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수악길은 걷고, 중산간 목장길은 라이딩

한라산 동남쪽을 도는 수악길은 온대림과 난대림이 뒤섞인 울창한 숲속을 지난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녀린 길은 노끈과 리본 표지기만이 길을 알려줄 뿐이다. 이 구간은 아주 느리게 도보로 지난다. 둘레길 중 가장 인기 높은 사려니숲길에서 시작되는 목장길은 오름과 초원지대가 어우러진 중산간지대 특유의 목가적 풍경을 만날 수 있고, 라이딩도 가능하다

 

수악길
코스 돈내코탐방안내소 ~ 5.16도로 ~ 수악 ~ 이승이악 ~ 사려니숲길(남쪽)         

거리   16.7km

 

걷기여행과 자전거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제주는 최고의 장소다. 한라산둘레길을 탐방하다 보면 대자연의 신비로움과 광활함, 아찔함에 경외감과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한라산 숲길은 신령스러움과 오묘함이 가득하다. 특히 깊은 가을과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는 차분한 안식을 누리기에 숲길만 한 곳이 없다. 
한라산 자락을 휘감으며 한라산이 품고 있는 깊고 드넓은 원시림, 그 숲의 속살을 들여다보며 걷는 내내 온전히 숲에만 몰입할 수 있다. 피톤치드를 듬뿍 들이키며 지친 심신을 달래기 좋은 한라산둘레길 ‘수악길’을 자전거는 잠시 접어두고 두발로 걸어본다.

가장 긴 코스, 수악길 
수악길은 한라산둘레길 코스 중에서 가장 길다. 수악길은 돈내코탐방안내소에서 출발하여 중간에 5.16도로를 만나고 이어서 사려니오름까지 이어진다. 물이 많아서 수악(물오름)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신례천을 비롯한 크고 작은 하천과 한라산 계곡이 만든 ‘해그므니소’ 등의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수악길은 총 16.7km의 구간으로 중간지점에 5.16도로를 지나 수악을 거쳐 사려니숲길에서 끝난다. 즉 수악길은 5.16도로를 중심으로 서쪽과 동쪽 두 구간으로 나뉜다. 서쪽의 1구간은 돈내코탐방로에서 5.16도로까지 7.7km이며, 동쪽 2구간은 5.16도로에서 사려니숲길 입구까지 9km다. 
렌트카 2대를 빌려 1대는 사려니입구 남원읍 쓰레기위생매립장에 두고, 나머지 1대는 일행을 태우고 돈내코탐방안내소 인근에 세운 다음 트래킹을 시작한다. 돈내코탐방로 입구는 동백길과 수악길의 시작점과 종점이기도 하다. 
돈내코탐방안내소를 나서면 시멘트 길이다. 완만한 경사라 편하게 걸을 수 있다. 1km 못 미쳐서 왼쪽으로 동백길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수악길은 계속 직진이며,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면 그 흔한 타이어 매트와 야자수 매트도 전혀 깔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길이다. 간간이 끈과 리본만이 진행 방향을 안내할 뿐이다. 
때로는 돌밭길을 거닐게 되고, 낙엽이 쌓인 흙길과 계곡을 지나게 된다. 걷다보면 몸이 기우뚱하거나 흐느적거릴 수 있지만, 언제나 깨어있는 숲이기에 눈에는 생기가 가득하다. 
도중에 엿가락처럼 잔뜩 휘어진 두 줄기의 소나무를 만난다. 하늘로 꿋꿋이 솟아야 할 소나무가 왜 이리 자랐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형상이 참으로 묘하다. 아마도 이 길을 걷는 탐방객들에게는 틀림없이 포토존 역할을 할 것이다. 
깊은 숲길을 지나는 동안 몇 개의 계곡을 지나게 된다. 크고 작은 계곡을 만나는 동안 울퉁불퉁한 바위 위를 기우뚱 기우뚱 넘고, 돌부리와 나뭇가지를 흐느적흐느적 비켜가며, 눈 쌓인 낙엽 위를 조심히 걷는 길은 체력적인 부담은 별로 없지만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느리게 걷는 대신 여유가 생기면서 자주 멈춰 쉬며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좀 더 자세히 집중할 수 있어 좋다. 
5.16도로를 향해 내려가는 길에는 원시림 속에 감춰진 분화구를 만나게 된다. 안내판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곳이 분화구인지 아닌지 전혀 분간하지 못할 뻔 했다. 자세히 보니 넓은 원형의 습지에 듬성듬성 몇 그루가 자라고 있다. 
분화구는 화구 내에 습지가 있고 주변의 지형에 의해 감춰져 있었다. 원래 이 분화구는 분석구(噴石丘)로서 오름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한라산 고지대에서 용암류가 경사면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다가 봉우리를 이룬 곳이나 습지 형태의 분지를 형성한 곳은 대부분 분화구의 흔적으로 이런 곳들은 한라산에서 흘러내린 용암류에 의해 매몰된 것이란다.
수악길 서쪽 구간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 쯤, 내가 걷는 이 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길인 듯, 아닌 듯 자연 그대로의 소로여서 오직 끈과 빨간 리본만을 보고 걸어야 한다. 차량들이 내달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5.16도로가 지척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없는 탐방안내소를 지나 5.16도로를 건너 수악길 동쪽 구간을 시작한다. 

