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하나, 성돌 하나도 예사롭지 않은 곳

풀꽃 하나, 성돌 하나도 예사롭지 않은 곳
백제고도  공주에서의 이틀간 

백제의 고도 공주에서 이틀을 보냈다.  이 작은 공간에 그득한 백제의 유산과  향기, 그리고 고도만이 갖는 묵중한  분위기는 천천히 움직이면서 찬찬히 보느라 시간이 훌쩍 흘렀다. 절절 끓는 온돌방의 놀라운 치유 효과와 현지인이 소개해준 시장통 맛집의 식도락까지…. 금동대향로를 못 본 아쉬움과 곧 시작될 신록 속의 화사한 꽃길은 다시 올 기약을 설렘으로 남긴다

공산성 금서루 방면의 야경

 

백제, 고구려, 신라! 신라가 건국한 기원전 57년부터 고구려가 망한 668년까지 약 700년간 세 나라가 각축을 벌였던 시기를 삼국시대라고 한다. 세 나라 중에 고구려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수나라 100만 대군을 전멸시켰고 무적의 당태종마저 안시성에서 패퇴시킬 정도로 강한 기상을 떠올리게 한다. 신라는 무엇보다 삼국을 통일한 나라이고 불국사, 석굴암, 다보탑 등 찬란한 예술과 유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백제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 처음에 고구려에서 갈려 나왔고 고구려의 남하압력으로 수도를 두 번이나 옮기다가 결국 의자왕 때 멸망했다는 정도 밖에 모른다. 다른 두 나라에 비해 존재감이 약하고 너무 저평가되어 있다. 
역사라는 게 승자의 기록이라서 패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폄하하고 무시하는 것이라 어쩔 수 없지만 백제는 결코 그렇게 저평가 받을 나라가 아니다. 무엇보다 70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다. 세계역사에서 700년이나 계속된 나라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만큼 백제가 강한 군사력과 튼튼한 국가운영 역량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백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뛰어난 문화와 예술, 기술력을 가진 나라였다. 

백제금동대향로의 감동 
얼마 전 국립박물관 삼국시대 백제관을 갔을 때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백제금동대향로를 처음 보았을 때 너무 아름다워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것이 정말 사람이 만든  것인지 믿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발견 당시 이것을 본 인부와 관계자들도 너무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향로는 우선 전체적인 구도가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하다. 위쪽에는 봉황, 아래쪽에는 용이 조각되어 있고 연잎으로 감싸진 몸통에는 39마리의 동물과 72개의 산봉우리, 폭포, 시냇물까지 있다. 조각되어 있는 하나하나의 사물이 모두 살아 움직일 것만 같다. 향로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고 하나의 우주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 좋은 것을 보면 가지고 싶은데 이것은 감히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다. 이것을 만든 나라가 바로 백제다. 백제에는 이외에도 훌륭한 예술품이 많다. 게다가 신라의 석가탑도, 일본의 많은 절들도 백제인이 만들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무려 1400년의 역사를 가져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기업인 일본의 곤고구미도 백제사람 유중광이 창업했다.

공주 가는 길 
신비한 나라 백제에 대해 더 알아보고 느끼기 위해 백제의 고도 공주에 가보기로 했다. 백제의 첫 수도는 지금의 서울지역인 위례성이었고 고구려의 압박으로 남하하여 옮긴 곳이 바로 공주다. 백제는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고 절치부심하여 무령왕 때는 국력을 완전히 회복하고 그 후 200여년을 더 번창했다. 
공주의 옛이름은 웅진(熊津)이고 순우리말로는 고마나루라고 한다. 대부분의 수도가 그렇듯이 공주도 금강이라는 강을 끼고 있다. 금강은 하류로 내려가면 백마강이라고 부른다. “백마강 달밤에~”라는 노래로 유명한 그 백마강이다. 이곳에 백제의 세번째이자 마지막 수도인 부여가 있다. 
이번 여행은 먼저 부여에 있는 국립박물관으로 가서 금동대향로 진품을 보고 다음에 공주로 갈 계획이었다(용산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향로는 모조품이다). 그런데 부여국립박물관은 신종코로나 때문에 휴관이라고 한다. 진품은 모조품과는 느낌이 많이 다를 텐데 못 보게 되어 아쉽다. 이 사태가 지나 다시 개관하면 꼭 가봐야겠다.

