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칠(77)한 1300km 바닷길 대장정

본지에 ‘잔차의 고백’을 연재하는 ‘뽈락’ 김태진 편집위원
(전 코렉스스포츠 대표)이 16박17일간 국내 최장의 77번 국도를 완주했다. 파주 임진각에서 서해안과 남해안을 따라 부산까지 1600km를 달린 바닷길 대장정이다 

 

77하게 달려봐! The Beginning!
오늘은 남양주 작업장 왕복, 어제는 선배 부부와 광릉수목원, 그제는? 바다미와 매일 함께한 것은 맞는데 어딜 다녀왔는지 가물가물하다.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다가 해가 지면 포근한 건초더미에 몸을 뉘는 젖소의 뇌가 어제를 저장할 필요가 있을까?  
뽈락은 낮이면 한강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어둠과 함께 컴백한다. 잘 훈련된 물벼룩이 될까 걱정된다. 자기 몸길이의 100배를 점프할 수 있는 물벼룩이지만 어항위에 설치해 둔 유리천장에 부딪히다가 나중엔 습관이 되어 천장이 없어져도 그 높이 이상의 점프는 포기하고 만다고 한다. 그런 천장에 길들여지기 전에 탈출하자. 들이박다가 혹처럼 뿔이 생기면 그 뿔로 뚫으리라! 
미지의 세계로 가는 장거리 작전은 얼렁뚱땅 해서는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자전거여행의 3요소는 잔차, 사람 그리고 미캐닉이다. 그동안 사람 뽈락은 매일 70km 이상 라이딩으로 체중을 6kg 감량하고 근력운동을 병행해왔다. 잔차 바다미도 새롭게 몸을 만들었다. 뒤 패니어 랙을 보강하고 앞 포크에 랙도 새로 달았다. 시마노 최고의 투어링 컴포넌트인 데오레 XT 풀세트를 장착했다. 
새 신발도 신었다. 여분의 튜브와 펑크패치, 휴대용 공구도 챙긴다. 텐트, 침낭, 매트리스, 코펠, 버너, 의약품, 종이지도 등 휴대용 의식주를 꼼꼼히 체크한다. 지갑속 현금과 카드의 총탄도 넉넉히 장전한다. 이제 언제라도 열쇠만 들어오면 열릴 준비가 되어 있는 자물쇠 상태다. 철커덕!
4대강 자전거길? 제주도 환상길? 편안하고 무던한 길들이다. 몇 번씩 가봤던 길들이라 스릴도 서스펜스도 없다. 한계효용의 법칙이다. 꼬리뼈까지 오싹해서 펄쩍 뛸 것 같은 청양고추를 베어 물고 싶다. 
BL Kim께서 강추한다. 77번 국도! 우선 넘버가 맘에 든다. 행운! 그것도 곱배기란다. 부산에서 출발해 개성까지 가려다가 철조망에 걸렸다. 임진각까지가 약 1,300km란다. 서울-부산 간 국도나 고속도로가 500km가 채 되지 않는데 1,300km라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렌다. 남해와 서해 해안과 섬들을 말 그대로 리아스식으로 요리조리 돌다보니 제일 긴 길이 되었다. 곱배가 긴 열차가 승객을 많이 태우고, 쭈구랑 주모가 사연이 많듯이 최장거리인 77번 국도가 보여주고 들려줄 새롭고 기묘한 story와 view에  찬찬히 빠져들고 싶다. 한층 흠씬!
많은 친구들과 가로등 아래서 즐겁게 놀던 개똥벌레는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 꽁무니는 제대로 발광하고 있나?’ 그리곤  깨닫는다. 그걸 확인하려면 저 깜깜하고 무서운 어둠속으로 혼자 몸을 던져 봐야한다고. 오직 역경 속에서만 가치와 미덕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그냥 떠나련다!

 

 

1일 째  자, 출발이다!
바다미를 티볼리 지붕에 매달고 집을 나선다. “수요일에 자전거 싣고 임진각 가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을 거야”하면서 운전하는 아들의 말대로 오전 9시에 도착한 임진각에는 공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린다. 
77번 국도는 엎어지면 코앞인 종착지 개성을 앞두고 철조망에 뒤엉켜 멈춰 섰다. 마라톤 결승선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쓰러진 비운의 챔피언이다. 무뚝뚝함을 물려받은 아들은 그래도 역사의 순간(?)을 찍어주고 같이 인증샷을 남긴다. 건네는 물 한 병에 안전, 건강이 미네랄처럼 담겨 있다.
‘자유로’라 명명된 77번 국도는 자동차만 자유로운 도로다. 하여 우리만의 자유로를 찾는다. 임진각을 뒤로 하고 나서자마자 오른쪽에 “어서와, 니가 바다미구나”하고 좁고 앙증맞은 평화 누리길이 우리를 반긴다. 호젓한 길이다. 
황희 선생의 반구정 입구를 스쳐 지난다. 두모포 건너 한명회의 압구정과 비교된다. 갑갑한 구중궁궐에서 탈출한 황희정승처럼 뽈락과 바다미는 자유의 향기에 코를 벌렁거리며 달리고 있다. 길바닥에 새겨진 ‘농기계 우선’이란 단어처럼 창릉천 벌판은 저 멀리 도봉산을 병풍으로 삼고 펼쳐져 있다.
모텔촌으로 유명한 오두산 통일전망대 근처에서 잠시 쉬는데 서너명의 라이더가 말을 건넨다. 바다미의 행색에 호기심과 관심이 집중한다. 통역은 뽈락의 역할이다. 고양시 능곡의 자전거 의류 매장에 불이 난 모양이다.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빨간색 소방차는 흰색 호스를 접고 있다. 빨간 불길에 주인은 혼이 났을 건데 또 빨간색을 봐야한다니 물빛의 파란색 소방차는 없을까?
57km를 달려 행주산성에 도착했다. 원조국수집은 국수발처럼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비빔국수 파트너인 뜨거운 육수를 2그릇 비운다. 시원하다! 늦더위 고속질주 후의 육수가 왜 이리 시원한 걸까.
가양대교를 건넌 77(이제부터는 공무원 존칭을 생략하고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은 김포공항, 부천, 인천을 피곤하게 지나갈 것이다. 그런 번잡함에 몸을 섞기 싫어 우리의 길을 개척한다. 가양대교 남단에서 아라뱃길로 향한다. 다리 밑 이발사의 살림이 늘었다. 문짝만한 거울도 있고 동그란 벽장시계도 보인다. 기댈 데가 없어 모두가 비스듬히 누웠다.
아라뱃길! 배를 띄울 수 있다하여 물밀듯 들어온 바닷물은 실망의 세월 속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얻어터진 복싱선수의 눈두덩처럼.
정서진에 도착했다. 임진각에서 90km 넘게 달려 왔으니 멋진 황혼쯤은 보여 줘야 하는데 햇님은 아직도 중천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다. 인천공항고속도로 밑을 통과하니 인천 청라지구가 나온다. 77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숭의역을 검색한다. 자전거 안내를 눌렀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이지만 이게 우리의 길이다. 
한가한 청라지구를 지나니 북항이 보인다. 이제부터 공룡이 뛰노는 정글에 들어 왔다. 세상의 소음이 윽박지른다. 현대제철, GM자동차 공장 입구에서 트럭이 튀어 나온다. 갑툭튀다. 자동적으로 오감이 열리고 아드레날린이 분출된다. 엉덩이로 만들었는지 울퉁불퉁한 자전거길은 쟤네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구시가지인 배다리에 접어드니 자전거도로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보도는 물뱀처럼 갈수록 가늘고 좁아진다. 상점들의 물품들은 반쯤 밖으로 튀어 나와 있고 주인의 맨발도 바리게이트처럼 삐죽하다. 그래도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왜? 지금 우리는 여행중이니까. 내가 선택한 여정이니까!
숭의역 근처 모텔로 성큼 들어섰다. 3.5만원 가격도 착하고 주인장도 친절하다. 112km를 뒷바람 덕분에, 아니 바다미 덕분에, 아니 모든 이 덕분에 잘 달려왔다.
피곤이 엄습하여 막걸리 잔을 들 힘도  없다. 하지만 첫 단추는 제자리에 잘 끼운 것 같다.

