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곶자왈 - 원시림 그대로

 

서귀포 서쪽 해안에 솟은 군산오름(335m)은 반듯한 원추형으로 솟구쳐 있고 정상은 조망이 막힐 것 없어 사방으로 바라보는 경치가 탁월하다. 특히 일출과 일몰이 아름답다. 대병악오름과 산방산 사이에 길게 뻗은 화순곶자왈은 제주만의 특별한 원시림 속살을 경험할 수 있다  

 

제주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군산오름
제주도내 360여개 오름을 오르다보면, 어떤 오름은 전망이 안 좋아 실망감도 들지만, 어떤 오름은 탁 트인 전망으로 속이 후련한 오름도 있다. 서귀포시 서쪽에 자리 잡은 ‘군산오름’은 여타 오름보다 황홀한 풍경을 자랑하는 오름 중 하나다. 정상을 중심으로 동·서로 오르는 양갈래 길이 있으며, 정상 부근까지 차량으로 쉽게 오를 수 있는 서쪽은 일반 여행자들이 많이 이용한다. 도로 끝에서 정상까지는 200m가량 더 올라야 한다. 
동쪽은 상예2동 버스정류장에서 군산오름 이정표를 따라 마을길로 진입하면 작은 소공원에서 탐방로가 시작된다. 소공원에서 정상까지는 700m 정도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계단길을 따라 능선에 올라서자 서귀포의 바닷가 풍경이 드넓게 펼쳐졌다. 초가을의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곳은 쌍선망월형(雙仙望月形)의 명당자리이지만 묘를 쓰면 가뭄과 흉년이 든다고 하여 무덤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능선길과 오름의 자연이 잘 보존돼 있다. 
생김새가 군막(軍幕)과 비슷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원추형 군산(軍山) 오름은 골짜기가 많아 굴메오름, 코메오름으로도 불린다. 평지 같은 능선을 지나 150m 가면 붉은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335m의 정상 봉우리가 나온다. 
돌산 같이 생긴 정상은 내륙지방의 일반적인 산과는 다른 모습이다. 정상에는 붉은 송이 덩어리 같이 독특하게 생긴 붉은 바위가 버티고 있다. 이 바위가 용머리에 쌍봉이 솟았다고 하는 두 개의 뿔바위다. 뿔바위는 좁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졌는데, 면적이 좁아 여러 사람이 함께 서 있기에는 불편하고 위험하다. 
눈앞에 펼쳐질 풍경에 잔뜩 기대를 하고 올라간 정상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정상의 사면이 모두 막히지 않아 가슴이 탁 트이는 비경을 보여준다. 동쪽으로는 서귀포 혁신도시, 중문단지와 함께 바다 위의 범섬, 문섬, 섶섬이 한눈에 펼쳐지고, 서쪽으로는 묵직한 산방산과 함께 송악산, 형제섬, 가파도, 마라도가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온다. 
바다를 향해 달려가다가 굳은 용암이 만들어 놓은 해안선이 마치 바다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다. 고개를 돌려보면 한라산과 그 앞의 대지가 광활하게 펼쳐지고, 수많은 오름들이 나를 반기는 것만 같다. 특히 일몰 시간대에 군산오름을 오르면 사방이 더욱 광활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산방산 방향으로는 지평선 너머로 붉은 노을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고, 남쪽을 바라보면 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와 비닐하우스가 많은 하예동 일대를 볼 수 있다. 
수평선과 지평선 너머에서 짙게 드리우는 석양과 일몰의 명소로 유명한 군산오름이지만, 동쪽 해안에서 떠오르는 일출도 충분히 장관이어서 어느 때 와도 좋다.

 