 

 

시인의 공간  
공주에는 볼 곳이 너무 많지만 그중에 대표적이고 의미 있는 곳 몇 군데를 선택했다. 무령왕릉과 공산성, 고마나루, 산성시장, 풀꽃문학관, 한옥마을 그리고 마곡사를 이번 여행의 목적지로 삼았다. 공주에서는 하루 자면서 이틀에 걸쳐 여유 있게 다녀보기로 했다.
공주에 들어서서 처음 간 곳은 풀꽃문학관이다. ‘풀꽃’ 이라는 시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이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고 강의도 하는 곳이다. 일본가옥을 개조하여 2014년에 문학관으로 개관했다. 문학관도 신종코로나 때문에 휴관이었다. 나태주 시인을 만났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다. 하지만 괜찮다. 다음에 다시 와서 “저번에 왔다가 못 뵈고 그냥 돌아갔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 미안해하며 더 반갑게 맞아주실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문학관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현관에는 시인이 타고 다니는 하늘색 자전거가 서 있다. 나 시인이 쓴 여러 편의 시들이 예쁜 꽃 그림과 함께 벽에 걸려있고 마당에는 시비로도 세워져 있다.
 
풀꽃.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오래 보아야 이쁘다. 너도 그렇다.

느려져야 보이는 것들 
꽃은 정말 자세히, 오래 보지 않으면 그 가치를 잘 모른다. 나이가 들면 대부분 꽃을 좋아하게 된다. 그 이유는 나이가 들면 뭔가를 천천히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게 되고, 그러면 안 보던 것, 못 보던 것을 보게 되어 자연스럽게 꽃이 가진 원래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미니벨로를 타는 것도 이렇게 꽃을 자세히 보는 것과 같다. 자전거를 천천히 타면 길가의 풍경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멈춰 서면 발아래에 있는 풀꽃이 보이고 자그마한 돌멩이도 보인다. 몇 십 년 동안 점과 점을 건너뛰면서 살던 삶이 미니벨로를 타면서부터는 점들이 이어지면서 선과 면으로 변하게 되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문학관에서 나와 무령왕릉 가는 길에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작은 꽃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아주 작은 연보라색 꽃을 피운 ‘봄까치꽃’이다. 지금은 이렇게 예쁜 이름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불알꽃’이라고 했다. 누가 그런 저속한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봄까치꽃은 크기가 0.5㎜ 정도로 정말 자세히 봐야 보인다. 보통 4월경에 피는데 볕이 잘 들고 따뜻해서 다른 곳보다 빨리 피었나보다. 꽃말은 ‘기쁜 소식’이다.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이제 바로 앞에 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꽃이라 그런 꽃말이 붙었나보다. 
흔히 개나리꽃, 벚꽃이 피면 봄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봄은 그전에 미리 시작된다. 1월말쯤 되면 아직 남아 있는 눈 속에 복수초가 노란 꽃을 피운다. 산에 가서 하얀 눈 속에 핀 노란 복수초를 보는 기쁨은 어디에 비할 수가 없다. 그 다음에는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연보라색 봄까치꽃과 빨간광대나물꽃이 피고 보라색의 제비꽃과 민들레가 핀다. 그리고는 서서히 나무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매화,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대략 이런 순서다. 그렇게 봄은 온다.

