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 천방지축 (24)

 

산 아래 납세자들의 관용 없이 산속의 자연인은 지금 같은 품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통제 없는 평등이 가능할까? 평등을 주장하면서 통제권을 추구한 것 아니고!

'자연인'의 삶은 결국 세속에 기댈 수밖에 없다(영화 의 한 장면 
'자연인'의 삶은 결국 세속에 기댈 수밖에 없다(영화 의 한 장면 

 

전부 청산(淸算) 하고 전부 청산(靑山) 가는 게 가능한가?

최근 우리나라 TV에서도 일상을 버리고 산 속에 들어가 혼자 고독을 씹으며 신선처럼 사는 사람들을 다루는 프로가 부쩍 증가하고 있다. 물론 나름의 사정이야 있겠지만, TV에선 마치 이들이 무슨 깊은 사연과 고상한 사고를 가지고 고귀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처럼 다루더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신선처럼, 어떤 사람은 화타처럼, 어떤 사람은 타잔처럼.

 

솔직히 이런 생각 안 해본 사람 있을까? 특히 어린 시절, 질병과 해충이 없고 맹수도 없으며, 과일과 고기가 지천에 늘린 열대 섬에서 실컷 맛있는 것만 골라먹고도 성인병 안 걸리는 것은 물론, 심심하면 엄청나게 맑은 물에서 시원하게 수영하며 놀기만 하고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런 생활이 지겹지 않을 정도로 극복 가능한 수준의 재미있는 위기만 생겼다가 해결되는 파라다이스 같은 나라를 꿈꾸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그런 타잔 같은 생활은 트루먼 쇼같은 상황이 아니고선 있을 수가 없다. 질병해충맹수의 위협에다 해일이나 태풍의 공포가 있을 것이고, 어디 다치거나 아파도 치료조차 할 수 없는 절박한 고립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 사는 곳에 가야하는데, 거기에는 생계 걱정과 범죄전쟁의 공포가 늘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람이 모여 사는 문명사회가 더 안전한 이유는 비록 개인의 자유는 어느 정도 제한되지만 바로 사회라는 조직이 있어서 직업과 의료, 소방치안국방이라는 형태로 개인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사회를 유지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세금이다(병역은 의무가 아닌 나라도 있기에 여기선 제외한다). 자연인이 사는 산 아래 마을의 기반은 전부 산 아래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조성된 것이다. 그 때문에 산속에 살면서 감기약이나 라면이 필요하면 산 아래 내려가 보기도 하고, 약초꺼리 캔 것 있으면 산 아래 내다 팔아서 돈도 좀 버는 게 가능하니, 세금 내는 사람들이 세금 안 내는 사람의 편의를 배려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그게 과연 찬양거리일까? (부러울 수는 있겠지만)

 

만일 모든사람이 세속을 버리고 산으로 간다면, 지금처럼 신선 같은 생활이 가능할까? 우선, 모든 사람이 세속을 청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청산한다는 소리 그 자체가 이미 돈으로 바꿔서 따로 조용히 산에 살면서도 필요한 건 조금씩 사다 쓰겠다는 세속적 계산 아닌가. , 남들은 산에 오지 않고 산 아래 세속을 지키고 있을 것을 염두에 둔 계산 아닌가. 헌데 모든 사람들이 청산할 매물을 내놓으면 청산할 재산을 사줄 사람이 없어진다. 청산할 사람의 재산을 사줄 사람도 산에 갈 건데 왜 남이 청산하려는 것을 사주겠는가.

 

그리고 전부 세속을 청산한다면, 평화롭기는커녕 아마도 아비규환일 게다. 산 아래 기반경제가 없어 먹을 게 적으니 사람들이 점점 난폭해져서 결국 약육강식의 세상이 될 것이며, 약자는 강자의 노예가 되어주는 것 빼고는 자기보호 수단이 없게 될 것이다. 아무도 세금 안 내는데 누가 남을 위해 치안을 유지해줄 것인가. 신선? 꿈도 못 꿀 단어다.

