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TRAVEL
5대강 발원지를 찾아서 下강물도 삶도 청·탁, 완·급이 뒤섞여야 풍족해지리라

5대강 발원지를 찾아서
강물도 삶도 청·탁, 완·급이 뒤섞여야 풍족해지리라

한강 - 한반도의 중심을 적셔온 생명줄
정감 있는 포용의 강, 시원부터 남다르다


한반도의 중심부를 흐르는 한강은 삼국시대 이후 줄곧 민족사의 중심을 상징했다. 한강유역을 차지하는 것이 곧 한반도의 패권을 뜻했다. 서울이 한강유역에 있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도시 태백의 함백산 금대봉 기슭 검룡소에서 발원한 강줄기는 장장 500km를 흘러 반도를 종횡하며 격동의 역사무대가 되고, 숱한 삶들의 사연을 보듬는다

 

산악지대에서도 능선을 비켜 돌고 돌아 부드럽게 흐르는 한강(평창 칠족령)

 

낙동강 발원지 황지. 검룡소와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검룡소에서 흘러나온 지하수는 작은 폭포를 이루며 서해까지 500km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한강 하면 도시, 특히 서울이 떠오른다. 서울을 동서로 흐르며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예술 작품의 무대가 되면서 한강은 수량이 풍부한 광폭의 대하, 세련된 도시의 강, 산업화의 강, 현대의 강 같은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하지만 서울을 지나는 한강은 고작 40km 남짓, 전체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한강의 진면목은 어쩌면 서울에 도착하기 전에 흐르던 모습에 있다. 서울 이후의 한강은 그동안 흘러왔던 온갖 간난고초와 파란만장한 역정의 대단원일 뿐이다. 길이 500km의 강이 이렇게 다채롭고 천변만화의 표정을 가진 경우가 또 있을까. 낙동강은 한강보다 조금 더 길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유장하다’는 하나의 표현으로 수식이 가능하다. 한강의 야누스 같은 모습은 멀리 갈 것도 없이 서울 동쪽의 하남 구간만 봐도 알 수 있다.
 


남한강 vs 북한강
한강은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한 남한강과 북한강의 종합이다. 그래서 하나의 강, 한강일까.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은 내내 거친 산악지대를 꿰뚫고 쾌속으로 흐른다. 강폭은 좁고 강변은 바로 산기슭이다. 서울 지척의 양평~춘천 간 북한강만 봐도 그렇다. 단순 명료한 물줄기는 최대한 직선으로 빠르게 협곡을 흘러 남성적인 힘과 박력을 발산한다. 


남한강은 북한강의 정반대다. 원주에서 양평에 이르는 구간이 대표적으로, 고만고만한 구릉지와 작은 들판을 적시면서 무한히 여유롭다. 강변에는 모래밭이 펼쳐지고, 얕은 곳을 지날 때는 여울로 부서지며 물비늘이 일어나 차분하고 정겨운 분위기다.
남한강이 조금 더 길어서 한강의 본류를 이루고 북한강은 한강의 제1지류지만 남성미와 여성미의 상반된 두 강은 양평 두물머리에서 이윽고 한 몸이 되면서 중화된다. 


팔당호는 팔당댐으로 인해 생겨난 인공호수지만 남한강 북한강이 합체하는 거대한 소용돌이 혹은 대화합의 현장이다. 팔당댐~팔당대교 간에는 4km의 좁은 협곡이 있어 일종의 산도(産道)가 되어 마침내 우리가 흔히 아는 서울 한강을 낳는다. 산들은 저만치 물러나고 강폭은 갑자기 1km를 넘어서면서 유속은 멈춘 듯 느긋하다. 서울을 관통하는 저 여유롭고 풍성한 물길은 북한강의 거친 남성미와 남한강의 부드러운 여성미를 한데 담고 있는 것이다. 