 

5.16도로 동쪽 수악길   
수악길 동쪽 구간은 5.16도로에서 시작해 사려니숲길(남원쓰레기매립장)까지 가는 코스로 거리는 약 9km이며 서쪽 구간보다 길다. 한라산 깊은 계곡의 비경을 담고 있는 이 코스는 다양한 나무와 예쁜 길, 사람들이 살았던 숯가마터와 돌담, 그리고 사려니숲길의 환상적인 삼나무 길이 약 5km 이어진다. 
수악길에는 작은 지류들이 여러 곳 있는데, 수악(물오름)과 이승이악 중간에서 제법 큰 신례천을 만난다. 건천이지만 암반 위로 큰 바위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폭우 시 굉장한 급류가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건천들에 비해 물이 끊이지 않고 흐르는 곳이 많아서 이곳을 터전으로 서식하는 야생동물에게는 훌륭한 식수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듯하다. 
이 아름다운 숲길을 걷는 내내 마주친 사람은 딱 두 명뿐이다. 지나칠 정도로 고즈넉하고 조용해 온전히 숲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돌밭이 제법 많아 난이도가 좀 있는 길이지만, 두터운 나뭇잎이 쌓인 푹신한 길은 발의 피로를 줄여준다. 
탐방로 좌우엔 각기 다른 기후대의 식물들을 볼 수 있는데, 동백과 굴거리나무, 붉가시나무 등 상록수뿐만 아니라, 때죽나무와 서어나무, 단풍나무, 상수리나무 같은 낙엽활엽수도 함께 어우러져있다. 덩굴이 휘감은 나무와 푸른 이끼로 뒤덮인 돌과 바위, 키 큰 나무 아래는 관중과 고사리 등 각종 양치류와 관목, 초본식물이 들어차 있다. 온대림과 난대림이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원시림, 그 숲의 가운데선 태곳적 숲의 향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해그므니소?
거대하고 평탄한 바위를 지나면 ‘해그므니소’라는 곳이 나온다. ‘해그므니’라는 말은 나무가 울창하고 하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대낮에도 해를 볼 수 없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는 하천 단애의 깎아지른 절벽 아래 암반에 고인 담수다. 
이승이오름을 알리는 이정표에 이르면 갈림길이다. 좌측으로 진입하면 사려니숲길 입구로 가고, 우측은 신례공동목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승이오름 정상에 오르면 2층 구조의 전망대가 있다. 성널오름, 사라오름 등 한라산 남사면과 동사면을 조망할 수 있고, 동쪽으로는 사려니오름과 넙거리오름 등을 볼 수 있다. 바쁜 마음 내려놓고 한라산의 울창한 산림을 조망하고 싶으면 이승악 둘레를 한 바퀴 돌아도 좋다.   
이승이오름 입구에 들어서면 빽빽한 삼나무 군락지가 시작된다. 이 삼나무 군락지는 사려니숲길 남쪽입구까지 약 5km 계속된다. 이 구간은 사려니숲길 탐방구간에서 벗어난 구역이라 자전거 진입에 문제가 없다. 다만 둘레꾼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염려는 된다.  
사려니숲길은 탐방통제구간과 사전예약구간으로 나뉜다. 탐방통제구간은 봄철에 열리는 사려니숲길 행사기간에만 탐방이 가능하다. 그러나 통제구간과 사전예약구간 모두 자전거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이 두 구간을 제외하다라도 자전거로 즐길 수 있는 은밀한 숲길이 제법 있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중산간의 목가적 풍경, 목장길
코스  오름목장 ~ 민오름 ~ 수망풍력관리소 ~ 사려니숲삼거리 ~ 민오름 ~ 옷귀마테마타운      
거리  약 18km

