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 천방지축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는 이제 거의 팩트처럼 받아들여져 여기에 대해 걱정하거나 강한 주장을 펴야 지성인으로 대접받는다. 그런데 지구는 정말 산업화와 공해 때문에 따뜻해지고 있고 기후는 격변하는 중일까.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산화탄소는 정말 불필요하고 나쁜 존재일까

어릴 적 겨울철이면 세수하고 나서 손과 얼굴에 향내 나는 구리무를 발랐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목욕과 빨래를 자주 하지 않아서인지 어쩔 수 없이 몸이나 옷에서 냄새가 났다. 이 냄새를 없앨 겸 선생님들 지나가면 풍기던 머릿기름 냄새 같은 서울냄새 좀 보태보고 임시방편으로 옷에다 파리약을 뿌렸던 기억이 난다. 그후 파리약 냄새를 공해라고 교육받고 나서는 반사적으로 나쁜 냄새로 각인된 지금, 가끔 스스로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든다. 솔직히 말해서 꼬랑내보다는 서울 분위기 풍겨주던 도시향취 같은 석유냄새가 더 좋지 않았나? 어릴적 살충제를 분무하는 방역차 연막 뒤를 아이들이 뒤쫓아 가던 이유가 뭔지 생각해볼 문제다. 
얼마 전 세탁세재 봉지 표면에 ‘남편냄새 제거’라는 항목이 추가된 것을 보았다. 나이가 듦에 따라 몸에서 냄새가 생기는 모양인데, 운동으로 땀 빼고 나서 바로 샤워하지 않는 이상 정말 없애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봐야 그 효과가 겨우 한나절 가려나? 요즈음은 ‘에프킬라’도 무색무취라서 집 나설 때 마누라 몰래 뿌려봐야 효과도 없고, 스킨로션으로 서울냄새 좀 바르려고 해도 로션에서 아무 냄새도 안 나거나 밀크로션과 짬뽕한 게 대부분이고 해서 몸에 뿌리거나 얼굴에 바를 게 도통 없다. 심지어 비누도 냄새가 없어서 쓰나마나다. 정말이지 인공향 냄새 좀 맡고 싶다. 
탈레반이 집권한 아프간에서 미용실이 문을 닫게 되면서 여성들은 미용실의 샴푸냄새를 다시 맡을 수 없는 슬픔에 빠졌다고 한다. 싸구려 샴푸의 강한 향내, 그거 절대로 값싼 공해 냄새가 아니다. 

 

◇ 언론이 헤드라인으로 바람 잡지 않으면 외계소식
올해 7월초부터 시베리아 동부 야쿠치아에서 발생한 산불이 한 달 이상 끌면서 서부의 우랄산맥 너머 유럽 북동부까지 위협하는 등 시베리아를 다 태우고는 8월에 들어서야 소멸되었다. 국내언론에도 보도되었으나 헤드라인으로 다뤄지지 않아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언론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터키와 그리스의 산불과는 비교가 안 되는 대규모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보도내용조차 엉망이다. 지도를 가지고 어림잡아 봐도 300만㎢는 되어 보이는데 전체 피해면적을 남한의 1.6배(16만㎢)로 보도했다. 더 웃기는 것은 피해지역의 일부분인 야쿠치아의 피해면적을 8만7,000㎢라고 해놓고 프랑스(55만㎢)의 5배라고 했는데, 정말이지 우리 언론의 수준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해당지역 그린피스는 “이 지역의 화재는 정상적이며,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즉, 환경단체들이 관심사로 취급하지 않기로 합의한 듯한 냄새까지 날 지경인데, 정말이지 이들의 환경잣대는 철저히 서방진영 힘빼기 용이지 결코 지구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는 게 확연하게 느껴진다. 하긴 그린피스 코리아 회장이 중국인이라고 하지 않는가.
 