한강은 ‘큰 강’
흔히 큰물이 들거나 흥건한 물을 보면 ‘한강’이라고 비유한다. 이런 언어습관은 낙동강 유역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한강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큰 강’이란 일반명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서울이 그냥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이듯 한강도 ‘크다’는 순 우리말 ‘한’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그래서 순우리말 지명은 ‘큰 강’이란 뜻의 ‘한가람’이었다. 고구려에서는 아리수(阿利水)라고 했고 중국 문헌에는 대수(帶水)로도 등장한다.   

그런데 왜 고대 중국 국명인 한(漢)을 이름으로 쓰고 있을까. 한자를 도입하면서 ‘한’과 같은 발음을 차용한 것일 뿐이다. 중국에도 한수(漢水)라는 강이 있는데 양자강의 지류에 지나지 않아 ‘한강’이 중국 지명을 가져온 모화사상의 발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깊은 숲속에 조용히 숨어 있는 검룡소
검룡소 가는 길은 키큰 전나무 숲이 운치 있다
함백산 북쪽기슭에 있는 추전역은 해발 855m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 역이다
함백산 근처에는 옛날 폐광이 많아 운탄로가 트레킹 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양대강이 발원하는 태백과 함백 지경 
남한강을 부드럽고 여성적이라고 했지만 그건 원주 이후의 얘기이고 그 위쪽으로 가면 강원도 내륙의 산악지대를 지난다. 여기서도 북한강의 거친 남성미와는 조금 달라서, 남한강은 극심하게 구불거리는 사행(蛇行)을 거듭한다. 산이 나오면 피하고 바위가 나오면 돌아 흐르다보니 잠시도 허리를 펴지 못한 채 은인자중, 불만을 삭이면서 마찰 없이 흐르는 것이다. 남한강의 관용적 여성미는 산악지대에서는 구불거림으로 표현된다. 

남한강의 발원지는 동해가 지척인 태백까지 거슬러 오른다. 태백은 해발 700m에 달해 국내에서 가장 높은 도시다. 태백산(1567m)과 함백산(1573m)은 예로부터 숭배를 받아온 특별한 산이다. 대개 ‘백(白)’자 이름이 들어간 산은 신성시되던 산으로, 태백산에는 하늘에 제를 지내던 천제단이 있고, 함백산에도 산신을 모시던 제단이 남아 있다. 이 두 산에서 국토의 양대 젖줄인 한강과 낙동강이 발원한다.  

낙동강 발원지 황지(潢池)는 태백시내에 있고 한강 발원지 검룡소(劍龍沼)는 함백산 북쪽의 금대봉(1418m) 기슭, 해발 940m 지점에 있다. 일대는 희귀 동식물이 많아 태백산국립공원에 포함되어 특별 보존되고 있는데 원시림이 울창한 골짜기에 바위틈으로 물이 솟아나는 검룡소는 생각보다 소박하다. 지름 3m 정도에 수심은 1m 남짓으로 물이 맑아 바닥이 훤히 보인다. 골짜기 상류의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이곳에서 솟아나는 것으로 사계절 9°C의 지하수가 흘러넘친다. 상류에도 샘터가 있지만 1987년 국립지리원에 의해 최장 발원지로 공식 인정받았다. 

500km가 넘는 대하의 발원지 치고는 높은 고도가 아니지만 그만큼 강물의 흐름이 유순하다는 뜻도 되겠다. 하지만 함백산과 태백산 일원에는 ‘국내최고’의 기록을 가진 곳이 많다. 함백산은 국내 6위의 산이지만 정상까지 길이 나 있어 자동차나 자전거로 오를 수 있는 국내최고 지점이다. 그 아래 만항재(1330m)는 국내최고의 고개이고, 만항재~태백선수촌 간 도로는 해발 1300m를 넘는 국내최고의 스카이라인이다. 태백산 정상 아래의 망경사(1460m)는 국내최고의 사찰이며, 함백산 아래 추전역(855m)은 국내최고의 철도역이다. 

