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나라로!

글/사진 김태진(전 코렉스스포츠 대표, 닉네임 '뽈락')

 

 

이번 여행의 베이스인 훈누 캠프 게르들
이번 여행의 베이스인 훈누 캠프 게르들

 

여행은 설렘이다. '설렘'이란 놈은 잠을 설치게 하기도 하고 잠을 깨우기도 한다. 그렇다고 귀찮거나 밉지가 않다. 소풍 가자고 새벽바람에 노크하는 친구와 같다. 하긴 처음 가보는 이국의 여행길에 가슴 콩닥거리는 설렘마저 없다면 살아 있다 할 것인가?

택시의 LPG 가스통에게 뒷 트렁크 자리를 뺏긴 잔차는 뒷좌석에서 금숙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노원 공항 터미널도 코로나가 쓸고 간 흔적이 역력하다. 온라인 매표기는 먹통이고 직원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한켠에 새로 작성된 듯한 공항행 시간표가 붙어 있다. 945분 인천공항행 버스는 승객 4명을 태우고 1시간만에 공항에 도착한다. 예전 인산인해의 공항은 겨울 바다처럼 휑하다. 그래서 티켓팅, 검색대 통과의례는 VIP를 모시듯 속전속결이다.

건물 끝자락에 위치한 34번 게이트는 섬의 절벽처럼 느껴진다. 마침 촉촉이 젖은 활주로에는 화물차들이 통통배처럼 오가고 있다. 공항과 항구는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은 구석이 많다. 떠나고픈 사람들의 발판이다. 그 발판에 오르면 자유가 보인다.

 

구름 위를 나는 비행기. 저 아래로 대초원이 펼쳐져 있다 
구름 위를 나는 비행기. 저 아래로 대초원이 펼쳐져 있다 

 

보잉 737 몽골 국적기에 오른다. 스튜어디스는 동글납작한 전통 몽골인의 모습과는 다른 섹시 버전이다. 기내 모니터에서는 안전 주의사항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지만 액정에는 삼류 극장 화면처럼 비가 내리고, 몽골어, 영어에 이어 구형 항공기에 어울리는 어눌한(?) 한국어가 흘러나온다. 군데군데 빈 좌석이 보이긴 하지만 정원 180명을 다 채운 듯하다.

몽골 맥주를 곁들인 기내식에 초면의 송사장과 탐색전을 거쳐 공통분모 찾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녹색 평원이 펼쳐진다. 위에서 바라보는 뭉게구름은 금방 세탁한 듯 뽀송뽀송 부풀어 있다. 초원에 웬 호수가 저리도 많을까 했는데 알고 보니 요녀석들의 유일한 게임, 그림자 만들기다. 비행기는 엄마품인양 초원속의 활주로에 살며시 내려앉는다.

 

새로 개장한 칭기즈칸 공항 
새로 개장한 칭기즈칸 공항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는 낡은 칭기즈칸 공항을 폐쇄하고 작년에 완공한 신공항으로, 이름은 칭기즈칸 공항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이름은 칸급의 거창한 공항이지만 어째 비행기라곤 우리 비행기 말고는 종이비행기도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풀을 뜯고 있는 흰말이 비행기 대수가 뭐 그리 대수냐고 심드렁하다. 하긴 그 말이 하는 말을 듣고 보니 할 말이 없다.

해발 1500미터에도 여름은 ''하다. 28도의 기온이라지만 건조해서 그런지 아님 여행의 착각인지 불쾌지수는 제로다. 툭 트인 녹색 광야에 공기가 맑아 태양에 더 가까워진 듯 햇살이 투명하다.

훈노투어의 인상 털털한 신현호 사장이 장정 세 명을 이끌고 마중을 나왔다.

 

공항을 빠져 나오며 
공항을 빠져 나오며 

 

공항에서 훈누 캠프로 가는 길, 75km1시간반 동안 타임머신을 타고 60년대로 되돌아간다. 도로는 왕복 2차로라고 차선은 그어 놓았지만 갓길 없는 1.5차로다. 교차하는 차가 코끝을 스치듯 지나친다. 그래도 아스팔트 포장은 감지덕지다. 그나마 중간 중간에 초막을 지어놓고 통행료를 받는다. 코로나 때문인지 쇠집게로 현금을 받고 통행권을 내준다.

