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산골의 오색찬란 단풍길, '봉평 덕거리 임도'

심심산골의 오색찬란 단풍길, '봉평 덕거리 임도'
가을단풍이 아름다운 산악코스로 평창 봉평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호에 흥정계곡 일대를 소개한 데 이어 이번에는 보래령터널과 운두령 사이의 남쪽 산기슭에 나 있는 덕거리임도를 가본다. 남향이라 햇볕이 잘 들고 낙엽송을 비롯해 수종이 다양해 오색단풍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꼭 단풍철이 아니라도 깊고 장쾌한 산악미를 감상하기 좋다 
글·사진 이윤기 이사   협찬 첼로스포츠

 코스   봉평면 ~ 보래령터널 ~ 덕거리임도 ~ 봉평면         거리   36.2km

 

평창군 봉평면에는 가을단풍을 즐길 수 있는 코스가 여럿 있다. 그중 대표적인 코스가 흥정계곡을 기점으로 구목령~생곡리~장곡현을 돌아 나오는 임도가 있고(지난호에서 소개), 또 하나는 홍천군 자운리에 위치한 불발령~보래령~운두령 코스다. 이들 코스는 한남기맥의 깊은 계곡을 이루는 흥정계곡의 골짜기에 있거나, 북사면에 있어 좀처럼 햇볕을 보기가 쉽지 않다. 낮아 보온에 신경 써야 한다. 때마침 우리가 방문할 때 갑자기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져 힘든 라이딩을 했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단풍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흐린 날보다는 햇볕이 잘 비추는 날을 택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 계획했던 불발령에서 운두령으로 이어지는 자운리 임도를 포기하고 햇볕이 잘 드는 덕거리 임도를 달렸다. 

햇볕 잘 드는 남서향 길 
가을에 강원도에 오면 계절이 한층 실감난다. 화려한 단풍의 자태 속에 가을의 정취를 듬뿍 느끼며 알록달록 고운 단풍을 숨긴 봉평 비밀의 정원을 훔쳐본다.  
봉평면 덕거리는 홍천군 내면 자운리로 넘어가는 보래봉 능선 아래에 위치한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다. 대부분이 산지를 이루는 산촌마을로 큰사태골, 작은 사태골, 숫가마골, 대박골, 장가골 등 작은 계곡이 많으며, 마을 양쪽으로 흥정천으로 들어가는 덕거천이 흐른다. 덕거리 임도의 대부분은 적당한 오르내림이 반복되며 임도 대부분이 남서향이어서 항상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라이딩 할 수 있는 코스다.
2009년 12월에 개통된 보래령터널이 이곳을 지난다. 예전 봉평에서 홍천군 내면으로 가기 위해서는 용평면에 위치한 계방산 자락의 운두령(雲頭嶺, 1089m)을 넘어야 했다. 운두령은 홍천군 내면과 평창군 용평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남한에서 자동차로 넘나드는 고개 중 함백산 서학로(1345m)와 만항재(1288m), 두문동재(1268m), 지리산 정령치(1172m), 한라산 1100고지 다음으로 높다. 항상 운무가 넘나든다는 뜻에서 ‘운두령’이란 지명이 유래했다. 그러나 봉평에서 홍천군 내면을 잇는 보래령터널이 개통됨으로써 사연 많았던 운두령은 추억의 고갯길로 남게 됐다.

 

엎드려 네 발로 걷는 대회?
봉평에서 424번 지방도를 따라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보래령터널로 가는 길이다. 약 8km 가면 보래령터널 입구가 보이고 우측으로 덕거리 임도를 알리는 안내판과 길이 나타난다. 안내판 지도에는 보래봉과 회령봉으로 이어지는 임도와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을 뿐, 우리가 가야 할 덕거리 임도는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지 않다. 
보래령터널로 올라오다 보면 도로 좌측으로 ‘대장산 대장비 네발길 발상지‘라는 표지석이 있다. 보래봉 줄기인 회령봉에서는 이색 걷기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그것도 두 발이 아닌 네 발로 걷는 ‘네발걷기’ 대회다. ‘세계 묻얼뫼 네발길 대회’는 2011년 10월 1회를 시작으로 매년 열린다. ‘묻얼뫼’는 회령봉(1309m)의 순 우리말이름이다. 네발길은 ‘두 손을 앞발로, 두 발을 뒷발로 하여 네발로 엎드려 땅을 안고 우주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로, 인체의 4대기관인 ‘머리 가슴 배 엉치’를 떠받치고 엎드린 채 땅을 기어가는 동작이다. 2011년 보래령에 폭 6m, 길이 250m의 코스를 만들고 여기에 평창강 모래를 덮었다고 한다. 재단법인 ‘세계총령무술진흥회’ 하정효 이사장이 처음 창설했다고 한다. 