 

 

 

2일 째  갯벌의 추억
아침 8시, 도심의 아침은 분주하고 정신이 없다. 77은 왕복 8차선으로 몸집을 두꺼비처럼 잔뜩 부풀렸지만 세상으로 다 나온 차들로 벌써 꽉 차버렸다. 이런 아수라판에 겁도 없이 뛰어든 바다미는 태평양의 일엽편주 같지만 실상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저마다의 생활 전선에서 4배속으로 되감기 당하고 있는 모습에 슬로모션인 우리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남동공단으로 향하는 차들도 있고, 송도 신도시에서 쏟아져 나오는 차들을 ‘지니의 램프’ 주둥이처럼 생긴 제3경인고속도로 톨게이트가 빨아들인다고 목이 멘다. 덕분에 77은 4차선 다이어트를 했는데도 한가하다. 그렇게 인천시내의 번잡함을 벗어나 소래포구에 닿았다. 이곳의 러시타임은 술이 당기는 오후의 술시(戌時)일 것이다. 하여 우리는 그저 투명물체이고 포기당한 신세다.
썰물에 찰진 몸뚱이를 드러낸 갯벌은 일광욕 삼매에 빠졌다. 이곳 주변의 소래, 월곶, 배곶의 주민들은 태고 때부터 꽃게 신을 섬겨왔고 지금도 꽃게 덕분에 살고 있다. 동네 초입의 꽃게 신상(?)에 바다미와 함께 우리의 안전을 기원한다. 

 

