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또 다른 풍경을 찾아서
글/사진 김태진(전 코렉스스포츠 대표, 닉네임 '뽈락')

 

우리의 성황당 돌무지와 비슷한 '어워' 앞에서 
우리의 성황당 돌무지와 비슷한 '어워' 앞에서 

 

투르크족이 처음 개발했다는 유르트! 유목민의 이동식 주택을 이곳에서는 게르라고 부른다. 일상의 공간개념을 초월해서 태어나서 죽는 인생의 소우주란다. 왕관 모양의 게르에 들려면 우선 겸손해야 한다. 고개를 빳빳이 쳐들다 당한 이들이 초원의 양떼 만큼이란다.

계속되는 설렘 증상에 수면 시간은 짧지만 상쾌한 아침을 맞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축복이다. 흰 쌀밥에 상큼 김치, 얼큰 김치국, 삶은 계란 그리고 찰진 소시지, 채소 샐러드, 식빵, 걸쭉 수프 등 느지막이 먹는 아침은 동서양이 만난 퓨전 푸짐 조찬이다.

9시 반에 출발이란다.

바람 빵빵, 완전 준비된 잔차는 카트리지 타입 피스톨 귄총의 총알이 약실에 들어가듯 90년형 45인승 현대 버스의 짐칸에 쏙 자리를 잡았다. 기회가 오면 튀어 나갈 기세다. 오늘은 보병? 19명과 함께 잔차 부대원 1명이 초원에 등뼈처럼 솟아 있는 산악 지역을 탐색할 예정이다.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현지 한국인 2분이 자원했다. 몽골 생활, 아니 생존 20, 27년차 베테랑들이다.

 

몽골 가면 꼭 해보고 싶었던 로망, 초원 라이딩 
몽골 가면 꼭 해보고 싶었던 로망, 초원 라이딩 

 

길이 아니라도 좋다! 도전 엠티비!’ 코렉스 자전거의 MTB대회 슬로건이었다. 여기는 내가 가면 바로 길이 된다. 초원에 두 줄의 황토길이 초딩 그림처럼 어지럽고 도로는 사춘기 여드름처럼 울퉁불퉁이다. 장난기 넘치는 길을 달리는, 아니 뒤뚱거리는 버스는 술 취한 코끼리 등에 탄 기분이다. 그래도 죄수 수송용 버스가 아니라 행복 사냥 버스는 마냥 즐겁기만 하다. 언덕에 올라서니 커다란 연필이 돌무더기에 꽂혀 있다. 색색의 천조각이 샴푸 광고 머리카락처럼 휘날리고 있다. ‘오보혹은 어워라고 한다. 인간 환생을 빌고 있는 염소들을 밀치고 이미 행복한 우리는 욕심 행복을 위해 세바퀴째 돌고 있다. 시계 방향으로 돌아야 한단다. 반대로 돌면 받은 복을 까먹는 건가? 우리네도 고갯길 정상 한켠의 돌무더기에 내 돌 하나를 올려놓는 풍습이 있었지.

내리막 커브길은 중장비가 덤벼들어 밀고 다지고 있다. 그 길을 잔차와 함께 달려본다. 생뚱맞은 단기필마의 출현으로 노동에 찌든 이들에게 깜짝 이벤트가 된 듯하다. 훈누 캠프에서 아스라이 보이던 투울강을 만났다. 수량은 많고 유속도 빠르다. 물 빛깔을 보건데 얼음처럼 차가울 것 같다. 신식 콘크리트 다리 옆의 통행금지, 옛 다리의 바닥은 학교 교실 바닥처럼 나무판이 울퉁불퉁 깔려 있다. 다리를 지키는 수호신도 이제는 지쳐 보인다.

 

색이 바랜 나무다리 수호신 
색이 바랜 나무다리 수호신 
황토길 다운힐 
황토길 다운힐 

 

테를지 국립공원에 들어서니 황토색 바위들이 비석처럼 서서 우리를 내려다본다. 그놈들을 배경으로 흰 게르가 군집을 이룬 관광 캠프가 즐비하다. 어느듯 회갈색의 갑옷을 입은 파워 몽골군이 우리를 에워싼다. 몽골 초원의 패러다임이 여지없이 박살나는 순간이다. 푸른 초원만 태평양처럼 계속 될 줄 알았는데 삐죽삐죽한 암석산의 스카이라인은 꿈틀거리는 공룡들의 모습이다.

5km의 간단한 트레킹이라던 신사장의 안내는 백퍼 오보였다. 마사길 천천 오르막에서 우리를 닭 보듯 유유한 들소 옆을 지날 때만 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스키장 코스처럼 바로 보이면서도 발딱 서서 버티고 있는 깔딱고개는 유격장을 예고한다. 능선에 가면 잔차를 탈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귀 얇은 척 실행한다. 다들 여기까지 왔는데”, “저 친구도 가고 있는데하면서 흐르는 땀방울을 훔쳐낸다.

