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개월간의 연재 총정리

e바이크 불모지였던 국내 자전거시장에서 ‘자전거생활’ 지면을 빌어 e바이크에 대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6년간 65편을 연재했다. 마감 날까지 뭘 적을지 고민만 하다가 마감 넘기고, 고3 때도 안 해본 날밤 새우기로 힘들 때면 이제 그만 멈추고 싶었지만 힘겹게 넘긴 원고가 책으로 나올 때의 뿌듯함은 다음 달 뭘 적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이제 마지막 원고를 탈고한다   

 

세상은 텍스트 시대에서 영상시대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텍스트를 읽고 머릿속으로 재구성하고 이해해 내 지식으로 만드는 과정보다는 영상을 보는 것이 정보전달이 더 정확하고 빠르기 때문이다.   
e바이크 사용설명서에 계기판 조작법을 상세히 설명하려면 지면 10장을 이용해도 모자라는데 동영상 3분이면 계기판 분해 방법까지도 설명할 수 있다. 최근 필자도 기사를 작성하고 나면 인쇄 매체에서 설명이 힘든 정보를 더 많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사를 보완하고 잘못된 정보는 바로잡기 위해 웹 정보 큐알코드를 본문에 넣고 있다. 
지면을 통한 이 연재의 마지막 이야기는 e바이크의 2021년 상황과 장밋빛 미래를 예측해본다. 

국내 시장점유율 10% 돌파 
자전거 선진국인 유럽과 일본, 중국의 e바이크 점유율 추이를 보면 e바이크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올해 유럽 시장은 전체적으로 성장했고 e바이크 불모지였던 네덜란드에서도 판매량이 급속하게 늘어났다. 자전거를 본격적인 이동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e바이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이다.
2021년 말 기준 우리나라 자전거 시장은 100만대 수준으로 전 세계 시장규모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100만대 중에서 e바이크가 10만대 이상 판매되었다. 10만대 판매는 세계 시장 기준으로 보면 별거 아니지만, 시장점유율 10%는 의미 있는 수치이다. 필자가 e바이크에 입문한 10여 년 전에는 국내 시장점유율이 1%도 안 되었는데 어느덧 10%를 넘어선 것이다.

 

자전거 인구가 더 늘어야 안전해진다
2018년 3월 국내 e바이크 관련법이 시행되었다. PAS 방식에 인증된 e바이크는 자전거도로를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고, 일반 자전거와 같이 일상생활책임보험이 적용되어 법의 테두리 속에 들어온 것이다. 법 제정은 무법상태의 e바이크를 밝은 양지로 끌어내 저변 확대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는 “e바이크는 오토바이처럼 운동이 안 되는 쓸모없는 탈것으로, 자전거도로에 나와 내 운동을 방해하지 말라”는, 공청회장에서 수없이 들었던 주장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자전거는 운동기구가 아니라 운송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자전거가 도로에 나오면 안 되는 운동기구로 알고 따라가면서 경음기로 라이더를 놀라게 하거나 위협운전을 하는 운전자들이 우리나라에만 유난히 많이 있다. 유럽처럼 모두가 자전거를 타게 되면 도로를 달리는 라이더가 나와 내 가족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라이더를 배려하는 운전이 될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자전거 이용자가 많이 늘어나야 해결될 문제이다. 

