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오름자연휴양림 주변 숲길

한라산 숲을 보다 천천히, 보다 깊게
한라산 숲을 더 깊고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숲길 코스를 소개한다. 아직은 덜 알려져 조용하고 한가롭게 제주도 특유의 지형과 식생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작년 말 눈 쌓인 풍경과 최근의 라이딩 사진을 함께 게재한다. 걸어도 좋고 구간에 따라 라이딩도 가능하다 

 

삼다수숲길
조천읍 교래리 삼다수 마을의 가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삼다수숲길’로 먼저 떠나보자. 삼다수숲길을 가기 위해서는 1118번 국도(남조로) 변에 위치한 교래소공원에 주차를 한 뒤, 공원 안쪽 길을 따라 10분 정도 달려가면 숲길 입구에 도착한다. 
숲길 인근에 ‘제주삼다수공장’이 있어 ‘삼다수숲길’로 불린다. 이곳에서 나는 생수는 한라산 지하 420m에서 뽑아 올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화산 암반수층 지하수로, 물맛이 부드럽고 시원하다. 
삼다수숲길은 1코스 1.2km, 2코스 5.2km, 3코스 8.2km로 구분되어 있다. 삼다수숲길은 체력과 시간에 맞추어 걸을 수 있도록 짜여 있다. 꽃길이라 불리는 제1코스는 30분 정도 걸으면서 삼다수숲길의 여러 특징을 단편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길이다. 
제1코스 반환점에서 ‘테우리길’이라는 이름의 제2코스로 접어들면 5.2km를 걷게 된다. 테우리는 과거에 말과 소를 관리하는 사람들이었다. 테우리길에서는 인공조림지인 삼나무숲과 편백나무숲은 물론 한라산 동쪽 경사면의 물이 모여 흐르는 천미천을 볼 수 있으며, 다양한 수종이 경쟁하고 양보하며 자리를 잡고 있는 편안한 자연림을 지난다. 
제2코스 분기점에서 오른쪽 길을 선택하면 제3코스로 8.2km를 걷는다. 제3코스는 ‘사농바치길’이라 하는데 사냥꾼을 뜻하는 제주어다. 사농바치길에서는 천미천의 다양한 모습을 살피고 붉은오름자연휴양림에서 탐방로 반환점으로 설정해 둔 말찻오름, 오름 분화구에 물을 담고 있는 물찻오름 경사면을 거치며 숲이 변해가는 과정까지 얼핏 볼 수 있는 길이다. 어디서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숲이 매우 울창하고 깊지만 문득 천미천 건너 오름의 나무들이 보이기도 한다. 
삼다수숲길은 지역 주민들이 오가던 임도를 정비해 만든,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탐방로다. 원래 이 지역은 말 방목터이자 사냥터였는데 1970년대에 심은 삼나무들이 30m 남짓한 거목으로 성장해 빼곡하게 숲을 메웠다. 
코스는 크게 삼나무 밀집 지역과 조릿대 지역으로 나뉜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난 삼나무 군락은 피톤치드 저장소다. 탐방을 시작하자마자 상쾌한 기운이 몸 구석구석 스민다. 촘촘하게 얽힌 나뭇가지들이 만든 그늘도 시원하다. 바닥은 습기가 많아 미끄럽기 때문에 걸을 때 조심해야 한다. 다행히 탐방길에 야자수 매트가 깔려 있어 걷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다. 
숲은 모습을 바꿔가며 탐방의 재미를 북돋운다. 삼나무숲이 사라질 때쯤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제주조릿대 군락이다. 키 낮은 조릿대가 탐방로 주변을 덮은 사이로 난대활엽수림이 몸통과 가지를 제멋대로 뻗어내었다. 
삼다수숲길에는 점성이 높은 용암이 흐르면서 생긴 지형과 물찻오름에서 분출한 화산탄과 분석 등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초록빛 곶자왈과 대비되는 붉은빛 화산탄은 제주의 숲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별한 모습이다. 하늘로 높이 뻗은 삼나무 그늘 아래 널려 있는 화산탄을 밟으며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말찻오름 해맞이숲길
붉은오름자연휴양림에는 해맞이숲길과 상잣성숲길이 있다. 해맞이숲길은 붉은오름자연휴양림 안에 있으며, 말찾오름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6.7km의 숲길이다. 곧게 뻗은 편백숲과 삼나무숲이 인상적이고 편백숲을 지나 펼쳐지는 소나무와 다른 나무들이 만드는 숲도 아늑한 숲길 트레킹 코스다. 
말찻오름(650m)은 물찻오름(718m) 바로 북동쪽에 있으며, 가운데가 우묵하게 파인 말굽형 분화구로 비탈면 전체가 울창한 상록수림과 낙엽수림으로 뒤덮여 있다. 
해맞이숲길은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달라 지루하지 않고 크게 힘든 구간도 없다. 상산삼거리에서 오름삼거리까지 완만한 오르막이 있고, 말찾오름 분화구의 화구륜을 한 바퀴 도는 길이 있는데 여기에 조금 가파른 오르막이 있다. 
말찾오름까지 올라가고 내려오는 길은 아늑하고 좋은 숲길인데, 아쉽게도 말찾오름 화구륜을 도는 길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전망대가 있긴 하지만 나무에 가려 별 풍경이 없다. 또 이 길에는 오르막까지 있어서 걷기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굳이 말찾오름 화구륜을 돌지 않아도 된다.
해맞이숲길은 붉은오름자연휴양림 매표소를 지나 붉은오름 정상등반길로 들어서서 편백숲 나무데크길을 계속 따라가면 된다. 숙박시설들을 지나면 목재문화체험장이 나오고, 왼쪽 편백숲을 지나면 해맞이숲길 시작점이 있다. 여기서부터 시원한 편백숲을 걷게 된다. 긴 편백숲길을 지나면 소나무와 잡목이 어우러진 숲길을 지나 말찾오름으로 이어진다. 
붉은오름자연휴양림의 해맞이숲길은 편백숲과 자연림 모두 아늑한 숲길 트레킹 코스다. 트레킹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번쯤 걸어볼 만한 길이다. 해맞이숲길을 걸으려면 붉은오름자연휴양림 입장료를 내야 한다.