이른 시각에 문을 연 식당이 있다. 하얀 쌀밥에 계란찜, 두부전, 햄, 김, 조기, 가지나물, 김치류, 꽃게장 그리고 쇠고기 국으로 뷔페식이다. L호텔 38층 고급 레스토랑보다 푸짐하고 떳떳하다. 
내비속의 그녀에게 오이도 안내를 주문한다. 메뉴에 자전거길을 부탁하면 돌고 도는 물레방아이고 자동차 모양을 누르면 지름길로 쌩 달린다. 그래서 터득한 진리! 적당한 목표를 정하면 그녀와 합의를 볼 수 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려면 연결하는 점을 많이 찍는 게 답이더라. 7번 아이언으로 끊어서 가는 게 현명하다.
오이도의 빨간 등대가 반긴다. 옛날 여름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함께 제주도 자전거여행을 가기 위해 들렀던 곳이다. 올림픽공원을 출발해 과천역까지 자전거로 와서 우리는 전철로, 자전거는 트럭으로 이곳 오이도역에 도착한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인천여객터미널로 가서 제주행 오하마나호에 올랐었지. 
오른쪽 안산공단, 왼쪽 시화호의 가운데를 77은 달린다. 안산은 창원과 같이 계획도시라 쭉쭉빵빵 도로다. 소실점이 보이는 도로는 러닝머신 위에 앉은 것처럼 페달을 밟아도 정지된 느낌이다. 
내비의 그녀 몰래 자전거도로로 살짝 옮겼다. 그녀는 아는지 모르는지 “500m 전방에 박스형 단속카메라가 있습니다”하고 멘트를 날린다. 조금 푼수끼가 있는 그녀가 좋다.
나무에 가려 시화호와 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상상 바다는 우리를 신나게 한다. 자전거도로는 사라지고 82번 국도와 합류한 77은 왕복 4차선으로 쪽 뻗어 있다. 너무 잘 생겨 자동차전용도로 아닐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반가운 ‘자전거 우선도로’란 파란 글귀와 화살표가 보인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문제는 그걸 자동차 운전자들이 알아야 하는데 우리 눈에만 보인다는 것이다. 속도와 굉음에 떠밀려 갓길로 나왔지만 그곳도 우리를 반기지 않는 눈치다. 졸음방지턱 아이디어가 탱크 자국처럼 울퉁불퉁하고 족제비 싸리는 우리를 향해 반갑지 않은 인사를 하고 있다.
54km를 달려 화성시청을 지나치다 편의점에 들렀다. 점심때이지만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소래포구의 착한 백반집 덕분인가. 그래도 지금은 의무 영양보충 시간이다. 샌드위치와 사과 그리고 우유를 사서 벤치에서 런치를 즐긴다. 우리나라는 정말 좋은 나라다.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이다. 가다보면 나만을 위한 편의점이 항상 열려 있다. 시원한 음료부터 신선한 과일, 그것도 친절하게 씻어서 봉지에 담아 놓았다. 나는 신분증도 필요 없이 카드만 내밀면 고맙다는 인사까지 듣는다. 루이14세인들 이런 호강을 누릴까.
매향리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궁금증에 77을 벗어나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는다. 좁았던 지방도는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이 들어섬에 따라 매향리 가는 길은 8차선 확장공사가 한창이다.도로명도 ‘기아로’다. 다른 상점을 압도하는 커다란 부동산 간판은 이곳의 열기는 부동산에서 끓어오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동안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달려갔는데 매향리 사격장은 생태공원으로 변했다. 언덕에 자리 잡은 건물과 전위예술 같은 녹슨 포탄이 어지럽다. 1951년부터 54년간 주한 미공군 사격장으로 사용되다가 폐쇄한 지 16년이 지났다. 이념의 갈등은 또 다른 아픈 갈등으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역사다. 이제 매듭을 짓고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고온리! 이름처럼 따뜻하고 살기 좋은 마을로 변하고 있다.
매향리 301번 지방도에서 다시 77로 복귀한다. 완만한 오르막은 바다미의 친구 뒷바람이 밀어준다. 남양대교로 남양호를 건너서니 평택 땅이다. 공장건물들이 즐비한 포승읍을 지난다. 그물을 어깨에 맨 거인 같은 서해대교가 멀리 보인다. 77은 그 대교 앞에서 왼쪽으로 꺾여 돌아간다. 바로 직진하면 깊숙한 평택만을 가로 질러 충청도로 갈수 있는데! 덩치가 그렇게 크면서도 우리 같은 쬐그만 잔차족을 거부하다니. 천하의 졸장부 같으니라고! 대교가 아니라 서해졸교라 명명하노라.
평택항에서 나온 컨테이너 화물차는 짐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타이어가 타는 냄새로 호소하고 있다. 
아산만방조제 옆 관광단지의 모텔에 바다미의 여장을 푼다. 오늘도 105km나 달려준 바다미가 고맙고 대견하다. 평택호가 바라보이는 5층을 내준 주인장이 고맙다. 아텍스 조 사장이 잔차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 강촌횟집에서 회덮밥과 맥주를 마시며 세상 사는 얘기를 주고받는다. 같은 평택이지만 왕복 40km의 길을 달려와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사장님의 마음씀씀이에 피로가 확 가신다. 잔차는 이렇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가교다! 서해졸교보다 훨 낫다!

 

 

3일 째  좀 쉬엄쉬엄 가게나!
여행은 유격훈련이다. 새벽이면 자동으로 눈꺼풀이 열리고 온몸의 세포가 춤을 춘다. 4시부터 사진 정리하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어제 지나온 길들을 회상한다. 그리곤 붓, 아니 손가락 가는대로 잡기를 써내려간다. 돋보기를 끼고 오늘 갈 코스를 종이지도와 카카오지도를 비교한다. 일기예보 체크는 필수다. 삼류 정치인의 뻥 만큼이나 할리우드 액션이 극에 달하는 일기예보지만 안 믿을 수도 없다.
태풍 ‘찬투’가 온단다. 딸 갱도 태풍 온다고 시어머니 잔소리를 한다. 사랑의 가시는 찔려도 아프지 않다. 대충 준비를 끝내니 6시다. 평택호에는 새들이 낮게 날고 먹장구름이 덮고 있다. 망설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바다미를 깨워 모텔을 나서는데 한두 방울 비가 듣는다. 神의 어중간한 시험에 녹아날 뽈락이 아니지. 가자! 가보자!
오늘 코스는 내비 그녀의 도움 없이 갈 수 있는 단순한 길이다. 아산만방조제의 동쪽에는 자전거도로가 있지만 건너기도 애매하고 다시 건너와야 해서 그냥 그대로 갓길을 달리기로 한다. 삽교호를 건너는 길은 38, 39번 국도가 함께한다. 중앙분리대도 있는 4차선 산업도로다. 뒷바람 순풍에 돛을 달았다. 하늘은 점점 밝아지고 있다. 시속 26~27km로 질주한다. 갑자기 바다미가 도리질을 한다. 앞타이어가 외할머니 젖무덤처럼 쪼글해졌다. “차가 우리를 박으면 그 차 보험수가가 올라갈까 염려되어 갓길을 달려 줬는데…” 하는 뽈락의 너스레에 바다미는 “못에 찔려 발바닥이 아파 죽겠는데 농담할 때냐”고 눈을 흘긴다. 숙달된 조교의 손놀림으로 긴급사태를 해결한다. 야속하게 박혀 있던 철조각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자네, 좀 천천히 가게나!” 옆의 핑크빛 싸리나무 꽃도 동을 단다. “그려. 지금 너무 빨라! 뭔 급한 일이 있나?”
잘 나가는 77에서 빠져나와 이홍희 편집위원(전 해병대 사령관)의 강력 추천지인 왜목마을로 향한다. 바둑판처럼 구획정리가 잘 된 황금 들판 사이로 난 아스팔트 도로를 달린다. 끝자락에 우뚝 솟은 당진화력발전소가 스카이라인을 망가뜨리고 있다. 오른쪽으로 꺾어 언덕을 살짝 올라서니 별천지가 펼쳐진다. 아담한 모래밭이 활처럼 휘어져 있다. 발이 푹푹 빠져 힘들어 하는 바다미의 손을 잡고 백사장에 들어가 은빛 왜가리와 함께 추억을 남겼다.
1998년 이철환 당진시장이 ‘서해 일출’이라는 역발상으로 시작한 축제로 ‘해가 뜨고 지는 왜목마을’로 유명해져서 뽈락까지 불러들이게 된 것이다. 일과를 마치기에는 터무니없이 이른 시간이고 주행거리도 60km에 못 미쳐 탐탁지 않다. 그동안 이렇게 살아온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죄를 짓는 거고 늑장을 부리면 낙오자로 찍히는 ‘새벽종이 울렸네’ 시대를 살아온 부작용이다
그래 눈 질끈 감고 좀 놀아보자! 바닷물에 발도 담그고. 낚시꾼 옆에 가서 말도 걸어 보고 사진도 찍어 달라 떼도 써보자. 가져온 책도 펴 보고 지겨우면 그냥 멍도 때려 보자. 이런 내  맘을 아는지 절벽 밑에 귀인이 자리를 다져 놓았다. 3년만에 1인용 텐트와 침낭이 숨을 쉰다. 일몰을 보기 위해  파출소 뒤 경사진 야산을 오른다. 고압선이 앞을 가리지만 지는 해는 막을 수 없다. 어스름한 객지의 밤은 술친구를 부른다. 같이 온 계절 친구인 전어는 ‘면천 샘물 막걸리’에 몸을 담근다. 벌써 왜목 마을은 어둠이 내리고 있다. 뽈락의 뱃속에 들어간 막걸리는 여독을 삭히고 있다. 크으윽~

