수순이었다. 곧이어 재산분할과 양육권 송사(訟事)가 벌어졌다. 

그녀는 순이를 불러놓고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dad or mom?” 미아 패로는 당연 자신을 택할 줄 알았다. 허나 순이는 아빠 앨런을 택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후에 불거진 이야기지만 어릴 때부터 미아 패로는 순이를 여러 차례 학대한 사실이 밝혀졌다. 순이를 향해 도자기를 던졌으나 요행히 빗나갔고, 전화기는 여러 번 순이를 향해 날렸다고 한다. 가해자는 잊어버렸지만, 피해자의 가슴속엔 양엄마에 대한 분노의 응어리가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부끄러운 논쟁은 이제 그만!”
우디 앨런은 미아 패로와 소송을 끝내고 딸을 신부로 맞았다. 결혼식은 여러 지인과  매스컴 앞에 성대하게 치렀다. 아무리 서양이라 해도 이것은 대스캔들이었다. 생물학적인 딸은 물론 아니었지만 법적으로 분명 자식이었다. 나이 차이도 그렇고.
순이는 미아 패로가 두 번째(첫 번째는 프랭크 시나트라) 남편인 유명 지휘자 안드레 프레빈과 살 때 한국에서 입양해온 아이였다. 


결혼은 당연 우리나라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우리의 ‘고아수출대국’이라는 부끄러운 논쟁에 불을 지폈다. 우리는 이제 거의 세계 최저 출산국이 되어버렸다. 이대로 계속가면 몇 십 년 후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담하다. 미래학자가 아니라도 ‘머리수’ 부족은 나라 쇠락의 첩경임을 예측한다.
부모가 버리든, 어떤 형태의 출생이든 이 땅의 아이는 내보내서는 안된다. 기아(棄兒)라면 국가가 책임지고 거두는 시스템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제 순이도 40대 후반이다. ‘아빠’와의 사이에 자식은 없어 두 아이를 ‘또 입양’해 키우고 있다고 한다. 한국계로서 세계적 거장과 결혼해 아직까지는 잘 살고 있다니 축하해 줄만하지만 어딘가 한구석 꺼림직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이야기가 너무 빗나갔는데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자. 우디 앨런이 감독한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바르셀로나와 이곳 오비에도에서 많이 촬영했다. 우디 앨런이 감독하며 미국 밖에서 찍은 몇 편 안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우디는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고 시당국은 화답이라도 하듯 시내 한복판에 동상을 세웠다.

영화의 원제는 <Vicky Christina Barcelona>인데 우리는 너무 튀는 발칙한 제목을 달았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때 많은 반향을 불러왔다. 우디 앨런은 이 영화의 각본도 직접 썼다. 그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남녀관계의 발상이다. 그의 독특한  사랑의 감정이 녹아들어 영화는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가 인정한 2009년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등장인물은 할리우드 최고의 섹시 아이콘 스칼렛 요한슨, 스페인 출신의 매혹적인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 최고의 연기파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까지. 매력적인 외모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석권하며 탄탄한 연기력까지 인정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로맨스라면 고통도 달콤하다고 느낄 정도로 사랑 앞에 용감한 크리스티나(스칼렛 요한슨 분)와 로맨틱한 낭만보다는 이성이 앞서는 지적인 현실주의자 비키(레베카 홀 분). 가장 친한 친구지만 사랑에 관해서는 완전히 상반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은 스페인으로 휴가를 떠난다. 


휴가를 즐기던 그녀들은 우연히 매력적인 화가 후안 안토니오(하비에르 바르뎀 분)를 만나게 된다. 그의 유혹에 거부하는 비키와 달리 크리스티나는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결국 비키마저 후안에게 빠져들지만, 예정된 결혼을 위해 바르셀로나를 떠난다. 바르셀로나에 남게 된 크리스티나와 후안이 둘 만의 사랑을 나누던 어느 날, 후안의 전처 마리아가 둘 사이에 나타난다.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올라간다. 그들의 동거생활이 이어지는 가운데, 어느새 마리아와 크리스티나까지도 사랑을 가지는 사이로 발전한다.

한 남자와 그를 둘러싼 세 여자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다룬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감정에 충실한 자유분방한 연애에 빠져드는 네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영화의 포인트다. 덧붙이면, 배역에 어울리는 배우들의 명품연기가 돋보였다. 


명물 사과술
보았으니 이제는 먹을 차례다.
오비에도는 시드라(sidra)라는 전통 사과술이 유명하다. 게다가 컵에 따르는 방법이 재미있어 그 성가를 더해준다. 아스투리아스 사람은 물론 이 지방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맛을 볼만큼 인기가 높다.


시드라의 역사는 8세기로 거슬러 올라 갈만큼 오래되었다. 연안 쪽으로는 어업이 성했지만 내륙은 밭농사와 목축업이 성행했다. 그 가운데 과수 경작지는 별로 없지만, 유독 질 좋은 사과만은 생산량이 많았다. 매년 스페인에서 생산되는 사과술의 80%인 3000만 리터가 오비에도에서 생산된다. 가을에 수확한 사과를 450리터들이 대형 나무통 속에 800kg 정도 으깨어 넣고, 겨울을 나면 1리터짜리 사과술 600병이 나온다고한다. 알코올 도수는 6도다.

저녁을 먹고 시드라를 맛보기위해 ‘가스코나 거리(Calle de la Gascona)’로 갔다. 이 일대에 시드레리아(sidreria)’가 몰려있었다. 스페인어에서 단어 뒤에 리아(ria)란 접미사가 붙으면 ~점(店)이란 뜻이다. 예를 들어, 과일가게는 프루토(fruto, 과일) 뒤에 리아(ria)를 붙여 프루토리아(frutoria)가 된다.

