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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백성의 인문탐사기행-스페인 영혼의 매혹, 산티아고 순례길영혼의 매혹, 산티아고 순례길 왜 가고 무엇을 얻는가

차백성의 인문탐사기행 -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를 넘어 북아프리카까지

영혼의 매혹, 산티아고 순례길 왜 가고 무엇을 얻는가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달린다. 세계적인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이 순례길은 성인 야고보 유해가 안치된 갈리시아의 ‘산티아고 대성당’이 목표다. 수많은 갈래길이 있으며, 사실 어디로 가든 산티아고 대성당을 목표로 하면 된다. 길게는 800km에 달하는 이 길을 고행처럼 걷거나 자전거로 가는 사람들의 이유와 목표는 뭘까. 무엇이 그들을 이 멀고 힘든 길을 걷게 하는 걸까. 순례길에서 나 역시 여행의 진실, 내 영혼의 심연과 마주한다

 

즐겨 이용한 국도 N547. 순례길이 나타나면 바로 들어갔다. 아주 좁은 길이 아니라면

 


길고 길었던 스페인 여행도 이제는 종말을 향해 달려간다. 우리 옛말에 ‘정해놓은 날은 빨리 다가온다’를 절감한다. 영어 속담에도 이런 말이 있다. ‘All good things must come to an end.’ 우리말로는 ‘아무리 좋은 일도 끝이 있게 마련’ 쯤인데, 길게 보면 우리네 인생길도 이렇지 않을까.

적잖은 나이에 강행한 50여일 여정, 섭씨 45도를 상회하는 안달루시아 황무지의 혹서와 북부지방의 잦은 비… 어려움과 불편함이 많았다. 하루 종일 비에 젖어 감기에 걸렸을 땐, 안락한 집 생각에 후회가 밀려올 때도 있었다. 특히, 빈대(bed-bug)가 옮았을 때는 감기, 몸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인내할 가치가 있는 의미 있는 여행길이었다. 돌이켜보면  고통도 여행의 일부였고, 가는 곳마다 호기심으로 충만했던 시간이 더 많았다. 거장 파블로 카잘스가 유언처럼 남긴 “인간은 호기심이 없어질 때, 늙음의 시작이다”라는 말을  금과옥조로 삼아 페달을 밟고 또 밟았다.

지난 40여일 중부, 남부를 돌아 북부에 온 나는 바스크 주의 빌바오를 시작으로 칸타브리아 주, 아스투리아스 주를 지나왔다. 이번호는 북부지방의 마지막 주이자 ‘순례의 주’라 불리는 갈리시아(Galicia) 지방을 달린 기록이다.
 

순례길의 고장 갈리시아에 들어선다

 

 

순례길의 유래는?
스페인 북부여행 하면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을 빼놓을 수 없다.
곳곳에 순례 길을 알리는 ‘노란색 화살표’와 ‘조가비 표식’이 자주 나타났다. 그리고 점점 늘어가던 빈도가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서니 더욱 더 눈에 자주 띄기 시작했다. 순례자들 말이다. 혼자서 혹은 두셋이서, 등에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양손에는 스틱을 잡고 느릿느릿 한걸음 한걸음 전진한다. 더러는 자전거로 가는 순례자도 만났다. 


모두 갈리시아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로 가는 사람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성인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된 ‘산티아고 대성당’이 목표이다. 이 순례자의 길은 이제 세계적인 ‘문화 코드’로 자리 잡았다.
왜 이런 순례가 스페인에서 시작 되었을까? 정복자 이슬람세력에 대항해 이베리아반도에 살던 가톨릭 교도들은 북부지방만은 내주지 않으려 분투했다. 그러니까 정치적 혹은 호국적 결집 목적이 강했다. 산티아고 순례의 기원은 이런 시대적 배경이 깔려있다.  


좀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스페인에 가톨릭이 본격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1세기 중엽, 로마인들의 침략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예수 승천 후 제자 야고보는 이베리아 반도로 포교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로마 제국의 속주(屬州)였다.
AD 44년, 돌아온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롯왕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참수(斬首)당한다. 예수 제자로서 첫 순교였다.
여기까지는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허나 그 후에는 ‘그리스 신화’ 같은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제자들은 스승 야고보의 시신을 수습해 조가비와 함께 석관에 넣었다(순례의 상징 조가비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그리고는 배에 실어 스페인 북쪽으로 보냈다. 배는 지중해를 지나 대서양까지 갔으나 풍랑을 만나 갈리시아 해안에 표착했다. 