 

 

4일 째  서해의 일출과 일몰
여명의 새벽은 천지창조다. 수평선에 아직 해는 보이지 않지만 하늘에 떠 있는 구름들은 불그스름한 예복으로 차려 입고 태양신 등장의 팡파레를 울리고 있다. 역시 일출은 장엄하다. 특히 서해에서 맞는 아침 해는 신기한 경험이라 동해 일출처럼 가슴 벅차다. 망막을 통해 들어 온 강력한 에너지가 온 몸으로 쫘악 퍼지는 기분이다. ‘태양이 떠오른다’고 하면 아직도 우리는 천동설에 근거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표현하자면 ‘지구가 돌아서 해가 보이기 시작한다’일까. 맹탕이다. 과학은 때로는 시를 망가뜨리고 낭만에 찬물을 끼얹는 파렴치범이다. 
아무튼 어제 궤도를 벗어나 농땡이 친 보람이 있다. 하지만 소문난 곳에서는 바가지 물가와 소란스러움을 감수해야한다. 방파제에 진을 친 차박족은 전쟁을 앞둔 병사들처럼 밤새 떠들어 댔다. 텐트 속 매트리스 오른쪽 바닥의 자갈은 밤새 꼼지락이다. 

 

어서 오라고 해서 들어간 식당에서는 해물라면이 거금 일만냥이다. 조금 착한 바지락 칼국수를 시켰다. 핸드폰이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바지락을 세어 보니 22개! 입을 꽉 다문 한 녀석 포함해서다. 묵언수행 중이신가. 
텐트를 걷고 주변을 정리한 후 어제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마을 끝자락 축사의 냄새에 바다미가 코를 막는다. 도살장으로 향하는 2층 트럭의 돼지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비좁다고 꽥꽥대고 있다. 우리도 좀 있으면 그 리무진을 탈건데 서로 싸우고만 있다. 77은 넓은 어깨에 우리를 태운다. 낯익은 출근 버스에 오르는 기분이다.
77은 오늘도 시원하게 달린다. 야트막한 언덕에 오르면 오른쪽에 바다가 보인다. 삼길포항의 바다 입구에 설치된 옛날식 수문이 이채롭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만나는 터널이 보인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터널은 한 여름밤의 호러영화이다. 공포를 느끼면서도 오르막을 생략했다는 짜릿함도 맛본다. 터널에서 제일 짜증나는 대상은 딴엔 배려를 한답시고 크르르, 가래 끊는 소리로 뒤따라오는 트럭이다. 그냥 휙 하고 지나가면 될 것을.  
서산 13km  표지판을 보면서 문득 생각나는 이가 있다. 서산시내에서 만나기로 하고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자동차전용도로 1.5km 전방’이란 표지판에 깜짝 놀랐다. 77이 나 모르는 사이에 변심이라도 했단 말인가? 불안한 마음으로 달려 가보니 왼쪽으로 빠지면 고속도로가 나온다는 뜻이었다. 최근에는 국도를 자동차전용도로로 지정하는 해괴망측한 일들이 비일비재해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서산시내 맥도날드 사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사촌동생과 친구들을 만나 이른 점심을 했다. 이종 사촌인 홍윤은 젊고 키도 크고 미남에다 모든 게 나보다 나은 녀석이다. 딱 한 가지 내가 내세울게 있다면 집사람이다. 우리 금숙이가 훨 이쁘다. 미안해요 제수씨! 나도 살아야쥬~^^
어제부터 77과 같이 달려온 29번 국도는 서산에서 다른 길로 갔나보다. 여기서부터는 32번 국도와 함께다. 하지만 머지않아 태안에서 32는 만리포로 향한다. 이제 77은 안면도를 지나 원산도 앞바다 끝까지 향할 것이다.
당진의 산업도로는 대형트럭 독무대였다면 이곳 안면도 길은 하얀 캠핑카가 줄을 잇는다. 바다 풍경이 생각나서 77에서 벗어나 해안도로로 접어들었지만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내친김에 산책로로 들어섰다. 다행히 산책객이 없는 호젓한 길을 바다미에게 소개할 수 있다. 덤으로 백사장도 볼 수 있고 해송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도 쐴 수 있다. 공짜 점심은 없다고 했던가? 다시 해안도로와 연결되는 교량 접합부를 오르기 위해서는 계단 밖에 없다. 헤비급으로 체급을 올린 바다미와 한바탕 씨름을 한다. 끙! 
오늘의 종착지인 꽃지 해수욕장에 오후 2시반에 도착했다. 적당한 거리 93km를 달렸다.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샤워를 한 후 간단히 세탁도 한다. 낮잠도 청한다. 6시에 꽃지 해변으로 짐을 내린 바다미와 함께 향한다. 넓은 주차장은 서 있는 차를 세는 게 더 빠를 정도로 한산하고 도로 주변은 공사로 어수선하다. 하지만 일몰을 보러 온 사람들이 물 빠진 갯벌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꽃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큰 바위덩어리 틈새로 지는 해는 사람들의 카메라에 맞춰 시시각각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늘 아침 왜목마을에서 맞이했던 해를 저녁에는 꽃지에서 보내주고 있는 것이다. 같은 날에 일출과 일몰을 함께 한 날이 있었던가? 하루를 우리와 함께 즐겁게 보낸 해는 가장 크게, 가장 편하게 바다에 몸을 씻는다. 스르륵!

