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son brake!

 

일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코로나 공포로 지구상의 인간세계는 답답함과 피로감으로 휩싸여 있다. 거리두기와 집콕의 비상계엄은 오히려 우리 자전거족에게는 인간들에게 자유를 어필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고 강력한 족속들이 속속 등장한다.
카본 등의 고탄성 초경량 소재에 무선 원터치 변속시스템을 장착한 사이클파가 바람을 일으키며 스치고 지나간다. 절벽 같은 오르막도 성큼성큼 넘나드는 전기자전거파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러다가 하늘을 나는 ET 자전거파나 용궁을 여행하는 수중 자전거파도 나오지 않을까.

우리는 fixed gear bike 즉, 고정기어 자전거족이다. 33단 고수와 무적 파워 electric이 판치는 21세기에 1단? 무단으로 이 험한 무림 중원에서 살아가겠다고?
하긴 무식이 용감은 하다고 하더라. 알지! 잘 알고말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이 속도나 파워가 절대 권력은 아니리라.
인간들은 잘 난 자전거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디지털이 아무리 날고 또 공중부양해도 아날로그는 밑바닥을 평정하고 있지. 비록 지금은 마이너라고 손가락질 당하고 있지만 우리도 한때는 신화 같은 존재였고 반드시 부활하리라.
인간 달력 기준으로 1790년, 드 시브락 백작의 발차기 신공과 함께한 원시 자전거족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앞바퀴축에 페달이 날개처럼 돋아났지. 따지고 보면 그것이 고정기어의 시발이었어. 1869년 윌리엄 밴 안덴이란 인간이 프리휠을 세상에 선보이기까지 약 100년간 우리 픽시가 공룡처럼 활보하고 다녔지.
가분수처럼 앞으로 잘 쳐박히는 1단 오디너리파가 세계를 일주했고 그 뒤 출현한, 앞뒤바퀴가 비슷한 세이프티형 로버파는 ‘더 편하게’ ‘더 안전하게’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인간들을 ‘축지법도사’로 만들어 주었지. 이런 우리의 활약에 힘입어 지금과 같은 다양한 자전거족들이 번창하게 된 것을 지들이 알랑가 몰라.
하지만 장강의 앞물은 뒷물에 여지없이 밀려나듯이 역사의 뒤안길에 선 우리는 종족 보존을 위해 우리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했지. 우사인 볼트 형 단거리 뜀뛰기에 자신 있는 경륜파는 벨로드롬에 둥지를 튼거야.
동물적인 감각에 끼까지 겸비한 서커스파는 화려한 개인기로 동춘서커스단 ‘세상에 이런 일이’로 소개되기도 했지.
만능 스포츠 바이크인 폴로파는 1891년 아일랜드에서 팀을 결성하여 1908년 런던올림픽에도 참여했다고 하더라. 급기야 1960년경부터는 미국의 가난한 메신저들이 우리 픽시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웠지.

 

암튼 새로운 문화의 장르로 당당히 등장한 우리는 콜로세움의 검투사 같은 치열하고 꽉 막힌 벨로드롬을 탈출해 자유의 공기를 폭풍 흡입하고 있는 신경륜파 즉 픽시파이다. 더러는 경륜에서 은퇴한 친구도 있지만 이제는 골격이나 피하구조가 일반도로에 맞게 진화한 친구가 대부분이야. 따라서 뼈대도 크롬몰리 합금강보다는 좀 더 가볍고 탄성 있는 첨단소재를 쓰기도 하지. 당연히 앞뒤 브레이크는 필수로 달고 있어. 경륜용 드롭 핸들바에서 라이저바 등 다양한 장비로 유연하게 현장에 대처해 나가고 있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우리도 이제 넓은 세상에서 적응하려 나름 신출귀몰하고 있는 거야.

내 파트너 지운이는 몇 년 전 윈드브레이커 카툰에 매료되어 우리 픽시족과 인연이 시작되었단다. simple is best! 순수한 대학 새내기 지운이의 인생관과 우리 픽시족의 철학이 딱 맞아 떨어졌지. 처음에는 내리막에서도 페달링을 계속해야 하는 불편함이 차츰 서로 일체감을 공감하는 장점으로 변했고, 쓸쓸했던 혼자만의 엑스포 남문 광장에는 한명 두명 크루가 붙기 시작했어. 
또래 끼리 모여서 ‘스키딩’ ‘페이키’ 같은 기술도 연마하고 핸들바, 스템 등의 우리 신체를 뜯어다가 서로 교환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어느 날 눈 뜨면 석진 크루장의 바퀴가 내 뒷다리에 달려 있기도 하더라. 그래서 아까부터 아닌 1인칭 복수 ‘우리’라는 표현을 쓴단다. 이렇게 우리는 화살촉 시선을 같이 견디며 신체 장기까지 공유하는 별난 가족이다. 어제는 영민이의 군 입대 송별이 아쉬워 조금 빡세게 한 바퀴 돌고 왔다.

지구가 우리네 바퀴처럼 둥글듯이 세상사는 다 돌고 도는 건가? 화석 자전거 취급당해 뒷방 늙은이 신세의 우리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보다니! 그것도 라떼 세대가 아닌 피 끊는 20대들에게서 인기몰이라니 이 얼마나 신기하고 즐거운 일인가! 그래서 단순 탈것 취급하는 인간들과는 다르게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굿즈로 여기고 갈고 닦아 ‘간지’ 나게 꾸며서 자랑스럽게 쌩쌩 달려 나가는 멋진 놈들과 함께 하니 도끼자루 아니, 타이어 썩는 줄 모르는 태평성대로다. 가소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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