무령왕은 왜 일본에서 왔을까  
무령왕릉은 다행히 휴관은 아니고 신종코로나 때문에 무료입장이란다. 무령왕릉을 재현해놓은 모조전시관은 휴관이다. 이곳은 송산리 고분군으로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무령왕릉은 처음에는 왕릉인지 몰랐다고 한다. 그러다 1971년에 다른 고분의 보수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왕릉의 입구가 드러나 발견하게 된 것이다. 무령왕릉은 도굴이나 붕괴 같은 피해가 없이 완전하게 보존된 상태로 나타났고 무덤 안에 기록이 남아 있어 무덤의 주인공이 무령왕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출토유물이 4600점이나 되었는데 모두가 중요한 유물들이다. 그중에는 지금 공주의 상징인 무령왕 금제관식도 나왔다. 금제관식은 왕관에 달려 있는 불꽃모양의 장식품으로 생명, 재생, 광명을 의미한다. 사진으로만 보았는데도 너무 아름다웠다. 실물이 공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곳도 휴관이라 볼 수 없었다. 이번에는 공주에 와서 백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느끼는 것으로 만족한다. 
한번에 다 보려고 하면 설렁설렁 보게 되어 깊이 느끼지 못한다. 조금은 아쉬움이 남아야 계속 생각하게 되고 그래야 다음에 또 오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신종코로나로 나라 안이 거의 패닉상태이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지나갈게 아니겠는가? 그때 다시 와서 여유롭게 찬찬히 금동대향로도 금제관식도 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무령왕릉을 포함한 고분군을 크게 한바퀴 돌아보았다. 고분군은 하나의 작은 동산이다. 무령왕릉은 안에 들어가는 입구가 있기는 하지만 보존을 위해 1993년에 영구적으로 출입이 금지되었고 대신에 모조전시관을 만들어 이해를 돕고 있다. 
백제는 고구려에 밀려 공주로 수도를 옮겼을 때 국력이 많이 약했지만 제25대 무령왕이 즉위하면서 다시 중흥하기 시작한다. 안으로는 국력을 키웠고 밖으로는 국토를 넓혔다. 안내문을 읽다 신기한 내용을 보았다. 무령왕이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형인 동성왕이 죽자 일본에서 건너와 즉위했다고 한다. 즉위 전까지 기록이 없어 그사이 성장과정이라든가 일본과의 관계 등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당시에 백제와 일본은 지금의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웠던 관계가 분명하다.

 

 

국난 극복의 의지가 결집된 요새  
다음 목적지는 공산성이다. 공산성도 무료입장이다. 오늘은 평일인데도 입장객이 상당히 많다. 운동복 등 가벼운 차림인 것을 보니 이곳의 주민들 같다. 공산성은 성벽의 길이가 총 2.6Km이고 능선을 따라 오르내림이 심해 성벽을 따라 한 바퀴만 걸어도 작은 산을 등산하는 셈이라서 주민들의 건강산책코스가 된 것 같다. 공산성의 높은 곳인 공산정에 올라서면 금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강철교도 보이고 미르섬과 시가지가 잘 보인다. 공산정에서 바라 본 금강은 흐름이 느려 멈춰 있는 것 같다. 마치 긴 호수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공산성은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을 뺏기고 지금의 공주로 옮겨오면서 만든 백제의 왕성이었다. 가만히 보면 공산성은 정말 천혜의 요새다. 한쪽은 금강이고 다른 쪽은 산들로 둘러 쌓여 있어 수비하기에는 최적지다. 실제로 성벽을 따라 한 바퀴 걸어보니 성벽에 면한 경사가 급해서 공격하는 쪽에서는 난공불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실제 전투가 벌어졌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 공격하러 올라오다 기진맥진했을 것이다. 
공산성은 백제시대에는 토성이었는데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공북루 안쪽으로 성안에 꽤 넓은 평지가 있는데 이곳에 백제 왕궁이 있었다고 한다. 안내책자에 백제의 숨결을 느끼면서 천천히 걸어보라고 쓰여 있어 당시를 생각하며 느리게 걸었다. 당시 싸움에 져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겨왔을 때 백제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전쟁에 진 두려움과 패배감도 있었고 다시 일어서보자는 희망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왕은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국민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신하들과 백성들은 그 사과를 받아들여 일치단결해서 국난을 극복하자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랬으니 백제가 이곳에서 다시 일어선 게 아니겠는가? 안 그랬다면 아마 공주가 백제의 마지막 수도가 되었을 것이다. 어느 역사를 봐도 국가의 지도자는 국난을 당했을 때 이렇게 해야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금방 망해버린다. 역사는 돌고 돌기에 역사를 배우고 공부하는 것이다.

황성옛터의 저녁 나그네 
어느덧 저녁시간이 다 되었다. 자전거도 타고 걷기도 많이 했더니 속이 출출했다.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다 현지인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다 싶었다. 마침 공산성입구 매표소에 직원이 있길래 공주에서 맛있는 게 뭐냐고 물어보았다. 직원분은 두 가지를 추천해주었는데 하나는 산성 근처 시장정육점식당이라는 곳의 육회비빔밥이고 또 하나는 시장 안에 있는 청양분식의 잔치국수가 맛있다고 했다. 그럼 오늘 저녁은 육회비빔밥을 먹고 국수는 내일 먹어야지.  식당은 성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육회비빔밥을 주문했더니 선지국과 함께 나왔다. 참기름과 고추장을 한 숫가락 넣고 잘 비벼 한입 먹었다. 그런데 식감이 아주 독특했다. 육회 사이로 뭔가 아삭한 것이 씹혔다. 자세히 보니 밤을 잘게 썰어 놓았다. 공주의 특산물이 밤이라서 이렇게 비빔밥에 넣었구나. 생각치도 못한 식감이고 맛도 좋았다. 하나도 남김없이 싹싹 긁어서 먹었다. 
식당을 나오니 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바로 앞 공산성에는 야간조명이 켜져 있다. 금서루부터 성벽을 따라 조명이 비춰져 있는데 멋있다.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밤의 산성에는 관람객이 아무도 없고 나 혼자인 듯 하다. 천천히 산책하며 공산성의 멋진 야경을 찍어보았다.