 

 

5일 째  77번, 바다를 건너다
아침 8시 정각에 동보민박을 나선다. 주차장을 통과해 안면읍 쪽으로 나가니 77이 기다리고 있다. 태안에서부터 2차선으로 몸집을 줄인 77은 갈수록 갓길마저 사라지고 주변 숲으로 둘러싸인 시골 아낙처럼 소박해져 간다. 강남의 감귤이 강북에 오면 탱자가 된다 했던가. 이곳의 명물 안면송은 철갑을 두르고 甲처럼 우뚝 솟아 있다. 반면 길가에 늘어선 배롱나무는 乙처럼 가지를 비틀면서 실오라기 하나 없는 알몸이다. 화무십일홍이라 했지만 배롱나무의 또 다른 이름은 ‘백일홍’이다. 예전에 자동차로 왔을 때는 평탄했던 길로 기억되는 이 길이 연속되는 깔딱 고개에 아침에 먹은 라면 국물이 금세 땀으로 배출된다. 인간 정수기인가? 
‘백신 맞는 것이 고향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란 현수막이 눈에 띈다. ‘고향으로 안가도 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백신 안 맞는 것’ 전국며느리협회에서 얘기한다.
안면도의 끝자락 영목항이 보인다. 대천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배를 타면 된다. 하지만 계속 직진하는 77을 따르는 게 우리의 운명이다. 영목 사거리에서 길이 넓어지더니 곧 바로 원산안면대교가 뻗어 있다. 2020년 1월 1일 개통한 대교다. 1,750m를 잇는데 장장 9년이란 세월이 걸렸단다. 재미있는 것은 도로 폭이 이쪽은 2차선, 반대쪽은 1차선 총 3차선이다. 자전거겸 보도는 3m로 넉넉하게 서쪽에만 설치되어 있다. 철선을 잡아주는 삼각뿔 디자인도 멋있다.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 소야미사키에 있는 기념탑과 비슷하다. 
대교를 건너면 행정구역이 보령시 오천면이다. 왕복 3차선과 자전거도로는 계속 되다가 원산 사거리에서 77은 길이 막힌다. 내년쯤이면 보령으로 가는 해저터널이 완공된단다. 옆에 우리 길도 꼭 만들어 주삼. 꼭이요 꼭!  
2km 떨어진 선촌항에 가서 배편을 알아보니 하루에 세 번 있는데 오후 2시15분에 출항한단다. 엥! 지금이 10시반인데. 원산도 끝자락에 있는 저두항으로 가기 위해 오르막을 오른다. “손가락으로 인터넷 검색만 했어도 이런 고생은 안 할 건데”하고 바다미가 투덜댄다. “그랬다면 이곳 선촌항에 너나 나나 죽기 전에 와 봤겠어! 이게 아날로그神의 선물이야. 불편한 기억은 빛나는 추억이 된다는 거 몰라?” “머리가 둔하면 팔다리 사지가 고생인 거는 몰라?” 바다미는 딴지의 여왕이다. 
저두항까지 5km 거리는 남아도는 시간을 죽이기에 너무 짧다. 저두항에 하나밖에 없는 슈퍼 겸 식당 할머니는 ‘뽈락의 고민’에 결코 고민하지 않는다. 식사는 무조건 2명 이상이란다. 초코파이, 연양갱, 맛동산 그리고 환타를 집고 카드를 내미니 현금으로만 만원을 내란다. 저두항의 상권을 독점하고는 셈도 결제 방법도 독점이다. 
낚시꾼들이 모여 있는 방파제로 향한다. 낚시를 하시는 어르신은 분당에서 아들 내외와 오셨단다. 여행용 가방에 한 가득한 채비에 꾼의 포스가 느껴진다.
저 멀리 보이는 화력발전소 근처가 오천항이란다. 작년 이맘때 집사람과 오천항에 주꾸미 낚시 온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저 건너가 안면도, 원산도라 했는데 지금은 그쪽을 바라보고 있다. 
배는 선촌항을 출발하여 효자도, 저두항을 거쳐 대천항으로 간다. 뽈락은 4,950원, 바다미는 2,000원만 내면 20분만에 건너 준단다. 그저다! 그 독점 할머니가 “돌아서 가” 할까봐 후딱 배에 오른다. 아듀!
대천항에 내려 북동쪽으로 가자는 77의 손을 뿌리치고 해안가로 나있는 607번 지방도에 오른다. 선창가에서의 4시간을 벌충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어림잡아 20km는 질러갈 것 같다. 기대하지 않았던 자전거도로가 남포방조제에서도 계속되고 죽도란 곳에 들렀다. 보령 2경이라는 상화원에 들어선다. 섬의 한켠을 전통 정원으로 조성해 놓았다. 특히 1.65km의 타원형 산책로는 데크를 깔고 지붕을 올린 긴 회랑이 인상적이다. 만약 무협영화 <킬빌>의 완결편을 찍는다면 강추한다. 
방조제 위의 산책로를 따라 달린다. 무창포 해수욕장을 거쳐 부사방조제를 지난다. 해거름에 달리는 방조제 옆길은 ‘삼성 다이렉트 보험’이다. 바람도 막아 주고 햇볕도 가려 주고 밟는 대로 나가는 실손보장형이다. 햇볕이 앞에서 뒤에서 그리고 오른쪽 왼쪽 뺨을 비추는 꼬불꼬불한 길이지만 러너스 하이, 아니 Rider's High를 만끽하는 환상의 코스다. 
비인 성내사거리에서 만난 77은 더 없이 반갑다. 나란히 손잡고 서천 시내에 진입한다. 해는 서산에 걸쳐있다. 오늘 이동거리는 뱃길 6km 포함해서 87km이다. 절친 평수의 고향이라 마음이 푹 놓인다. 향을 감쌌던 종이가 홀로 향기를 간직하고 있듯이 서울에 있는 친구의 향기가 난다. 폴폴.