자전거는 오랫동안 그대로 갈 듯 
e바이크가 활성화되면 일반 자전거는 점점 줄어드는 것 아닐까? 미래에는 과학의 발달로 e바이크가 점차 가벼워져 일반 자전거에 근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력을 기반으로 한 자전거만의 고유한 영역인 순수 자전거는 200년 전이나 200년 후에도 계속 유지될 것이다.
자전거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유용한 발명품 중의 하나이고 e바이크는 자전거의 한 장르일 뿐이다. 가볍고 즐거운 페달링 덕분에 힘들어서 외면한 사람들을 자전거 세상으로 불러들이게 되어 e바이크 수요가 늘어나도 기존의 자전거 수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200년 자전거 역사 중에 e바이크의 역사는 1/10 수준이다. e바이크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는 있지만 200년 전이나 200년 후나 자전거는 바퀴 두 개로 페달과 브레이크가 달린 지금의 모습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다만 e바이크의 경우 날로 가벼워지는 무게와 정밀한 제어 기술, 첨단소재를 적용한 다양한 제품들이 나올 수 있지만, 바퀴 두 개에 브레이크, 손바닥만 한 안장과 페달 등 기본적인 자전거 형태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본다.
200년 가까이 자전거의 동력전달을 담당해온 체인만 해도 그렇다. 그때나 지금이나 체인에는 큰 변화가 없다. 그동안 체인을 대체할 여러 제품이 나왔지만, 어느 것 하나 기존 체인을 갈아치울 만한 혁신적인 제품은 없었다. 앞으로도 체인을 대체할 다양한 제품이 계속 나오겠지만 필자 생전은 물론 앞으로도 한동안 기존 체인을 완전히 대체할 새로운 동력전달 장치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나온다고 해도 기존 체인을 완전히 밀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배터리는 더 가벼워지고 부피가 줄어들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모터 효율은 이미 90%대에 근접해 초전도체가 나오지 않는 한 출력에 따른 무게는 혁신적으로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미래에는 새털처럼 가볍고 티 안 나는 작고 강력한 모터에 스마트폰만한 가벼운 배터리 하나로 서울-부산 왕복도 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라는 희망은 품어본다.

 

이들을 미소 짓게 하는 것
필자가 참여했던 2014~2019년 유로바이크 시승장에서 e바이크를 타는 라이더들의 행복한 미소에서 e바이크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e바이크 라이더들은 페달링을 한때 미소를 머금고 있다. 멀리서 보아도 일반 자전거인지 e바이크인지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2014년만 해도 e바이크는 유로바이크 행사장에서 작은 도로 건너 비행선을 보관하던 제플린 관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열어야 했다. 일반 전시관에서 e바이크는 가끔 볼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매년 빠르게 수요와 공급이 늘어나 최근 들어서는 거의 모든 브랜드에서 e바이크를 출시하고 있다. 새로운 장르의 자전거로 완전히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로바이크 전시공간에도 e바이크와 일반 자전거가 함께 전시되기 시작했다. 필자가 지켜본 유로바이크에서는 2017년에 가장 큰 변화를 보였다. e바이크를 만들지 않았던 거의 모든 자전거 회사들이   e바이크를 라인업에 넣어서 전면에 선보였다.
자전거에 변속기가 달려 라이딩 영역을 넓혀 주었듯이 e바이크는 배터리 힘으로 모터를 가동해서 라이더의 페달링을 도와주는 자전거의 한 장르라고 색안경을 벗고 볼 수 있게 되었다.
지난 2년간 코로나로 거의 모든 산업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지만 자전거는 안전한 운송수단으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안전한 이동수단, 도심의 주차문제, 대기환경 개선, 에너지 효율성, 건강 등 자전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자전거를 운송수단으로 사용할 때의 치명적인 단점은 “페달링이 힘들다”였다. e바이크의 등장으로 페달링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e바이크 라이더의 미소가 대변해 준다.

때늦은 국내 e바이크 산업의 현주소
2021년 우리나라도 e바이크 10만대 시장이 열렸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자랑하는 명품 배터리 기술을 보유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e바이크 보급에 유리한 고지에 있다. 거기다 유난히 오르막이 많은 지형적인 특성상 e바이크의 효용성이 높은 조건이어서 기존 자전거 시장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없던 수요를 만들어내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방법이 될 수 있다.
1980년대만 해도 국내 자전거 보급률이 높았고 연간 100만대 이상을 생산해 수출도 많이 했다. 1981년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100만대에 그쳤다.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더 유용한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그 많던 자전거 부품과 조립 공장들은 어디로 갔을까?
1981년 기준 40년이 지난 2021년 시점에서 자동차는 무려 25배가 늘어났다. 급속한 자동차 산업의 발전으로 모든 것이 느려터진 자전거보다는 빠르고 편리한 자동차 위주로 세상이 바뀌었다. 자전거 부품 공장들은 자전거와는 규모가 다른 자동차 부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자전거가 교통수단이었던 라이더들은 편한 승용차를 타면서 힘들고 위험한 자전거를 타지 않게 되었다.
도로망은 늘어난 자동차 대수만큼 늘릴 수 없어 자동차 통행이 우선이었고 법적으로 당당히 도로를 달리던 자전거는 자동차 산업의 발전과 통행을 방해하는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한때 잘나가던 자전거 산업은 줄어든 수요와 인프라 때문에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거나 문을 닫아야 했다.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린 생활자전거 산업도 중국으로 넘어갔다. 고급자전거는 대만산, 유럽산이 자리 잡았다.
언제부터인가 자전거는 도로를 나오면 위험해서 안전한 곳에서 타는 운동기구가 되어버렸다.

