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짝 마른 건천, 피톤치드 농염한 삼나무숲

 

돌오름길
돌오름길은 1100고지를 기준으로 남쪽 서귀포 방면으로 이어지는 숲길이다. 1100도로 변의 ‘18암반’ 입구에서 출발해 돌오름(866m)을 거쳐 거린사슴오름(743m) 방면으로 이어지는 대체로 다운힐 코스다. 평소에는 말라 화산암 바닥이 드러난 계곡을 여럿 지나고, 피톤치드 향이 농염한 삼나무 숲이 특히 인상적이다

코스   18임반입구-보림농장-돌오름-용바위-거린사슴오름-레이크힐수제주CC         
거리   약 15km

제주의 자연을 즐기는 방법은 여럿 있다. 대표적인 예로 올레길 탐방과 한라산 등산이 있겠지만, 현재는 한라산둘레길이 많은 호평을 받고 있으며 그 외 한라산을 중심으로 수없이 펼쳐진 오름과 연결된 탐방 코스가 인기가 많다.  
한라산둘레길은 서쪽으로 ‘돌오름길’과 ‘천아숲길’, 남쪽에는 ‘동백길’과 ‘수악길’이 이어져 있고, 동쪽에는 ‘사려니숲길’ 등 다섯 구간이 있다. 지난호에 소개한 천아숲길에 이어 이번에도 한라산 서부권 둘레길 중의 하나인 돌오름길을 소개한다. 

1100고지 아래 18임반 입구에서 출발 
다운힐 위주의 라이딩을 하기 위해서는 1100도로에 위치한 ‘18임반’ 입구에서 출발하는 것이 정답이다. 18임반 입구는 1100도로휴게소에서 서귀포 방향으로 약 3km 지점 우측에 있는데, 입구에 ‘한라산둘레길’이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18임반에서 시작되는 보림농장과 돌오름 구간, 그리고 천아숲길 구간은 국유임도이며, 돌오름 하단부에서 산록도로로 내려가는 여러 갈래의 임도는 지자체 소유의 임도에 해당된다. 

거친 돌길과 삼나무 숲길 혼재  
먼저 돌오름길 코스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18임반 초입에서 150m 내려가면 임도삼거리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돌오름길 코스 중간으로 합류하게 되므로 우측의 보림농장 방향으로 진입해야 한다. 18임반 입구에서 보림농장 삼거리까지는 1.6km이다. 보림농장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입해 2.2km 가면 돌오름 쉼터가 나온다. 돌오름 쉼터에서 종착지인 거린사슴오름 입구까지는 약 5.6km이다. 
돌오름 쉼터에서부터 일부 구간은 한라산 특유의 거친 돌길이어서  간혹 끌바를 해야 하는 고생은 감수해야 한다. 이어서 표고버섯재배 농장에 이르게 되면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오고 하천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우측의 하천 방향으로 진입하면 삼나무 숲 우거진 싱글트랙을 즐길 수 있다. 
돌오름길 코스는 길이 짧아서 거린사슴오름 입구에서 끝이 나면, 바로 우측으로 진입하여 레이크힐스제주CC로 다운힐을 하면 된다. 이 구간은 삼나무 조림지여서 빽빽한 삼나무 숲길을 누빌 수 있는 힐링 코스다. 이것도 부족하다면 색달동 쓰레기매립장이나 안덕 쓰레기매립장으로 진입하여 NB둘레길과 연계해서 타면 충분한 거리가 된다.

 

 

