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종성(자유기고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요즈음 시끄러운 이스라엘 전쟁에 대하여 한마디 하고픈 욕구가 꿀떡 같지만, 이미 약속한 바대로 지난 호에 이어, 이번에는 대류가 아닌 압력에 의한 수질개선에 대해 알아보자.

바이칼 호수. 전 세계 담수의 20%가 고여 있다 
바이칼 호수. 전 세계 담수의 20%가 고여 있다 

전 지구상 물의 99%는 바닷물이고 담수는 대충 1%인데, 담수의 99%는 빙하이며 빙하의 90%는 남극대륙이고 9%가 그린란드, 1%가 나머지 빙하들이라고 한다.

빙하를 제외한 담수의 1%가 가장 많은 곳이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인 바이칼 호수이다. 시베리아 남부의 바이칼 호수는 전 지구상의 하천, 호수, 지하수 포함 액체형태 담수의 20%가 고여 있는 곳이다. 면적은 31,500평균 깊이 730m, 가장 깊은 곳은 1,642m인데 물의 양은 23,000이며 이를 톤으로 환산하면, 23조 톤(소양강댐 저수량 20억 톤의 12천배)이 된다. 좀 심하게 이야기하면 중생대에 유입된 물 분자가 아직도 안가라 강을 통하여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고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고들 한다.

 

수압에 의한 정화?

바이칼 호수의 물은 수면 아래 40m 깊이에 빠진 동전이 보일 정도로 세계적으로 맑은데 그 이유가 뭘까. 추측하건데, 그 비밀은 두 가지로 설명이 된다.

첫째는 호수 물의 대류이고, 둘째는 수압에 따른 자연정화이다.

우선 첫째 이유부터 따져보자. 이미 지난 호에서 언급한 대류현상부터.

중학교 과학시간에 배운 열역학 “1cal=4.2J”, “1J=0.24cal”라는 공식, 이게 무슨 뜻인고 하니, 1kg의 물체가 높이 0.1m에서 높이에서 떨어지면(1J) 1g의 물 온도를 0.24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100kg의 프로레슬러가 1m 높이에서 엉덩방아 찧어봐야 기껏 물 1L의 온도를 0.24높인다는 뜻이 되며, 이를 역으로 환산하면 물 1L의 온도 1높이는 열에너지만 갖고도 100kg의 프로레슬러를 4.2m 높이까지 들어 올릴 수 있는 운동에너지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바이칼 호수에 적용할 경우, 호수의 밑바닥 물 1%가 미세한 지열을 받아 1만 상승해도 호수 전체 물을 4.2m나 들어 올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운동에너지가 나온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밑바닥에서 1%의 물이 0.1올라도 대류가 일어나고, 수면에서 물 온도가 0.1만 내려도 대류는 일어나는데, 굳이 길쭉한 반달모양의 바이칼호수가 단층지괴라는 점과 시베리아의 날씨를 강조하지 않아도 그만한 대류의 원인은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 어쨌든 대류현상으로 물의 순환과 수면에서 녹은 공기 중의 산소가 깊은 곳까지 공급되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그렇다고 바이칼 호수 물이 그냥 맑아지기엔 조금 부족하다.

 

해양심층수와 바이칼의 공통점

그래서 두 번째 이유를 따져보자. ‘수압에 따른 자연정화현상!

해양심층수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해양심층수라고 하면, 수천 미터 깊은 곳의 해수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약 300미터 근처의 해수를 뜻한다. 해양심층수는 아주 깨끗하고 영양이 풍부하다고 한다, 왜 그럴까?

해구로 이어지는 심층수 
해구로 이어지는 심층수 

편의상 수심을 1,000m로 가정해보자. 고래나 오징어, 물개처럼 천해와 심해를 오르내리는데 적응된 개체는 다르겠지만, 1,000m 깊이라고 하면 수압이 약 100기압 정도 되므로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다른 현상이 나타난다. 심해에서만 사는 심해어가 수압이 낮은 해수면 위로 올라오면 조직이 파괴되듯, 거꾸로 1기압 하에서 생명작용을 하는 대부분의 생물개체의 세포조직은 100기압 정도의 수심으로 내려가면 파괴되어 버린다. 가령 먹다 남은 육류 찌꺼기만 하더라도 그 정도 깊이에선 수압 때문에 세포조직이 파괴되어 원초적 영양분 상태로 분해되어 버린다. 그러니 육상에선 더러운 것으로 취급하는 분뇨 같은 것도 그 정도 깊이에선 1기압 하의 세포상태가 파괴되고, 기생충 알과 세균도 파괴되어 기본 영양상태로 바뀌어 버린다.