 

 

온돌방 요법  
이제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오늘의 숙소 한옥마을로 향한다. 오늘 묵게 된 한옥마을은 관광시설이기도 하지만 실제는 숙박시설이다. 온돌방인 한옥 숙박시설에서는 처음 자보는 것이라 은근히 기대가 됐다. 아까 들어올 때 아궁이에 장작이 쌓여있던 것을 보았는데 지금 그 장작을 때고 있는지 바닥이 절절 끓는다. 요를 깔기 전에 맨바닥에 그냥 누워보았다. 등이 따뜻하니 몸의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다. 잠도 솔솔 온다. 오늘밤에는 오랫만에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은 대부분 침대생활을 하기 때문에 온돌이 낯설지만 예전에는 다 이런 온돌에서 잤다. 그러고 보니 이런 온돌방에서 자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침에 아주 상쾌하게 잠에서 깼다. 바닥이 절절 끓는 온돌방에서 푹 자고 일어나니 몸이 날아갈 것 같다. 수십년 간 긴장으로 뭉쳐있던 등 근육이 온돌방의 하루 숙면으로 다 풀린 느낌이다. 
체크아웃을 하고 차에서 자전거를 꺼내 명승길이라고 안내되어 있는 자전거길을 따라 한바퀴 돌았다. 공주는 자전거도시답게 자전거길이 아주 넓고 잘 정비되어 있다. 한옥마을에서 출발해 먼저 고마나루 전망대로 출발했다. 전망대 가는 길은 솔밭 사이에 난 운치 있는 길이다. 
전망대에 서니 바로 앞이 금강이다. 다리위에서 보던 금강과 눈앞의 금강은 또 다른 느낌이다. 걸어서 강물까지 가는 길에 갈대숲에서 산책 나온 고라니 한쌍을 만났다. 한 20m 정도 떨어졌을까? 녀석들은 도망도 안가고 서서 나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고 있다. 내가 해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가보다. 평화로운 금강의 아침 풍경이다. 

여기서 살고 싶다  
백제큰길을 따라가니 웅비탑이 나왔다. 웅비탑은 충청남도 개도 100년을 기념해 만든 큰 조형물인데 백제의 상징인 대형 금동대향로와 금제관식 모형이 함께 있다. 웅비탑 아래에는 벌써 홍매화가 꽃망울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한 보름 후면 활짝 필 것 같다. 빨간 매화꽃이 필 때 사진을 찍으면 좋은 작품이 될 것 같다. 
다시 큰길로 나와 정자산 터널을 지나 백제큰다리를 건너 강변을 따라 가다 금강철교로 건너왔다. 금강철교 가운데에서 보니 공산성의 공산루, 공북루 그리고 산성의 북쪽 성벽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공산성은 역시 천혜의 요새다. 
철교를 건너면 바로 공산성이다. 공산성 앞을 지나 제민천을 건너면 공주중학교가 나오는데 교문 옆에 박찬호 선수의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아주 자랑스러운 선배겠다. 다시 무령왕릉 앞을 지나 한옥마을로 돌아왔다. 제민천부터 여기까지는 길에서 단 한명도 마주치지 못했다. 정말 호젓하다. 이번 명상길 코스는 1시간 정도 걸렸다. 
이번에는 공주보까지 가서 금강 자전거길을 따라 1시간 정도 더 달렸다. 이 길은 부여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금강종주길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어 한적했다. 이른 아침 깨끗한 공기에 밝은 햇살을 받으며 페달을 밟으니 상쾌하고 평화롭고 포근한 느낌이 몸속에 가득 찬다. 이런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문득 공주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기 좋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공주에서 살면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 질 것 같다. 

