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자전거길 중 부여 산악산 구간. 놀라울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답지만 더 놀라울 정도로 적막하다   
금강 자전거길 중 부여 산악산 구간. 놀라울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답지만 더 놀라울 정도로 적막하다   

 

사람과 자동차가 들끓고 온갖 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이 좁은 국토에서 적막은 극히 희귀하면서 특별하고 때로는 소중하다. 적막과 침묵, 단절은 대다수의 현대인이 희구하는 가치의 정반대편에 위치한다. 어떤 것이든 치우침은 병증을 낳기 마련. 현실이 고달프다면 그 반대편에 귀를 기울여 중용과 희석, 균형의 미학을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국토종주길 중에 인공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고 인적마저 드문 적막강산구간 10곳을 선정해 보았다. 적막하면서도 경치도 아름다운 곳을 골랐으며 이런 곳에서는 라이딩도 내면의 침잠을 통해 일종의 행선(行禪)이 될 수 있다.

 

 

1 남한강 여주저류지~여주보

수도권의 이색 무인지경

 

한강은 남한강, 북한강 관계없이 수도권 유역에서는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다. 주말에는 자전거와 보행자가 밀려들어 혼잡을 빚는 곳도 많지만 그것은 서울 주변에 한해서다. 동쪽으로는 팔당대교에서 일단락되었다가 간혹 두물머리까지 붐빌 때가 있고, 성수기 휴일이라도 양평을 지나면 돌연 인적이 급감한다. 그래도 이포보까지는 서울에서 당일 왕복이 가능해 간간이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이포보 오토캠핑장을 지난 여주저류지부터는 언제나 한산하다. 홍수 때 물을 가두기 위해 조성한 여주저류지는 둑으로 둘러싸인, 길이 3.7km, 둘레 8km에 달하는 광대한 면적의 저습지다. 물이 빠진 상태에서는 저절로 생태공원이 된다. 여주저류지 남쪽 백석리도는 공군훈련장이 있어 오랫동안 접근이 통제되었는데 자전거길이 뚫린 지금도 한갓지다. 백석리도 입구에서 여주보까지 2km는 남한강 전체에서 가장 조용한 곳이 아닐까 싶다. 마을은 동떨어져 있고 넓은 둔치는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고립감을 더해준다.

 

2 북한강 의암댐~강촌

어두운 등잔 아래? 두 명승의 틈바구니

 

마치 거대한 크레이터 같은 분지지형과 절경의 호수를 안은 춘천은 떠남의 로망을 부채질하는 도시다. 하지만 분지 안만 그럴 뿐 역내를 벗어나면 사방 어디든 인적 드문 첩첩산중이다. 그나마 북한강을 따라 강촌, 가평, 남이섬, 청평, 대성리 등등의 명소가 띄엄띄엄 산재한다. 호화롭고 웅장한 의암호 호반길은 남단의 의암댐에서 끝나고 길은 훌쩍 낮아져 강수면에 근접한다. 매끄럽던 노면은 거칠어지고 동시에 인적도 뚝 끊어진다. 북은 삼악산 남은 절벽지대가 협공해 강폭은 좁아들어 위태로운 긴장감마저 감돈다. 이렇게 의암댐에서 강촌까지 십리 길은 북한강 최고의 적막강산이다.

 

3 낙동강 예천 지보면

고독이 치미는, 압도적 고요

 