그 후 오랜 세월 행방이 묘연하여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9세기 즈음에 하늘에서 밝은 별빛이 내려와 벌판 한곳을 비추었다. 사람들이 그 곳으로 가보니 야고보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국왕 알폰소는 유해가 발견된 자리에 대성당을 지어 이곳으로 유해를 모셨다.
이런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는 주도(州都)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의 이름을 풀어보면 어느 정도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우선 산티아고와 야고보는 같은 사람이다. ‘콤포스텔라’는 라틴어의 ‘별의 땅(campus stellae)'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별이 점지한 야고보의 시신이 묻혀있는 땅’이란 뜻이다.  어쨌든 당시 상황은 가톨릭이 단결해 아랍 침략자를 몰아내기위해 치열한 싸움을 전개할 때였다.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는 이 도시를 예루살렘, 로마에 이어 가톨릭의 성지로 선포함과 동시에 야고보의 축일(祝日, 7월 25일이 일요일이 되는 해)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순례자는 그 동안 지은 죄를 사면한다고 발표했다.


성인 야고보는 누구인가.
이름부터 먼저 확실히 해야 할 것 같다. 영미문학(英美文學)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할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성서를 여러 번 읽어야하고, 둘째는 술의 역사와 종류, 주조 과정 등을 알아야하고, 마지막은 서양 인명(人名)과 계보를 잘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고보(Iacobus)는 라틴어이며 스페인어 권에서는 산티아고(Santiago)라 부른다. 스페인어는 이름 앞에 남자 성인은 San, 여자성인은 Santa가 붙는다. 야고보가 세월이 흐르면서 tiago가 되었으니 산티아고는 성인 야고보와 이명동인(異名同人)이다. 영어권에서는 세인트 제임스(St. James)로, 불어권에서는 생 자끄(Saint. Jacques)로 불린다.  


야고보는 제베데오의 아들이며 신약성서의 저자인 요한의 형으로 갈릴레아 출신의 어부였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자 베드로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다. 또한 그의 어머니인 살로메는 성모와 친척으로, 따지고 보면 야고보와 예수는 인척  간이다. 야고보는 성정이 순직하고 신심이 강해 예수는 베드로와 더불어 그를 가장 신임하고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가 겟세마니 언덕에서 설교하고 기도할 때 항상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야고보를 자신 가까이 있도록 한데서도 알 수 있다.

성경에 의하면 살로메는 예수께 이렇게 간청했다.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는 야고보가 마치 자신을 따라서 첫 번째로 순교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야고보가 순교한 날도 예수가 승천한 날과 같은 성 금요일이었다. 

 

▲ 갈리시아 순례길 이정표                                                           ▲ 야고보의 순교

 


‘순례 길의 일등 공신’ 파울로 코엘료
성 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성인(守護聖人)이다. 1189년 성지가 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호국 순례자’들이 매년 증가하다가 1492년 레콘키스타(Reconquista, 가톨릭의 국토 수복) 후 점차 줄어들었다.
쇠퇴의 길을 걷던 산티아고 순례는 명맥만 겨우 유지할 정도였다. 1982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이 도시를 방문, ‘성지순례’를 언급했다. 긴 세월에 비하면 극히 최근의 일이다. 교황 방문을 계기로 가톨릭 교도를 중심으로 대중적인 인기가 불붙기 시작했다. 


