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 동해, 수이역장(秀而亦壯) 두타산

 

동해(東海)는 한반도 동쪽의 바다를 뜻하는 고유명사이자, ‘동쪽바다라는 보통명사다. 그러다 동해시에서 다시 한 번 고유명사가 된다. 동해시는 1980년 묵호읍과 북평읍을 합쳐서 생겨난 도시다. 묵호와 북평 지명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으며, 하나의 도시로 통합되었지만 여전히 시가지는 양분되어 있다. 그래도 동해시는 원주, 춘천, 강릉 다음가는 강원 4대 도시이고 동해안에서는 강릉에 이은 2대 도시다. 동해가 속초보다 인구가 많다는 것이 새삼스럽다(동해 9, 속초 8).

초록봉(531m)은 동해시의 진산이다.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시가지 뒤편을 감싸 안아 완만하고 푸근하지만 지세가 복잡하다. 정상에는 중계탑이 서 있다.

초록봉은 높이에 비해 넓게 퍼져 있고 수많은 가지 능선과 골짜기를 품고 있어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은 산이다.

초록봉 업힐 도중에 보이는 두타산과 청옥산 연봉. 두타산은 뾰족하고 청옥산은 둔중해서 대비된다. 바로 애래는 국내최대의 쌍용시멘트 공장
초록봉 업힐 도중에 보이는 두타산과 청옥산 연봉. 두타산은 뾰족하고 청옥산은 둔중해서 대비된다. 바로 애래는 국내최대의 쌍용시멘트 공장
두타산 베틀바위. 건너편으로 높이 100m가 넘는 그림폭포를 안은 육산이 웅장하다 
두타산 베틀바위. 건너편으로 높이 100m가 넘는 그림폭포를 안은 육산이 웅장하다 

 

두타산 가는 길

초록봉은 동해시내와 두타산(1353m) 사이에 있어 동해안의 거산 두타산의 길목이기도 하다. 두타산은 청옥산(1404m)과 연봉을 이루며 동해안에서는 설악산(1708m) 다음으로 높다. 해안에서 가까워 비고가 엄청나고 웅장한 육산미와 빼어난 골산미를 두루 갖추고 있다. 서산대사가 전국의 명산을 평하면서, “금강산은 빼어나지만 웅장하지 않고(秀而不壯), 지리산은 웅장하지만 빼어나지 않으나(壯而不秀), 묘향산은 빼어나기도 하고 웅장하기도 하다(秀而亦壯)”라고 한 평가는 유명하다. 기암괴석이 돌출한 바위산을 빼어남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일리가 있는 평가다. 그런 면에서 두타산은 묘향산에 버금가는 수이역장’(秀而亦壯, 빼어나기도 하고 웅장하기도 하다)의 산이다.

두타산과 청옥산을 끼고 흐르는 무릉계곡 주변의 기암절벽과 수많은 거대 폭포는 금강산이나 설악산을 방불케 하고, 그 위로 솟구친 웅장한 육산은 지리산을 닮았다. 일반 관광객처럼 무릉계곡을 따라 쌍폭포만 보고 오면 계곡이 참 웅장하고 아름답다는 정도로 알기 쉽다. 암봉과 암벽이 즐비한 바위산은 골짜기 한참 위쪽에 있어 계곡 바닥에서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길이 좀 험하긴 해도 베틀바위~두타산성~마천루 구간만 가 봐도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초록봉은 동해와 더불어 이 두타산~청옥산 연봉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두타산과 망상해변 등 절경이 많은 동해시 8경에 초록봉이 포함된 것은 지당하다.

이 땅의 산에 멧돼지가 출몰하지 않는 곳이 어디 있으리 
이 땅의 산에 멧돼지가 출몰하지 않는 곳이 어디 있으리 

 

정상에는 중게탑이 있어 바로 동쪽의 당산봉에 정상석이 서 있다 
정상에는 중게탑이 있어 바로 동쪽의 당산봉에 정상석이 서 있다 
당산봉에서 본, 중계탑이 선 진짜 정상. 멀리 백두대간이 장벽으로 흐른다  
당산봉에서 본, 중계탑이 선 진짜 정상. 멀리 백두대간이 장벽으로 흐른다  

 

정상에 서면

초록봉은 시내와 바로 접해 있어 등산로가 많이 나 있고 산림과 중계탑 관리를 위한 임도도 사방으로 나 있다. 시내를 경유하지 않도록 남쪽의 이로동 삼흥마을에서 출발해 정상을 올랐다가 반시계 방향으로 산줄기를 돌아 서쪽의 비천골로 하산하는 원점회귀 코스를 택했다.

짙은 숲 사이로 난 길은 노면이 좋고 간간이 조망이 트여 금방 주능선에 올라선다. 주능선의 임도사거리에는 멧돼지 출몰 조심표지판이 서 있다. 여기뿐 아니라 전국 어느 산을 가든 멧돼지가 출몰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그러려니 할 뿐이다. 지난번 합천 오도산에서는 다운힐 도중 멧돼지와 잠시 함께 달린 적도 있는데 내가 더 빠르다 싶으니 두렵기보다는 오히려 신이 났다. 하지만 업힐 때 멧돼지를 만난다면 좀 곤란하다.

서편 기슭에서는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한 두타산과 둔중한 청옥산 연봉이 내내 보인다. 초록봉 정상에는 중계탑이 서 있어 진입할 수 없고 바로 옆의 당산봉이 정상을 대신하지만 바다쪽 조망은 훨씬 낫다. 해안 따라 길게 펼쳐진 동해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미세먼지에 희미한 대기 저편으로 동해의 수평선이 아스라이 잠겼다. 대륙의 먼지는 백두대간을 훌쩍 넘어 동해까지 뒤덮고 있으니 좁은 한반도에서는 피할 길이 없다.

 

숲속 다운힐 끝에는 계곡길

이제 북으로 다운힐을 시작한다. 정상 직전에서 배터리가 다되었지만 출발지까지는 전체가 내리막이니 별 걱정이 없다. 그런데 웬걸, 기대와 달리 짧고 가파른 업힐이 몇 군데 더 나온다.

자작나무가 전봇대처럼 휙휙 지나치는 숲은 빈틈이 없어 한눈팔 일 없이 라이딩에만 집중한다. 해발 300m 가까이 내려서자 첫 민가가 나오고, 산불 피해지역인 듯 잠시 민둥지대를 지나면 골짜기로 내려선다. 갈수록 골은 넓어지고 수량이 많아지더니 이윽고 절경의 비천골을 이룬다.

비천골을 나오면 42번 국도가 하늘 높이 지나는 이로동이다. 이로동과 삼화동 일대는 쌍용명칭이 흔한데, 두타산 길목에 자리한 국내최대 규모의 쌍용시멘트 공장 때문이다. 석회암 지대에 시멘트 공장은 당연한 입지이고, 장기간 지역의 일자리와 경제를 견인해왔지만 지금은 환경보호의 명분 아래 계륵이 된 모양새다.

강릉 망운산을 들렀다 오는 길이라 출발이 늦기도 했지만 서쪽이 고산으로 막혀 겨울 해가 더욱 짧다. 일주 19.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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