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차(4/29)
운수 좋은 날!
글-김태진(전 코렉스스포츠 대표, 닉네임 '뽈락')

장갑차에 기대선 바다미. 최전방 양구다운 풍경이다   
장갑차에 기대선 바다미. 최전방 양구다운 풍경이다   

 

되돌아온 건봉사
되돌아온 건봉사

 

, 내려!” 그냥 가만히 눈 감고 있으면 동서울 집에 갈 수 있는데 원통 버스터미널에서 바다미와 한바탕 실랑이를 벌였다. 하긴 몰골을 보니 안됐다. 어제 오후 예보도 없던 빗속을 2시간 넘겨 달렸으니 온 몸에 흙탕물 범벅일 수밖에 없다.

간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선배님이 강추한 적멸보궁 건봉사 안내판이 보이길래 오른쪽으로 꺾어 2km 정도 들어가던 중 만난 간판에 8km 더 가야한다기에 포기하고 돌아 나오기도 했지. 하긴 뽈락도 어젠 많이 지쳤었지. 술 핑계 없나 살피는 뽈락에겐 절호의 기회가 아니었던가. 777기념식 말이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충혈된 눈을 까보니 눈 속에 또 하나의 눈이 쳐다보고 있다. 눈 다래끼다. 못 볼 걸 본 것도 아닌데 송화가루 때문인가? 알콜 없는 파티가 웬 말인가. 조용히 국밥 한 그릇하고 일찍 자 버렸다.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원통 버스터미널 
원통 버스터미널 

 

비 때문에, 비 덕분에

바다는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고 했다. 비는 나그네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고 날개를 달아 줄 수도 있나보다. 내리는 비를 보며 일기예보를 계속 체크해 보지만 오후 2시까지 비 소식이다. 실리를 앞세워 10시발 동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영서지방은 좀 일찍 갠다는 예보를 굳게 믿고서.

진부령을 오르는 버스 기사는 노련한 서퍼처럼 말티고개를 오른다. 승용차도 추월하면서. 창가를 때리는 굵은 빗줄기는 이미 산골짜기 폭포를 만들고 있다. 저 길을 뚫고 바다미와 함께 올라올 생각을 했단 말인가 하는 자위도 해본다. 거기다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은 또 얼마나 가파르고 미끄러운가. 이렇게 뽈락은 자기위주다. 편리한 족속이다. 암튼 오늘은 비 때문에 집콕이 아니라 50분만에 태백산맥을 점프한 운수대통한 날이다. 슈우웅~

양구 가는 길 
양구 가는 길 

 

고개가 왜 이렇게 쉽지?

원통에 도착하니 날씨는 개고 푸른 얼굴이 언뜻언뜻 보인다. 봐봐 우리 가는 길을 드라이클리닝 해놨잖아! 비와 바람과 햇볕이! 삐걱거리는 바다미를 달래준다. 뒤로 빠진 안장 레일을 6엘렌치로 단단히 조여 준다. 사실 튀어나온 시트포스트 상단 클램프 때문에 왼쪽 사타구니에 멍이 들었다.

내비가 계속 동그라미만 그린다. 기다릴 수 없어 인제쪽으로 출발이다. 삼거리에서 평화의 댐 팻말을 따라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광치령으로 가는 길이다. 산골짜기를 돌면 고개가 있으려니 하면 다시 산골짜기로 파고든다.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완만한 길이 계속된다. 양구땅에 들어서는 해발 660m 광치령 정상아래 터널에 이르기까지 너무 쉽다. 이런 길에 왜 령이라는 벼슬을 내렸을까? 의문은 터널을 나오자마자 풀렸다. 시야가 확 트이면서 내리막은 절벽처럼 길게 이어진다. 순치령에서 두 얼굴의 헐크령으로 바뀌었다.

광치령 정상 
광치령 정상 

 

군사도시 양구

DMZ가 있는 양구는 역시 군사도시다. 요소요소 군부대가 보인다. 고대 국가들이 강을 중심으로 형성되듯이 부대 주변에 마을이 들어서 있다. 중국집에서 건장한 군인들 속에 섞여 짜장면을 비빈다.

장갑차를 처음 본 바다미가 쪼르르 다가가 옆에 척 선다. 보초병이 씨익한다. 부대앞에 빨간 KT 공중전화 부스가 서있다. 가까이 가보니 거미부대 일개 사단이 거미줄로 방어선을 구축했다. 동전이 필요 없는 첨단시대를 실감한다.

탱크 실루엣이 그려진 도로 표지판은 이곳만의 풍경이다. 농장 주인은 전위예술가다. 전자레인지가 우체통이 될 줄이야. 소식이 더 따끈따끈해지려나. 대표 캐릭터 제비가 빠지면 짝퉁이지^^

전방에만 있는 특별한 표지판  
전방에만 있는 특별한 표지판  
기발한 우편함 
기발한 우편함 

 

뭔가 아쉽더니

칼바람이다. 그것도 강도 같이 센 바람이 바람고개를 만든다. 속도계가 두자리를 올라타질 못한다. 차라리 오프로드 고개는 넘고 나면 신나는 내리막이라도 있건만. 왠지 바람이 조용하다. 정지했더니 뒷바람이 씽 지나간다. 우리가 무탈하게 지내고 있을 때 누군가는 뒤에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백자의 시원지, 양구 
백자의 시원지, 양구 
양구백자박물관 
양구백자박물관 
방산면소재지의 철물가게
방산면소재지의 철물가게

 

기온이 차니 물통의 물이 시원해서 좋다. 터널이 높다고 다시 터널공사를 하고 있는 도고터널을 지난다. 백자의 시원지가 여기 양구 방산면인줄 처음 알았다. 넌 알았니? 박물관에 들어가 도자기의 오묘함에 잠시 빠져본다. 오늘의 목적지 현리 방산면소재지에 도착했다.

근데 뭔가 허전하다. 그렇다, 격전지 펀치볼을 못 보고 온 것이다. 원통 터미널에서 다시 진부령쪽으로 가서 해안면으로 가야 했는데 우리는 인제쪽으로 가고 만 것이다. 이렇게 뽈락은 좌충우돌 지 맘대로다. 어쩌겠는가? 이것도 지 팔자요 운명인 것을!

암튼 70km 길을 50km로 질러 온 셈이다. 그렇게 양구의 악동 돌산령을 따돌렸다.

오늘은 진부령 점프에 펀치볼 패스까지 이래저래 운수대통한 날임이 틀림없다.

전생에 지구라도 구했나보다

오늘은 버스길 50km 잔차길 47km 97km 이동.

 

 

바다미의 즐거운 비명

 

금수강산 구경꾐에

섬나라를 탈출하여

 

꼬불꼬불 칠칠국도

서해절경 남해비경

 

등뼈국도 칠번도로

잔차길도 함께하네

 

집나온지 열흘만에

상거지가 되었지만

 

비가오면 점프하고

햇볕나면 질주하네

 

천방지축 뽈락땜시

앗싸재미 연발일세

 

- 양구의 백두산 부대 앞 중국집 문턱에 기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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