또한 1987년에 EU가 순례 길을 유럽의 문화유산으로, 1993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순례자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브라질 출신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Faulo Coelho, 1947~)가 기름을 부었다. 극작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그는 39세에 돌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례길을 걸었다. 길 위에서 겪은 경이로운 체험과 영적 탐색을 한 그는 “산티아고 가는 길은 나를 변화시켰다.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그리고는 “생에 대한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다.”고 술회했다. 이듬해인 1987년 발표한 <순례자, Diario de um Mago>가 세계 170개국에 번역되어 2억 부 이상 팔려나갔다. 순례길이 그에게 부와 명성을 한꺼번에 안겨 주었다.
코엘료는 남프랑스에서 출발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길을  안내자 페트루스와 함께 걷고 또 걸어갔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8백여km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뒤를 돌아봐도 똑같기만 한 단조로운 풍경 속에서 순례를 끝까지 마칠 수 있을지 조바심까지 일었다. 코엘료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더없는 고통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저자의 진솔한 내면이 담긴 <순례자>는 성찰의 깊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비범한 삶은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의 길 위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한 여행자가 순례자여권에 확인 스탬프 세요를 찍고, 날짜를 쓰고 있다
▲ 순례증명서                             ▲ 크레덴시알’이라 불리는 순례자 여권
이런 갈림길에서는 정신 바짝 차리고, 무조건 국도를 뜻하는 N노선을 타야 한다
싱글트랙 같은 소로는 보행자를 위해 가급적 진입을 삼가했다

 

 

<연금술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곧이어 코엘료가 발표한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 Alchemist> 역시 세계적인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을 두고 독일의 <슈피겔> 지는 “세계인의 영혼을 울린 <연금술사>의 성공은 앞으로도 그 예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평했다.
폴란드의 ‘가제타 쉼보르스키’는 “<연금술사>는 생택쥐페리의 <어린왕자>,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그리고 성서의 감동적인 우화를 떠올리게 만드다”며 극찬했다.


소설의 무대는 물론 스페인이다. 신부가 되기 위해 라틴어, 스페인어, 신학을 공부한 산티아고는 어느 날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목동이 되어 사막을 헤맨다. 마치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사막의 순례길로 버전만 바꾼 것 같다. 산티아고는 마음의 속삭임에 귀를 열고 자신만의 보물을 찾기 위해 진력한다.
작가는 산티아고를 통해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 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다. 당신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당신의 소망을 이루도록 도와준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구절이 몇 년 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전직 대통령 한분이 현직 시절, 이 문구를 어느 연설에 인용한 적이 있었다. 이를 두고 대통령을 비판하던 언론들은 ‘잘 걸렸다’는 듯 일제히 ‘샤머니즘적 발언’이라 공격해댔다. 엘리트를 자처하는 언론인들이 이미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책도 안 읽은 듯했다. 고전(古典)이나 세계인들이 공감한 책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심지어 어떤 언론은 ‘우주’를 들먹이며 “오방색(五方色) 옷을 입은 대통령이 주술에 홀려 신정(神政)을 폈다”라고까지 국민을 호도하는데 기염을 토했다.
우리 선조의 오랜 세계관은 ‘우주와 자연, 인간이 조화를 이룰 때 완전하고 평화로운 삶’이라고 믿었던 사실을 모르는가!


<연금술사>는 산티아고가 만물에 깃들인 영혼의 언어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언하고, 진정 자기 자신의 꿈과 대면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는 희망과 환희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그 점에서 산티아고가 도달한 연금술의 환희는 꿈을 잊지 않으려는 모든 이들의 것이기도 하다.
코엘료는 “진정한 연금술이란 철이나 납을 금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만물과 통하는 우주의 언어를 관통하여 하나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역설했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행복의 비밀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자신에게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순례자여, 길은 없습니다. 그대가 가면 비로소 길이 만들어집니다”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지만, 산탄데르의 아순시온 성당(Catedral de la Asuncion)에서 크레덴시알 델 페레그리노(Credencial Del Peregrino, 순례자 여권)을 발급 받았다. 그 순간부터 나는 ‘순례자전거여행자(Bike Peregrino)’가 되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많은 사람들이 순례라는 테마로 걸어간 길을 나는 자전거로 달려 보고 싶었고, 나머지는 ‘걷는 자’와 ‘자전거 탄 자’가 좁은 길에서 사이좋게 공존(共存)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무슨무슨 길’ 하는 ‘정해진 순례길’이라는 틀에 매이고 싶지 않았다. ‘모든 길이 다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read to Rome)’는 말처럼 북부 길은 다 순례길로 통한다. 더 넓은 의미로는 어는 곳에서 출발하든 성 야고보의 유해가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에 간다면 그 길이 바로 순례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상 “스페인 성지 순례 다녀왔다”라고 함은 약 800km에 달하는 프랑스 남부 생장 피드 포흐(St. Jean Pied Port)에서 출발하는 ‘프랑스 길(Camino Frances)’을 뜻한다. 그 다음으로는 아스투리아스의 오비에도(Oviedo)에서 출발하는 ‘프리미티보 길(Camino Primitivo, 265km)’, 산 세바스챤에서 출발하여 대서양 연안을 따라가는 ‘북쪽 길(Camino del Norte, 815km)’, 안달루시아 지방 세비야에서 출발하는 ‘은의 길(Via del la Plata)’ ‘포르투갈 길’ 등이 있다. 하나 더 보태면 ‘자전거 여행가 차백성 길!(BikeCha Route)’이다. 