‘하치마키’ 도로의 복원판  
한라산둘레길에는 일명 ‘하치마키’ 도로라는 일본식 지명이 붙어 있다. ‘하치마키’는 머리에 동여매는 수건이나 천 같은 머리띠를 말하며, 한라산 중턱을 머리띠처럼 두르고 있는 길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한라산둘레길은 해발 600~800m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데, 일제강점기 병참로인 일명 하치마키 도로와 임도, 표고버섯재배지 운송로 등을 연결한 길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하치마키 도로는 오랜 세월동안 폭우에 유실되거나 새로운 식물군에 점령되어 잊혀진 길이 되었다가 근래에 한라산둘레길을 복원하면서 새로운 트레킹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둘레길은 한라산국립공원 구역에서 대부분 벗어나 조성되었다. 숲길 임도에는 오래 전부터 표고버섯이나 산삼을 재배하는 농장이 몇 군데 있어 연결로로 사용되고 있으며, 가끔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트럭이나 오토바이가 왕래한다. 
천아숲길을 비롯해 돌오름길도 코스가 비교적 원만하고 쉬운 트레일이다. 길 찾기는 아주 쉽다. 코스 안내표시가 잘 돼 있을 뿐 아니라 걷는 동안 중간 중간 현재 위치를 알려주고, 지금껏 온 거리와 남은 거리를 나타내는 친절한 표지판이 있어서 앞으로 남은 시간을 가늠할 수 있다. 
작년 가을 취재 당시 한라산 단풍은 절정이었다. 그러나 고지대에 위치한 돌오름길에는 단풍이 끝나가 낙엽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돌오름 입구에서 출발하면 계속 내리막이어서 달리는 내내 숲길을 산책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단풍이 끝물일지라도 달리는 내내 눈은 즐거워 페달링 속도는 더뎌지고, 마치 맑은 수채화를 그린 듯한 숲의 화려함에 마음이 홀라당 빠질 것 같은 황홀감에 젖어든다.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단풍길을 달랬던 적이 있을까? 처음인 것 같다. 날씨까지 따뜻하고 햇볕이 좋아서 연신 “아 좋구나 좋아!” 노래를 부르고, 힘들지 않아도 일부러 여러 번 쉬어 가면서 함께한 벗들과 서로의 행복한 표정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비가 오면 돌변하는 계곡 
한라산둘레길의 특징 중 하나는 하천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며 길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제주의 하천은 건천으로 평상시에는 물이 없어서 어렵지 않게 지날 수 있지만, 강우량이 많을 때는 물이 급격히 불어나 건너기 어려워진다. 돌오름길에서 가장 큰 하천은 색달천이다. 그 외 이름 없는 크고 작은 하천이 몇 개 있다. 다행히 며칠 새 비가 오지 않았는지 모두 건천으로 큰 바위와 돌이 드러나 있어 건너기가 수월하다. 
한라산둘레길에는 많은 계곡이 있는데 특히 동백길에 계곡이 많다. 한라산둘레길은 사전에 비 예보가 있거나 우천시에는 출입이 통제된다. 계곡에 급류가 흐르면 굉장히 위험할뿐더러 고립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기예보를 항상 눈여겨봐야 한다. 또한 우천과 관계없이 오후 2시 이후에는 출입이 금지되므로 일찍 서두르는 게 좋다. 

 

상쾌한 삼나무숲길 
거린사슴오름(거슨사름오름)으로 내려가는 숲길에는 하늘로 쭉쭉 뻗은 삼나무숲이 인상적이다. 한라산둘레길엔 대체적으로 편백나무보다는 삼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삼나무보다는 편백나무가 좀 더 많은 피톤치드(phytoncide)를 내뿜고 향도 더 좋은데, 왜 삼나무가 많은지는 의문이다.  
편백나무와 삼나무는 나무줄기가 비슷하여 여간해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잎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삼나무 잎은 솔잎처럼 바늘 형태이며, 편팩 잎은 넙적한 부채형을 띠고 있다. 
피톤치드 향을 듬뿍 뿜어대는 편백나무숲이나 삼나무숲은 아무리 달려도 지루함이 없다. 간혹 노루를 심심찮게 볼 수 있으며 이름 모를 각양각색의 새들이 제각각 그들의 심정을 드러낸 노래를 부른다. 가능하면 긴 호흡으로 느린 숨을 쉬어본다. 귀를 기울여 새들의 소리에 가까이 갈라치면 우랄랄라 냇물 흐르는 소리가 새소리와 뒤섞이곤 한다. 
부드러운 검은 흙길을 보듬어 밟고 달리다 보면 온통 거친 돌길이 이어진다. 길은 전체적으로 편안한 편이지만, 검은 현무암 돌길을 지날 때면 끌바를 각오해야 한다. 거친 돌길에도 가끔 야자수 매트를 깔아 놓아 큰 불편은 없다. 
빽빽이 우거진 숲길은 부드럽게 오르내림이 반복되고, 크고 작은 계곡을 여러 번 지나간다. 대부분 자연 상태의 활엽수림이고 군데군데 삼나무 숲길도 이어진다. 

