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바토르를 달리다
글/사진 김태진(전 코렉스스포츠 대표, 닉네임 '뽈락')

황금빛 간단사 앞에서 폼을 잡고
황금빛 간단사 앞에서 폼을 잡고

호텔의 5층 뷔페식당에서 늘보처럼 느릿느릿. 고래처럼 포동포동한 아침을 즐긴다. 9시 반경 1층 로비에서 훈누 투어 신사장을 만난다. 본격적인 울란바토르 투어를 나서기 전에 타미르와 작별인사를 나눈다. 한쪽 어깨가 조금 올라간 모습에 연민이 생기지만 볼매(볼수록 매력 있는)임이 틀림없다.

간단사 가는 길은 골목길 산책으로 시작한다. 들썩대는 보도블럭 길이 끝나고 동네 뒷골목에 접어드니 수도속의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바람 숭숭, 나무 판자벽과 빛바랜 지붕은 울퉁불퉁 흙길과 콜라보를 이룬다. 물그림자가 비치는 웅덩이를 지뢰 피하듯 조심조심이다. 이곳에는 나막신이나 하이힐이 필수품인 듯.

도심 골목길 산책
도심 골목길 산책

20여 분만에 골목길을 빠져 나오니 멀리 간단사가 보이고 금색의 동자승이 손을 흔든다. 간단사는 75년의 공산치하에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찰이다. 원통형 마니차를 돌리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에 가벼운 구리 원통과 묵직한 대리석 원통을 돌리고 또 돌린다. 복이 넝쿨째 들어오는 순간이다.

일반적인 나무 대들보 대신 원피스로 건축된 대형 대리석 주춧돌 위에 고무신 코처럼 치켜 올라간 2중 처마의 법당은 한 마리 봉황처럼 사뿐히 내려앉았다. 컴컴한 법당에 들어서자 엄청난 몸집의 부처님이 내려 보고 있다. 온 몸은 개미처럼 졸아 들고 두 손은 자동으로 랑데뷰하면서 머리가 숙여진다. 어깨를 툭 치고 몸을 밀치는 북새통으로 소원 빌기에 집중이 어렵다. 매일 이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소원을 들어야 하는 부처님께 미안하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 조용히 삼배만 한다.

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고 거창하게 말하고 있지만 서울 유학시절, 향토 장학금이 바닥나서야 어머니 생각을 하고 인생살이 고달플 때야 절에 발걸음하는 뽈락은 불량신도일 뿐이다. 오늘도 사진 촬영 금지를 어기고 부처님 면전에 카메라를 들이대고는 자비 운운하는 뻔뻔한 중생이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사바하!

집채보다 큰 부처님
집채보다 큰 부처님
간단사 뒷골목에서
간단사 뒷골목에서

울란바토르의 중심인 수흐바트르 광장을 잔차로 질주한다. 1912년 청나라에 대항해 독립운동을 이끌고 공산주의 체제를 주도한 공으로 국민적 영웅이 된 수흐바트르의 이름을 딴 광장이다. 한때 칭기즈칸 광장으로 명명하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한다. 공산치하에서 탄압받고 지워진 칭기즈칸이 되살아난 것은 1992년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되고 몽골 민주공화국이 되고부터다. 광장 중심에는 수흐바트르가 말을 타고 혁명의 기치를 올리고 있는 동상이 있다. 광장 한켠의 국회의사당 건물 회랑 중심에 칭기즈칸의 좌상이 있고 주변에는 아들, 손자 등 역대 칸과 심복들이 호위하고 있다.

수하바트르 광장에서
수하바트르 광장에서

광장에는 전통복장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몽골인 그룹이 구름처럼 이동하고 있다. 굵은 목을 졸라맨 차이나식 상의는 쭉 내려와 치마가 되어 발목을 덮었다. 허리에는 가죽 챔피언 벨트를 매고 가죽부츠를 신은 채 배를 내밀고 팔자걸음을 하고 있다. 제복을 입은 젊은 경찰은 흰 드레스의 신부와 함께 칭기즈칸에게 결혼 신고식을 하고 있다. 친구들을 증인으로 칸에게 언약했으니 검은 머리가 파 뿌리 될 때까지, 그 파 뿌리가 다 빠져 민둥산이 될 때까지 끝까지 go. 행복하기를!

광장 주변 건물들은 고딕풍의 사각 형태이지만 엣지에는 장미 넝쿨 모양을 새기고 파스텔 톤의 페인팅으로 멋을 냈다. 큰 덩치와 사각형 얼굴로 무뚝뚝하게 보이지만 속내는 수줍고 순박한 몽골인을 닮은 듯하다.

시베리안 허스키와 금숙, 그리고 뽈락

자이산 언덕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김치찌개 정식(?)을 먹으며 한국인임을 확인한다. 역시 뽈락은 알싸한 국물에 밥을 말아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컨트리 스타일이다. 찌개 냄비를 달구고 있는 가스불과 경쟁이라도 하듯 갑자기 소나기가 쏴아 하고 퍼붓는다.