 

사과주 따르기 시범

 


‘시드라 퍼포먼스’
시드라 먹자골목에서 어슬렁거리며 이집 저집 기웃거렸다. 대부분 외지에서 온 관광객인 듯 집집마다 문전성시였다. 나는 군중심리에 반(反)하여 한산한 집에 찾아 들었다. 나름 속셈이 있었다.
시드라 한잔을 주문하자 “병 단위로만 판다”고 했다. 나는 한 병 다 비울 주량이 못된다. 만약 다 마셨다간 숙소를 못 찾아 갈 공산이 크다. 


어쩔 수없이 1L들이 한 병과 하몽 한 접시를 주문하면서 종업원에게 “따르는 시범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시드라를 맥주나 막걸리 따르듯 하면 ‘법규위반(?)’이다. 법규란 시드라 병을 머리보다 높게 올리고 컵은 낮게 잡아 따르는 방법을 말한다. 낙차가 보통 150cm는 족히 되지만 숙달된 사람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컵 속으로 따른다고 한다. 관광객인 초심자가 시도했다간 거의 바닥에 쏟아 버리고 만다.
종업원은 빙그레 웃으며 왼손으로는 병을 잡아 자연스레 머리 위로 올리고, 오른손은 컵을 잡고 밑으로 쭉 내렸다. 그리고 병을 기울이니 시드라는 외줄기 폭포처럼 정확히 컵 속으로 떨어졌다.


‘빨려들어 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약간의 돈을 주며 “왜 이렇게 먹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시드라가 공기와의 접촉을 오래하면 향이 좋아지고, 잔에 세게 부딪히면 풍미가 극대화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절하게 “맥주나 사이다처럼 거품이 있을 때 단번에 마시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내가 술에 과문한 탓인지 맛은 그냥 시큼털털했고, 막걸리에 사이다를 섞어 놓으면 이런 맛이 될 것 같다.



환경에 적응한 건축물
산간지방이라 제재소(製材所)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어린 시절에 보던, 지금은 사라진 것이라 반가움이 앞섰다. 이 지역은 1차 산업인 농업·임업·어업이 지역 경제를 이끈다. 주요 농작물은 감자나 옥수수이며, 주로 하몽 용도 돼지를 사육하는 농가들이 많았다. 눈에 익숙한 오지마을을 지나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홀로 집을 지키는 백구도 정겨워보였다.

갈리시아 지방 쪽으로 갈수록 2층집이 많아진다. 규모도 크다. 아무래도 이 지역은 눈, 비도 많고 춥고 긴긴 겨울을 보내야하니 가옥의 형태도 환경에 순응했다. 나무가 많으니 돌을 거의 쓰지 않은 목조건물이다.
본채 옆에 북부지방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의 곡식 창고가 이채롭다. 곡식이 귀한 산간지역이니 곡물창고에 쥐나 다람쥐 같은 동물들의 침입을 막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네 귀퉁이에 기둥을 세워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습기를 막고, 틈새로 자연통풍이 이루어지는 창고에는 주로 씨앗, 옥수수, 감자, 콩을 보관한다. 북부에 자생하는 소나무와 미송을 이용한 다양한 너비의 목판으로 벽을 덮었다. 

 

북부 산간지방의 독특한 창고. 습기와 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공중에 띄운 형태로 우리나라의 고대 부경과 닮았다
허름한 분위기의 제재소가 아직 남아 있다
북부 순례길은 물과 어우러져 경치 좋은 길이 많다
협곡에 들어선 수력발전소
발전용 댐과 호수에서 군복무를 했던 춘천과 소양호를 떠올렸다
우연히 조우한 아스투리아스의 자전거 동호인들과

 

 

아스투리아스에서 떠올린 ‘춘천’
이곳 산간 지방은 여러 개의 강과 그 지류들이 흐른다. 때문에 수력발전소가 많다. 수력발전은 낙차(落差)를 이용해야 되니 업힐이 심하다. 계곡이 깊고 높은 산은 발전소 입지로는 최적이다. 따라서 이런 곳은 산과 저수지가 어우러져 경치는 한 폭의 그림이다. 계곡 사이에 형성된 댐이 눈에 익숙했다. 우리의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강원도 풍광이 떠올랐다. 

나는 아름다운 ‘물의 도시’ 춘천에서 군복무를 했다. 젊은 날 강원도에서 보낸 2년의 시간은 내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공지천, 이디오피아의 집, 춘천댐 지나 신포리 가던 길… 모두 추억의 장소들이다.
첫 월급으로 자전거를 한 대 샀다. 내 힘으로 마련한 첫 자가용! (당시 자전거는 ‘승용차’와 ‘짐차’ 두 가지로만 구분했다) 대견스러워 그저 닦고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틈만 나면 의암댐에서 춘천댐에 이르는 ‘환상의 길’을 달렸다. 공사 중이던 소양댐까지 올랐다. 우두동 숙소까지 너무 짧아 돌아올 때는 늘 아쉬웠다. 손꼽아 기다린 주말이 오면 강촌 구곡폭포로 혹은 화천 파로호까지 내달았다. 

자전거는 ‘싱글기어’였다. 지금 생각하니 ‘젊음’으로 내리 밟았던 모양이다. 비포장길이 많아 흙먼지를 뒤집어써 눈썹이 백발로 변해도 개의치 않았다. 간식거리는 구수한 ‘옥식이’한 개와 찐 감자, 그리고 ‘한산도 한 갑’이면 하루가 행복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다음호에 계속)     

협찬 : 벨로스타, 참좋은여행,  BAFANG,  포메라스포츠, IL인터내셔날

 

차백성 편집위원  cbs61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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