 

 

6일 째  끝이 없는 길
서천시내를 빠져 나와 이내 77과 21번 국도에 닿으니 4번도 합류해 있다. 시원스런 4차선 갓길을 달린다. 장항 근처에서 성질 급한 4번은 동백대교로 향한다. 전북 장수에서 발원하여 천리를 달려오면서 세를 불린 금강을 건너기 위해 우리는 금강하구둑길을 택했다.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무사히 넘어온 것이다. 
국도를 벗어나 금강의 마지막을 따라가는 자전거길을 택한다. 갈매기 울음소리가 바닷물에 들어선 신호다. 호남의 농산물이 총 집결되어 일본으로 보내지던 기지인 군산은 일제 수탈의 상처가 여전하다. 근대 역사거리의 빨간 벽돌 건물은 핏빛보다 진하고 아리다. 
어제 의무적으로 먹은 삼겹살 2인분의 파워로 10시까지 버티고 왔다. 수산시장에 파고들어 아리랑식당을 찾아냈다. 백반을 시켰는데 갈치조림이 주 메뉴다. 갈치는 펄펄 끊는 냄비 속에서 계속 새끼를 치고 뽈락은 두 번째 밥그릇의 바닥을 비우고 있다. 나그네는 기회가 왔을 때 배를 든든히 채워야 한다. 북극곰처럼!

77과 함께 가는 21번 국도는 사관생도다. 쭉 가다가 직각으로 꺾어 다시 직진한다. 이런 게 창피한지 77은 뒤로 빠져 표지판에는 젊은(?) 21만 내세운다. 간척사업으로 더 이상 섬이 아닌 비응도에서 그 유명한 새만금방조제가 시작된다. 이번 여행을 통해 서해에 이렇게 많은 방조제와 간척지가 있다는 걸 새삼 알았다. 리아스식 닭발에 물갈퀴를 다는 작업인가.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밀려고 가다보니 해넘이휴게소가 있다. 
“일몰을 제대로 감상케 하려면 바다 쪽에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는 뽈락의 조크에 주인장도 그랬으면 손님이 엄청 많았을 거라고 맞장구를 친다. 불과 몇 미터의 위치에 따라 사람의 팔자가 좌우된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고 했지. 올해 6월에 다녀온 고군산군도가 오라고 손짓한다. 예습한 학생은 복습은 생략해도 좋단다. 페달을 열심히 밟아도 멀리 보이는 변산반도의 풍경은 정지화면이다. 시멘트 옥상에서 선풍기를 켜 놓고 롤러를 열심히 타고 있는 기분이다. 34km의 일직선 사막을 그렇게 우리는 낙타처럼 지나고 있다. 휴!
부안 변산반도에 들어서니 오아시스를 만난 듯하다. 77은 30번 국도와 만나 왕복 4차선으로 뻗어 나간다. 너무 잘 나간다. 고사포 해수욕장 이정표에 변산해변도로가 보인다. 그렇다! 분명 예전의 77은 동네 어른들께 일일이 인사하는 친절한 길이었으리라. 마치 성형수술한 옛 애인을 만난 기분이 든다. 바다미도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쪽 좁은 길로 향한다. 아뿔싸! 산의 굴곡을 따라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이다. 오른쪽은 바다가 지켜보고 있고 내가 택한 길이라 불평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바다미의 신공으로 이내 적응하면서 달리다 보니 안면 있는 채석강과 격포항이 보인다. 
멀리서 77이 손을 흔든다. 어느새 왕복 2차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해변을 끼고 달린다. 좁고 힘든 길이지만 함께 하니 얼마나 좋은가. 어느새 93km를 달려왔다. 오늘은 모항곶에서 머물기로 한다. 5만원 숙박비를 깎자고 했더니 ‘좋은 날’ 깎으면 안 된다고 할머니가 선수를 치신다. 그래서 ‘좋은 날’ 안 깎을 테니 생수 2통, 막걸리 1통, 사이다 1캔 그리고 라면을 끊여달라고 협상했다. 해성슈퍼 민박집 할머니는 해방둥이 닭띠라 나하곤 띠동갑이다. 공통분모를 지닌 실타래는 술술이다. 라면에 밥을 마니 라면정식이요, 산적과 고기전을 얹으니 일본식 라면이요, 김치며 각종 나물이 자리 잡으니 진수성찬이라. 거기에 막걸리까지 한 순배 뱃속으로 직행하니 서해바다가 내 것이로다. 
슈퍼 한켠에 자리 잡은 바다미가 일기예보로 분위기를 망친다. 내일 비가 온다는데? 그건 내일 일이고! 하루살이는 내일의 걱정이 없는 법.

 

 

