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길은 새재길과 금강 자전거길을 연결한다. 새재길 방면에서 차례로 쌍천-달천-성황천-보강천-미호천 5개의 하천을 거쳐가 ‘오천(五川)’으로 명명되었다. 오천길 덕분에 서울, 부산 어디서든 군산까지 갈 수 있게 되었으니 금강유역 주요도시가 모두 국토종주길 네트워크에 포함되었다.
오천길의 동단은 백두대간 이화령 바로 아래 괴산 연풍면으로 첩첩산중이다. 여기서 한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모래재(228m)를 넘어 저지대 평야로 들어서서 증평, 청주를 거쳐 세종에서 금강을 만나게 된다. 모래재를 기준으로 산악지대와 평야지대가 판이하게 대비되고, 벚나무 가로수 구간이 많아 봄이면 전장 105km 태반이 꽃길로 단장된다. 화사한 꽃길이 좋다면 오천길 여행은 봄날이 가장 적당하겠지만 겨울에는 다른 어느 곳보다 인적이 끊어져 조용하고 한가로운 운치를 즐길 수 있다.
연풍~괴산
백두대간 턱밑, 하늘을 가리는 고산들 사이에서 기적처럼 형성된 작은 들판에 연풍(延豐)이 있다. 지금은 괴산군에 딸린 작은 면이지만 조선조에는 별도의 현(縣)이었고, 풍속화가 김홍도가 잠시 현감으로 있기도 했다. 김홍도가 연풍현감 시절에 그 유명한 씨름도를 그렸다고 해서 ‘김홍도씨름장’까지 생겼다.
오천길 출발점인 행촌교차로 인증센터도 실제 교차로에서 200여m 떨어진 씨름장 옆에 있다. 인증센터 스탬프는 그나마 잘 찍히지만 바로 옆의 안내판은 엉망으로 갈라져 민망할 정도다. 다행히 프레스타 밸브 전용 펌프는 잘 작동한다.
종주길은 연풍 마을을 벗어나 남한강의 말단 지류인 쌍천을 따라간다. 평일의 겨울 아침, 길에는 느리게 오가는 ‘산불지기’ 차량 외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파란 안내선은 지워졌다 나타나길 반복하니 이 길도 늙어가는 모양이다. ‘속리산 둘레길’과 겹치는 구간이 많아 자주 있는 둘레길의 안내도와 이정표도 도움이 된다. ‘한참 떨어진 속리산이 여기에?’ 싶기는 하다.
적석리~송덕리 사이 약 6km는 도로 갓길이다. 갓길이 좁긴 하지만 차량 통행이 드물고 노면이 괜찮아서 큰 부담은 없다. 파란 안내선과 자전거 노면표시도 아직은 선명하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골골이 박혀 있는 마을은 여전히 동면중이다. 다들 전기와 가스로 취사를 하니 굴뚝에 오르는 연기도 없이 적막에 잠겨 있다.
장암리에서 한적한 농로로 들어서자 저 편에서 개를 동반한 자전거가 다가온다. 덩치 큰 개여서 목줄이 있는지 눈여겨보며 만약을 대비해 개퇴치기를 미리 꺼냈다. 다행히 목줄을 했지만, 여러 번 실감했듯이 시골길에서는 풀린 개가 최악의 공포다.
고속화된 34번 국도를 지나면 왼쪽으로 군자산(947m)이 하얀 눈을 이고 까마득히 솟았다. 군자산 동쪽으로는 절경의 쌍곡계곡이 흘러내려 쌍천으로 합류한다. 한적한 농로에는 자전거, 자동차, 농기계 공용도로 표지판이 어린 아이 그림처럼 너무 직관적이라 허수아비처럼 허허롭고 묘하게 정겹기도 하다.
칠성면소재지 강변에는 파크골프와는 조금 다른 ‘그라운드골프장’이 있고 들판이 상당히 넓다. 그래봐야 폭 4km 정도인데 워낙 첩첩산중이라 넓이가 과장되게 느껴진다. 이윽고 괴산호에서 흘러내린 달천에 합류하면서 강줄기는 꽤나 굵어졌다. 달천 합수점에서 괴강교까지는 급사면과 마주하고 자연스런 둔치가 발달해 경치가 빼어나다. 강변에는 카라반 캠핑장이 들어섰고 괴강삼거리 한쪽에 괴강교 인증센터가 있다. 부스 내부는 깨끗하지만 잉크가 말라 스탬프는 희미하다.
괴강교는 괴산에서 따온 이름이지만 발음부터 ‘괴이하게’ 느껴지고, 주변 경치가 빼어나도 스쳐가는 길목이라 오래 머물지 않게 된다. 바로 옆에 나란한 괴강교가 두 개 더 있고 고속도로와 진배없는 34번 국도의 굉음이 발길을 재촉한다.