 

 

50년 전통의 국수집 
자전거를 차에 싣고 아침을 먹으러 산성시장 안에 있는 청양분식을 찾았다. 산성시장은 아침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다. 오늘이 장날인가? 공복에 2시간 동안 라이딩을 하고 나니 배가 고파 잔치국수 큰것을 주문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 안에는 면과 함께 깨, 파, 김 그리고 약간의 다대기가 들어 있다. 내용물을 섞기 전에 먼저 국물을 마셔보았다. 국물은 아주 깊은 맛이 났고 면도 적당히 부드러운 게 식감이 매우 좋다. 
이 집은 은둔식당 프로그램에도 나왔다고 한다. 개업한지 50년이나 되었다고 하니 국수 만들기에서 도의 경지에 올랐을 법도 하다. 하루에 100그릇만 만들었어도 50년이면 무려 150만 그릇을 넘게 만든 것이다. 깊은 맛을 가진 잔치국수를 먹고 나니 속이 든든하고 행복해진다. 시장 통으로 나와서는 알이 아주 큰 공주밤과 밤막걸리를 샀다. 나중에 집에 와서 먹어보니 밤도 막걸리도 아주 맛이 있었다. 공주 가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봄에는 마곡사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마곡사로 향했다.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고 해서 마곡사는 봄에 황벚꽃, 산수유, 자목련이 아름답게 피어 경치가 뛰어나다고 한다. 마곡사로 올라가는 산길에서 봄의 전령 ‘복수초’를 발견했다. 어제 복수초 생각을 했더니 이렇게 직접 내 앞에 나타나 준 모양이다. 
마곡사는 오래된 사찰답게 조용하고 차분해서 깊은 산속에 있는 산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며 김구 선생이 잠시 출가해서 은거했던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사찰 가운데를 시냇물이 흐르는데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하다. 많은 산사들이 그렇듯 이곳도 삿된 것이 하나도 없다. 지금은 나무에 꽃도 이파리도 없어 다소 적막하지만 꽃이 피는 봄에는 또 다른 분위기일 것이다. 
해탈문을 통과해 천천히 둘러보았다. 특이한 모양의 범종루도 보고 구석구석 다 돌아보았다. 경내는 그다지 넓지 않아 불전에 들어가 절을 하지 않으면 1시간 정도면 다 볼 수 있다. 시간이 있으면 나발봉까지 올라가는 3시간짜리 등산을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나오다 절 입구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시며 어제오늘 이틀간의 공주여행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뭔가 다른 무게감
공주는 지금까지 다녀본 지방과는 뭔가 다르다. 격이 높다고나 할까? 많은 지역들은 자기지방을 알리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고 꾸미는데 이곳은 그런 게 없이 그냥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굳이 꾸미지 않아도 괜찮다는 과거 수도로서의 자신감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한 나라의 수도였던 곳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분위기가 가볍지 않고 중후하다. 그런 중후함을 가지고 있어서 수도가 된 것인지, 수도여서 그런 중후함이 생긴 것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격이 다르다.
이번 공주여행은 대만족이다. 비록 보고 싶었던 금동대향로와 금제관식 실물을 못 보았지만 백제의 고도에서 백제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다니며 느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게다가 따뜻한 온돌방에서 푹 자고 맛난 음식도 먹었으니 더 이상 바랄게 없다. 
공주는 정말 조용하고 깨끗하다. 길을 걷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여유로워져 그것으로 그냥 힐링이 된다. 다음번에는 공주도 다시 와보고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부여에도 꼭 가봐야겠다. 겨울이 가고 봄이 되어 꽃이 핀 고도 공주, 부여는 어떤 느낌일까? 이렇게 다음번 여행계획까지 미리 만들어 놓았다.
영성과 행복을 이야기하는 미국의 작가 바바라 버거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삶 자체가 아니고 삶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공주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본 것은 다 같아도 느낌과 해석은 모두 다를 것이다. 그러면 결국 다른 것을 경험한 것이다. 똑같은 장소도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심지어는 날씨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해석이 다르다. 특히 오래된 고도는 생각할게 많다. 시간을 넘어 당시 백제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나름대로 생각하고 해석해보면 그 시대를 살아본 것이 될 수 있다. 이래서 고도여행은 의미 있고 흥미롭다. 공주는 또 가고 싶은 곳이다. 

 

금강철교에서 바라본 공산성. 난공불락 요새의 위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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