 

목장길은 사려니오름 구간이 통제구역이어서 사려니숲길과의 연결을 위해 만든 우회 코스다. 목장길은 사려니숲길의 일부 구간을 포함하고 있으며, 사려니숲길의 ‘월든삼거리’ 지점이 목장길의 종착지다. 
목장길은 수악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남원쓰레기매립장을 내려오다 보면 좌측의 오름목장 이정표를 보고 진입하면 된다. 
서중천 계곡을 지나면서 삼나무 숲길이 이어지고 곧이어 민악(민오름)을 만나게 된다. 민오름을 갓 지나면 좌측에 수망풍력관리소가 나온다. 이곳으로 진입하면 송전탑을 따라 임도가 개설되어 있는데, 바로 사려니숲길로 이어진 길이다. 
사려니숲길을 만나는 삼거리가 목장길의 끝지점이다. 우측은 월든삼거리와 붉은오름 방향이고, 좌측은 제주시험림 방향으로 양쪽길 모두 자전거 진입은 불가하다. 다시 되돌아 나오거나 제주시험림 방향으로 600m 내려가서 우측 임도로 우회해 민오름 방향으로 나와야 한다. 
목장길은 머체왓·소롱콧길, 에코힐링마로길, 마흐니숲길 등과 겹치는 길로 모두가 목장길에 포괄된다. 민오름 주변을 달리다보면 넓은 초지에 가장 제주스러운 목가적인 풍경에 자꾸 발길을 멈추게 된다. 삼나무에 둘러싸인 드넓은 초지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이 한없이 평화롭다. 어미 말에 아기 말 한 마리. 어미 말 곁에 꼭 붙어 젖을 먹는 아기 말, 어미 말이 움직이면 떨어지지 않으려 따라가는 모습이 정겹다. 

 

제주의 속살과 역사를 더듬는 시간여행
지형의 특성과 거리, 소요시간, 난이도, 날씨를 미리 알아보고 가면 숲길에 감춰있던 보물을 하나하나 쉽게 만나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수악길을 걷는 내내 마주치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한산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사려니숲길에 집중되어 있다는 반증이다. 인기가 많은 사려니숲길은 정해진 탐방로 외에도 많은 길이 있다. 
사람이 탐방하지 않는 사려니숲길은 과연 어딜까? 여러 길들이 있겠지만, 진입이 쉬운 대표적인 길이 사려니숲길 남서단에 위치한 오름목장에서 시작되는 ‘목장길’ 코스다. 
코로나로 서로 간에 거리두기로 인해 온전히 마음을 나누기 어려운 요즘, 한라산 중턱의 깊고 깊은 원시림 숲길을 찾아 자연이 주는 치유, ‘에코 힐링’으로 피로와 우울감을 떨쳐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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