34번 국도가 지나는 신구 동진교를 지나면 괴산읍내를 관류하는 동진천을 따라 데크로가 위태롭다. 500m 정도 되는 이 데크로는 오천길 전체에서 유일한 절벽 고가로다. 데크로를 지나면 읍내를 통과하게 된다. 첩첩산중의 작은 소읍이지만 둔치가 잘 가꿔져 있고 고급스런 고층아파트도 즐비해 대도시의 세련미가 묻어난다.
괴산~증평
괴산읍내를 벗어나면 이번에는 성황천 주변에 형성된 작은 들판을 지난다. 둑길은 조붓하고 간혹 산책객들만 지날 뿐 바람소리만이 귓전을 가른다. 종일토록 강한 서풍과 남서풍이 불어 혹독한 맞바람에 전진은 더디고 체력은 뚝뚝 떨어진다.
문법리에서 둑길이 끝나고 옛 34번 국도로 들어선다. 하필 갓길 쪽에 도관 매설 후 가포장 상태가 그대로 남아 주행이 아주 불편하다. 차선과 안내선도 사라진 이런 구간이 4km나 이어진다. 맞바람과 거친 노면에 지쳐 화산리의 작은 정류장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요즘은 산간마을의 정류장도 비바람과 햇빛을 막아주는 밀폐형이라 여행자의 쉼터로 좋다. 낯선 정류장에 앉아 낯선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격세감과 함께 다단한 여수(旅愁)가 밀려온다.
이제부터는 오르막이 점점 체감된다. 오천길 최고 지점인 모래재(228m)를 향해 올라가는 중이다. 강줄기를 따르는 여정에서 고개는 언제나 분수령이다. 모래재는 그다지 높지 않으나 한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루니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작은 고개를 사이에 두고 물과 풍토가 바뀌고 지역이 나뉘는 것이다. 모래재 너머도 괴산 사리면이지만 사실상 증평과 청주 생활권이고 너른 들판이 펼쳐져 ‘산골짜기 괴산’과는 지형이 판이하다.
모래재를 넘으면 도로와 분리된 양방향 자전거길이 나 있어 한층 안심감을 준다. 괴산쪽에서는 완만하게 올라온 것과 달리 증평 방면으로는 급하게 내려가 사리면을 통과하면 이내 금강 줄기인 보강천으로 접어든다. 이제 증평 땅으로, 들은 넓어지고 산은 훌쩍 낮아져 산악지대를 완전히 벗어났음을 말해준다.
증평읍내가 가까워질수록 길은 반듯해지고 산책객도 드문드문 보인다. 남쪽에서 흘러온 삼기천 합수점을 지나면 증평읍내다. 1개읍 1개면의 초미니 지자체인 증평군은 면적 82㎢로 대도시의 2개 구(區) 크기이며 울릉도 다음으로 작다. 원래 괴산군에 속했다가 최근인 2003년에 독립했으니 아직도 존재감이 크지 않다.
읍내 둔치는 자연스러움을 잘 살린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독특한 디자인의 보행교인 ‘김득신다리’도 새로 놓였다. 김득신은 조선 중기 증평 출신으로 ‘독서왕’으로 유명하다.
키 큰 미루나무가 도열한 강변 산책로는 아주 일품이다. 증평소방서 옆 강변에 자리한 백로공원 인증센터는 주위가 잘 가꿔진데 비해 내부 관리가 엉망이어서 매우 아쉽다.
<평점>
항 목 |
평 점 |
특 이 사 항 |
노면상태 |
6 |
노후한 구간과 가포장 상태의 갓길 다수 |
안전시설 |
6 |
분리대 없는 갓길, 지워진 차선 등 |
화장실, 쉼터 |
8 |
적절한 간격으로 있으며, 간이 화장실도 깨끗한 편 |
인증센터 |
6 |
마모가 심한 재래식 스탬프와 마른 잉크 |
문화시설 |
6 |
연풍공원, 증평자전거공원 |
숙박시설 |
7 |
연풍면소재지, 괴산읍, 증평읍 |
식당, 매점 |
8 |
연풍면소재지, 칠성면소재지, 괴산읍, 증평읍 |
지선 노선 |
7 |
새재길, 증평 삼지천자전거길 |
연계 관광 |
8 |
수옥폭포, 쌍곡계곡, 괴산호 |
경관 |
7 |
연풍/괴산읍/증평읍 벚꽃길, 괴강교와 데크로, 증평 고목 가로수 |
총 점 |
69 |
조용하고 소박한 산간풍경, 벚꽃길, 인증센터와 노면 관리는 다소 부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