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차의 고백④ 2인용 자전거

잔차의 고백④ 2인용 자전거
야, 타! 친구야, 전국일주 떠나자!

 

우리는 지금 강화읍에서 출발해 월곶의 연미정을 지나 교동도를 향해 달리고 있다. 때는 2021년 4월 1일, WHO에서 공식적으로 코로나 19의 세계적 종식을 선언한지 보름이 지났다.
작년 초 시작된 코로나는 공기가 통하는 모든 곳은 무조건 습격하여 불안과 공포를 기약 없이 살포했다. 핵폭탄이 터진 것처럼 숨을 죽여야 했고 ‘뭉치’는 죽고 ‘모래알’이 되라고 강요당했다. 코로나에서 해방된 이제, 우리는 상류의 샘물을 찾아 역류하는 잉어처럼 조국의 산하를 마음껏 누빌 것이다.

두 사람이 앞뒤로 탄다고 해서 나를 탠덤바이크(tandembike)라고도 부르지. 하늘에는 백허그 상태로 두 사람이 즐기는 탠덤 스카이다이빙도 있다지. 2인용이라 핸들도 페어요, 안장도 페어인 지극히 정상적인 몸 상태인데도 ‘특수’라는 접두사에 기분이 거시기 하긴 하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설파한 텔레스 형이 진즉에 나를 만났다면 인간에 딱 맞는 ‘소셜 바이크’(social bike)라고 칭송하고 즐겨찾기 했을 거야. (혹시 궁금할 독자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텔레스 형은 테스 형의 제자의 제자쯤 되는 아리스토텔레스 형을 말하는 거임)
우리 종족은 주로 자연 풍광이 뛰어난 명당자리에 모여 살고 있지. 인간들은 이곳을 점령하고 ‘유원지’라 부르며 야생마처럼 암수 한 쌍이 우리 등에 올라타서 싸구려 사랑타령을 하곤 하지. 특히 봄, 가을에는 쉴 틈 없이 혹사당하는 통에 픽픽 쓰러지는 친구도 있지.
그럴 때는 구리스 한 모금만 마셔도 벌떡 일어날텐데. 개중에 가문 좋고 기량  뛰어난 기린아는 전세계 인간들이 겨루는 올림픽이라는 경기에 출전하는 호사도 누리지. 하긴 요즘은 그마저 없어지고 패럴림픽에만 종목이 남아 있다더만.

응? 나? 잘난체하는 나는 어떤 놈이냐고?
나는 ‘유원지용’이 아니라 한때 잘 나가던 ‘경기용’이었는데 튜닝해서 ‘여행용’으로 변신했지.
이번에는 좀 더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기로 했어. 보통 2인용 자전거는 인간 주인이 당근 2명이지만 나는 한명의 주인과 함께 매일 특별한 ‘게스트’를 모시기로 했지. 
통상 탠덤자전거의 앞좌석을 ‘캡틴’, 뒷좌석을 ‘스토커’라고 하는데 착안해서 본인을 ‘캡틴 Q’라 하고 나에게는 ‘teles-B’라는 철학적 이름을 붙여주었지. 

불혹이 엊그제 같은데 코로나 난리에 지천명이 온 줄도 모르고 있다가 후다닥 정신줄 챙기려는 캡틴 Q는 충무로 카피라이터라고 똥폼만 잡았지. 이렇다 할 카피 한 줄도 내세울게 없는 쥐포라이터라더라. 술꾼 컨셉의 닉네임과는 정반대로 럼주는커녕 식혜 먹고 딸국질 하는 서생이다. 허리가 쑤셔서 우연히 찾은 회현동에서 만난 안마 시술사 ‘철이’는 자전거 전국일주가 눈을 다치기 전 어릴 적부터 변하지 않은 꿈이라고 한다.
‘짜잔~’ 하고 뜨거운 뭔가가 스치고 지나간다(전문용어로 영감이라 하지). 이것이 하늘의 뜻이리라! 마음의 눈으로 보는 안장 위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서울을 출발해 서해안, 남해안 그리고 제주도를 돌고 동해안을 거쳐 서울로 복귀하면 2500km 정도 되려나. 이른바 그 이름도 거창한 한반도 해안 자전거 일주! 그것도 2인용 자전거로? 꿈도 야무지셔라!
단순무식한 생각이 순식간에 초가지붕의 박넝쿨 뻗듯이 우왕 번져버렸다. 출발 전날 캡틴 Q는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내게로 다가와 안장코를 매만지면서, “탈레스, 걱정 마! 잘 할 수 있어! 우린 드림팀이야”하는 헛헛한 소리만 지껄이고 멋없이 사라진다.
이봐요 캡틴! 이건 ‘연예’가 아니라 ‘다큐’라구! 우이 씨!
철이가 상경할 때 타고 온 열차가 지나는 한강철교 북단의 자전거도로가 우리 대장정의 출발역이자 종착역이 될 것이다.

첫날 첫 게스트로 안마 시술사 철이 씨를 모시고 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서해아라갑문까지 40km를 달렸다. 응원차 나온 세계 자전거 여행가 ‘White Star’가 앞장서고 우리 뒤로는 쟁쟁한 ‘열두바쿠’ 회원들이 호위무사가 되어준다. 철이 씨는 누에가 실을 뱉듯 술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신사용 자전거 괴롭혔던 무용담 등을….

2일차는 강화읍에 사는 해방둥이 이수복 시각장애우를 모시니 ‘마니MTB클럽’에서 안내를 자청한다. 코로나로 단절되어 답답했던 인심은 이제 봇물처럼 터져 더 애틋하고 찐하게 다가온다.
군대 행진처럼 척척 맞는 두 사람의 호흡이 페달을 통해 온 몸에 느껴진다. 캡틴 Q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뒤의 아저씨에게 봄기운에 기지개를 펴는 풍경을 실시간으로 중계방송 중이다.
나도 열심히 바퀴를 굴리면서도 어깨 넘어 귀를 쫑긋 세운다. 이렇게 신나고 진지한 캡틴 Q의 모습이 낯설다. 그리고 얘기 한마디 한마디가 주옥같은 ‘카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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