7일 째  곳곳에 귀인이라 
나름 각오는 하고 왔지만 객지에서 맞는 추석 아침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나그네의 가슴까지 심란하다. 9시가 지나니 바다 쪽은 점차 훤해져 오고 산 할아버지도 구름 모자를 팽개칠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뽈락의 바램이고 비는 오락가락이다. 우의도 확인하고 바다미 체인에 오일도 뿌려준다. 인기척에 나오신 할머니, 아니 띠동갑 누님은 “밥은 먹고 가야재?” 묻는다. 갈 길이 멀다니까 부침개를 비닐봉지에 싸서 주신다. 묵직하다. 아들은 엄마가 시집이라도 가는 양 좋아라 기념사진을 팍팍 눌러준다. 모자가 손을 흔든다. 모자의 마음을 심은 가슴에 촉촉하게 비가 내린다. 심는 대로 거두리라!
도회지에 아이들을 빼앗긴 초등학교는 석포수련원으로 변신했다. 633년 백제 무왕 때 창건되었다는 내소사는 고찰 중에 고찰이다. 바다미를 일주문 앞 상사화에게 맡겼다. 깔끔 호젓, 마사토길 옆에 늘어선 아름드리 전나무는 피톤치드로 영혼을 씻어준다. 단풍나무들은 가지에 달린 손으로 정신을 코디해준다. 사천왕은 등 뒤에 붙은 액운을 떼어 놓는다. 
전경을 방해하던 봉래루 밑을 지나 계단에 올라서니 대웅전이 쨘 하고 나타난다. 무릇 성소는 높은 곳에 있어야 우러러 본다. 성경이나 불경은 가로쓰기가 아닌 세로쓰기다. 그래야 아래위로 고개를 끄덕이며 읽는다. 그래, 맞아. 옳지! 아멘! 하면서. 시주는 반푼어치 소원은 밑 빠진 독이다. 저두항의 독점 할머니도 생각난다. 무병장수. 극락왕생을 빈다. 來蘇寺! ‘이곳에 다녀가신 이들 모두 새롭게 소생하라!’라는 의미란다. ‘내가 바라는 소원을 들어주는 절’ 뽈락표 해석이다. 당장 우리가 바라듯 나아가는 길이 일어서지 않고 조신하게 평지길만 계속된다. 비도 그쳤다. 천지만물이 부처님의 가피로 비롯된다. 관세음보살!
곰소항 근처의 갯벌은 바둑판이다. 어둠을 밝히는 빛과 동급인 ‘소금’이 탄생하는 염전이다. 시내에는 그 소금으로 맛을 낸 젓갈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간판에 왜 정육점처럼 빨간색이 많은지 모르겠다. 젓갈 종류가 하도 많으니 고르기도 싶지 않다. 낚지 젓갈, 아가미 젓갈, 각 2통씩 사서 우리집과 사돈집에 택배를 부탁했다. 
반가운 파란 얼굴이 언뜻언뜻한데 빨치산 먹구름은 게릴라전을 펼친다. 수중전을 대비한 민방위 훈련 중이다. 갑자기 떨어지는 비를 피하려 줄포 버스터미널 처마로 피신이다. 가다보면 또 다시 후두둑! 우리는 후다닥! 그래도 미니스커트처럼 짧게 끝나서 땡큐다. 77과 같이한 23번은 흥덕 근처 치이 삼거리에서 정읍에서 달려온 22번과 바톤 터치한다.
선운사 부처님의 파워인가? 선운사 담벼락 동백꽃의 눈물 덕인가? 소박하던 77이 선운사IC부터 선운사까지 14.5km 구간에서는 4차선 직선으로 산을 뚫고 지나간다. 우리는 734번 지방도로 향한다. 부안면 소재지의 몇 개 안되는 식당은 전부 추석 휴가다. “웬 짐을 이렇게 많이     싣고 다닌다냐”하면서 들어가는 슈퍼 할머니를 따라 들어갔다. 라면 좀 끊여 달라고 떼를 쓰니 뜻밖에도 밥을 먹고 가란다. 마침 안방에서 식구들이 밥상 주변에 우그르르하다. 철판장군 뽈락은 떡하니 한 자리 차지했다. 
7남매에 딸이 많아 옛날에는 창피했다고 하니 1남6녀쯤 되나보다. 마침 술 고팠던 사위는 대마 막걸리를 딴다. 옆의 딸과 해병대 조카는 소주를 원샷으로 들이킨다. 명절날 나타난 ‘듣보잡’의 듣도 보도 못한 잔차 썰에 식구들은 넋이 빠졌다. 뽈락이 ‘책상다리 TV’가 된 것이다. 더 지체했다간 주지육림의 늪에 빠질 판이다. 코로나로 세상은 암울해도 부안 인심은 후하다(이름은 부안면인데 고창군 소속이다). 아담 사이즈 할머니 몸매에서 초 대용량 베풂이 뿜어져 나올 줄이야. 지방도 좁은 길가에는 이렇게 보석 같은 귀인들이 숨어서 산다. 한번 확인해 보리라. 
감동이 물결치는 가슴을 안고 734를 달린다. 인촌 김성수 선생의 생가 어귀에서 천진난만을 만났다. 건네준 사탕에 동심이 녹는다. 미당 서정주 문학관도 가는 길에 있다. 옛 학교로 보이는 문학관 운동장에는 잔디가 새파랗고 정문과 건물 곳곳에는 담쟁이 넝쿨이 감싸고 있다.  출입구가 잠겨 있어 아쉬워하는 사이에 대형 자전거의 모습이 신기한 바다미는 키재기에 도전이다.
734와 10km 정도의 데이트가 끝날 즈음 인천강(주진천) 하구에서 다시 2차선으로 돌아온 77을 만난다. 용대 삼거리에서 22는 법성포로 사라지고 77은 영광대교를 향한다. 
오늘은 시작도 늦고 많은 사연들이 발길을 잡았지만 부안평야를 가로지르는 평지라 102km나 이동했다. 해는 어느새 모습을 감추고 사위가 어둑해질 때 도착한 곳은 흥농읍이다. 영광 한빛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곳이란다. 외진 곳에 있는 천지모텔 주인장은 나그네에게 송편과 콜라를 내놓는다. 바구니에 앉아 있는 가지도 챙겨 준다. 객지에서 맞는 추석이 이렇게 풍성할 줄이야! 處處에 貴人滿溢하니 不亦樂乎아라!