그러므로 심해에서 1기압 상태로 끌어올린 물은 정말 깨끗하고(?) ‘영양이 풍부하다. 이 때문에 해양심층수로 화장품도 만들고, 영양음료수 혹은 양식업에도 쓴다. 수압에 의한 완전살균과 완전분해 된 영양! 해양심층수는 생명의 물이다. 그래서 두 해류가 만나 해양심층수가 솟아오르는 용승류 현상이 생기는 동해바다가 황금어장인 것이다.

바이칼 호수도 매한가지다. 수면 근처의 각종 유기오염물이 대류에 의하여 해양심층수(300m)보다 훨씬 더 깊은 1600m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온다고 생각해 보라. 생물개체 역할을 할 만한 것은 깊은 물 속에서 전부 파괴되고 원시적 기초영양분 형태로 바뀐 상태로 수면 쪽으로 다시 떠오른다. 그러니 그 물을 마시면 정말 깨끗하고 몸에 아주 좋다. 다만, 생물과 관계없는 공업용 오폐수 성분이 없다면 말이다.

결국, 바이칼 호는 호수로 흘러드는 물이 깨끗해서 맑은 게 아니라, 엄청난 깊이 때문에 생기는 압력 때문에 소금기 없이도 저절로 소독되어 깨끗하다는 것이다. 물론 대류현상이 그 동력이긴 하지만.

 

흐트러지는 낙하수

땅에서 1미터 높이에 설치된 물탱크 바닥을 뚫어 연결한 파이프라면 물은 쫙 하고 나온다. 그럼 파이프의 고도차가 20미터라면 어떨까? 혹시 여름철 폭우 때 높은 건물 측면의 빗물파이프 속에서 물줄기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쿵쾅 쌱”, “쿵쾅 쌱반복하며 나오는데, 파이프 아래쪽에선 연속적이지 않고 단절적으로 물이 나온다. 쿵쾅 쌱 거리면서 떨어지는 이런 현상을 두고 파이프 안이 막혀서 그런 줄로 알기 쉬운데, 실제로는 막혀있지 않다.

이는 물이 낙하할 때 먼저 떨어진 부분과 늦게 떨어진 부분 간에 중력가속도에 따른 속도차로 물이 격리되면서 그 격리된 부분만큼 파이프 내에 음압(陰壓)의 공간이 생겨서 이를 메우려고 한 박자씩 끊어졌다 연결되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를 유체의 속도변화에 의한 압력변화로 인해 유체 내에 공동이 생기는 공동현상(cavitation)으로도 설명하기도 하고, 속도가 빨라지면 밀도가 낮아지는데, 밀도가 낮아지기 위하여 갈라지고 쪼개져야 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긴 빗물 파이프를 낙하하는 물이 단절적으로 흐르고, 낙하 수가 방울져 떨어지는 것은 먼저 떨어진 부분과 늦게 떨어진 부분 간에 중력가속도에 따른 속도차로 물이 격리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긴 빗물 파이프를 낙하하는 물이 단절적으로 흐르고, 낙하 수가 방울져 떨어지는 것은 먼저 떨어진 부분과 늦게 떨어진 부분 간에 중력가속도에 따른 속도차로 물이 격리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이를 폭포에다 적용해보자.

어릴 때 장난삼아 언덕 위에서 아래로 오줌 갈기기를 많이 해봤을 것이다. 그냥 땅바닥이면 오줌줄기가 끊어지지 않고 연속적으로 땅바닥을 때리는데 비하여, 높은 언덕에서 아래바닥에 떨어질 땐 거의 방울방울이 되어 떨어지는 것 말이다. 옥상에서 쏟아 붓는 주전자 물줄기도 그렇다. 위에서 설명한 데로 중력가속도에 따른 부분별 속도차이 때문에 먼저 떨어진 부분과 늦게 떨어진 부분이 격리되기 때문인데, 그렇게 떨어진 물줄기 1차 방울 그 자체 내에서도 속도 차이 때문에 다시 2차 물방울로 격리되는 것을 반복하다가 결국 스프레이 수준으로 변하는 것이다. , 어느 정도 높이 이상에서 떨어지면 방울방울로 분해되다가 결국 안개방울 수준의 비말로 변한다.

그럼 (계단식 폭포가 아니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가령, 10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맞으면 어떨까? 물의 양이 충분히 많을 경우 물줄기 형태 그대로 유지되면서 떨어지지만 낙차가 크지 않아 타격력은 약해도 사람은 그대로 밀려난다.

100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맞으면 어떨까? 아주 위험할 것이다. 물줄기 형태는 비록 와해되어 물방울 형태이겠지만, 비교적 큰 물방울인데다 낙차가 크기 때문에 타격력이 엄청날 것 같다.

그럼, 1000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맞으면 어떻게 될까? 아주 안전하다.

낙차가 1000m 정도면 물방울 형태조차 와해되어 안개 수준으로 변하여 비산되므로 넓은 지역을 꾸준히 적실 뿐 타격력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이아가라(높이 57m) 폭포 맞으면 위험하지만(아래쪽이 침식되고 있다고 함), 엔젤폭포(높이 979m) 맞으면 그저 빠르게 축축해질 뿐이다. 세상이치라는 게 극과 극은 통하는 모양이다.

