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코스 윤선도길 44km
자연 속에 노닐던 ‘고산’의 행적 찾아

▶ ‘어부사시사’ 고산 윤선도의 고향
▶ 고산의 은거지와 무덤이 있는 금쇄동
▶ 고대사의 신비 간직한 용두리고분

윤선도가 은거했던 금쇄동. 각종 건물과 연못 터, 용도를 알 수 없는 원형공간 등이 남아 있다
윤선도가 은거했던 금쇄동. 각종 건물과 연못 터, 용도를 알 수 없는 원형공간 등이 남아 있다

 

조선 중기의 출중한 문신이자 시인인 고산 윤선도(1587~1671)어부사시사’ ‘오우가같은 명작 시조로 국문학사상 중요한 인물이다. 85세로 장수했으나 당쟁에 휘말려 20여년 간 유배생활을 했고 19년간 세상을 등진 은거생활을 했다. 정계에서 물러나 자연과 더불어 음풍농월 하며 신선처럼 소요했다.

해남은 윤산도의 요람이다. 녹우당에서 태어나 자랐고 심심산골 금쇄동에서 은거했으며 죽어서도 금쇄동에 묻혔다. ‘어부사시사의 무대가 된 보길도 부용동은 그의 은거지로 익히 알려졌으나 윤선도가 9년이나 지냈던 금쇄동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현실에서 신선놀음을 구현했고 죽어서 묻힌 금쇄동은 과연 어떤 곳일까.

 

고산 윤선도의 생가이자 해남윤씨의 종가인 녹우당 
고산 윤선도의 생가이자 해남윤씨의 종가인 녹우당 

 

출발지는 윤선도의 생가인 녹우당(綠雨堂)이다. ‘녹색 비가 내리는 집이라는 시적인 이름부터 매혹적이다. 집 뒤의 덕음산 비자림에 바람이 불면 녹색 비가 내리는 듯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해남윤씨의 종가이기도 한 녹우당은 고목에 에워싸여 고졸한 정취에 잠겨 있다.

녹우당에서 들판을 가로질러 대흥사 방면으로 향한다 
녹우당에서 들판을 가로질러 대흥사 방면으로 향한다 

 

녹우당에서 작은 들판을 지나 연동저수지 옆으로 올라서면 해남의 명물인 닭요리 거리다. 806번 지방도를 타고 남향하면 해남의 명소인 대흥사로 이어진다. 도중의 신흥리교차로는 나중에 돌아 나오는 분기점이다. 해남의 토속주 삼산막걸리가 나는 삼산면소재지를 지나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운치 있다.

대흥사 가는 길목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대흥사 가는 길목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대흥사 길목의 매정사거리에서 806번 도로를 따라 우회전하면 백도제 저수지를 지나 산간지대로 접어든다. 작은 고개를 넘어 다운힐 하면 만안리 초입에 해남 윤선도 유적(금쇄동)’ 안내판이 보인다. 인적이 뚝 끊어진 병풍산 골짜기로 접어들면 금쇄동길이 시작된다. 금쇄동 초입에는 자동차 출입을 막는 차단기가 내려져 있고 사유지를 알리는 안내판이 걸려 있다.

금쇄동 입구의 안내판. 금쇄동은 고려시대 산성이 있던 산꼭대기에 숨어 있다 
금쇄동 입구의 안내판. 금쇄동은 고려시대 산성이 있던 산꼭대기에 숨어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금쇄동은 태극의 형상이다. 태양산~병풍산 줄기가 북쪽을 보호하듯 감싸고, 남쪽으로 돌아드는 산줄기 위에 금쇄동이 숨어 있다. 해발 290m의 금쇄동 산줄기에는 고려시대에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산성(현산고성)이 있었다. 산정부에는 평탄한 대지가 있고 사방은 절벽과 골짜기로 막혀 있어 산성터로는 제격이다. ‘금쇄동은 윤선도가 금칠을 한 궤짝(金鎖錫櫃)을 얻는 꿈을 꾼 후 그 배경과 똑 같은 이곳을 발견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금으로 돌려 막은 골짜기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금쇄동으로 올라가는 임도. 왼쪽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다 
금쇄동으로 올라가는 임도. 왼쪽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다 

