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종성(자유 기고가)

올해 초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 평소에 실없이 오지랖 떠는 자가 한 마디도 안 한다면 좀 불편할 것 같다. 나름 재미있을 만한 소재들을 엮었으니 본고에서 대단한 지식은 찾지 말고 재미난 생각으로만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

영토확장과 귀소(歸巢) 본능

근세 들어 본격화된 러시아의 영토확장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모르긴 해도 인구였으리라고 본다. 그만한 영토에 상응하는 러시아인을 배치해야 하는 것이다. 몽골-투르크계가 거주하는 곳에 러시아 군대만 주둔하면 일시 점령지일 뿐 국토는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서 러시아인들이 거주하면서, 각종 러시아의 일상이 존재하고, 러시아의 이야기가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유럽 쪽 러시아인을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켜야 하는데, 유독 향수가 강한 러시아인의 특성상 어려웠다. 미국에서 거주했던 솔제니친의 경우도 그랬지만, 고향에서 쫓겨나는 것을 엄청난 고통으로 여기는 러시아인의 귀소본능 정서 때문에 제정시대를 비롯, 구소련에서도 국외추방을 사형에 버금가는 큰 형벌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소련보다 더 잘 사는 서방으로 추방되어 자유와 복지를 누리면서도 러시아인들은 소련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을 정도다. 체제를 싫어하는 것이지 고향은 사랑했다는 것이다. 물론 러시아를 떠나 서방에 정착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다른 민족에 비하여 러시아인은 유독 향수가 심하다고 한다.

이런 러시아인을 시베리아로 이주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미미한 질서위반에도 25년이나 30년 중형을 매겨서 시베리아로 유형을 보내 수용소에서 생고생을 다 시키고는 5년째쯤 되어서 수용소 주변에 거주하는 것을 조건으로 석방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시베리아로의 이주를 위한 죄수를 늘리다 보니 러시아 인구의 5분의 1은 죄수라는 말이 회자되었고, 어쨌든 그런 식으로 시베리아에 어느 정도 러시아인을 배치시키니 그 다음 세대는 거기가 고향이 되었던 것이다.

중공(당시는 청나라)은 러시아의 공갈협박에 굴복, 연해주를 내주었다 
중공(당시는 청나라)은 러시아의 공갈협박에 굴복, 연해주를 내주었다 

과도한 확장이 부른 내허(內虛)

물리나 전기 공식에서도 보면 서로 간의 당기는 힘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듯, 인구가 희박할수록 사회공동체 의식이 잘 공유되지 않는다. 이런 희박한 인구와 넓은 영토를 러시아인으로만 통치하기엔 곤란하니 이를 보강할 방법이 무얼까?

일단, 러시아인을 해당지역 소수민족들 틈바구니에 거주하도록 배치하는 것이다. 그러면 알게 모르게 러시아인의 감시와 영향 하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소수민족들의 거주지역을 바꾸어 뒤섞어서 큰 집단으로의 단결이 형성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연해주 한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이동 분산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거기에다 소수민족 위주의 자치구역 경계를 최대한 복잡하게 비비꼬아서 현지 소수민족만의 내부적 소통을 저해시키고, 독립 후 국경이 되더라도 불편과 짜증을 유발시켜 국력이 집중되지 못하도록 한다. 이러한 스탈린 체제의 국경은 소련연방 내에서도 비러시아계 민족들에겐 자발적 단결을 저해하는 요소였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같은 나라의 국경을 보면, 독립하고 나서 이웃국가와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헌데, C.I.S로 독립되고 남은 현재의 러시아 연방 내에서도 자발적 단결을 저해하는 요소가 있으니, 이번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보여준 차별적 징집으로 인한 소수민족 소멸공작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소수민족의 소멸은 오히려 전체인구의 희박화만 가속화시킬 것이다.

물리학의 각종 힘의 공식을 보면, 그 세기(당기는 힘)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함을 알 수 있다(거리가 늘어날수록 급격히 줄어듬). 인간 사회의 결속력도 마찬가지 아닐까  
물리학의 각종 힘의 공식을 보면, 그 세기(당기는 힘)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함을 알 수 있다(거리가 늘어날수록 급격히 줄어듬). 인간 사회의 결속력도 마찬가지 아닐까  

21세기 표트르 대제가 되겠다는 교만과 전랑외교 공갈전

푸틴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일으킨 요인은 뭘까?

내 생각엔 올 2022년 초에 카자흐스탄에서 발생한 시위를 겨우 3,000명밖에 안 되는 러시아 공수부대를 보내 제압한 데 따른, 넘쳐나는 자신감이 스스로를 대단한 역사적 위업을 성취할 인물로 착각하게 만든 데서 비롯된 거라고 본다. 당시 보도에는 우라늄 같은 연료값 폭등에 따른 시위라고 하는데, 왜 그런 시위에 평화유지군으로 러시아군을, 그것도 뭣 하러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진압했을까?