 

 

8일 째  펑크가 맺어 준 인연
정말 기분 쨍한 날이다. 태풍과 비를 잘 피해온 것만 해도 다행이라 여기고 오늘 비는 각오하고 있었는데 아침 날씨가 쨍한 것이다. 8시에 흥농읍을 나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수읍으로 넘어가는 영광대교가 나온다. 왕복 2차선에 양 옆에 보도가 있는 길이 890m의 사장교이다. 대교를 지나 오른쪽 법성포가 보이는 ‘백수해안도로’로 진입한다.
비닐하우스에서 ‘싸장님 나빠요’가 나온다. 손을 들고 “하이” 했더니 능숙하게 “안녕하세요” 한다. 헐! 누가 토종인지? 
지명이 독특하고 정겹다. 나 같은 白手가 우대받는 곳인가. 백수에게 우선권을 주는 곳인가. 백수읍 소재지에는 백수를 위한 편의시설이 즐비하다. 혼자 가는 여행은 상상력이 흘러 넘쳐 미쳐가는 수준에 이른다. 不狂不及!
저 멀리 하얀 옷과 날개로 천사처럼 가장한 놈들이 서 있다. 실은 키클롭스가 외눈에 삼발이를 달고 풍차놀이 중이다. 가까이 가니 ‘서그적 서그적’ 이빨을 가는 건지 칼을 가는 건지 기묘한 소리를 낸다. 그것도 모르고 바다미는 로시난테처럼 달려들 기세다. 아서라! 이 시대에 돈형이 설 자리는 아무 데도 없다.
교회 첨탑 마을이 코앞인데 77은 백바위 해수욕장에 사는 할머니한테 인사한다고 한바퀴 빙돌아간다. 바다미는 77을 벗어나 들녘을 망아지처럼 쏘다닌다. 전문용어로 크로스컨트리(cross country)란 것이다. 황토길 구릉지, 좁은 고샅길, 저수지 뚝방길, 염전길을 달리느라 신발이 엉망이 되는 줄도 모른다. 
염산면 소재지에서 중국집을 물어 찾아간다. 지나오는 길에 ‘정통중화요리 맛집’이란 간판에 입맛을 다졌지만 추석연휴 휴업이다. 손님은 王이라며 으스대는데 神인 주인은 지 마음대로다. 동네 구석에 있는 이곳 중국집은 불이 났다. 그래 뽈락에겐 맛집보다는 ‘문연집’이 딱이다. 건방지게 “뭘 잘하냐”고 물었더니 역시 짜장면이다. 곱배기 콜! 고춧가루 팍팍 치고 대충 비비고는 입속으로 한가득 직행이다. 짜지 않고 적당히 달달한 춘장의 풍미와 면발의 식감에 천국이 아른거린다. 노동(?) 뒤에 먹는 짜장면! 오늘 일 좀 한 것 같다. 착한 가격 6천냥을 건네니 땀 흘리는 박카스가 건너온다. 바다미를 보고 준 특별 서비스다.

 

밖으로 나오니 바다미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연식이 비슷하여 금방 아재 개그가 통한다. 시커먼 얼굴이 “부럽소이!”를 연발한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통성명이 무슨 소용이랴, 이렇게 격의 없이 히히덕거리다 바람 불면 방귀처럼 사라지는 게 인생 아니것소. 반가웠쏘이~ 친구들!
함평만을 건너가는 칠산대교는 영광과 무안을 이어준다. 다리를 건넌 77은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무안국제공항 쪽으로 향한다. 예까지 와서 신안에 인사를 안 하면 되느냐고 한다. 나중에 갈 거라고 해도 바다미가 고집을 부린다. 805를 타고 신안군 지도읍 소재지 찍고 국도 24로 한 바퀴 돌아 와 77과 만나는 수암 교차로에 이르니 95km가 넘어선다. 슬슬 누울 자리를 찾을 타임이다. 허나 오른쪽 바닷가에는 모텔은 없고 펜션뿐이다. 어쩌면 30km 이상 남은 압해도까지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구간은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쉼터가 없는 녹색 사막으로 기록될 것이다. 다행히 77은 얌전하고 뒷바람도 살살이다. 이맘때면 피곤이 살짝 몰려오지만 오히려 힘을 빼고 달리는 기분이 상쾌하다. 평속 27 정도로 순항이다. 
갑자기 앞바퀴가 허전하다. 압해도를 9km 앞에 두고 벌어진 사건이다. 튜브를 빼고 타이어 안쪽을 살펴봐도 핀 조각은 보이질 않는다. 이건 분명 바다미의 자작극, 자해 공갈 꾀병이다. 대략난감, 아니 엄청난감이다. 주위는 어두워지는데 저번에 펑크 난 튜브는 그대로다. 비오는 날 처리해야지 했는데.
바람을 넣어 귀에 대고 바람구멍을 찾으려 하니 차들이 씽씽이다. 바다미를 억지로 끌고 근처 축사로 들어갔다. 대야에 튜브를 넣어 물방울을 찾고 패치를 붙이기에는 조명이 너무 희미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주인장이 못 미더웠는지 근처 모텔까지 태워주겠다고 나선다. 바다미를 트럭에 싣고 김대중대교를 건너 압해도에 진입하여 대교 밑의 불빛을 따라 들어간다.
“어라, 모텔이었는데 펜션으로 바뀌었네. 그러면 비쌀텐데…”하면서 기다릴 테니 알아보고 오란다. 그 와중에 8만원에서 5만원으로 후려쳤다. 지갑을 꺼내는 시늉에 농장 주인장은 손사래를 치며 조심해서 여행 잘 마치라고 한다. 저분 내외는 분명히 푸른 별에 침투한 천사조가 틀림 없다. 안드로메다에서 올려면 시간이 좀 걸렸을 건데.
라면정식으로 저녁을 때우고 밖으로 나오니 야외탁자에서 나를 부른다. 대구에서 온 부부 3팀이다. 그중 한분이 MTB 매니아라 바다미를 보고 나를 호출한 것이다. 탁자에는 전복회 등 먹거리가 푸짐하다. 올해 7학년1반인 이대우 회장은 한마음 자전거동호회 회장을 7년째 맡고 있단다. 군대의 축구 얘기 같은 잔차 예찬에 여자분들은 자리를 뜬다. 본인 별명이 거인이란다. 자그마한 체구의 더스틴 호프만을 연상시킨다. 유비 현덕과 같은 커다란 귀가 복을 부르는 상이다. 소주를 대접받아서 괜히 하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오늘도 뜻하지 않은 펑크 사건으로 ‘엔젤과 자이언트’를 만났다. 김대중대교의 야경과 보름달은 특별 출연이다. 출연료는 물론 공짜다. (오늘 이동거리는 트럭 점프 10km 포함해서 13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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