 

그리고 20대가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 젊기에 힘은 넘치고 인내력은 모자라는데, 그 중 성미 급한 놈 있으면 그 놈에게 맞추어 세상질서가 형성된다. 그야말로 무림천하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40대나 50대가 되어야 도달가능한 일은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며, 세상의 지적수준도 20대 수준에 맞게 낮아지게 된다. 그에 따라 낮아진 의료수준에 맞춰 평균수명도 짧아져서 오늘날 오래 살기 때문에 겪게 되는 많은 희귀병 같은 것은 거의 없어질 것이다. 물론 영양과잉에서 비롯된 성인병도 거의 걸리지 않는다. 그래, 지상천국 같은가? 아마존 원주민들의 활기가 짧은 수명으로 인한 평균연령 저하 때문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가?

노아시대 지나고 수명단축 이후 그나마 문명을 만든 것은 집단지성 때문이라고 본다면, 집단의 평균수명이 짧을수록 집단지성의 수준이 낮아지는 문제가 보이지 않는가.

아마존 원주민의 생기와 평화로움 그 이면에는 뭐가 있을까 
아마존 원주민의 생기와 평화로움 그 이면에는 뭐가 있을까 

 

그래서 말인데, 사람이 세속을 버리고 홀로 산속에서 신선 티내고 살 수 있는 이유도, 어찌 보면 산 아래 사람들이 세금 내고 살면서 사회를 유지하는 가운데 산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만한 공간을 비워주는 관용 때문이다. 결국, 탈속은 납세자가 배려해준 여백을 누리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거다.

 

예부터 국가에서 가장 경계한 일 중의 하나가 유이민(流移民) 발생에 따른 정착민의 부족(不足)이었다. 조세가 걷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속을 등지고 자연과 함께 산다는 현대판 신선을 탈속의 관점에서만 찬양할 일인지 의문이며, 그렇게 나쁘게 표현하는 속세라는 곳에 살면서 세금 내고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먼저 배려 받아야 할 진정한 백성이 아닌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속세를 단단히 유지해야만 신선처럼 살고 싶은 자를 위한 여백을 비워두는 게 가능하다. 그러므로 탈속의 사촌은 탈세다.

 

 

통제 없는 평등이 가능한가

이렇게 각종 매스컴이나 창작에서 이상향으로 그리는 탈속의 궁극 중에는 세금 없는 평등사회가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평등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요즈음 평등이란 모토가 유행되고 하니, 평등에 대하여 그냥 재미로 내가 사회주의자가 못 되는 이유를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어디서 본 글에다 필자의 말을 조금 추가하여 각색해 봤다.

 

<내가 사회주의자가 못 되는 이유>

 

부자가 되고 싶은가? 그럼 좋은 사업을 하시오.

정말 큰 부자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사회주의자가 되시오.

 

이상하다. 20세기의 사회주의 재분배는 전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고, 사회주의 이념체제 때문에 죽인 사람의 수가 1억 명이 훨씬 넘는데! , 정치·문화·경제 엘리트들은 자본주의를 싫어하고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내세울까?

 

이는 사회주의란 게 경제적 성공이 아니라 인민의 통제를 위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민을 통제하는 부류인 엘리트가 사회주의를 선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지도자는 정말 큰 부자가 될 수 있다. 하긴,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공산혁명을 일으키거나 부추긴 이는 전부 부잣집 출신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인위적 평등은 통제 없이 불가능하다. 바로 그 통제가 그들이 추구하는 권력이다.

 

링컨이 노예제도 옹호자에게 한 말이 있다.

노예제도가 그렇게 좋은 제도라면 그걸 주장하는 당신이 노예가 되어 보시오.”

그렇다. 사회주의 평등이 그렇게 좋은 거라면, 당신이 그 평등사회의 민중이 되어주시고 나에게 그 평등을 통제할 권한을 주시오. 그럼 나도 사회주의자가 되어 주리다.

 

그리고, 걸핏하면 타도하자는 상위 1%!

어째, 사회주의 국가의 상위 1%가 전부 공산당 간부인 걸 보면, 혹시 그게 당신들의 진짜 목표 아니오? 권력에다 경제력까지!

 

이걸 모르는 무지렁이들은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달콤한 평등에 유혹되어 선동에 동원될 뿐이다. 공짜가 가짜라는 걸 모르기에, 분배가 통제의 미끼인 줄 모르기에, 그리고 사회주의가 공갈사기라는 걸 모르기에.

