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생각의 산파
글/사진 김태진(전 코렉스스포츠 대표, 닉네임 '뽈락')

전통복장의 양 몰이꾼
전통복장의 양 몰이꾼

13세기 세계를 혼돈에 빠지게 했던 칭기즈칸! 그 칭기즈칸이 21세기 아침에는 뽈락의 머리와 뱃속을 괴롭히고 있다. 어제 밤 캠프파이어 때 마신 45도 칭기즈칸 술 때문이다. 울고 싶은데 뒤통수 쳐주는 친구처럼 비가 게르의 지붕을 때리고 있다. 더해서 반가운 소식은 오전 일정은 없단다. 손을 털어야 또 다른 게 쥐어 지듯이 일정을 비우니 자유가 찾아온 것이다. 닭고기 스프와 된장국으로 뱃속 전쟁을 겨우 진압하고 쌀쌀하게 느껴지는 비바람을 맞으며 숙소 8번 게르로 돌아온다.

8월초 폭염에 신음하고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고국의 동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지만 뽈락은 가을을 가불하여 계절의 사치를 누리고 있다. 다만 어제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들로 유성샤워를 맘껏 하지 못한 게 아쉽다. 비 소식만 없었다면 낙타털 침낭 속에서 누에고치 체험도 했으련만. 아쉬움이 남는다는 건 그래도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당장 오늘 죽을 사형수에게는 아쉬움 대신 체념만 있을 것이다.

하얀 시트 속으로 반쯤 몸을 파묻고 후두둑 소리 내며 빗금 치는 비를 보며 생각이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어제 라이딩한 초원이 천장에 파노라마로 그려지고 같이 갔던 타미르와 같은 나이의 33세 새파랗던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 참 많이도 왔다. 나도 모르게! 멀리도 온 것이다. 참 고맙다!

에델바이스-나를 잊지 말아요
에델바이스-나를 잊지 말아요

여행은 만남이다. 일상에서도 이런 저런 만남이 있고 만남의 종류 또한 사람, 자연, 사건 등이 있고 그 만남은 새로운 인연이 되며 더 나아가 운명까지도 바꾸나 보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만나서 룸메가 된 송사장과도 옷깃만 스친 간단한 인연은 아닐 것이다. 5일 밤을 같이 자면서 코골고 방귀 끼는 뽈락의 치명적 약점을 인내하고 모른 체하며 배려해주는 송 룸메가 고맙다.그 룸메를 맺어준 이는 이름부터 스런 복남 씨란다. 3월 이태리 시칠리아에 여행가서 서로 알게 되었고 키클로스 회원인 복남 씨 덕분에 이번 여행에 참가하게 되었단다. <로마인 이야기>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일본인 시오노 나나미도 우연한 여행으로 운명이 바뀐 케이스다.

결혼 독촉을 하는 부모님을 피해 간 3주간 이태리 여행에서 그곳의 역사와 풍광에 반해버리고 운명처럼 이태리 남자와 결혼까지 하여 국적까지 바꾸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위대한 로마사를 엮어낸 것이다. 한 톨의 씨앗이 강물에 떠서 비틀비틀 흘러가다 어느 기슭에 안착하여 뿌리를 내리는 게 우리네 인생사 아니던가! 뽈락도 기마족의 피가 흐르고 노마드의 DNA를 가진 인간인지 처음 와본 이곳 초원이 왠지 어머니 자궁처럼 포근하게 느껴져 앵커을 내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너무 늦게 왔다.

말과의 이별 샷 
말과의 이별 샷 

 

이제 훈노 캠프를 떠날 시간이다. 보자기에 바리바리 싸서 가지고 온 헌옷들이 조그만 옷가게를 열어도 될 정도로 많다. 식탁위에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단다고 함시롱^^ 작별 오찬으로 몽골인들이 즐겨 먹는다는 쵸이왕이란 요리가 나왔다. 구불구불한 굵은 면에 고기와 채소를 섞은 음식이다. 국자 사촌쯤 되는 숟가락은 돼지고기 국물그릇과 입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자동이다.

오렌지 티의 훈누 캠프 직원들은 첫날처럼 가방들을 옮기고 있다. 농구장 한켠에서는 산 안내를 해 주었던 선진호텔 최사장이 야외무대를 짓고 있다. ‘몽골 미인대회가 이곳에서 열린단다. 한국의 씨름선수도 초빙했단다. 미인과 씨름선수라? 딱 어울리는 조합은 아닐 듯한데. 언발란스가 개성이고 퓨젼이 대세니, 암튼 성공적인 행사가 되길 빈다면서 악수를 나눈다.

타미르는 포마드를 바른 머리에 라이방(?)도 걸치고 멋진 스웨트를 입었다. 우리와 함께 울란바토르에 간다고 들뜬 표정이다. 이렇게 우리는 훈누 캠프를 떠난다.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새끼 양이 엉덩이를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한다. 바이르시떼!

울란바토르 시내

해가 지는 서쪽으로 60km를 달려 울란바토르에 진입한다. 깜박 든 잠을 깨서 창밖을 보니 차들이 엉켜 아우성을 치고 있다. 파란 초원에 몰려 있던 양떼를 볼 때는 자유와 평화를 느꼈는데 차들이 모여 있는 모습에서는 답답함과 지옥이 있을 뿐이다.

버스정류장 코카콜라 간판은 프랑스 JC데코의 사업 아이템이다. 버스는 현대나 대우차이고 승용차는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일본차가 열에 아홉이다. 우리와 같은 우측통행인데 오른쪽 핸들의 일본차를 운전하고 말은 몽골어, 글은 키릴문자를 사용하는 몽골인들이 대단하고 신기하다.

캐시미어 백화점 
복드 칸 궁전박물관
복드 칸 궁전박물관
즐겁고도 괴로운(?) 식사시간
즐겁고도 괴로운(?) 식사시간

단층의 조그만 캐시미어 전문 백화점에 들어간 여성 회원들은 양털, 낙타털을 세고 있는지 깜깜 무소식이다. 남자들은 염소처럼 담배만 뻐끔거리고 있다. 도심의 햇볕은 따갑고 콧구멍속의 털은 매연을 걸러내고 있다. 라마다 호텔에 짐을 풀고 근처 식당으로 향한다. 근처 조그만 식당을 우리가 접수했다. 겉 바싹 속 촉촉 빵에 야크 젖 버터죽을 찍어 먹는다. 양배추 샐러드, 야채 버무리, 김치 등이 나오고 연이어 칠면조 같은 닭고기, 소고기 속 만두, 돼지고기 수육에 다들 감탄하다가 급기야 걱정스런 비명을 터뜨린다. 주인 여자의 풍성한 몸매만큼이나 큰 접시에 수북이 담긴 양에 기겁을 한 것이다. 거기에 족발도 빠질 수가 없지. 백두산을 닮은 볶음밥도 대령이다.

울란의 밤은 깊어가고
울란의 밤은 깊어가고

사장은 싱글벙글이고 예의 주인 여자는 카메라를 들이대고, 맛도 좋으니 안 먹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다 먹을 수도 없고. 진퇴양난, 태진난감이다. 이런 와중에 장선생은 메뉴에도 없는 국물은 안 나오느냐고 한국말을 하고 있다.

호텔에 돌아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씻고 나와 침대에 들어가니 이곳이 라마다호텔 파라다이스점이다. 하긴 서민들에겐 등 따시고 배부르면 최고 아니것어^^ 맞쥬 송사장? 룸메는 벌써 드렁드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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