◇ 핵겨울 이론도 뻥 아닐까
이번 시베리아 화재에서 배운 게 하나 있다. 핵겨울의 존재가능성에 대한 의문 말이다. 반핵주의자들이나 환경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핵겨울은 핵전쟁에 따른 삼림지대의 화재로 인해 연기와 먼지가 피어올라 대기층을 덮으면서 태양광을 차단해 초래되는 빙하기 같은 공포스러운 것이라고 한다. 
헌데, 핵무기로 삼림지대를 공격할 일이 있는가? 대량 인명살상이 핵무기의 용도인데 뭣 하러 사람도 별로 살지 않는 곳에다 핵무기로 공격하겠는가? 설령 삼림지대에 핵을 떠뜨려 어찌어찌 화재가 발생해도 정말 화재 연기가 지구를 뒤덮을지도 미지수다.
이번 시베리아 화재에서 보듯 그렇게 광범위한 지역을 태우고도 연기와 먼지에 따른 빙하기를 걱정하거나 다량의 이산화탄소 발생에 따른 온난화 걱정을 갖다 붙이는 인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핵겨울 이론도 뻥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왜 그 무서운 핵겨울을 중·러는 걱정하지 않고 서방세계에서만 호들갑일까?

◇ 지구온난화와 기후변동이라는 사기
지구 온난화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오래전부터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항만의 부두나 잔교가 바다 밑으로 잠겼다는 말이 없다. 이미 20~30년 전에 해수면 상승으로 가라앉아야 할 곳이 지금도 멀쩡하다. 1990년대에 주장한 해수면 상승 주장에 따르면 2006년에 이미 해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야할 저지대가 2020년이 되어도 멀쩡하고, 해수면 상승을 주장한 사람은 호화저택에서 멀쩡하게 잘 산다. 그러면서 또 그 시기를 30년 쯤 뒤로 연기하여 그때는 분명히 가라앉을 거라고 또 떠든다. 문제는 그런 연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거다. 
이젠 하다하다 못해 평년보다 혹독하게 추운 겨울까지도 온난화에다 갖다 붙인다. 그러다보니 온난화란 말을 쓰기가 낯간지러우니 ‘기후변화’란 말로 살짝 돌려서 사기 친다. 
기후변화? 그게 무슨 나쁜 일인가? 기후변화는 인간이라는 요소가 있든 없든 지구역사와 함께 당연히 항상 존재했던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 아닌가! 오히려 최근 100년 동안의 평균상태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인간들의 바램이 비정상 아닌가? 그래, 장구한 자연현상이 인간 눈치 봐가면서 화산 터지지 말고, 지진 일어나지 말고, 태풍 불지 말아야 정상인가? 따지고 보면 모두가 지구차원이 아닌 단지 인간생활 측면에서 멀쩡한 지구에다 비정상적 굴레를 덮어씌운 것에 불과하다. 

 

◇ 평온했다는 최근 1만년도 순탄치 않았다 
요즘은 설령 북극곰의 개체수가 실제로는 늘어나도 입으로는 줄었다고 걱정하는 투로 말해야 정상인 취급받는 세상이고, 풍력과 태양광 건설자재는 굴뚝공장과 관계없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믿어버리고 넘어가야 하는 세상이다. 모난 돌 되어 정 맞고 싶지는 않지만, 스스로 속일 수 없는 답답함은 풀고 싶다.
흔히들 최근 1만년 동안 지구 기후는 극히 안정적이었던 것처럼 묘사하며, 거기에 기준을 맞춰서 최근 100년간의 기온상승을 두고 기후의 급변이라고 설레발 치는 보도가 잦은데, 과연 그대로 믿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고 한다. 최근 1만년을 200~300년 단위로 세분해보면 이상고온과 소빙하기가 잦았다. 지금의 온난화도 실은 그러한 200~300년 단위의 기온상승기에 불과하며, 지금의 추세가 갑작스럽게 생겨나 지속될 거라는 예상은 눈속임 야바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1만년 동안 온난기와 소빙기가 빈번하게 있었음에도 추세평균선을 기준으로 보면 서로 상쇄되므로 기후변화가 아주 적었다는 셈이 나오는 것을 악용한 것이다. 전체적인 추세로 환산된 밋밋한 부분만 부각시키고는 부분적 등락에는 일부러 눈감아버린 왜곡된 주장인 것이다. 
심지어 전체적으로 보면 추세선의 하향으로 오히려 지금까지 기온이 내려간 것으로 나오는데, 구간별로 보면 산업화되지 않은 역사시대에도 지금보다 기온이 훨씬 높은 시기가 잦았다는 것이다. 
세분화된 구간별 급등락은 무시하고 밋밋하게 처리된 1만년의 전체적 추세선만 가지고 안정적이라고 사기치고는 그걸 가지고 인간기준에 맞춘 항구적 상태인 양 기만한 것이다. 
 