 

공산주의자는 공산주의를 들어본사람이고, 반공주의자는 공산주의를 잘 아는사람이다.

평등을 실현하려면 평등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가 필요해진다(동물농장의 우화)
평등을 실현하려면 평등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가 필요해진다(동물농장의 우화)

 

결국 평등을 위하여 통제를 가해야 하기에 평등할 수 없는 평등이 실현될 뿐이다. 평등의 저해요소라고 지적한 타도의 대상이란 것도 알고 보면 평등을 통제하려는 자들이 노리는 자리이다. 강남을 증오하는 자들이 가장 노리는 게 강남 아파트이듯이, 돈이 더럽다는 자들이 돈쓰기를 가장 좋아한다.

 

돈 얘기가 나와서 여담인데, 흔히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피보다 진한 것은 돈이다. 생각해보라. 혈육 간에 다툼이 발생하는 원인의 첫 번째가 돈 문제 아닌가. 돈이 더럽다는 가정교육을 받으면 그렇게 된다.

재테크 강의 영상에 이런 말이 나오더라.

젊었을 때는 돈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늙어보니 그게 맞더라.” (오스카 와일드)

가난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대문으로 도망간다.”

그렇다. 가족해체의 첫 번째 문제도 돈이다. 그러므로 돈은 더러운 게 아니라 피보다 진하게 작용할 수도 있는 현실을 교육해야 한다.

 

통제권을 쥔 자들 간의 고수준 평등

지금 이 상태대로 간다면 종합부동산세는 언제쯤 없어질까? 이를 짐작하게 하는 재미난 사례가 중공의 부동산세 소동이다.

공동부유를 주창한 시진핑이 부동산세를 올려서 공동부유를 실현하려고 하자 중공에서 난리가 났다. 그 난리가 일반인 때문이라면 공안을 동원해서 입 닥치게 만들고 보도를 차단하면 그만인데, 문제는 그 난리가 공산당원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빈 집이 1억채에 달한다는 중공의 아파트. 빈집 대부분은 공산당원 소유다  
빈 집이 1억채에 달한다는 중공의 아파트. 빈집 대부분은 공산당원 소유다  

 

무슨 사연인고 하니, 현재 중공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3천만채로 알려져 있지만, 빈집으로 따지면 1억 채라고 한다. 14억 인구를 대략 4억 가구로 환산하면, 인구의 25%를 수용할 빈집이 있다는 건데, 이 정도 빈집이면 미국 인구(35천만)를 전부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모두가 부정부패에 찌든 금융을 동원한 마구잡이 주택건설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난 것은 중공인구 14억 중에 공산당원이 9,200만인데 대부분이 다주택자라는 점이다. 9,200만이면 가구수로 따지면 2,400만 가구이며 바로 이들이 미분양 포함 빈집 1억 채의 대부분을 갖고 있으며, 빈집 이외에도 임대 놓은 집까지 고려하면 공산당원은 가구당 평균 5채 이상의 집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러니 부동산세를 올리면 중국공산당의 근간세력인 공산당원들만 쥐어짜게 되기에 부동산세 인상을 포기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타도하자던 기득권이 바로 자신들이 되다보니 이젠 계급보다는 당파를 기준으로 타도할 대상을 찍으려는 것 같다. 상하이방과 그 주변 세력들 말이다.

 

이를 보면, 아마도 우리나라의 종부세 부과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시세 좋은 동네를 다 차지하여 그들이 종부세 납부대상자가 되면 종부세가 없어질 것으로 본다. 자기들이 그전까지 그토록 욕하던 기득권자가 되고, 그토록 주체적으로 지지하던 종부세 정책의 객체가 되기 때문이다(그게 아니면 부동산 가격이 과세기준 이하로 폭락하는 경우다).

 

 

강제노동의 모태

평등은 가장 소중하면서도 가장 무섭다. 그 이유를 짚어보자.