다양한 수종의 나무 박물관 
중산간지대인 돌오름길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가득하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조릿대는 기본이고, 그 위에 졸참나무, 단풍나무, 때죽나무,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많다. 더 많은 수종이 있지만 도통 알 수 없는 나무들뿐이다. 
제주 숲길에서 새로이 알게 된 참식나무, 참꽃나무를 비롯해 붉나무, 이나무, 때죽나무 등은 이제 산에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사람주나무, 윤노리나무, 쥐똥나무, 가막살나무 등 우리말 이름들은 정말로 정겹고 사랑스럽다. 
돌오름길 구간에는 제주조릿대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숲길 바닥을 가득 덮고 있는 제주조릿대는 한라산의 주인인양 여기도 저기도 무성하다. 이곳은 조릿대가 워낙 울창해서 ‘조릿대길’이라고도 불린다. 높이 10~80cm로 자라는 제주조릿대는 혹독한 추위와 적설을 견디는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제주특산 식물이지만, 억척스런 생명력으로 생태계에 악영향을 준다고 한다. 
키 작은 조릿대 군락지 사이로 오롯이 난 검은 흙길을 따라 가다보면, 바람소리와 새소리에 지루할 틈이 없다. 어찌 보면 고요함 속에 쓸쓸하거나 심심할 수도 있겠으나, 간혹 정적을 깨는 노루의 뜀박질에 깜짝 놀라면서 역시 살아있는 자연 속에 내 자신이 함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름을 불러주면 더 친해지는 숲   
사계절 달리 보이는 미지의 이 숲길이 좋다. 식물의 종류와 식생에 해박한 지식은 없지만, 간혹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무를 보면 흔쾌히 먼저 인사를 하고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반갑다. 이렇게 많은 나무들 중에 이름을 알게 되는 나무가 나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이름을 불러주면 사람도 꽃이 된다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내가 ‘그’에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을 때, 즉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그의 존재를 인식하기 전에는 그는 나에게 무의미한 사물에 불과하지만, 이름을 부르는 것은 존재에 대한 인식이자 그 본질을 밝히는 행위가 된다. 내가 그의 존재를 깨닫고 그에게 의미를 부여했을 때, 그는 비로소 ‘꽃’이라는 형상물이 되어 나와 의미 있는 관계를 이루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의 의미가 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기를 소망해 본다. 

 

길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제주올레길, 한라산둘레길, 그리고 오름과 오름으로 이어지는 많은 숲길을 만들고 고생하는 단체와 지역주민에게 감사드린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있어 왔던 길들과 사유지가 많은 오름까지도 지역발전을 위해 개방해 준 덕분에 이렇게 외지인들은 제주를 찾는다. 
그런데, 많은 올레꾼들로부터 “올레길로 자전거가 왜 들어오느냐”는 원성과 지탄을 받아왔다. 그리고 현재는 둘레꾼들이 “한라산둘레길에 왜 자전거가 들어오느냐? 자전거 금지인 거 모르냐”며 항의한다. 만약에 원주민들로부터 이런 질타를 받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문제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외지인이나 이주민이라는 사실이다. 
올레길은 원래 주민들의 소통의 길이요, 생계의 길이다. 주민들의 차도 다니고 경운기, 리어카, 오토바이, 자전거도 다니는 길이다. 좁은 흙길에 주민들의 경운기나 리어카가 다닌다고 올레길에 왜 이런 게 들어오느냐고 항의할 수 있을까? 참으로 무례하기 짝이 없다. 
제주국가시험림이 있는 사려니숲길을 제외한 한라산둘레길도 마찬가지다. 제주 서부권에 위치한 천아숲길과 돌오름길 구간에는 여러 산림도로(임도)가 얽혀 있다. 그중 천아숲길과 돌오름길이 겹치는 곳은 극히 일부분이다. 둘레길 코스를 벗어난 임도에서도 무례한 분들을 간혹 보게 된다. 
옛날 옛적부터 있던 어느 고개를 넘어가는 오솔길을 생각해 보자. 이 길은 어린아이와 엄마가 외가집을 가거나 봇짐장수가 다녔으며, 말 타고 과거 보러 가는 선비도 있었다. 혼례를 위해 꽃가마도 지나다녔고 장례를 위해 상여도 다녔지만 누구 하나 이 길을 다니지 말라고 금지하지 않았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지금은 배척보다는 공존의 지혜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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