◇ 이산화탄소야말로 생명의 메신저
온난화가 사기이든 말든 그 주장의 근거로 들먹이는 주범은 이산화탄소라고 지목한다. 하긴 우리는 어릴 때부터 대기 중의 산소는 좋은 존재요, 질소는 굳이 필요 없고 이산화탄소는 나쁜 존재라고 세뇌 받아왔으니, 이산화탄소를 증오의 대상으로 지목해도 공감하기가 용이했으리라. 물론 산소는 사람이나 동물에게 좋은 것 맞다. 호흡에서 취하려고 하는 소중한 것 아닌가. 그래봐야 그것도 인간중심 기준일 뿐, 금속에는 부식의 원천이어서 나쁘게 작용한다. 
질소는 어떤가? 호흡에는 무의미한 존재지만, 생명의 구성물질인 단백질의 핵심구성요소이다. 그렇지만 대기에서 질소 그 자체를 직접 취할 수 없어 산소와 이온결합된 상태로 생명체가 취하는데, 이러한 공중질소의 이온결합체를 만드는 게 자연에서는 번개라는 기상현상과 콩의 뿌리혹박테리아다. 그래서 번개 치면 풍년든다는 건 천연 질소비료의 공급이요, 토질의 비옥화를 위한 윤작작물은 콩 아닌가. 
그렇다면 이산화탄소는 오로지 나쁘기만 한 못된 존재일까? 아니다.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이산화탄소 때문에 물과 햇빛을 기반으로 광합성을 하는 것이니, 이산화탄소가 없으면 식물의 광합성이 불가능하고, 그에 따른 탄수화물의 생성이 중단되며, 탄수화물이 단백질의 기반물질임을 생각하면 모든 생명활동이 중단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구의 육상 생태계는 전멸되고, 심지어 바다의 산호조차 사라진다. 
결국 이산화탄소는 유기물 순환의 메신저로서 생태계의 보이지 않는 식량이동 형태의 핵심인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이산화탄소를 우리는 마치 흉물스런 독가스처럼 취급했던 것이다. 
탄소제로? 그럼 죽자는 얘기가 된다. 공업이나 소비생활을 이산화탄소 발생의 주범처럼 여기는데, 실은 농토에서 이산화탄소가 가장 많이 발생하며, 그런 식이면 농사마저 짓지 말자는 얘기가 된다. 
인류가 내뿜은 이산화탄소 때문에 식물의 생장속도는 더욱 빨라지므로 오히려 지구녹화에 기여한 것으로 봐야 한다. 아닌 말로 지구온난화는 그리 나쁜 게 아니라는 것, 온난화는 지구 기후변화 중의 하나일 뿐이다. 기후가 변동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오히려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인간들만의 교조적 사기논리인 것이다. 공업을 위주로 이산화탄소의 발생원천으로 지목하면서 서방진영에만 편파적으로 적용하고 중·러 진영에는 관대한 것을 보면, 중·러 진영의 공작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 유목이 진취적이고 친환경?
약간 벗어난 얘기인데, 우리는 이상하게도 유목민이 농경민보다 훨씬 진취적이라는 표현을 많이 한다. 왜 그럴까? 생각컨대, 농경은 주로 계절성 노동이기에 일 없는 날도 많이 생길 수 있고, 풍수해 때만 갑작스럽게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노동이 필요한데 비해, 유목은 항온동물인 가축이 매일 먹고 배설해야 하니까 상시노동을 수반하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움직이지 않는 식물을 다루는 농업과 달리 유목은 움직이는 동물을 취급하려니 체력이 훨씬 많이 소모되고, 가축의 갑작스런 반응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평소에도 힘이 좋아야 하니 당연히 기운이 셀 수밖에 없다. 물론 육식에 따른 근골의 발달도 한 몫 하겠지만, 그 육식이 비만이 아닌 체력으로 승화하는 데는 상시노동에 따른 상시체력의 발달이 더 근본원인이라고 본다. 
유목민은 체력은 우월한데 이동에 따른 물자의 집적은 부족하므로 상대적으로 물산이 풍부한 농경사회에 대한 예봉이 항상 서려있어 역사적으로 유목민은 항상 농경민을 침탈했다. 그게 진취적 기상으로 보였나 본데, 그걸 두고 유목민의 근성이 더 적극적이라고 떠든다. 유목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이 이동하는 지금 세상에 뜬금없는 헛소리일 수도 있지만 과거에는 그렇게 볼 수도 있었겠다. 
예찬도 이 정도면 그냥 넘어가겠는데, 언제부턴가 유목을 두고 자연친화적인 낭만으로 묘사하는 호들갑이 각종 다큐 프로에 많이 등장한다. 마치 친환경을 합리화시킬 만한 좋은 소재로 유목이 견강부회로 동원되는 것 같다. 

