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숲길, 밀림 끝에는 탁 트인 조망

한라산 위쪽에는 등산로가 있다면 해안에는 올레길이 있다. 한라산둘레길은 그 중간쯤인 한라산 중턱에 있는 트레킹 코스다. 내내 울창한 숲길이라 온전히 숲에 몰입할 수 있어 피톤치드를 듬뿍 들이키며 지친 심신을 달래기 좋다. 작년 12월 10일부로 자전거 출입이 금지되기 전인 지난 가을에 둘레길을 다녀왔다. 꼭 자전거가 아니라 걸어도 좋은 길이어서 소개한다

영아리오름 동편 초원지대에서 내려다본 남서쪽 조망. 바로 앞으로 화순의 군산과 월라봉이 가라앉아 있고, 왼쪽사람 옆으로는 형제섬이 살짝 드러났다. 사람 우측의 산줄기는 송악산이다. 곧추 선 산방산은 오른쪽 나무 뒤에 숨었다
영아리오름 동편 초원지대에서 내려다본 남서쪽 조망. 바로 앞으로 화순의 군산과 월라봉이 가라앉아 있고, 왼쪽사람 옆으로는 형제섬이 살짝 드러났다. 사람 우측의 산줄기는 송악산이다. 곧추 선 산방산은 오른쪽 나무 뒤에 숨었다

 

번잡한 마음에 위안과 평화가 필요할 때, 빽빽한 회색 건물 사이로 두 눈이 피로할 때 우리는 자연이 너무나 그립다. 
한반도 남쪽 끝, 짙푸른 바다 위에 살포시 안겨있는 제주도는 평온의 기운이 섬 전체에 흐른다.  연둣빛 들판과 형형색색 곱게 물든 단풍 숲길, 온갖 수목으로 끝없이 펼쳐진 곶자왈과 크고 작은 오름들이 한 눈에 담기는 산책로를 바라보라. 그리고 하늘과 맞닿을 듯 솟은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어우러진 숲에서는 어느새 거칠고 투박했던 마음에 평온이 자리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걷기 여행과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제주는 최고의 장소다. 섬을 일주하는 올레길과 한라산 둘레길, 그 외 오름을 포함한 여러 숲길 코스를 탐방하다 보면 대자연의 신비로움과 광활함, 아찔함에 경외감과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한라산 숲길은 신령스러움과 오묘함이 가득하다. 특히 깊은 안식을 누리기엔 만추의 숲길만 한 곳이 없다. 

아, 제주도 
제주도는 여러 가지 특징적인 화산지형과 지질을 가지고 있어 화산의 보고(寶庫)라고 일컬어진다. 수려한 경치, 온난한 기후, 남국의 아열대 식생과 경관, 독특한 문화와 풍속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육지와 떨어져 있으나 항공과 해상 교통이 편리하고 우리나라 제1의 관광지이면서 국제적인 관광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제주도는 연안에 난류가 흐르고 있어 연중 온난하고 기온의 연교차도 적은 해양성기후를 보인다. 해상에 고립된 섬이어서 연중 바람이 불고 흐린 날이 많은 다변성 날씨도 특징이다. 
한라산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2000m 가까이 되는 높이다(1950m). 그래서 제주도 중심에 솟은 한라산부터 가장 낮은 해안까지 각기 다른 기후대의 식물들을 모두 볼 수 있다. 
제주도의 전체적인 식생은 난대림대에 속하나 고도에 따라 다양한 식물군이 분포한다. 고지대부터 보자면 고산식물대, 침엽수림대, 활엽수림대, 난대상록수림대가 차례로 이어진다. 저지대는 아열대식물이 많고 녹나무를 주로 하는 상록활엽수림대를 이루고 있다. 눈이 오는 한겨울에도 상록수림을 유지한다. 