달릴수록 깊어지는 풍경 
덕거리 임도는 약 22km로 보래령터널 입구의 들머리는 해발 830m, 최고고도 1040m, 날머리 660m로 상당한 고산지대다. 코스가 비교적 짧고 완만해 초보자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다. 
덕거리는 그 이름처럼 소박하면서도 정감 가는 풍경을 만들어 낸다. 초입에서부터 숲속의 흙길이 이어지며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온다. 깊게 들어갈수록 아름다운 풍광이 이어지고 운치도 깊어진다. 길을 돌아갈 때마다 매번 새로운 풍경이 나타나 지루하지 않다. 오지마을에서 만나는 가을 단풍의 비경은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화전민이 떠나간 자리 
덕거리 임도에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늘어섰다. 단풍나무는 붉게 물들었고, 자작나무는 하얀 수피를 드러내고 있다. 여태 초록의 기운이 여전한 젊은 나무가 있는가 하면, 고목들은 세월이 두께로 쌓여 검은 빛을 낸다. 노랗게 잎을 물들인 활엽수도 드문드문 섞여 있다. 해마다 가을철에 형형색색의 단풍을 펼쳐 보인다는 ‘오색단풍’ 그대로다. 그 위로 돌을 던지면 쨍~하고 부서질 것 같은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더없이 완벽한 산의 자태다.
길가에는 유난히 노란 침엽의 낙엽송 군락이 많다. 이는 오래전 화전민들이 살았던 흔적일 듯싶다. 과거 이 일대에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계곡 여기저기 화전밭을 일구고 살던 화전민들의 텃밭에 낙엽송을 식재했을 것이다. 노랗게 변하는 낙엽송 단풍도 볼 만하다.

하늘이 손에 잡힐 듯 
임도를 달리다 보면 산 능선이 높디높은 가을하늘과 맞닿아 있다. 해발 1000m 이상의 높이. 달리는 동안 내내 하늘이 손에 만져질 듯 가깝게 느껴지는 기분이 상쾌하다. 
구불구불한 임도를 돌아 나가면, 소나무를 비롯해 느티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때죽나무, 고로쇠나무 때로는 낙엽송과인 이깔나무 군락지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가을이면 노란빛에서 붉은빛으로 번져가는 단풍스펙트럼이 펼쳐져 단풍명소로 제격이다. 
가을은 낭만의 계절이며,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계절이다. 새파란 하늘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으며, 시원한 공기에 절로 심호흡을 하게 된다. 청량한 공기에 폐 구석구석이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가을에는 어디로 떠나든지 바람, 단풍, 낙엽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반겨준다. 

 

낙엽송의 매혹 
하늘로 거침없이 쭉쭉 뻗은 낙엽송 숲길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나 대나무와 같이 위엄과 기품이 있으면서도 왠지 포근한 느낌을 준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상록침엽수가 아닌, 때가 되면 노랗게 변하는 하록침엽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낙엽송은 ‘일본잎갈나무’라고도 부르는 일본 특산종으로 일제시기에 처음 도입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인공조림 된 나무 중에서 낙엽송은 면적으로 볼 때 엄청난 양이라고 할 수 있다. 빨리 크면서도 수간이 통직하고 짧은 기간에 많은 목재를 생산할 수 있으며 병충해에 강하기 때문이다. 초봄에 연두색 신록이 아름답고 가을에는 노란색 단풍 또한 어느 수종 못지않아서 이른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영롱한 햇볕을 듬뿍 받은 넓은 낙엽송 조림지는 그 색채와 함께 우리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준다. 
낙엽송 숲길을 만들면 훌륭한 생태공원이 될 것 같다. 낙엽송은 햇빛을 좋아해서 아무리 척박한 땅일지라도 굽는 일이 없이 시원스럽게 위로 뻗어 가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꽉 들어찬 낙엽송 숲 밑에서는 어떤 어린나무도 클 수 없다. 하늘로 곧게 자라는 나무모양 때문에 과거에는 전봇대나 건물을 신축할 때 공사판 지지대용으로 널리 쓰였다. 

산골에 달린 홍시를 보면서 
해발 1000m가 넘는 임도의 정상부로 오르는 길에 갑자기 모퉁이에서 오소리 한 마리가 뒤뚱거리며 내려와 깜짝 놀랐다. 야행성으로 알려진 오소리가 대낮에 일행의 거친 숨소리와 인기척에도 아랑곳 않고 골을 따라 내려온다. 땅딸막한 몸매에 살이 제법 통통하게 오른 모습으로 보일 듯 말 듯 짧은 다리로 몸을 뒤뚱거리며 무작정 앞만 보고 내려오는 모습에 일행은 넋을 놓고 바라볼 뿐이다. 
이제 저 아래로 덕거리 마을이 한 눈에 보인다. 전형적인 산촌마을이다. 산자락에 듬성듬성 흩어진 가옥과 잘 어우러진 고랭지밭 그리고 낙엽송, 굴참나무, 단풍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 군락은 알록달록 황금빛 단풍으로 물들어 산골마을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역시 봉평의 단풍은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 그 자체다. 봉평 일대의 산은 나무 수종이 다양하고 풍성한 만큼 단풍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알록달록한 절경을 뽐낸다. 새빨갛게 불타오르는 단풍나무 또한 군락을 이뤄 깊은 인상을 더해준다. 
임도가 끝나고 마을길을 따라 내려오는 길. 간간이 보이는 감나무엔 붉은 빛깔의 홍시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감이 익어 홍시가 될 때까지 매달려 있는 걸 보니 계절이 제법 깊어짐을 느낀다. 갑자기 나훈아의 노래 ‘홍시’가 떠오른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오면 눈 맞을 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 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 세라 사랑땜에 울먹일 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겠다던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산을 수놓는 빨간색과 노란색은 파란 하늘과 어울려 더없이 강렬해 보는 이의 눈을 자극한다. 때로는 감정선을 자극해 저절로 노래를 흥얼거리게 하고 때론 깊은 감흥에 젖게 한다. 겨울이 빨리 올까 조바심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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