 

 ◇ 유목은 사막화의 주범
사하라 사막의 확장현상을 두고 학자들은 화전경작에 따른 수목과 초지의 감소 때문이라고 한다. 사막의 생성은 차치하더라도 확장에 대해선 타당한 논리로 보인다. 
그렇다면 유라시아 대륙의 사막은 어떨까?  일단 구소련의 투르크멘 운하가 중앙아시아 황폐화의 큰 원흉이다. 아랄 해로 흐르는 아무다리아강의 물을 카스피 해 쪽으로 빼돌린 투르크멘 운하의 물과 그로 인해 수량이 더 적어진 아무다리아강의 물을 가지고, 물이 적은 사막에서 물을 많이 먹기로 유명한 작물인 ‘면화’를 재배하는, 말도 안 되는 구소련의 농업정책이 그 원인이다. 이렇게 하여 아랄 해로 흐르는 아무다리아강의 유입량이 아랄 해의 증발량보다 훨씬 못 미칠 정도로 줄어들다 보니 아랄 해는 종전의 4분의 1도 안 되는 크기로 줄어들었고, 염해로 인해 주변지역의 황폐화는 극심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더 건조해진 편서풍의 영향으로 세계적 내륙인 신장-위구르에서 내몽고 지역의 사막화가 더 심해져 황사도 갈수록 더 심해졌다. 환경단체가 이걸 문제 삼는 건 본 적이 없다. 
그럼, 구소련이 만든 투르크멘 운하 이전에 유라시아 대륙을 황폐화 시킨 것은 없을까? 있다. 바로 유목이다. 
유목은 완전사막화로 만드는데 일조해왔다. 즉, 소나 말이 먼저 풀을 뜯고 난 자리에 뒤따라가는 양은 풀뿌리까지 캐먹는다. 그러면  비가 와도 새로 자라날 풀이 없게 된다. 심지어 유목은 설산고원 지대도 사막화시킨다. 
파미르고원에는 키가 발등 높이 정도 밖에 안 되어 납작하지만, 다 자라는 데는 무려 20년이나 걸리는 테르스켄(Tersken)이라는 난장이 관목이 있다. 유목민들은 이를 그냥 채취하여 연료로 쓴다고 한다. 그런데, 타지키스탄 정부에선 테르스켄을 채취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사막에 가까운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한 세대가 되어야 자라는 식물을 한 끼 식사를 위한 취사용이나 난방용 연료로 채취해버리면, 파미르고원의 사막화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테르스켄을 땔감으로 사용하고 난 유목민이 20년을 기다렸다가 다시 오는 게 아닌 이상 파미르고원의 사막화와 침식으로 인한 황폐화는 막을 수 없는 일 아닌가. 
환경 호사가들은 이러한 테르스켄 채취 장면을 두고 “주민들이 욕심 없이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만 갖다 쓴다”며 미화할지 모르지만, 환경파괴는 인간의 욕심보다 인간의 무지에 더 큰 원인이 있음을 애써 외면한 말처럼 들린다. 결국 산업화 이전까지 사막화의 주범은 화전과 유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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