지평선이라 여겼던 풍경은 언덕도 있고 멀리는 녹색 민둥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길가의 노점상들은 산에서 채취한 나물과 버섯, 하우스 재배한 수박을 팔고 있다. 얼마 전 끝난 축제 참가 여행자들을 위한 분식집 단지도 보인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일부라는 철로에는 석탄을 실은 화물열차가 헐떡헐떡 언덕을 오르고 있다. 할일도 없고, 천천히 가고, 한눈에 들어와서 곱배를 세어보니 총 43개나 된다. 저쯤되면 뒤에서도 기관차가 밀어줘야 하는 게 철도국의 배려아닐까!

 

도로변의 초원 풍경 
도로변의 초원 풍경 
주유소 풍경   
주유소 풍경   

 

톨게이트 
톨게이트 

 

무려 43량의 화물열차. 대초원이라 가능한 스케일이다  
무려 43량의 화물열차. 대초원이라 가능한 스케일이다  

 

넓은 초원에는 소, , 양 떼가 그림처럼 한가롭다. 그 중 야크의 모습이 가장 이국적이다. ‘양처럼 순한 사람이라고 하면 여기서는 욕(?)이란다. 소와 말은 해가 지면 알아서 집으로 오는데 제일 말 안 듣는 놈이 양이란다. 그런데 더 악랄한(?) 놈이 있단다. 염소는 풀뿌리, 나무 줄기 등 모든 걸 다 쳐발라 드신단다.

초원에는 직사각형 울타리를 치고 저마다의 영역 표시를 해놓았다. 한반도 15배 크기의 광활한 영토에 인구는 360만 정도란다. 해서 만 18세가 되면 200평 정도의 땅을 무상으로 준단다. 하지만 그것마저 포기하고 도시로 나가는 젊은이가 많단다. 초원이 훼손되어 사막화되는 걸 막기 위해 나무를 심어 보지만 관리의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수원 시민숲 조성지란 팻말이 반갑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여행의 베이스인 훈누 캠프 정문. 땅이 얼마나 넓은지 정문을 지나서도 캠프장까지는 한참을 가야 한다   
여행의 베이스인 훈누 캠프 정문. 땅이 얼마나 넓은지 정문을 지나서도 캠프장까지는 한참을 가야 한다   

 

드디어 우리의 베이스인 훈누 캠프에 도착한다. 발그레한 볼과 비슷한 오렌지색 티를 입은 어린 소년, 소녀가 반긴다. 신사장은 12년 전 몽골에 여행 왔다가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단다. 배산임수! 저 멀리 안산 자락에는 바이칼 호수로 흘러드는 투울강이 흐르고 뒷산은 조상님들 처럼 캠프를 지켜주고 있다. 산 언덕에 새겨 놓은 훈노 투어 글씨는 키릴 문자 한 글자의 길이가 30m가 넘는 슈퍼간판이다. 25톤 트럭 30대분의 자갈을 옮겨서 배치하고 흰 페인트를 칠하는데 10명의 인부가 한달이 걸렸단다. 몽골식 슈퍼 그래픽이다.

 

칭기즈칸 술과 양고기가 나온 환영만찬  
칭기즈칸 술과 양고기가 나온 환영만찬  

 

각자의 게르를 배치받고 연회장에서 환영만찬이 시작되었다. 푸짐한 양고기에 칭기즈칸 술이 나왔다. 평원에 우뚝 자리 잡은 건물은 궁궐이 되고, 온더락의 45도 칸주를 오른손에 들고 왼손에는 큼지막한 양갈비를 뜯는다. 황제가 된 기분이다. 간단한 자기소개지만 다들 목소리 톤은 올라가고 미소가 가득하다.

 

축하공연(마두금)
축하공연(마두금)

 

몽골 전통의상을 차려 입은 악사의 마두금이란 2줄 현악기 연주는 천군만마가 몰려 오는 듯 우렁차고 활기가 넘쳐 저절로 어깨가 덩실거린다. 애띤 무희 삼총사의 현란한 춤은 우리도 모르게 무대로 나가게 한다. 이곳 친구들에게 줄 옷 선물을 가져오다 허리가 삐끗한 이광자 본부장의 미담에 감동한 재몽골 한인원로 명창께서도 나서서 진도 아리랑으로 흥을 돋운다. 이대로 그냥 자면 섭섭하지. 노래! 우리 노래 한 곡조는 뽑아줘야 애국자요 멋쟁이지! 복남 씨도 나서고 우리 금숙이도 신이 났다. 그려! 인생은 즐기고 보는 거여!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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