더 높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을 제치고 함백·태백에 이런 ‘국내최고’의 기록이 많은 것은 이들이 ‘인간적이고 유순한’ 산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거부하지 않고 끌어들이고 포용하는 산, 이미 고지대인 태백시내에서 보면 어린 아이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무던한 산이기에 사람들이 기대살고 길도 난 것이다.
부드러움과 넉넉함으로 한국인을 길러내고 현대 한국을 일궈낸 한강은 그 시원부터 여유와 포용의 미덕을 품고 있다.

 

오른쪽 만항재에서 왼쪽 태백선수촌으로 이어지는 해발 1300m의 국내최고 하늘길. 함백산 정상에서 본 모습이다
고랭지밭이 이국적인 매봉산 바람의 언덕

 

 

 


금강- 평범한 산속 비범한 출발 
뜬봉샘에서 시작된 비단강, ‘무진장’을 적시다

국내 4위의 금강은 남부 내륙 최고의 산간지대인 장수군 신무산(897m)에서 발원해 395km를 흘러 군산~서천 앞바다에서 끝을 맺는다. 발원지인 뜬봉샘은 신무산 북쪽 해발 780m 지점에 있다.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과는 팔공산을 사이에 둔 이웃이다. 뜬봉샘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남도 최고의 산간오지인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을 적셔 고원의 젖줄을 이룬다   
 

 

무주~옥천 간 중상류에서 금강은 산악지대를 극심한 사행으로 휘감으며 가장 멋진 경관을 보여준다. 사진은 옥천 안남면 연주리에서 본 한반도 지형

 

 

비단결처럼 아름답다는 금강(錦江)은 흔히 충청도의 강으로 알려져 있지만 발원지는 전북이다. 그것도 남부지역 최고의 산간오지 중 하나인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에서 발원해 척박한 고원지대의 소중한 수원이 되어준다. 

발원지 뜬봉샘이 있는 신무산(神舞山, 897m)은 바로 옆에 팔공산(1147m)과 장안산(1237m) 같은 고산이 솟아 있어 산 자체로는 존재감이 없다. 등산 코스가 유명한 것도 아니고 백두대간 줄기에 솟은 것도 아니다. 게다가 산 아래의 장수읍 일대는 이미 해발 430m의 고원지대여서 897m 높이의 절반을 까먹어 실제 드러난 산체는 400m급이다. 바위라고는 볼 수 없는 무던한 육산인 이곳에서 천리 금강이 발원한 것은, 평범 속에 숨긴 비범의 깊은 뜻이 있다.


 
‘무진장’에서도 가장 깊은 곳 
무주, 진안, 장수 세 지방은 예로부터 내륙 최고의 산간오지였다. 줄여서 ‘무진장’이라고 부르는데 덕유산 일원의 백두대간을 끼고 있는 산악지대는 워낙 깊고 넓어서 손바닥만한 평지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들판이라도 있으면 모두 높은 고원지대에 자리해서 사방으로 험난한 고개를 넘지 않으면 닿기도 어렵다. 이처럼 산과 고개로 막히고 단절된 무진장 중에서도 장수는 평균높이가 가장 높고 가장 깊은 내륙에 자리한다.
장수군은 산악지대가 80%에 달하고 지대가 높아서 땅이 메마르고 경지면적이 좁아 예로부터 호남지방에서도 가장 빈한한 지방이었다. 지금이야 고속도로가 사통팔달로 뚫려 서울에서도 자동차로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관광휴양지로 각광받는다.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이 있는 신무산은 장수읍이 터잡은 고원지대의 남단에 있다. 산세로 보자면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을 안고 있는 팔공산과 장안산을 잇는 산줄기의 중간쯤이다. 두 거봉 사이에서 훌쩍 낮아진 덕에 신무산은 자연스레 분수령을 이루는데, 산 바로 동쪽에 분수령의 다른 말이기도 한 수분령(水分嶺, 539m)이 있다. 고개 정상의 휴게소에는 ‘구름도 쉬어가고 바람도 자고 가는 곳’이라는 문구가 요란하다. 고개에 떨어진 빗물은 단 1m 차이로 북쪽으로 흐르면 금강으로, 남쪽으로 흐르면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뜬봉샘은 수분령을 낀 수분마을 뒤편 강태등골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 