 

비포장길을 따라 골짜기를 오르면 도중에 윤선도의 사당인 추원당이 나온다. 추원당 뒷산에는 윤선도 후손들의 묘소가 고산의 무덤을 마주보고 있지만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인적과 소음이 완전히 끊어져 심산(深山)의 격리감이 대단한데 옛날에는 단절감이 더 했을 것이다. 금쇄동과 고산의 묘소 갈림길이 나오면 주능선에 올라선 것이다. 묘소는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므로 먼저 금쇄동을 보고 나오면서 찾는 것이 좋다.

오른쪽 언덕 위에 윤선도의 사당인 추원당이 보인다. 추원당 뒤편 산자락에는 고산의 후손들 묘소가 모여 있다 
오른쪽 언덕 위에 윤선도의 사당인 추원당이 보인다. 추원당 뒤편 산자락에는 고산의 후손들 묘소가 모여 있다 
금쇄동 가는 길의 임도 안내목
금쇄동 가는 길의 임도 안내목
고산 묘소(왼쪽)와 금쇄동(오른쪽) 갈림길. 금쇄동을 먼저 본 다음 묘소를 들리는 것이 좋다 
고산 묘소(왼쪽)와 금쇄동(오른쪽) 갈림길. 금쇄동을 먼저 본 다음 묘소를 들리는 것이 좋다 

 

묘소 갈림길에서 안내판을 따라 숲길로 들어서서 200m 가면 형태가 뚜렷한 성벽을 넘게 된다. 성벽 안쪽이 곧 고산이 원림을 꾸미고 머물던 금쇄동이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원래는 회심당, 휘수정, 교의제 같은 건물이 산재하고 연못마저 있어 신선의 거처인 듯 산중 별천지를 이뤘을 것이다. 건물과 연못 터는 그대로 남아 있고, 수거한 기와편도 한 무더기다.

임도에서 금쇄동(산성)으로 진입하면 거친 숲길이 시작된다 
임도에서 금쇄동(산성)으로 진입하면 거친 숲길이 시작된다 

 

성벽을 오르는 숲길 
성벽을 오르는 숲길 
고려시대에 쌓은 상벽의 잔해.  남문터 근처에 남은 석축이다. 금쇄동은 이 산성(현산고성)의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쌓은 상벽의 잔해.  남문터 근처에 남은 석축이다. 금쇄동은 이 산성(현산고성)의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금쇄동 일대에서 수거한 기와편  
금쇄동 일대에서 수거한 기와편  

 

24개의 돌무더기가 에워싼 지름 18m의 특이한 원형공간은 용도를 알 수 없으나, 24절기의 상징 혹은 해시계의 유구가 아닐까 싶다. 고산은 가고 건물도 사라졌지만 이 특별한 공간을 조용히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지고한 정신세계와 감응하는 것만 같다. 성벽과 건물들을 복원하고 가꾼다면 담양 소쇄원을 능가하는, 국내 최고의 원림이 되지 않을까.

금쇄동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24개의 돌더미가 둥글게 모여 있는 원형공간.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으나 24절기의 상징 혹은 해시계가 아니었을까 싶다  
금쇄동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24개의 돌더미가 둥글게 모여 있는 원형공간.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으나 24절기의 상징 혹은 해시계가 아니었을까 싶다  
경사면을 따라 단층을 이루면서 건물을 조영했다 
경사면을 따라 단층을 이루면서 건물을 조영했다 

 

금쇄동을 나와 고산의 묘소로 향한다. 급경사 돌길이라 라이딩이 쉽지 않지만 능선 위 탁 트인 공간에 자리한 대형 봉분은 마치 신선경을 영원의 안식으로 누리듯 고고하다. 북서향을 하고 있으나 맞은편 산줄기가 북풍을 가려주고 추원당 뒤의 후손 묘들이 부복하듯 자리해 아늑한 느낌을 준다.