안동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낙동강길은 장장 천리에 달해 다른 강 종주길의 근 3배나 된다. 가장 긴 강이기도 하지만 백두대간이 지나는 태백~봉화 일원의 최상류를 제외하고는 낮은 산과 작은 들판이 연이어지는 구릉지를 흘러 자전거길을 내기 유리했기 때문이다. 남한강길과 낙동강길을 연결하는 새재길이 상주 상풍교에서 합류하면서 상풍교~안동 구간은 낙동강길 종주가 아니라면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중에서도 마을은 멀리 떨어져 있고 북향의 산에 가려 음울한 느낌마저 드는 곳이 바로 예천 지보면 구간이다. 도시는 물론 면소재까지도 멀찍이 떨어져 있어 신풍리~지보리 간 6km 강변길은 그야말로 무인, 무소음, 무인가의 문명 절멸지대다. 길은 강 북안을 따라가는데 작은 들과 야산이 점점이 있고 경작지가 있건만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강 건너는 일대에서 가장 높은 비봉산(579m)과 독점산(313m)이 장벽처럼 막아서서 어두운 북사면만 보여준다. 길은 잘 나 있으나 사람도 인공물도 없는 으슥한 모퉁이마다 뭐라도 나타날 것만 같은 으스스함마저 느껴진다. 이곳에서도 단독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면 고독의 경지가 한층 고양될 것이다.

 

4 낙동강 합천 청덕수변생태공원~적교
무시무시한 심연, 반가운 포구

 

합천에서 흘러온 황강이 합류하는 모래톱 일원에 청덕수변생태공원이 있다. 원래 국토종주길 은 24번 국도로 바람재를 넘어갔으니 청덕공원에서 산자락을 따라 데크로가 놓이면서 계속 강을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다소 둘러가는 길이라 별로 높지 않은 바람재를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청덕공원 데크로와 적포리 둑길은 대단히 한산하다. 특히 데크로 아래는 수직절벽에 강물이 부딪혀 보기에도 섬뜩한 심연을 이뤄 범상치 않은 기운이 감돈다. 강물이 서로 만나는 합수점은 이처럼 극적이거나 아주 여유롭거나 둘 중 하나다. 데크로를 돌아 둑길에 들어서서도 마찬가지. 간혹 작은 마을이 있지만 강 저편은 산과 강이 급하게 만나 강변이 곧 산이자 숲이다. 24번 국도와 합류해서도 적교까지 3km는 무인지경에 두바퀴가 길의 주인이 된다. 간혹 지나는 자동차만이 적막을 깰 뿐. 이윽고 만나는 적교는 작은 마을이지만 적포교를 중심으로 식당과 가게, 모텔이 모여 있어 오지를 벗어나 처음 만나는 장터처럼 반갑고 정겹기 짝이 없다.

 

5 금강 산악산 강변길

장쾌한 경치, 지독한 적막감

 

강경을 지난 금강 하류는 강폭이 크게 넓어지고 큰 마을이 없어 교량이 드물다. 강경~군산 간은 30km가 넘는데 그 중간에 있는 다리는 웅포대교(1226m)가 유일하다. 그만큼 이 구간에서는 통행량이 드물다. 상류에서 하류로 갈 경우, 웅포대교에서 양안 길로 나뉘는데 동안 길은 명승인 웅포를 거쳐 가고 거리도 짧아서 대부분 이 길을 이용하고, 반대로 서안길은 더욱 한산하다. 웅포대교를 건너면 바로 산악산(126m) 옆을 통과하게 된다. 이름 붙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낮은 산이지만 이곳은 아주 특별하다. 이즈음부터 하구둑으로 막힌 강물은 거대하게 불어나 호수처럼 호탕하고, 온화하게 내려앉은 산자락을 부드럽게 돌아가는 길은 다음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설렘을 키워준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이토록 한적하다니 놀랄 뿐이다. 산악산 구간은 2km 밖에 되지 않아 한 페달 한 구비가 아깝다. 이 길은 적어도 30분에 걸쳐 천천히 걸어야 한다. 고작 126m의 산이지만 일주 임도가 나 있고 산기슭은 키 작은 조림지로 탁 트여 산악라이딩이나 등산으로 오르면 훨씬 과장된 고도감과 장쾌한 풍경을 보여줄 것이다. 산악산에서 2.5km 남하하면 그 유명한 신성리 갈대밭이다. 갈대밭은 관광객으로 붐벼도 그 직전까지는 도통 무인지경의 적막강산이다. 산악산의 숨은 매력은 낭중지추가 되어 조만간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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