산세는 완만하고 평범하지만 ‘무진장’ 지역 최고 오지인 장수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서 발원하는 금강은 처음부터 날카로운 기운 하나 없이 무던한 품세로 천리길 대장정을 시작한다. 금강이 주는 온화함과 여유로움, 정겨움은 발원지인 뜬봉샘의 지형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철쭉이 화사한 논개생가와 기념관
신무산 주능선 바로 아래에서 솟아나 신비로움을 더하는 뜬봉샘
뜬봉샘 생태공원에서 뜬봉샘 가는 길. 뒤편의 강태등골을 따라 1km 정도 올라야 한다
신무산 아래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수분령
장수와 함양을 잇는 육십령(734m)

 

 

뜬봉샘 생태공원에서 30분 걸어야
수분마을 뒤쪽에는 뜬봉샘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아직도 공사가 진행중인 생태공원에서 뜬봉샘까지는 1.5km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공원은 물체험관, 꽃길, 야생화단지 등이 차분하고 정갈하게 조성되어 있다. 뜬봉샘까지는 실개천이 흐르는 강태등골을 따라 한적한 숲길을 올라야 한다. 

아무리 땅에서 솟아나는 샘물이라도 위쪽에 골짜기가 어느 정도 있어야 물이 모여들기 마련인데 뜬봉샘은 주능선 바로 10m 아래에 있어 대단히 특이한 경우다. 다른 큰 강의 발원지를 이루는 샘은 대개 능선의 7, 8부쯤에 있다면 뜬봉샘은 9.8부쯤 되는 것이다. 샘 위쪽에 좁은 주능선만 지날 뿐 근처에 바위조차 없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니 신기하다. 전설에는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나라를 얻기 위해 전국 명산의 산신에게 계시를 받으려고 다닐 때 여기 신무산에도 단을 쌓고 백일기도를 했다고 한다. 백일째 되던 날 골짜기에서 무지개가 피어오르더니 봉황이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이성계는 단 옆에 상이암(上耳庵)이란 암자를 짓고 이곳 샘물로 제수를 만들어 천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후 봉황이 떠올랐다고 해서 뜬봉샘(飛鳳泉)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신무산은 위압적이거나 빼어나지 않아서 신화의 산이라기보다 주민생활에 이익을 주는 일상의 산이다. 북쪽 기슭에는 무진장을 대표하는 거대한 한우목장(무진장축협 한우계열화사업소)이 들어서 있고 남쪽 산록은 산림자원의 보고다. 숲 관리를 위해 임도가 많이 개설되어 있어 SUV나 산악자전거로 답사하기도 좋다. SUV나 산악자전거라면 용계리나 수분령에서 임도를 통해 뜬봉샘 바로 근처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뜬봉샘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장수읍내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강의 면모를 갖춘다. 진안에 들어서서는 용담호로 산중호수를 이뤄 잠시 몸을 추스린 다음 무주 일원에서 극심한 사행(蛇行)을 거듭하다 충청도 금산으로 내려서면서 비로소 들판의 여유를 찾는다. 

장수에서 시작해 무주에 이르기까지 금강의 최상류는 산간고원지대를 청류로 흐르면서 척박한 대지를 적시고 곡식과 화초, 사람들을 길러낸다. 금강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후덕한 인심과 여유는 무진장의 심심산골에서 미리 갈고 닦아 무던해진 물결 때문은 아닐까.  
 

장수 뜬봉샘에서 100여km를 흘러온 충북 옥천 즈음에서 금강은 산간에서도 대하의 면모를 갖춘다
주능선에서 바라본 뜬봉샘. 저 작은 물줄기가 천리 금강의 시원이다
생가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논개 묘. 뒤편은 남편인 최경회의 묘
5월 중순 무렵의 봉화산 철쭉. 5월초에 만개한다
육십령 아래 광활한 목초지를 이룬 장수목장

 

 

 

 

 

 

 

김병훈 발행인  soolmeee@naver.com

<저작권자 © 자전거생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병훈 발행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