원래 구소련이었던 카자흐스탄이었으니 러시아로선 복속 내지 휘하에 두고 싶은 게 숙원인데, 중공은 러시아의 약세를 틈타서 일대일로(一帶一路)의 기치 하에 카자흐스탄을 경제적으로 공략했던 것이다. 이에 카자흐스탄은 내륙국인지라 빠져나올 구멍이 없는 처지라서 그런지, 중공의 자본침투 때문에 위협을 느낀 탓인지 몰라도 중공의 영향력을 몰아내려는 계산에 푸틴을 끌어들였다. 이를 통해 카자흐스탄 스스로 러시아에 달라붙겠다는 계산인 건지, 그게 아니면 푸틴의 계산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전면전도 치르지 않고 겨우 3,000명밖에 안 되는 공수부대만 가지고도 맨날 입으로만 전랑외교 어쩌고 하며 허세부리는 중공의 일대일로를 한방에 좌절시켜버리고 시진핑의 입을 틀어막아버린 것, 이게 바로 중공이 아닌 러시아가 실현한 진정한 전랑외교인지도 모른다. 이는 푸틴의 전형적 수법, , 전면전이 아닌 소규모 특수부대로 짜릿하게 매운 맛만 보여주고는 통치자를 예속시켜서 그냥 속국화 하는 공갈전(恐喝戰)이다. 이를 통하여 카자흐스탄 스스로 러시아와 주종관계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시진핑은 괜히 미국에다 적대의 비수를 들이밀다가 러시아의 협조를 이유로 러시아에 큰소리 한번 못 치고 어르기만 하다가, 결국 카자흐스탄 사태진압을 통해 카자흐스탄에 중공이 투자한 각종 SOC에 대한 이권주장은 어불성설이 되는 식으로 푸틴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아니꼬우면 군사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는데, 미국과 대적하는 마당에 러시아와 싸우기도 난감했을 것이다. 만일 소규모 교전에서 패배하기라도 하면 중공의 위상은 땅에 떨어지기에 전광석화 같은 군사적 결전은 생각도 못하고 맨날 SOC 투자에만 익숙한 종이호랑이임이 드러나 버린 것이다. 만주 이북을 러시아에 빼앗길 때 전쟁이 아닌 공갈이었던 역사적 사실을 잊은 모양이다.

등소평이 굴기하지 말고 도광양회만 하라면서, 100년 이내엔 절대로 미국에 대들지 말라고 한 것도 어쩌면 배후에 있는 러시아의 어부지리로 인해 중공이 다시 위축되는 것을 염려한 것인지도 모른다. 통치자의 전략적 판단은 이래서 국가의 미래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나토국가. 우크라이나는 나토에 가입하지도 않았는데 푸틴은 나토 동진을 핑계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나토국가. 우크라이나는 나토에 가입하지도 않았는데 푸틴은 나토 동진을 핑계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나토 동진은 푸틴의 엄살이요, 반미친러 언론의 푸틴 합리화 사기

어쨌든 내전도 아닌 겨우 시위진압 가지고 카자흐스탄을 그냥 속국화 해버린 효과로 중앙아시아가 전부 친러로 돌아서도록 만든 효과를 창출하여 기분이 한층 고무된 푸틴은 러시아 특수부대의 위력을 강력히 확신하며 내친 김에 구소련 영역의 완전회복 쪽으로 의지를 굳혔으니, 그게 바로 우크라이나 합병이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고유가에 따른 경제적 부로 인해 러시아 국민에게는 구세주로 군림한데다 소규모 전략적 군사행동을 통하여 예측불허’ ‘전광석화의 대명사로 카리스마를 떨친 푸틴이 이젠 거칠 것이 없다며 우크라이나 침공의 구실로 생각해낸 게 EUNATO에 가입하지도 않은 우크라이나에다 갖다 붙인 나토의 동진 차단이라는 핑계다. 게다가 이러한 핑계를 서방진영 내의 반미친러 정서에 찌든 좌파성향 언론이 러시아의 안보를 이유로 푸틴의 엄살을 합리화시켜주었으니, 푸틴도 강력한 특수부대를 잘 이용하고 무력시위로 겁 좀 주면 우크라이나는 쉽게 삼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신은 파멸시키려는 자의 이성부터 앗아간다).