위의 ‘네 가지 길’을 다 조금씩 맛보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출발하여 산과 들, 바다 등 가리지 않았다. 산티야나 델 마르에 있는 알타미라 동굴벽화나 건축가 가우디의 초기 작품이 있는 코미야스, 이름 없지만 경치 좋은 해수욕장, 토플리스 해변 등 기분 내키는 대로 자유분방하게 다녔다. 그래도 내 자전거의 나침반은 계속 서쪽의 산티아고 대성당을 가리키고 있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경우였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단연 1등!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옛날이야기다. 순례길은 몇 개의 대도시를 통과해야한다. 이때 범죄가 들길이나 산길에서는 성폭행을 당했다는 보고도 있었다, 홀로 걷는 동양여성을 노렸다는 것이다. 어쨌든 여성 홀로 장기간의 도보여행에는 반드시 위험요소가 따르게 마련이다. 최근 아프리카, 중동 등에서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불법이민자가 급증하고 있다. 호구지책이 절실한 이들에게 순례자는 좋은 ‘먹이감’이다. 여기에는 기존 집시들도 ‘동참’했다. 어떤 여행이든 첫 번째 원칙 ‘조심’을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만일을 위해서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는 들리는 도시마다 성당이나 알베르게(Albergue, 순례자 숙소)에서 페레그리노(Peregrino, 순례자)로서 세요(sello, 확인스탬프)를 받았다. 이것을 그때그때 받는 이유는 산티아고 대성당 사무국에 크레덴시알을 제출하면 ‘순례증명서’을 받을 수 있는 자격 때문이다. 이때 사무국 직원은 세요에 근거하여 날짜, 순례거리를 산정하여 증명서에 기입해준다. 증명의 기본 요건은 대성당으로부터 최소 1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와야 하며, 도보나 자전거, 휠체어 구별하지 않는다. 드물게 말을 타고 오는 순례자도 있다고 한다.

2013년 통계에 의하면 총 순례자 22만명 중 나라별로는 스페인이 51%로 당연 가장 많고 2위가 8%인 독일, 한국은 12위인 1.2%로 2700여명이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첫번째다. 이 수치는 성당 순례사무국에서 순례증명서를 발급한 기준이므로, 실제 순례를 행한 사람의 수는 훨씬 많으리란 추측이다. 우리나라는 가톨릭 신도가 많기 때문이란 것이 나의 짐작이다.
참고로 혹한기를 빼고는, 이 증명서를 받기위해서는 대성당 사무국 복도에서 2~3시간 정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한다.



이 두 사람은 왜 순례길을 걸었을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국내에서 책을 낸 사람이 많다. 어림잡아 30권이 넘는다. 반면, 대형서점 서가에 꽂혀보지도 못하고 사라져간 것까지 치면 100권은 넘을 것 같다. 순례길에서 겪은 ‘고행’이 끝나면 그만큼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는 뜻 일게다.

