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아, 비켜라! 짐빠가 간다!!

저 멀리 롯데타워의 불빛이 강물에 일렁거리고 오른쪽에는 여의도 63빌딩이 황혼의 빛을 받아 금빛의 합장 기도를 하고 있다. 남산을 뚫고 나온 차량 행렬은 제3한강교를 건너고 있고 발치의 강북대로는 차들의 불빛이 꼬리를 문다.
은은한 샹들리에 불빛을 받으며 염회장은 이태리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통유리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대리석 바닥 한켠에 서서 그의 시선 끝을 따라간다. 티스푼도 물 건너온 것 아니면 머무르지 못하는 이곳에서 나는 외계인, 아니 기생충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하지만 염회장은 날 애인처럼 아끼고 늘 옆에 두고 싶어 한다.

나는 잔차계의 헤라클레스다. 다른 족속과 달리 우리는 황소처럼 뼈가 빠지게 일만 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 났다. 싸구려 철의 강도를 보완하기 위해 차체는 굵고 두꺼운 통뼈다. 많은 짐을 싣기 위해 넓고 긴 짐받이는 기본이다. 내 몸을 똑바로 지탱하려면 철판 더블 스탠드는 튼튼해야 한다.
브레이크는 큰 밴드를 쓰고 당김줄도 와이어가 아닌 철심으로 해야 내리막에서 마음이 놓인다. 찰칵찰칵거리는 변속기는 애들 장난이고 걸리적거릴 뿐이다. 넓은 림과 두꺼운 타이어는 리어카 수준이다. 
인간의 욕심에 부응하려면 무조건 강해야 한다.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20kg이 넘는 몸무게지만 팔자 억센 여인이 시집오자말자 ‘몸빼’로 갈아입듯 제2의 담금질을 한다. 취약한 목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공사용 이형철근을 구부려 핸들과 앞바퀴축을 연결하는 보조포크로 덧댄다. 뒤의 짐칸 평수를 늘리는 철판도 붙이고, 안장 뒤의 수직 받침대도 안테나처럼 길게 뽑아 올린다. 이렇게 하면 30kg 헤비급이 된다. 여기에 원동기를 올리는 못된(?) 인간들도 있다. 자토바이가 되어 파워와 속도를 욕심내면 고통과 파멸을 감수해야한다.

 

내 고향은 경기도 광명 소하리다. 75년도에 태어나자 말자 체급을 올리고 닥치는 대로 달렸다. 남들은 우리를 잔차계의 덤프트럭이란다. 기분 나쁘다. 단순히 흙만 실어 나르는 덤프에 우리를 갖다 대다니! 
우리는 생활의 윤활유이자 문화의 기수였다. 네모반듯한 두부를 싣고 쇠종을 울리는 우리는 새벽을 깨우는 자명종이자 병우유와 함께 서민들의 원기소였다. 쌀 3가마를 싣고 사랑채에 들여준 것은 총알배송의 원조이자 ‘해봤어?’ 왕회장의 영웅담이다. 여름철이면 얇은 마포에 싸인 통얼음에 등짝 마비도 참으면서 팥빙수집으로 달려갔지.
한겨울인들 쉴 틈이 있었나. 한참을 쌓아 올린 구공탄이 행여 깨질까 얼음길은 조심조심, 봉천동 산동네는 헐떡헐떡. 우체부 아저씨를 업은 우리는 러브레터로 온몸이 빨간색으로 변했고 전서구(傳書鳩) 발목을 치료해주는 나이팅게일이었지. 뚝섬 등 전국의 유원지에서도 우리 족속들의 활약은 대단했어. 목 좋은 곳에 턱하니 자리를 잡고 원통형 기계에 나무젓가락을 들이밀고 솜사탕을 만들어 연인들에게 나누어 주었지. 바로 옆에서는 수소 봄베로 색색의 풍선을 만들어 우는 애들 손에 쥐어 주었고. 
양옥집의 박살난 유리창도 우리가 출동하면 삐까번쩍이었지. 선거철이면 발통에 불붙은 술도가집 우리 아재는 잔뜩 실린 말통술에 허리가 비틀어졌고 넘치는 술 냄새에 한번 더 비틀거렸다지. 용산 잔차도매상에서 안양까지 리어카 뼈대 2대를 짊어지고 한강을 건너 남태령을 넘었다는 도라무(뼈대가 드럼통 철판이라 붙여진 별명) 할배는 우리 짐빠 종친회 명예의 전당에 올라있다. 당시 포니가 신작로를 달리는 국민차였다면 우리는 3000리 전국 방방골목을 지키는 어벤져였지. 암암. 