고산 묘소로 내려가는 길. 급경사 돌길이라 라이딩이 쉽지 않다 
고산 묘소로 내려가는 길. 급경사 돌길이라 라이딩이 쉽지 않다 
윤선도 묘소.  봉분은 크지만 단출한 구성이다. 맞은편으로 사당인 추원당과 후손들의 묘소가 보인다  
윤선도 묘소.  봉분은 크지만 단출한 구성이다. 맞은편으로 사당인 추원당과 후손들의 묘소가 보인다  

 

금쇄동에서 내려와 806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산간지대를 벗어나면 화산면소재지다. 이 작은 마을마저 복잡하고 번화하게 느껴질 정도로 금쇄동의 탈속 여운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다. 마을 북쪽의 연화제저수지 서편을 돌아 연정리 임도로 진입한다. 저수지 옆을 지나니 드물게 보는 호안(湖岸) 임도인 셈이다. 하지만 산길은 1km 남짓으로 금방 끝난다.

연화제저수지 옆으로 나 있는 연정리 임도
연화제저수지 옆으로 나 있는 연정리 임도

 

연화제저수지 북단에서 도로를 따라 작은 고개를 넘으면 금풍리 들판으로 내려선다. 들판 가운데는 고천암호로 흘러드는 삼산천이 흐르고, 고천암호반길 코스에서 건넜던 금풍교 남단에서 둑길을 따라 동진한다. 풍요가 흐르는 기름진 들판, 옹기종기 앉은 마을들참으로 평화로운 전원풍경이다. 삼산천 둑길은 남북을 오가면서 송정리까지 5km 정도 계속된다.

이제 산간을 벗어나 금풍리 들판으로 내려선다 
이제 산간을 벗어나 금풍리 들판으로 내려선다 
금풍리 둑길. 왼쪽은 고천암호로 흘러드는 삼산천이다
금풍리 둑길. 왼쪽은 고천암호로 흘러드는 삼산천이다
삼산천 북안의 둑길. 평화로운 전원풍경이다 
삼산천 북안의 둑길. 평화로운 전원풍경이다 
삼산천 저편으로 금쇄동을 감싸고 있는 병풍산이 보인다 
삼산천 저편으로 금쇄동을 감싸고 있는 병풍산이 보인다 

 

송정리에서 도로를 타고 창리의 작은 고개를 오르면 언덕 위에 특이한 형태의 용두리고분이 들판을 바라보고 있다. 북일면의 방산리장고봉고분과 함께 해남에 2기가 확인된 전방후원분으로 일본의 고분시대(4~7세기)를 대표하는 묘제여서 그 유래가 신비롭다. 전방후원분은 국내에서 해남을 포함한 영산강유역에서만 15기가 발견되었다. 축조시기는 일본보다 다소 늦고 규모도 작아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왜 이 지역에만 있는지 한일고대사의 미스터리를 숨기고 있다.

용두리고분에서 앞서 지나온 신흥리삼거리~닭요리거리를 거쳐 녹우당까지는 5km 정도로 빤한 길이다.

한일고대사의 신비를 간직한 용두리고분. 고대 일본계 묘제인 전방후원분으로 해남에서 2기가 발견되었다
한일고대사의 신비를 간직한 용두리고분. 고대 일본계 묘제인 전방후원분으로 해남에서 2기가 발견되었다

 

* tip : 금쇄동을 제외하면 대체로 평이한 길이지만 금쇄동과 윤선도 묘소 일대는 길이 험하고 라이딩 난이도가 높다. 금쇄동과 묘소 갈림길에 자전거를 두고 걸어서 돌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금쇄동 일원은 사유지이므로 환경 훼손에 유의하고 조심스럽게 다녀야 한다. 코스 중간중간 식당과 편의점이 있어 큰 부담은 없다.

 

* 숙식 : 삼산면소재지, 화산면소재지에 식당과 편의점이 있다. 숙소는 녹우당에서 멀지 않은 해남읍내 또는 대흥사 입구를 이용하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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