★ 내 눈에 꽂힌 한권의 책이 있었다. 일단 책이 두꺼웠다(423페이지). 작기의 네임밸류도 중요하지만 나는 일단 ‘두꺼운 책’을 선호한다. 책은 문단의 원로 서영은 작가가 쓴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이다.
그녀는 65세의 어느 날, ‘작가의 길’에서 너무나 많이 벗어나있음을 느꼈다. 몇 달 뒤 유언장까지 써놓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과거에 순례는 순교(殉敎)와 일맥상통한 점이 있었다. 그만큼 ‘리스크’가 많다는 것을 작가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유언장’은 작가가 꼭 완주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었을 것이다. 사막의 낙타처럼 자신의 상처 입은 영혼을 달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길을 걸으며 그녀는 지난날 자신을 옭아맸던 온갖 인연들을 속속들이 떠올렸다.


서른 살 연상인 남편, 문단의 거목 김동리의 세 번째 아내로서의 애틋하고 가슴시린 사연. 주홍글씨의 낙인처럼 혹은 운명으로 씌워진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김동리와 결혼하고 나서도 나는 한 번도 내가 그의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호적상 엄연한 그의 세 번째 아내였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여자가 아니었다.”

결국 그녀는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길었던 김동리와의 사랑과 그에 비해 너무 짧았던 아내로서의 삶을 고통스럽지만 기꺼이 내려놓았다. 거의 동년배인 전처 자식과의 유산분할 송사(訟事)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서울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남편의 유품과 그가 남긴 문학 자료들을 모두 기증하고야 자유롭게 되었다. 그리고 펴낸 책이었다.  

“나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걸었고 그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서 나를 벗어 던졌다. 그 결과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다.” 그러면서 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펴낸 책은 모두 잊어도 좋으니 이 책만은 꼭 읽어 달라“고 했다. 책 말미에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김동리란 거물의 온갖 것들, 그의 갈증, 외로움, 정염, 모순, 인색함 등 온갖 인간적인 것들을 붙잡고 씨름해온 사람이다. 산티아고는 내게 순례의 종착지가 아니다. 산티아고는 내게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는 문이자 또 다른 화살표이다. 그 화살표가 성경속의 모든 선지자들에게도 그랬듯, ‘이제 내가 여기에 있나이다’ 하는 자리로 이끈다 해도….”


★ 우리 모두 얼굴이 다르듯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이유와 목적은 다양하다. 가장 모범(?)은 돈독한 신앙심으로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며 완주하는 자이다. 그 다음으로는 인생의 확실한 전환점을 만들어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려는 사람일 것이다.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 내부. 하루 이상 머무를 수 없다
알베르게에 비치된 방명록. 한국인이 적지 않다
셀카, 심심할 때는 가끔씩~
북부의 순례길은 물과 어우려져 풍광이 수려하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짊어지고 ‘프랑스 길’ 775km를 33일 동안 주파하고, 그것도 모자라 4일을 더 할애해 묵시아(Muxia)를 거쳐 스페인 서쪽의 땅끝 마을 피스테라(Fisterra)까지 116km를 더 걸은 사람이 있다. 나와 같이 자전거 동호회 활동을 하는 이홍희 씨다. 그의 전직은 우리 국민의 자랑, 대한민국 해병대 29대 사령관이었다.
그는 3성 장군으로 전역한 전형적인 무골(武骨)이지만, 다정다감한 감성 리더십의 지휘관이었다. 말단 병사 한 명 챙기기를 가족 돌보 듯 했다. ‘심소담대(心小膽大, 작은 일에 마음 쓰고, 큰일에 대범하라)’를 몸소 실천했다.