(왼쪽) 남미에 위치한 엔젤폭포(Angel falls), 세계에서 가장 길고 높은 폭포(낙차 979m)인데, 사진을 자세히 보면 수직 낙차가 가장 큰 곳은 폭포 아래에서 거의 안개나 구름 형태로 와해되어 적신 물이 다시 모여 흘러감을 볼 수 있다. (오른쪽) 반면 북미의 나이아가라 폭포는 현실적인 물로 느껴진다
(왼쪽) 남미에 위치한 엔젤폭포(Angel falls), 세계에서 가장 길고 높은 폭포(낙차 979m)인데, 사진을 자세히 보면 수직 낙차가 가장 큰 곳은 폭포 아래에서 거의 안개나 구름 형태로 와해되어 적신 물이 다시 모여 흘러감을 볼 수 있다. (오른쪽) 반면 북미의 나이아가라 폭포는 현실적인 물로 느껴진다

초고도 폭포의 비말현상을 공기의 저항으로 오인하기 쉬운데, 공기 저항이 없어도 위와 같은 중력가속도로 인한 분해 때문에 포말로 변한다. 다만, 아래쪽으로 갈수록 비말을 옆으로 넓게 퍼지게 하는 데는 공기의 저항 탓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폭포가 계단식이면 이러한 포말현상은 상당부분 없어진다.

 

우주의 선물

유사한 여담 몇 가지 추가한다.

첫째, 100기압이라고 하니까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운데, 보통 승용차 타이어의 공기압인 35psi2.5기압정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용이할 것 같다. 2.5기압 가지고 1.5톤의 차체를 지탱하는 것 말이다. 그렇다면 30기압도 결코 낮은 압력이 아니다. 하물며 100기압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둘째, 해양심층수를 퍼 올리려면 얼마만한 힘이 필요할까? 수심 300m일 경우 엄청난 힘이 필요할 것 같지만, 실은 해수면에서 선박 물탱크 높이까지 퍼 올리는 정도의 힘만 소요된다. 또한 파이프도 대단한 고압을 견딜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파이프 내외부간 수압이 같기 때문이다.

셋째, 수압으로 정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이펀 원리를 이용하여 하천바닥의 오니(汚泥)를 제거하는 방식도 생각해 둘 만하다. 예전에 팔당댐 바닥의 오니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제안된 건데, 별도의 동력을 들이지 않는 아주 합리적인 방법이다. 어릴 때 호스 끝을 입으로 빨아올려서 낮은 곳으로 물을 옮기던 경험이 없는 요즈음 아이들에게는 괜찮은 과학상식이리라 싶다.

넷째, 액체의 신비 중에 하나가 온도와 압력에 따른 부피변화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온도에 따른 부피변화가 큰데다 그마저도 압력/부피 간 상호 등가변환(P1V1=P2V2)하는 기체의 특성 때문에 온도와 압력에 따른 부피변화가 거의 없는 액체를 이용한 수압(유압)프레스가 공압프레스보다 조작이나 제어에 더 많이 활용된다.

길이에 반비례 하는 큰 힘을 얻는 지렛대현상을 작은 면적에 작용하는 큰 압력을 큰 면적에도 동일하게 작용하게 하는 파스칼원리로 치환하는 데는 압력에 따른 부피변화가 거의 없는 액체가 유용하기 때문이다. 막대를 통한 지렛대 원리보다 호스를 통한 파스칼 원리를 사용하는 것이 힘의 방향을 훨씬 더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다.

메탄하이드레이트와 망간단괴 같은 해저광물은 수압이 만들어낸 예술이다 
메탄하이드레이트와 망간단괴 같은 해저광물은 수압이 만들어낸 예술이다 

다섯째, 메탄하이드레이트와 망간단괴 같은 해저광물이다. 당장 채취하는 데는 아직 기술적 난관이 있고 비록 잠수정이나 로봇에 의지해야 하지만 땅속에 있는 것보다 눈에 잘 보인다는 게 어딘가. 채취기술만 된다면 빛을 비출 수 있는 물속은 땅속보다 채취하기에 훨씬 수월하다. 이게 모두 수압이 만든 예술 아닌가.

1기압 하의 상황에 길들여진 인간이 수백 기압 하의 수압에서의 물성에 대하여 느끼고 알기에는 너무 힘들다. 아마 우주로 진출하는 것도 1기압에 갇힌 경제학으론 가치와 목적이 설명 안 되는 인식의 틀을 깨는 것이리라. 그래서 필자는 액체를 우주의 선물로 보는 것이다. 하물며 물임에랴, 축복 아닌가

 

필자 김종성(자유기고가)
필자 김종성(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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