 

 

한라산둘레길  
제주도는 올레길의 명성으로 ‘한 달 살기’ 또는 ‘반 달 살기’ 형태의 장기숙박으로 발전해 전국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힐링 코스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지인들과 함께 지난 늦가을 제주에서 한 달 조금 못 미치는 동안 머물며 여러 곳을 돌아보았다. 
제주는 올레길을 비롯해 한라산을 축으로 한 둘레길, 오름과 곶자왈, 목장길과 여러 숲길이 개설되어 있다. 먼저 한라산둘레길을 소개한다. 
한라산 둘레길은 한라산 중턱의 중산간지대에 조성된 트레킹 코스다. ‘사단법인 한라산둘레길’은 2018년 제주특별자치도의 설립허가를 받고, 2019년 산림청으로부터 제주지역숲길센터로 지정받아 둘레길을 관리·운영하고 있다. 
현재 한라산둘레길은 천아수원지~보림농장 삼거리 간 8.7km의 천아숲길, 보림농장 삼거리~거린사슴오름 입구 간 8km의 돌오름길, 서귀포자연휴양림 입구~무오법정사 입구 간 2.3km의 산림휴양길, 무오법정사~돈내코 탐방로 간 11.3km의 동백길, 돈내코탐방로~사려니오름 간 16.7km의 수악길, 사려니숲 입구 ~ 사려니오름입구 간 16km의 사려니숲길, 사려니숲길~절물자연휴양림 입구 간 3km의 절물(조릿대)길 등 총 66km가 조성되어 있다.  
한라산둘레길이 알려지면서, 한라산과 올레길에 집중되었던 탐방객들이 둘레길을 많이 찾아 병목현상이 많이 해소되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사려니숲길’이며, 전체 탐방객의 70%가 넘는다고 한다. 즉 사려니숲길을 제외한 나머지 둘레길은 그나마 한산하다는 뜻이다.

자전거는 못 가는 길?
한라산둘레길은 자전거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오직 도보로만 다닐 수 있는 코스로 알려져 있다. 둘레길 곳곳에 자전거 출입을 금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기도 하다. 작년 가을 ‘사단법인 한라산둘레길’ 홈페이지에 뜬 공지를 살펴보았다. 산림문화ㆍ휴양에 관해 개정된 법률을 근거로 2020년 12월 10일부터 둘레길 전구간에 산악오토바이와 산악자전거, 차량 등의 출입을 전면 통제한다는 내용이었다. 다행히도 우리가 방문한 시기는 그 이전이었기에 자전거 진입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해 11월에 갑자기 ‘자전거 출입금지’ 현수막이 철거되었는데, 알아본즉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정식으로 고시를 안했는데, 사단법인 한라산둘레길이 자체적으로 내건 것이 불법이라며 철거하라는 행정명령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둘레길이라고 해도 새로 낸 길이 아니라 기존의 등산로, 소로, 임도, 농로 등을 연계한 루트 개념으로 경운기와 차량이 다니는 곳도 많은데, 자전거가  못 간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어쨌거나 한라산둘레길 주요 5코스 중에서 ‘사려니숲길’은 오래 전부터 자전거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10여년 전 자전거로 자유롭게 달린 기억이 마지막 추억이다. 아울러 동백길도 탐방안내소에서 강하게 제지하는 바람에 도보로 탐방할 수밖에 없었다. 

 

 

‘18임반’과 표고버섯 농장 길 
한라산둘레길은 한라산을 축으로 1100도로 서쪽으로는 천아숲길과 돌오름길이 개설되어 있다. 이번에는 1100도로 서편에 있는 한라산둘레길의 하나인 ‘천아숲길’을 소개한다. 천아숲길은 8.7km로 짧지만 그 안에 많은 임도가 개설되어 있어 라이딩이 가능하고 다양한 코스를 즐길 수 있다. 
출발은 1100도로휴게소에서 남쪽 중문 방향으로 약 3km 지점 우측에 있는 임도에서 시작한다. 이곳은 ‘18임반’이라 불리는데, 임반(林班)은 산림의 위치와 넓이를 표시해 측량 작업이 편리하도록 산림을 구분하는 단위라고 한다. 
‘18임반’ 입구에서 임도를 따라 150m를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우측으로 진입해 1.5km 가면 보림농장 삼거리다. 이 지점이 천아숲길과 돌오름길이 만나는 시작점과 종점이다. 보림농장은 예부터 표고를 재배하던 농장이다. 보림농장 말고도 둘레길 곳곳에서 표고를 재배한다. 사실 둘레길로 활용한 임도 가운데 상당수가 표고버섯 운송용 도로다.
보림농장 삼거리에서 좌측은 돌오름길 방향이고, 직진하면 천아숲길 방향이다. 천아숲길 방향으로 1.1km 가서 우측의 싱글코스로 진입하면 노로오름으로 가는 정코스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100m를 직진하면 또 다른 표고버섯 농장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서도 임도가 계속 이어져 있다.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면 바리메오름과 천아오름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만나게 된다. 천아오름 삼거리에서 노로오름 방향으로 되돌아 나오면 원점회귀가 된다. 
‘18임반’ 입구에서 출발하면 천아숲길과 돌오름길 코스를 달리면서 여러 임도를 거쳐 다운힐을 즐길 수 있는데, 레히크힐스제주CC, 서귀포쓰레기위생매립장, 안덕위생매립장, 바리메오름 등으로 하산할 수 있다.   
1100도로 서편의 산록에는 천아숲길과 돌오름길 외에도 여러 갈래의 임도가 나 있다. 숲길은 울창한 자연림과 계곡 절경, 삼나무 숲길 등이 어우러져 자연을 거의 그대로 살린 명품코스다. 