그는 40년 가까운 세월을 팽팽한 긴장감 속에 군 생활을 했다. 군문을 나와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강단에서 후배들에게 경험도 나누고, 여행, 자전거 여행 등 그간 못한 것을 차분히 해나갔다. 이런 즐거움 속에서도 그의 가슴 한가운데 허전함이 점차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것의 정체는 ‘그간 익숙했던 것들과 결별하고 오로지 나 혼자만의 시간을 향유(享有)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이 욕구를 스스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지,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은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고 결국 꿈이 없어지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꿈이라는 단어가 나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신(屍身)과 강아지를 빼고는 누구나 가슴속엔 분명 꿈이 존재한다.
긴 세월 ‘군’라는 엄격한 조직생활에 압도되어 내면 깊숙이 잠재되었던 자아가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한 분야의 고수다운 그의 설명이 내 가슴에 꽂힌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다. 이 검진은 오로지 신체에 관한 검진이지 마음에 관한 검진은 받은 적도, 받을 수도 없다. 이것을 어떤 의사가 해주겠는가? 오로지 나 자신만이 진단하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순례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한국 순례객은 물론 외국인들도 만났다. 한달 이상을 걷다보면 자주 만나게 되지만 나름 원칙을 갖고 있었다.
“일행과 교분을 쌓기 원한다면 숙소에 도착해서도 충분하다. 그래서 걸을 때만큼은 철저히 혼자 걸으며 나만의 사유 세계 속에서 자신과 대화했다.”
단체여행과 홀로여행의 장점만 추린 절묘한 ‘절충식’이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고 나에게 찾아온 변화는 무슨 일에서든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정신적 안정과 더불어 생을 긍정하게 되었다. 8kg의 다이어트는 덤이었다.”


아니, 8kg이 덤이라니, 얼마나 땀을 많이 흘렸으면! 그의 강인한 인내심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결과다. 어떤 이는 다이어트를 ‘목숨 걸고 해도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육(肉)의 변화가 영(靈)의 변화를 선도할 수도 있다. 둘은 동전의 앞뒤처럼 같은 선상에 있다.
그는 이미 몽골과 일본의 자전거 여행기를 발표하여 젊은이들은 물론 중, 장년층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왔다. 이제 본격 전열을 가다듬고 자전거여행가로서의 인생후반전을 공략할 만반의 채비를 갖추었다. 선전(善戰)이 기대된다.

 

재미있지만 의미심장한 순례자 조형물
순례길에서 라이더를 만나면 정말 반갑다. 런던에서 온 명상가이자 자전거 순례자 캐롤리나. 나는 그녀의 자전거를 손봐주었고 그녀는 내게 명상법을 알려주었다
캐롤리나는 명상의 어떤 경지에 도달하면 종교를 능가한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자전거 순례자 부부
포르투갈에서 온 중년 자전거 순례팀. 짐은 택배로 당일 숙소까지 보내고 홀가분하게 달린다고했다

 

 

순례길에 볼만한 책 한권
자전거여행은 짐 무게 줄이기와의 처절한 싸움이다. 물론 순례자의 ‘배낭꾸리기’도 마찬가지다. 서영은 작가는 짐 꾸리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잘 싼 짐을 다시 풀어 무게를 조정해야만했다. 짐을 풀어서 방바닥에 늘어놓다보니 깨달아 지는 것이 있었다. 짐이 무거워진 이유는 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을 의식하는 내 생각에 있었다. ‘고상하게’, ‘멋스럽게‘, 깔끔하게’ 보이고 싶다는. 그 생각을 접고 나니 다시 짐 꾸리기가 쉬워졌다.”

스페인 속담에 ‘긴 여행에 지푸라기도 무겁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절감하기 때문에 짐 보따리 무게 1g이라도 줄이기 위해 머리를 짜낸다. 그런데도 여행 때 마다 꼭 가지고 다니는 책이 한 권 있다. 이 책과의 인연은 깊어, 전업 자전거여행가로 나서기 전, 직장인 시절 수단이나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근무 때도 가지고 다녔다. 힘들고 지쳐 삶이 바닷가 모래한줌 같이 느껴질 때, 읽고 또 읽었다. 한 줄 한 줄 음미하기 위해 영어판도 구해 읽었다. 심심풀이도 나는 책으로 해결했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잡기를 잘 못한다. 마작도 바둑도, 시간을 너무 잡아먹는 골프는 ‘보기플레이’도 못하고 그만두었다. 좀 한다는 게 있다면 테니스와 200 정도 치는 당구다. 이러면 무리에서 ‘따’ 당하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역사에 발자국을 남긴 사람 중에 외로움을 창조로 연결시킨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고, 프랑스의 노벨상 수상작가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 1844~1924)가 한 말을 가슴에 새겼다.
“내가 인생을 알게 된 것은 사람과 접촉했기 때문이 아니라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인연 깊은 책은 이제 지면도 누렇게 바랬다. 그래도 활자만 식별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여행길에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책은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ctor Francle, 1905~1997)이 쓴 <죽음의 수용소, Death Camp to Existentialism>이다.
비엔나에서 태어난 저자는 촉망받는 정신 의학도였지만 유대인이란 이유로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서 3년의 시간을 보냈다. 무수한 동포들이 죽어 나갔지만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책상머리 정신학 이론이 아니라 온몸으로 얻은 생생한 체험이기 때문이다. 


