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차(5/1)
한탄강에 몸을 싣고
글-김태진(전 코렉스스포츠 대표, 닉네임 '뽈락')

바다미를 채갈려나? 철원 고석정의 임꺽정 상
바다미를 채갈려나? 철원 고석정의 임꺽정 상

 

화천 사방거리 서울장 여관 2층 작전상황실에 비보가 날아든다. 포천에서 근무하는 후배 대대장의 타전이다. 현재 대통령이 바뀌는 정권 교체기라 준 비상사태이며 민통선인 말고개는 도보는 물론이고 자전거 통과도 금지된 상황이란다. 그래서 자신이 와서 차로 이동시켜 주겠단다. 예전에는 자전거 단체가 간편히 통과했었는데. 단기필마의 핸디캡인가? 후배 대대장의 충정은 사양했다. 멀리 있는 병력(?)을 동원하는 것은 꼰대들이 쓰는 수법이다. 더구나 일요일 아침 군인가족의 평화를 깨서야 쓰겠는가. 현지에서 발생한 돌발상황은 현장처리가 원칙이다. 오늘의 귀인 계급장을 받은 여관 주인장과 밀담을 나눈 뒤 승용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바다미는 변신의 귀재다. 트랜스포머처럼 순식간에 분해되어 트렁크에 들어가는 모습에 주인장 부부는 눈을 휘둥글린다.

살벌한 바리케이드 
살벌한 바리케이드 

 

주민 출입증이 있는데도 검문소 초병은 꼬치꼬치다. 독일군 초소를 통과하는 느낌이다. 조카로 위장하여 적의 요새로 침투한다. 작전은 30분만에 끝이 났다. 가장 빠르게 끝낸 성공한 작전으로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한참을 오르고 돌아 내려온 마을도 마현리다. 마포 아현동이 아이고개라면 마현은 말고개다. 말도 오르기 힘든 고개에 말을 붙인단다. 鐵馬인 바다미도 힘들게 올랐으니 진짜 말고개로 인정한다. 허나 펜은 칼보다 강하고 말()은 말()보다 힘이 세다.

말고개 통과 작전 
말고개 통과 작전 

 

한탄강의 추억

같은 강원도라도 이렇게 다르다. 눈앞에 철원평야가 펼쳐진다. 여행의 마지막 고개를 우여곡절 끝에 넘고 나니 밝게 빛나는 햇살처럼 대로가 창창하다. 평평한 대지에 화산의 용출액이 뚫고 지나가며 피요르드꼴 지형을 형성했다. 협곡과 절벽 사이에 한탄강이 흐른다. 고석정에는 일요일 나들이객들로 넘치고 광장에서는 임꺽정이 힘자랑을 하고 있다. 애들 어릴 때 같이 한 래프팅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수량이 많이 줄었고 설상가상 코로나까지 덮쳤다. 고무 보트는 찌그러져 나뒹굴고 간판은 너덜너덜 퇴색되었다.

해방 후 남북이 반반씩 건설한 승일교 
해방 후 남북이 반반씩 건설한 승일교 

 

의도치 않은 남북합작품 승일교에도 동란의 흔적은 남아 있다. 이승만 대통령과 김일성은 하늘나라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한탄강 줄기 따라 평화누리 자전거길이 나 있다. 잠실대교 수중보 같이 나지막하게 떨어지는 직탕폭포를 내려다본다. 시멘트 건물인데도 겨울 사시나무처럼 앙상한 노동당사 앞에는 바이커들의 기념촬영이 한창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북한의 현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길 양옆에는 철조망이 쳐있고 지뢰 표시도 같이 흔들거리고 있다. 안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용암대지를 수직으로 파내려가 흐르는 한탄강 
용암대지를 수직으로 파내려가 흐르는 한탄강 
한탄강 옆으로 나 있는 철원 평화누리 자전거길 
한탄강 옆으로 나 있는 철원 평화누리 자전거길 
멋진 카페가 있는 자전거길 
멋진 카페가 있는 자전거길 

 

제피로스여, 내게 왜 이래

2땅굴, 열쇠전망대, 백마고지 등 6·25의 참혹한 역사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만행을 알리는 현장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아쉽지만 다음으로 미룬다. 지금은 운행이 중단되었지만 언젠가는 만날 여행객을 위해 예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신탄리역 근처에서 비빔막국수로 허기를 달랜다. 우선 닭날개와 물김치가 제공된다. 막국수와 함께 보너스 사리도 나왔다. 넉넉한 주인장의 마음씀씀이가 손끝에도 배어 맛도 일품이다. 추운 날씨에 따뜻한 육수는 어머니의 품속이다.

앙상한 철원 노동당사 
앙상한 철원 노동당사 
바로 길가에 지뢰밭이 있다니 
바로 길가에 지뢰밭이 있다니 
백마고지역 광장 
백마고지역 광장 
신탄리역 
신탄리역 

 

계절의 여왕 5월 첫날에 불청객 서풍이 심술을 부린다. 아프로디테를 탄생시킨 서풍 제피로스라 애교로 봐주기엔 너무하다. 시속 10km라니. 얕은 논물에 파도를 일으키고 뽈락의 볼살을 뜯어갈 기세다. 소나기 피하듯 3번 국도를 벗어나 경기도 연천땅의 따스한 객잔으로 몸을 숨긴다.

오늘은 말고개 수송차에 탑승한 15km와 철원평야의 마파람을 뚫고 달려온 81km, 해서 96km를 이동했다. 무사히 안전하게!

닭날개를 주는 막국수집 
닭날개를 주는 막국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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