타고난 체력과 심플한 구조로 세월은 비켜갈 수 있었지만 변덕 심한 세상은 이길 수가 없나보다. 2000년 밀레니엄 시대라고 인간들은 축포에 축배를 들고 있을 때 우리는 방산시장 뒷골목에서 다리 부러진 지게들과 북풍한설을 날것으로 맞으며 세상을 원망했지.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간들은 나약해지고 터미네이터는 강해진다. 골다공증 증세를 보이는 어깨뼈를 가진 인간에게 지게는 되려 미안해서 손카트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나 역시 새 다리마냥 약해 빠진 그이들의 하체를 보면서 페달을 내밀기가 미안하고 안스럽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예쁜 꽃도, 잘 난 인간도 질 때가 온다는데 우리 잔차인들 피해갈 수 있겠나. 한때 전국의 골목길을 누비던 ‘생활의 달차’가 이제는 흥인지문 처마에서 노숙자처럼 유랑하고 있다.

그때 그 시절 흔한 레퍼토리처럼, 소학교만 졸업하고 상경해 산전수전 포목전을 다 겪으면서 이제는 방직공장도 여러 개 있는 자수성가 염회장이 심장마비로 쓰러진 건 십수년 전이란다. 요단강 기슭까지 다녀온 염회장에게 주치의는 “이제는 니코틴하고 바커스와 이별하시고 특히 스트레스라는 놈은 절대 만나지 마십시오.” 엄포를 주면서도 “자전거를 타보세요.”했단다.
옆에 있던 이대 나온 우아한 며느리도 합세한다. “아버님도 미쿡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처럼 바이시클을 타시면 심장이 튼튼해지실 거여요. 내친김에 은퇴선언을 했더니 기분 째진 며느리가 태평양 갓 건너온 푸~울  XTR의 티탄 MTB를 선물했단다. 그런데 시승해본 염회장의 반응이 영 엉뚱하다. 
“이건 너무 가벼워서 왕겨처럼 날리고 스펙이 너무 좋아 잘난 체해서 싫다. 이왕 사주는 김에 내 젊을 때 타고 다녔던 짐자전거 좀 구해다오.”
“으악! 아버님! 럭셔리한 우리 집안에 그런 천박한 잔차라뇨. 아버님, 살려주세요!”

 

2010년 봄. 새 학기에 결혼시즌 그리고 대륙과 섬나라의 여행객을 맞은 동대문 포목상가는 북적거리고 형형색색의 원단 뭉치들을 실어 나르기 바쁜 오토바이들을 애써 외면한다. 크롬 도금으로 빛나던 핸들은 저승꽃이 덕지덕지하고 시크한 검정색 바디는 덧칠로 울퉁불퉁하다. 황금 스티커로 곱던 점보란 내 이름은 쥐가 갉아먹은 듯 떨어져 나가 점보인지 람보인지 여보인지 헷갈린다. 
검정색 구두가 내 앞에 코를 내민다. 올려다보니  맨인 블랙의 윌 스미스, 정장 둘이 우리를 외과의사처럼 이곳저곳을 살핀다. 전날 밤 꿈에 용을 본 것도, 석호필을 만난 것도 아닌데 이곳을 탈출하게 된 것이다. 단짝 친구 ‘까마귀’(피부가 반짝거리는 검정색이라)는 개관 준비 중인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으로 가게 되었다. 아마 나는 우리 가문에서 잔차 신데렐라로 기록될 것이다.

오늘은 목요일, 염회장과 함께 한남동 자전거 토끼굴을 빠져 나와  한강, 중랑천, 청계천 자전거길을 달리고 있다. 뒤에는 운전기사 최씨와 티탄이 그림자처럼 붙어 있다.
매주 화, 목요일은 종로 파고다공원 옆 아지트에서 친구들과 점백 고스톱에 삼천 원짜리 짜장면 먹는 날이다. 칠십대 중반의 나이에도 그의 장딴지는 고구마처럼 탄탄하다. 서그적 서그적 페달을 젖는 힘이 팔팔해서 온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세월아, 물렀거라! 오빠가 간다! 짐빠가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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