도저히 회피할 길 없는 가혹한 운명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의미가 결정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것을 ‘의미(意味)에의 의지(Will To Meaning)’라 표현했다. 결국 인간은 시련을 극복할 때 삶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 책은 널리 알려지고 반복된 수용소 내 잔혹한 일화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용소 환경은 수감자로 하여금 생에 대한 욕구를 상실하도록 만든다. 즉, 인간으로서의 품위는 모두 박탈된다. 유일하게 남는 것은 인간의 마지막 정신적 자유, 그 엄혹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는 능력 말이다.


저자는 결론을 이렇게 끌어냈다.
“극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생명을 유지하려는 수감자들의 에고이즘과 대결하면서 나는 승리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자유 즉, 언젠가 풀려날 수 있다고 선택할 수 있는 감정만큼은 아무도 앗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산다는 것은 고통을 당하는 것이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왜 살아야 하나!’ 하는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 나갈 수 있었다.” 
 

여행 때 항상 소지하는 책의 저자 빅터 프랭클 박사. 로고데라피라는 삶의 의미를 강조하는 치유법을 창안했다

 

 

떠나보라 순례길을, 혼자서!
여행은 삶의 축약판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축약판을 보면 전 인생을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건설 분야에서 대형건물을 짓기 전에 미리 축소판을 만들어 보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한평생을 살면서 적어도 한 두 번은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허나 익숙한 일상에서 이것은 쉽지 않다.


일상에서는 늘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어떻게 하면 잠시라도 자신을 속박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여행의 진수는 완전한 자유에 있다. 그래서 여행길에 나서야한다. 홀로 나서면 더 바람직하다. 여행만큼 동기가 강력한 행위는 흔치 않다.
여행은 외부적인 강요에 의해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과 돈, 열정을 기울여 스스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겠다고 결심할 때는 이미 자신에게 의미 있고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나의 경우 여행 중에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낼 때도 있다. 그러면 여행하는 동안에는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자기 이야기만한 늘어놓는 친구에게 맞장구 칠 필요도 없고, 연인에게 양보해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원하는 것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
홀로 여행에서는 견디기 힘든 지독한 외로움을 감내해야만 한다. 그 외로움의 무게는 내 자전거에 달려있는 7개의 짐 가방보다 더 무겁다. 그런데도 내가 고통을 인내하며 혼자 여행을 하는 이유는 삶이란 어차피 혼자서 먼 길 떠나야하는 여행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을 통해 영혼의 담금질을 계속함으로서 ‘영원한 여행길’을 대비한다


세상에 나 홀로 던져진 느낌, 하지만 이것을 여행이 준 선물로 승화시킬 때 홀로 여행의 진가가 발휘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외로움을 친구로 만든다. 말없는 이 친구는 유일한 대화 상대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남의 눈을 의식하며 타인이 정해준 시간표대로 살아간다. “지금의 삶이 만족스러운가?” “아무런 계획도 목표도 없이 흘러가는 대로 순응하며 살아가야만 하나?” “내가 바꿀 수 있는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바뀐다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줄 것인가?” 끊임없이 이 친구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신을 성찰한다.


지독한 외로움이야말로 홀로여행의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다.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가이드 없는 ‘처절한 나홀로 여행’을 했기 때문이라고 자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꿈꾸는 사람들에게 “평생에 한번, 한 달 정도, 아니면 단 일주일만이라도 국내든 국외든 순례길이든 올레길이든, 혼자서 여행하기를 바로 지금 ‘버킷 리스트’에 추가할 것을 권한다.   (다음호에 계속)      
 

순례길을 알리는 조가비와 노란 화살표
홀로 걷는 자. 외로워 보인다
둘이 걷는 자. 연인사이일까 아니면 부부일까

 

차백성 편집위원  cbs61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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