 

붉은오름 상잣성숲길
상잣성숲길은 붉은오름자연휴양림 안에 있는 3.2km 코스로 해송림을 시작으로 삼나무숲을 거쳐 생태연못에 이르는 짧은 코스다. 잣성은 고도에 따라 상잣성(해발 450~600m), 중잣성(해발 350~450m), 하잣성(해발 150~350m)으로 구분한다. 돌담 형태의 잣성은 조선시대 이전 제주도 중산간 지역에 우마관리와 목장경계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잣성은 제주도의 전통적 목축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유산이다. 
붉은오름을 찍고 나오는 상잣성숲길은 숲속의 요정이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다. 코스가 짧고 평이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숲 향기를 한껏 마시면서 가볍게 걷기 좋다. 
붉은오름은 둥그런 분화구가 있는 원뿔 모양의 산으로, 화산 폭발로 인해 오름을 덮고 있는 돌과 흙이 유난히 붉은 빛을 띠고 있어 붉은오름으로 불린다.

물영아리오름과 물보라길
물영아리오름은 해발 508m로 ‘물의 수호신’이 산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으로 정상에는 둘레가 약 1km에 이르는 분화구가 있는 습지오름이다. 2007년 국내 5번째로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다. 물영아리오름 주변에 주민들이 산지축산을 운영하고 있어 습지 탐방로 입구에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목가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 
물영아리오름 주변을 한바퀴 도는 4.8km의 탐방로가 일명 ‘물보라길’이다. 코스는 구간별로 소몰이길, 푸른목장 초원길, 삼나무숲길, 잣성길로 구분하고 있다. 
물영아리오름 람사르 습지 탐방은 여러 갈래의 숲길로 무더운 여름에도 뜨거운 햇살을 피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탐방할 수 있으며, 비 오는 날에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찾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영화 ‘늑대소년’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푸른 초지 뒤로 빽빽하게 둘러선 삼나무숲이 무척 인상적이다. 실제 초원지대는 철조망이 쳐져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초원의 주인은 사람이 아닌 소들이다. 날씨가 좋은 때에는 100여 마리의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영화에는 초원과 삼나무 숲만 비춰졌지만 시선을 조금만 위로 올리면 전혀 색다른 풍경을 만나게 된다. 삼나무숲에 둘러싸인 물영아리오름이 초지 뒤편으로 봉긋이 솟아오른 모습은 영화 밖에서 만나는 또 다른 매력이다. 
물영아리오름을 그저 아래에서 바라보기만 한다면 수박 겉핥기식밖에 안 된다. 이곳의 진가는 오름을 올라야만 맛볼 수 있다. 여느 오름과 달리 정상부에 형성된 분화구에 물이 고여 습지를 이루고 있는 특별한 오름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있는 368개의 오름 중에 물이 고인 분화구를 가진 곳은 6~7곳에 불과하다. 
탐방로에서 분화구까지는 20분 남짓 걸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단이어서 천천히 쉬어가면서 오르는 게 좋다. 분화구 안에도 탐방로가 있어 습지 가장자리를 따라 깊숙이 들어가 볼 수 있다. 겨울에는 물이 많이 줄어 습지 분위기가 덜하지만 여름에는 천연 습지의 느낌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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