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공을 나르샤

어느새 계절은 봄을 지나 문턱 너머엔 여름이다. 
토요일의 따스한 햇볕과 싱그러운 바람은 녹번동 삼총사를 불러내고 있다. 나는 파릇파릇한 새순 내음이 나는 준하를 짊어지고 홍제천 자전거길로 나섰다. 삼거리에서는 민혁, 준혁, 쌍둥이가 벌써 와서 시동을 걸어놓고 있다. 세쌍둥이처럼 우리 역시 색깔만 다를 뿐 고만고만한 키에 생김새도 비슷한 동족이다.
어제 오후에는 부모님이 출장간 틈을 타 혁혁이를 불러 우리세계의 전설인 매트 호프만의 신기에 가까운 유튜브를 시청했다. 세 녀석들이 EV 보듯이 얼굴이 벌개가지고 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 아예 TV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엎어진 채로 거꾸로 보고 있으니 더 실감난다.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이쯤 되면 ‘합숙 이미지 트레이닝’을 제대로 한 셈이다.
오늘 역시 목적지는 난지도 앞에 있는 X게임장이다. 7km 남짓 거리라 냅다 달리면 30분도 안 걸릴 테지만 족히 1시간은 잡아야 한다. 북한산 자락에서 흘러온 시냇물이 장애물을 피해 요리조리 멈췄다 가듯이 우리도 서로 앞지르다 핸들을 꺾어 갑자기 서다가다를 반복한다.

사람들이 꼬삐 풀린 망아지 보듯 해서 쪽팔려 죽는 줄 알았네. 휴~
주황색 성산대교 아치가 보이고 더 넓은 한강이 넘실대고 있다. 오른 쪽으로 바퀴를 틀어 우리의 아지트로 진입한다. 안면 있는 족속들이 눈에 들어온다.
점프대는 벌써 남대문시장 분위기다. 왁자지껄!
복스런 언니의 몸무게에 스케이트보드는 휘청거리고 핸들을 쉴 새 없이 돌려대는 초보의 킥보드는 목을 절래절래 흔들고 있다. 
홍은동, 성산동 등지에서 온 크루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슬슬 몸을 풀기 시작한다. 놀아 볼까나~
나는 자전거족 중에서 많이 특이한 녀석이다.
작지만 야무지고 특별한 스펙과 독특한 능력이 있어 흔히들 ‘묘기 자전거’라고들 하지. 속도위주의 사이클족이나 멀리가기 랜도나족들과는 완전히 다른 철학을 갖고 있어. 그들이 앞만 보고 평면을 달릴 때 우리는 하늘을 쳐다보며 솟구치는 3차원의 세계를 추구해. 그것도 프라이팬의 콩알처럼 재미없게 튀어 오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공중제비 기술을 구사하면서 말이야. 평지에서도 댄스를 하듯 여러가지 플랫랜드 기술로 타고난 끼를 마음껏 펼치기도 하지.
봐, 쟤들하곤 차원이 완전 다르잖아. 날개도 없는 것이 건방지게 공중부양?
꿈과 상상력이 없다면 인생이나 자생이나 낭만도 없고 미래도 없을 거야.
우리가 태어나기 한참 전 아마 1982년경 우리 족속의 도움으로 보름달을 가로 질러 하늘을 날라 지들 별에 간 ET의 얘기는 이제 고전이 된 거 알고 있지? 그걸 보면 분명 우리의 페달 속에는 헤르메스의 발에 달린 날개 ‘탈라리아’가 숨어 있는 거다. 
세월을 더 거슬러 오르면 우리의 선조가 보이지. 1960년대 말 태평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모터사이클 열풍이 불기 시작했지. 그 당시 <이지 라이더> <고스트 라이더> 같은 영화나 만화는 미국의 마초들을 자극했고 배우 ‘스티브 맥퀸’은 우상이었어.
함께 놀아주던 아빠를 ‘할리’란 놈한테 빼앗겨 버린 애들을 위해 우리가 나설 수밖에 없었지. 아빠처럼 어른이 되고픈 소망에 먼저 이름부터 지었지. 자전거로 하는 motor cross! Bicycle Motor cross(X)라고!
작은 체구에 딱 맞고 충돌에도 강한 프레임, 거친 길도 달릴 수 있는 넓은 바퀴, 좁고 굴곡진 길에 민첩한 짧은 스템, 전방주시가 용이한 높은 크로스 핸들바, 뒤에 동생도 태울 수 있는 바나나 안장과 그 무게를 지탱해 주는 시시바 등이 초창기 우리 조상의 모습이었지.
‘순수한 영혼’인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고 그들을 데리고 자연의 신비를 찾아 모험을 함께하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기 위해 이 세상에 나온 거야.
이제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넘어 한계에 도전하는 X-게임 즉, 익스트림스포츠로 발전했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모굴 BMX족이 울퉁불퉁 길을 달렸고 올해 도쿄올림픽에서는 점프대를 날아오르는 우리 족속을 볼 수 있을 거야.
비록 우리는 몸집도 작은 소인국에, 백성도 적은 소인국 신세이지만 결속력이나 전문성은 정말 딴딴하지. 인간 매니아들은 우리를 위해 몸소 부딪치고 깨진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를 강소BMX가 되게 해줘.
알루미늄 등 가벼운 소재가 나오지만 매초 바위에 몸을 던져야 하는 파도처럼 기물과 바닥에 동댕이쳐지는 숙명에는 4130 크롬몰리가 제격이지. 그래서 프레임은 물론 포크, 핸들바, 시트 포스트, 페그는 아직도 크롬몰리가 대세야.