 

첫째, 평등 위에 존재하는 더욱 평등한자의 통제가 없이는 평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진 자의 것을 뺏어다 못 가진 자에게 주는 식으로 다양한 다수를 획일화 하려면 강압적 권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둘째, 획일화되면 일할 생각이 없어진다. 결국 강제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먹고 살려면 어쨌든 일을 해야 하는데, 인간은 이기적이기에 열정과 능력이 뛰어난 자들에겐 남보다 열정과 능력을 더 발휘할 이유가 없고, 능력과 열정이 모자라는 자들은 애시당초 능력과 열정을 끌어올리지 않는다. 결국 하향평준화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알아서 일을 하려 하지 않으니 차츰 강제로 시켜서 일하게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세상은 더 평등한 자가 덜 평등한 자를 다스리는 동물농장화 되는 것이다.

 

따라서 평등은 '자유의 등가화(等價化)'를 위한 제도적 보장이지, '경제의 획일화'를 위한 강제적 조치가 아니다. 미안하게도 평등을 강조하는 자들에게 전자의 것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경제적 획일화가 달콤하게 들리는 덜 평등한사람이 많다.

중공의 강제노동수용소(라오가이) 분포도. 약 500군데로 추정된다 
중공의 강제노동수용소(라오가이) 분포도. 약 500군데로 추정된다 

 

 

국유화의 선봉, 상속세

어린 시절 도덕의식을 지배하게 만든 동화를 보면, 돈을 빌려주는 자는 전부 악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는 대부분 돈을 빌려줄 때는 그가 구세주로 보였다가 갚을 때가 되면 그가 악마로 보인 것이다. 세상에는 빚 때문에 허덕이는 자도 많지만, 실제로는 빌려주고 떼인 사람이 더 많다. 그런데도 무조건 돈 빌려준 사람은 악의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우리가 거기에 세뇌된 게 크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상속세도 그렇다.

필자도 젊었을 때는 편안히 놀고먹고 살려는 부의 세습을 차단하기 위해 상속세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남들은 열심히 벌어서 사는데 어찌 부모의 재산만으로 편안하게 산단 말인가! 평등에도 위배된다! 당시 나의 젊은 열정으로는 도저히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헌데, 좀 솔직해보자.

젊어서 열심히 버는 게 늙어서 불로소득으로 살기 위함 아닌가. 80 넘어서도 중노동으로 생활할 계획으로 돈을 버는 건 아닐 것이다. 게다가 당신이 돈을 버는 게 애시당초 국가에 주려고 버는가, 자식에게 주려고 버는가? 뭐 사회적 기부? 아직 내 생활주변에서 자선단체의 지원을 받은 사례를 거의 못 봤다. 기부란 게 대부분 자선단체 유지비에 쓰인다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상속을 몇 번 반복하면 개인자산은 대부분 국유화 되고 만다. 이는 말이 좋아 공유이지 사실은 주인 없는 상태이며, 실질적으로는 권력자의 소유로 바뀌는 셈이다.

더 무서운 건, 기업 같은 경우 상속세 납부 때문에 지분을 처리하다가 결국 CEO의 혈육이 경영권을 잃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기업의 존속기간이 짧아져서 전문성이 유지되기 어렵고, 더욱이 최근 우리나라의 세계적 유명기업이 중공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식으로 국가생존기술이 유출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큰 부를 축적한 이들은 자선재단 같은 형태의 각종 편법으로 상속세를 극복하는데 비하여 일반인은 그런 수단을 구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 생각 같아선 피상속인의 취득세 이외에는 상속세를 따로 부과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가족소유의 것이 가족 내의 명의만 바뀐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즈음은 상속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피상속인의 나이가 대부분 초로여서 젊은 사람에게 나쁜 이미지를 씌우던 동화 속의 설정과는 현실이 다르다는 것이다.

빌게이츠 재단  

 

자유를 위한 자유의 희생을 나치즘이니 매카시즘이니 하는데, 이를 보면 평등을 위한 평등의 희생이 바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아닐까? 그래서 나의 평등을 통제하는, 나보다 더 평등한 자의 축재(蓄財)에 내 재산을 빼앗기는 그들끼리만 통하는 평등은 싫다.

 

PS : 참고로 필자는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쓰기 싫어한다. 정말 좋은 말임에도 나쁘게 표현하려는 부정적 늬앙스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헌법에는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없다.

글-김종성(자유기고가)
글-김종성(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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