 

테를지 국립공원 
테를지 국립공원 
몽골은 초원뿐인 줄 알았는데 험한 바위산도 적지 않다. 테를지 국립공원  
몽골은 초원뿐인 줄 알았는데 험한 바위산도 적지 않다. 테를지 국립공원  

 

그래도 하늘은 무심치 않고 자연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가 보다. 회색 구름은 떼로 몰려와 커튼처럼 직사광선을 막아준다. 대형 자연 부채는 살랑 바람을 부쳐준다. 여름 꽃들은 키를 낮추고 옆으로 퍼져 촘촘한 카펫을 짜고 있다. 다리도 팔도 바쁘지만 눈은 감탄, 입은 탄성! 당근 은은한 꽃향기에 콧구멍도 연신 벌름거린다. 오감만족이다. 심봉사 젖동냥하듯 잔차는 송사장, 타미르가 번갈아 끌고 밀고 메고(내려갈 때는 잔차를 분해하여 각각 한 덩이씩 메고) 간다.

낙엽송, 가문비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달려본다. 드디어 엉거취산 정상 마당바위에 올라 태극기 대신 잔차 만세를 부른다. 해발 1,950m 한라산 정상과 맞장 뜨는 높이다. 한 마리 독수리가 상승기류를 타고 올라와 눈이 마주친다.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환생인가. 하산길에는 시원한 비까지 내려준다. 우리 일행 중 로또 1등 당첨 행운복이 있는 분이 계신가?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오를 때 잃어버린 선글라스 내려가며 찾았네!

창가엔 빗방울 떨어지고 팝송도 따라 흐르는 버스에서 맛보는 점심 도시락은 먹어본 사람만 안다. 니들이 요맛을 알아!

엉거취산 임도 라이딩 
엉거취산 임도 라이딩 
거대한 거북바위 앞에서 재롱 라이딩 
거대한 거북바위 앞에서 재롱 라이딩 

 

세상에서 제일 큰 거북, 세상에서 가장 참을성이 있는 거북! 돌거북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오늘 최종 목적지를 향한다. 이번에도 잔차에 올라 황야의 무법자처럼 비포장길을 달린다. 간간이 뿌려주는 이슬비는 윤활유처럼 라이딩을 즐겁게 해준다. 오전에 있었던 엉거취산 전투에 부상병(?) 속출이다. 잿빛 암석 병풍이 둘러싸고 있는 아리야말 사원의 입구는 너무 좁다. 그래도 잔차 통과에는 문제가 없다. 아미타불!

대웅전으로 가는 길에는 네모 간판이 보초처럼 도열해 있다. 천수경, 금강경, 반야심경 등 불교 경전이 영어와 키릴문자로 씌어 있다. 불곰(러시아)과 독수리(미국)가 사이좋게 지내라는 계시인가. 구름다리도 지나고 흔들다리를 건너 본당에 오르는 계단은 10단에 한 번씩 계단참이 있다.

 

번뇌를 지고 오르다 
번뇌를 지고 오르다 

 

불교의 백팔번뇌를 뜻하는 108개의 계단을 잔차를 메고 오른다. 가파른 계단은 오를수록 숨이 가빠오고 전국의 땀구멍 공장이 풀가동한다. 그래도 뽈락이 그동안 지은 업보에 비하면 형편없이 가벼운 벌칙이리라.

티벳의 대승불교 즉 라마교를 신봉하는 이곳은 우리의 불교와는 다른 종파지만 법당은 데칼코마니다. 곱게 칠한 단청과 부처님의 미소도 비슷하고 화려한 장식이 너무 흡사하다. 한국 돈은 못 알아 보실까봐 몽골 지폐로 시주하고 삼배를 올렸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암산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반듯하게 깎아 티벳어를 새겨 놓았다. 옴마니밧메훔? 박대표와 함께 대형 마니차를 돌리면서 제각기 소원을 빈다. 비록 동상이몽이지만 근본은 같으리라. 을 내려 주소서! 소나기째로^^

 

아리야말 사원의 법당. 우리 사찰과 분위기는 비슷하다 
아리야말 사원의 법당. 우리 사찰과 분위기는 비슷하다 

 

훈누 캠프 연회장에서 저녁을 먹으려는 찰라, 야단법석이 났다. 동쪽 뒷산에 무지개가 나타난 것이다. 수저를 든 채로 나온 이도 있다. 바로 옆에 희미하게 또 하나의 무지개가 생성되기 시작한다. 우째 이런 일이!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인 무지개가 한기도 아닌 쌍무지개라니! 스테레오 돌비시스템이다. 부처님의 가피와 염력은 몽골 초원에도 어김이 없다.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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