그런데, 지정학적으로 러시아는 심장부요, 러시아 이외는 주변부로 설정하는 게 무슨 대단한 철칙인지 모르나, 러시아가 왜 지구촌의 변방으로 전락했는지 푸틴은 모르는 모양이다. 그 이유를 따져보자.

첫째, 러시아는 국제적으로는 친러독재국가 확보를 위하여 공갈에 찌든, 신의 없는 불량배 두목이라는 것이다. 친러국가들 대부분이 불량독재국가다. 그 이유는 민주화 되면 반러정권이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인데, 영원한 친러를 보장하려면 독재자를 계속 밀어주어야 한다.

둘째, 걸핏하면 가스라인을 차단하듯이 난봉을 쉽게 부리는 국가전략과 부패에 찌든 관료주의 때문에 무슨 거래에서든지 러시아를 완전하게 믿으면 절대로 안 되는 불신의 존재로 인식되어 있다는 것이다.

셋째, 공갈로 영토를 확대하는 과정과 공산주의 시절부터 보여준 입에 밴 거짓말이다. EUNATO에 가입하지도 않았는데 이를 이유로 드는 억지를 보면, 그것도 전쟁이 아니라 특수작전이라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 거짓말과 이번에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역에서 벌인 러시아연방 편입을 위한 주민투표 등 거짓말이 상습적이다. 재미난 것은 미국과 대치하느라 지금까지 마지못해 러시아를 지지하던 중공도 이번 러시아의 점령지역 독립투표엔 반대하는 모양이다. 중공 내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이 두려운 것이다.

넷째,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드러난 러시아의 실상이다. 그렇게 무서워했던 러시아의 특수부대와 첨단무기라는 것들이 전부 과대포장 된 뻥이었음이 노출된 것이다. 영화를 통하여 그렇게 무섭게 보였던 중국무술이 실전격투기에서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러시아 군의 위세는 선량하게 당해주는 자에게나 무서웠던 것이지 막상 맞장을 떠보니 별거 아니더란 거다. , 심성이 더러워서 무서워해줬던 거지, 강해서 무서워해야할 존재는 아니더란 거다. 범죄인으로 구성된 러시아부대도 매한가지다. 자신에게 덤비지 않는 비무장한 선량한 자들에게나 사나왔던 거지, 무장하여 덤비는 자에겐 오히려 비굴하다.

러시아군 점령지역(9월 11일 기준)
러시아군 점령지역(9월 11일 기준)

남이 겁먹을 꺼리를 소진시킨 핵위협

게다가 이번엔 푸틴의 핵 위협이다. 정말 가지가지 한다. 괜히 침략하고 핵을 쓴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푸틴이 핵을 사용하면 인류종말에 이를 정도의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까? 내 생각엔 치열한 국지전과 각종 정변은 많이 일어날지언정 그 정도로 큰 규모의 세계적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 이유를 논하자면,

원래 핵전략은 말싸움이요 공갈전이다. 핵 공격할 가능성을 가지고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옥죄는 것이지 실제 핵으로 공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핵전쟁 이후의 미래는 누가 이기고 지배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핵을 가진 자는 가진 게 많은 자이므로 잃을 게 많아 종말을 초래할 배짱이 없다.

그래서 핵사용 이후에 핵전쟁까지는 유발하지 않고 예측가능 한 미래를 확보하려는 간교한 수단이 소형전술핵이다. 그렇게 보면 전략핵은 공갈용으로 위력적인 것이지 실전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일로 푸틴이 전략핵을 사용하다가는 자신의 안위도 보장받지 못하므로 다른 핵 강국의 전면적 개입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정도 수준의 소형전술핵을 쓸 수밖에 없다. 그것만으로도 우크라이나의 지도부를 파괴하면 전세를 뒤집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는 또 하나의 이유는, 3차 대전이 일어난다면 전후에 3차 대전이 일어난다는 주장이 맞았다고 인정할 세상이 존재할지 의문이지만 3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 3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증명된 세상이 존재할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마치 내일 세상 종말이 오더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처럼, 세상종말이 오지 않거나 자신이 죽은 이후에 온다면 그나마 사과나무라도 건지는 것 아닌가.

결론적으로 푸틴은 카자흐스탄 사태진압 후 구소련 영역 다지기 단계가 필요할 때 괜히 우크라이나로 영역 늘리기로 눈을 돌리다가 지금까지 실체를 몰라서 남이 겁먹어 주었던 러시아의 공포스런 위엄을 스스로 종이호랑이로 만들어 버렸고, 이젠 징집을 피하기 위한 국외탈출에서 보듯이 다지기 단계에 필수적인 인구밀도 조절에 실패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가 K-방산의 굴기에 기여해준 점은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글 김종성(자유 기고가)
글 김종성(자유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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