 

 

경이로운 숲과 길  
한라산 단풍은 백록담 정상을 시작으로 점차 낮은 곳으로 내려온다. 숲길 초입부터 단풍 빛깔이 은은한 모습을 드러내고, 숲길 깊숙이 들어갈수록 붉은빛이 점점 짙어진다. 간간이 나타나는 계곡을 만나면 맑은 하늘 아래 단풍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갖가지 단풍나무와 상록수가 어우러진 한라산 단풍은 여러 가지 색깔로 은은하게 물들어 넋을 잃고 바라보면 어느새 깊어가는 가을의 쓸쓸함도 잊게 해준다. 알록달록 물든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과 바람, 그리고 하늘까지 모든 게 아름다워 근심이나 걱정이 싹 날아가는 기분이다. 
임도를 활용한 숲길을 달리다 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건 제주조릿대다. 무릎 크기에서 높게는 허리춤까지 자란 조릿대가 온 숲을 융단처럼 뒤덮었다. 돌이 많아 내내 바닥을 살피며 달리다가 이따금 고개를 들면 어김없이 눈부신 색 잔치가 펼쳐진다. 난대상록수와 온대활엽수가 조화를 이룬 덕이다. 빨강 노랑 단풍과 싱그러운 초록 잎이 어우러진 건강한 숲을 보는 것만으로 눈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숲길 주변에 돌오름, 한대오름, 노로오름, 천아오름 등이 분포해 있다. 단풍 명소로 손꼽히는 천아수원지에서 만나는 시원한 바람과 울긋불긋 곱게 물든 단풍은 제주도가 주는 선물이다. 

인적이 특히 드문 곳은 어딜까? 천아숲길과 돌오름길을 답사하면서 남서쪽 임도로 내려가면 삼나무와 편백나무 우거진 숲길을 만나게 된다. 일명 ‘NB둘레길’이다. NB는 나인브릿지골프장(Nine Bridges)의 약자인데, 영아리오름 쪽에 골프장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한라산둘레길은 한라산의 속살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길이다. 거칠지만 때로는 매력이 철철 넘치는 숲길이다. 시원하게 쭉쭉 뻗은 삼나무 군락이 나타나면 함께한 일행은 열광한다. 울창하고 빽빽한 삼나무 조림지를 달리다 보면 가끔 삼나무 사촌뻘인 편백나무 군락도 있다. 벤치에 앉아 피톤치드를 깊이깊이 들이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역시나 빽빽한 숲길이 대부분인 한라산 둘레길은 온전히 숲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한라산둘레길 탐방시 유의사항 
한라산둘레길은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어 길이 험하고 숲이 깊기는 하지만 안전하게 돌아볼 수 있다. 500m마다 국가지점번호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고 남은 거리도 표시되어 있어 필요시 긴급구조요청을 하기에 편하다. 코스 곳곳에 눈에 잘 띄는 핑크색 리본이 촘촘하게 매달려 길을 안내하며, 길이 애매하거나 위험한 곳에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나일론 끈이 설치되어 있다. 
한라산둘레길을 탐방하다 보면 수많은 계곡을 건너게 된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물이 흐르지 않지만, 비가 많이 내리면 강한 급류가 흐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때문에 우천 시에는 대부분이 출입 통제되며, 하절기 오후 2시, 동절기 오후 12시 이후에는 입산이 금지되므로 시간계획을 잘 짜야 한다. 
한라산둘레길은 출발지와 도착지가 달라 픽업차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도 참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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