내일 무사히 귀국하려면 콧구멍에 면봉을 집어넣어야 한단다. 버스까지 출장 온 현지 검사원의 코로나 PCR 검사가 사뭇 진지하다.
자이산 정상에 기대어 있는 복합 문화 건물의 영화관, 게임장, 쇼핑몰, 이벤트홀 등에는 주말 나들이객이 북적이고 있다. 엘베를 타고 9층까지 올라가 유리통로로 나가려는데 소나기가 아서라 막는다. 비옷으로 무장하고 계단을 오르자 천둥까지 으르렁대고 있다. 자이산 전투를 실감나게 즐기고 싶었지만 대장의 철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다. 오늘은 비록 빗물로 후퇴하지만 결코 포기한 것은 아니다. 두고 보자, 자이산!

한국식당 내부
한국식당 내부
자이산 동산
자이산 동산

반가운 태극기가 담벼락에 새겨져 있다. 독립운동가 이태준 선생의 기념공원에 들어서자 하늘은 씻은 듯 파란 얼굴이다. 솔직히 무식 뽈락은 이곳에 오기 전에는 이태준 선생을 전혀 몰랐다. 몽골 마지막 칸의 주치의로 활동하면서 몽골인들의 성병을 고쳐줘 몽골의 슈바이처로 불린단다. 아울러 아내와 함께 한국과 몽골을 맺어준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도산 안창호 선생을 만나 조국의 독립운동에 열중하던 중 38세의 창창한 나이에 죽임을 당했단다. 자이산 공동묘지에 있던 무덤마저 훼손되어 유골을 수습하지 못한 기구한 이야기에 멍해진다.

한켠에 모셔진 가묘지 앞에 모두들 모여 묵례를 올려 보지만 내내 찜찜하다. 넓지는 않지만 비교적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는 공원은 현재 재몽골 한인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삼일절에는 다 같이 모여 선생을 기린다고 한다. 2천여 명의 한인들이 한마음이 되고 한국 관광객의 관심도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

일행이 몽골 역사박물관을 가는 사이에 잔차로 울란바토르 시내를 돌아보기로 한다. 스펠링 발음조차 어려운 러시아 키릴문자의 뜻을 알리가 없다. 최대한 촉수를 세우고 상상력을 발휘하며 매의 눈이 된다. 잠깐 내린 비로 시내 도로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도로 옆에는 배수로가 안 보인다. 차들이 지나가면 흙탕물이 파도를 치고 길 가는 사람들은 까치발에 키가 커진다. 메인 도로가 이 지경인데 샛길은 들어설 엄두가 안 난다. 그래도 여행자는 모든 게 신기하고 궁금증에 재미지다.

울란바토르 랜드마크 앞에서 
울란바토르 랜드마크 앞에서 
울란바토르 예술의 전당 
울란바토르 예술의 전당 
몽골 전통예술 공연장 
몽골 전통예술 공연장 

칭기즈칸과 5형제 그리고 화살로 단결을 보여주는 어머니가 있는 동상(시마노 3형제 얘기와 판박이), 1992년 민주화의 노래를 외친 가수의 기념탑, 철도청 건물과 유명 인사들, 게임에 몰두하면 영혼이 빠져 나간다는 경고성 그라피티, 9월 개학철을 겨냥한 학용품 광고, 안전운전 캠페인, 텅 빈 공공자전거 스테이션, 여기면 꼭 맛 봐야 한다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가게 등을 이렇게 단시간에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것은 잔차 밖에 없다.

반가운 자전거도로 
반가운 자전거도로 
게임은 영혼을 앗아간다?
게임은 영혼을 앗아간다?
칭기즈칸의 5형제와 어머니 상
칭기즈칸의 5형제와 어머니 상
92년 민주화를 노래한 가수 기념상 
92년 민주화를 노래한 가수 기념상 

내친김에 전기버스, 공중화장실, 옥탄가에 따라 가격이 다른 주유소, 쓰레기통 등 모든 것이 문명 세상에 나온 부시맨의 첫경험이다. 모스크바행 열차가 운행되는 울란바토르역에 못 간 것이 아쉽다. 기회가 되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싶다. 여기서 모스크바까지 5일밖에 안 걸린다고 하니. 닥터 지바고가 되어 라라와 함께 설원의 시베리아를 기차로 달리고 싶은데 뽈락! 꿈깨라^^

전기줄을 달고 달리는 전기버스
전기줄을 달고 달리는 전기버스
텅 빈 공공자전거 스테이션 
텅 빈 공공자전거 스테이션 
울란바토르 은행 건물 
울란바토르 은행 건물 
소프트 아이스크림 판매점 
소프트 아이스크림 판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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