산방산과 바다가 눈앞에, ‘화순곶자왈’
제주를 좀 더 여유롭고 특색있게 경험하고 싶을 땐, 화순곶자왈을 찾아보자. 제주를 여행하다 보면 중산간 지역 곳곳에 트래킹과 라이딩하기 좋은 숲길이 많다. 비대면 여행지로 제주도 숲길만큼 제격인 곳도 없다. 그 중에 섬에서만 만날 수 있는 화순곶자왈은 특별함을 더한다. 
화순곶자왈은 안덕면 상창리 대병악에서 시작해 남서쪽 사계리 산방산까지 길게 이어지는 숲으로 안덕면사무소 위쪽으로 화순곶자왈 생태탐방숲길 입구가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온갖 나무와 암석, 그리고 덩굴식물들이 뒤범벅이 된 곶자왈 풍경을 만나게 된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저 평범한 숲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크고 작은 용암에 의해 형성된 암석과 화산송이들로 가득하고, 움푹 패거나 깊고 얕은 골을 따라 여러 종류의 나무와 양치식물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여느 곶자왈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용암이 분출되어 생긴 지형이기에 크고 작은 돌이 지천이다. 그런 돌 사이에 온갖 양치식물과 다양한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생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제주도의 숲길을 다니다보면 각각의 숲길마다 독특한 매력을 즐길 수 있는데, 화순곶자왈에서는 나무들의 치열한 생존 현장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돌과 바위를 비집고 살아남은 나무는 때론 구부러진 상태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내륙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사계절 내내 초록을 간직한 독특한 숲은 정말 멋있고 인상적이다. 마치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원시림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영화 ‘타잔’이나 애니메이션 ‘월령공주’의 배경이 되어도 충분할 듯싶다.  
오름이나 숲길을 다니다 보면 가장 좋은 계절은 아마도 가을이 아닐까 한다. 알록달록 색옷으로 갈아입은 단풍잎을 보고 있기만 해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탐방로를 따라 조금씩 안으로 들어갈수록 숲은 햇볕이 닿지 않을 정도로 우거지고, 싱그러운 풀향기가 짙게 배어 나온다. 구간에 따라서는 밝은 대낮인데도 벌써 어두워졌나 착각이 들 정도로 짙은 숲터널을 이룬다. 탐방로 중간중간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어 길을 잃어버리는 일은 잘 없지만, 가끔 헤매는 경우가 있다. 코스에 소를 방목하는 목장이 있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을 볼 수 있으며, 가끔 코스 내에서 휴식을 취하는 소가 있어 당황할 수도 있다. 목장이 한 눈에 바라보이는 전망데크에 올라서면 산방산과 바다도 조망된다. 
화려하진 않지만,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을 볼 수 있는 곶자왈에는 태초의 신비가 느껴진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울창함과 엄숙함이 깃들어 있는 곶자왈은 금방이라도 숲의 정령이 나올 듯 신비로운 기운이 감돈다. 
아주 천천히, 느리게 곶자왈 숲길을 탐방하다보면, 청결한 공기가 폐 속 깊숙이 빨려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며 안구 정화는 물론이요 심신까지 정화되는 듯하다. 
피톤치드 가득한 곶자왈 숲길을 걷거나 달리면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듯 오감이 싱싱하게 되살아난다. 숲에서 내뿜는 피톤치드는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개선해 주기며, 아무런 부작용 없이 천연 항생제처럼 작용해 면역기능을 강화시켜 준다고 한다.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여행을 통해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절경의 해안길 따라가는 올레길 9~10코스
절경의 해안길을 따라가는 올레길 9~10코스메인 코스인 화순곶자왈과 군산오름 라이딩을 마치고 대평포구로 내려와 올레길 9코스와 10코스를 달려 보기로 한다. 9코스는 대평포구에서 화순항으로 이어지는 약 6km 코스로 월라봉을 돌아나가는 짧은 코스다. 
월라봉 해안절벽에는 제주의 명소 중 하나로 알려진 ‘박수기정’이 있는데 대평리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 박수기정은 샘물을 뜻하는 ‘박수’와 절벽을 뜻하는 ‘기정’이 합쳐진 말로, '바가지로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는 절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박수기정은 특히 일몰 명소 중의 하나다. 100m 높이의 수직 절벽인 박수기정 위에 올라가서 보는 해안 풍경도 좋지만, 대평포구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더없이 아름답다. 포구에 서면 병풍처럼 펼쳐진 박수기정의 웅대한 모습이 보이며,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와 바다에 비친 노을은 절벽과 어우러져 신비한 아름다움을 펼쳐 보인다.
올레길 10코스는 화순해변에서 해안을 따라 모슬포까지 15.6km이다. 이 코스는 해안길을 따라 용머리해안과 사계항을 거쳐 송악산 탐방로를 경유해 섯알오름과 알뜨르비행장을 돌아 나간다. 
대정읍 상모리는 일제강점기의 많은 흔적과 4·3사건의 잔혹한 아픔을 간직한 현장이다. 지금은 넓게 펼쳐진 밭들 너머로 산방산이 보이고 그 뒤로 한라산이 조망되는 그야말로 제주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지역이다. 
알뜨르비행장은 일제강점기 당시 군용비행장이 있던 곳으로 곳곳에 격납고가 남아 있다. ‘알뜨르’는 ‘아래벌판’이라는 뜻의 예쁜 말이다. 지금은 활주로와 함께 20여기의 격납고가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자연스레 제주 풍경과 어우러지고 있다. 
제주도는 참으로 아름답지만 자세히 보면 동서남북 곳곳이 상처투성이다. 역사와 함께 숨 쉬고 있는 알뜨르비행장과 4·3사건 위령탑은 아픈 만큼 더 아름다운 곳으로 제주여행에서 꼭 가봐야 할 추천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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