높이 점프하는 것도 힘들지만 무사히 추락(?)하는 게 더 관건이야. 그래서 가장 튼튼한 구조의 20인치 휠을 가졌고 48개의 스포크는 탄젠트 방식으로 서로 꼬여있어. 23C의 넓은 타이어에 100psi의 빵빵한 에어는 준하의 얇은 손목을 걱정한다. 현란한 트릭을 위해서 과학도 숨겨 두었지. 바로 핸들을 자유롭게 돌릴 수 있는 ‘자이로 시스템’ 케이블 로터(cable rotor)야. 웬만한 충격에도 태연하려면 통뼈 즉, 오버사이즈로 진화해야해. 휠을 지탱하는 허브나 엉덩이로 깔고 뭉개는 안장을 받쳐주는 레일도 오버한 사이즈를 좋아한다. 미끄러지면서 금속음을 선사하는 그라인더 트릭은 허브축에 물려 있는 페그의 깽깽이 연주다. 이렇게 정리해보니 정말 나는 불가사의한 신체능력을 가진  자전거계의 어벤져스가 틀림없어! 
참, 내 소개가 늦었네. 나는 네 살바기 ‘윙윙’이야. 준하는 초딩 5학년 때 처음 만났고.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은 어느 날 게임의 늪에 빠져버린 외아들의 다크서클이 뒤통수를 쾅 때리더란다. 그래서 부랴부랴 4130 네모선장을 찾았단다. 식물이나 동물은 자외선을 쬐어야 온전하게 살아간다는 진리를 너무 평범해서 지나치나보다.
나는 아메리카 혈통에 세포는 대만에서 공수해 왔지. 네모선장님의 손길로 준하에 어울리게 커스텀해서 탄생한 거야.
이제 중 2의 준하는 음침한 골방보다는 쨍쨍한 하늘 아래 친구들과 쏘다니는 걸 좋아해. 나와 같이 윙윙 바람소리를 내면서 달리다보면 언젠가는 wing wing 양날개가 돋아나서 날 수 있을거라 믿고 있는 전도유망? 소년이야.
오늘도 토끼뜀, ‘바니홉’은 30cm도 못 미친다. 몇 번하고 나면 100m 달리기를 한 것처럼 온 몸에 힘이 빠져. 그래도 도전을 외친다.
민혁이는 앞바퀴를 들어 올리는 ‘매뉴얼’이 재밌는 모양이다. 준혁이는 다른 친구와 ‘스탠딩’ 초읽기에 들어갔다. 흠뻑 젖은 이마에는 먼지와 황혼의 햇살이 내려앉는다. 점프대에서 베테랑 훈이형의 트릭이 실루엣으로 어른거린다.
애처롭다! 아직 초보인 준하의 어설픈 몸놀림을 도와주지 못해서!
뿌듯하다! 고사리손이 조금씩 힘이 늘어가며 내 손목이 아파올 때!
재밌다! 달리고 멈추고 넘어지고 웃고 떠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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