 

전기자전거 산업의 난관 
2007년 전기자전거를 국내에 선보인 ‘하이런’은 ‘대통령의 전기자전거’로도 알려졌다. 한때 연 4000~∼5000대의 e바이크를 판매하던 국내 1위 하이런은 2012년 e바이크 사업을 접어야 했다. 국내 전기자전거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걸음마단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관련 법령이 없는 무법상태여서 팔리지 않는 e바이크로 사업을 지탱하기 어려웠다.
전기차가 생활 속으로 성큼 들어온 2021년 기준으로도 전기차를 팔아 이익이 날 수 있는, 연산 100만대 이상의 회사는 거의 없다. 하지만 모든 자동차 회사들이 사활을 걸고 전기차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윤이 남지 않고 적자를 보면서도 지금 전기차를 개발하지 않으면 회사의 미래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e바이크도 전기차와 마찬가지로 다른 제품이나 자전거보다 이윤구조가 매우 적다. 제조단가에 절대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배터리와 모터의 비용이 많이 들어서 원가절감도 쉽지 않다. AS 비용도 다른 제품에 비해 높은 편이다.
특히 까다로운 한국의 소비자들은 세계 최고의 AS를 자랑하는 S전자 제품 수준의 AS를 요구하기도 한다.
3달 전 여름에 산 자전거 배터리가 아직 영하의 날씨도 아닌 초겨울인데 주행거리가 현저히 줄었다고 새 제품으로 바꿔 달라는 소비자도 있다.

국내 전기자전거 시장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2007년에 시작했다고 하지만 시장점유율 계산도 어려운 미미한 수준이었고 2015년에 와서야 1~2만 대 시장이 형성되었지만, 전체 자전거 시장의 1% 수준이었다. 당시 세계 e바이크 시장은 3,000만대가 넘었다. 시장점유율 1% 선에서 존재감도 없었던 e바이크 시장은 2018년 3월 관련법이 시행되고 2021년 10%대, 10만대 시장이 열렸다.

국산 e바이크 등장
e바이크 불모지였던 우리나라도 유럽이나 중국, 일본 수준으로 e바이크가 활성화되어 안전하고 편리한 친환경 운송수단으로 당당히 자리 잡는 날도 멀지 않았다. 그동안 대부분의 e바이크는 중국이나 유럽에서 수입해 왔지만, 국내 e바이크 공장에서 ‘Made in KOREA’ e바이크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초창기 e바이크 어얼리어댑터로 시작한 필자가 생각해온 e미니벨로를 국내에서 생산해 출시했다.
국내 e바이크 시장은 특이하게도 90%가 e미니벨로이다. 접어서 승용차 트렁크에 실리고, 앞뒤 에어 서스펜션으로 승차감과 안전성 향상, 프레임 일체형 센터드라이브 모터, 구름성 좋고 가벼운 휠과 고급 구동계로 모터 도움 없이도 라이딩이 가능, 유압브레이크, 도난방지 위치추적장치 내장, 프레임 내장 배터리로 자전거 총중량 19kg대 유지, 범용 추가 배터리를 사용가능한 외부 배터리 단자 등의 특징과 장점을 살린 프리미엄 e미니벨로를 선보여 중국산 저가 e바이크 모델과 차별화시켰다.

국내 e바이크 시장의 급속한 변화 속에 ‘자전거생활’에 6년 동안 연재한 필자의 e바이크 이야기는 비트코인 채굴하듯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는 고난의 길이었지만 불모지였던 국내의 e바이크 저변 확대에 작은 등불이 되어 많은 라이더를 즐거운 e바이크의 세계로 인도했다. 
마감 날 마지막까지 날밤 새우며 피를 말렸지만 인쇄된 책이 나올 때면 진정 행복했다. 독자들은 머리 아픈 이야기일지 몰라도 필자에게는 즐겁고 보람찬 e바이크 이야기를 65개월 동안 할 수 있게 자리를 내준 ‘자전거생활’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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