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종성(자유기고가)

586은 가장 복 많은 세대이면서 아직도 사농공상 정서에 빠진 마지막 세대다. 단군 이래 최초로 굶지 않은 세대이며, 복지에 따른 차세대 부담을 떠맡지 않고 떠넘기는 끝세대다.

 

복을 좀 아껴야 할 세대

586이란 예전에 유행한 386이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으니까 변용시킨 말이다. 예전에는 386이라고 할 때 무슨 민주화 세대 어쩌고 하며 대단한 가치를 부여하던데, 필자가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은 최고의 얌체세대다

첫째, 단군 이래 최초로 안 굶었다. 그럼에도 시대의 고마움을 모르는 까만머리 짐승들이다.

둘째, 과거 이루는 세대들의 "식사 하셨습니까?"란 인사말이 여름이면 "휴가 다녀오셨습니까?"로 바꿀 정도로 누리는 세대의 첫번째 수혜자다. 그 영향 때문인지 586 이후 세대는 보너스 받으면 해외여행부터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셋째, 80년대 중반 이후 경제부흥기에 취업시기를 맞았고, 90년대말 IMF광풍에도 마침 실무자급 연령대였기에 비교적 해고가 적은 등 재수가 아주 좋았다. 그럼에도 권리찾기에만 골몰하여 징징대는 요구는 제일 많이 한다. ‘부모 모시는 마지막 세대이고, 자식에게 버림받을  첫세대라는 식의 각 세대 공통의 유행어도 빠뜨리지 않고 즐겨 쓴다.

386에서 586이 되는 동안 이 세대는 가장 먼저 해외여행의 자유와 풍요를 누렸다  
보너스 받으면 해외여행부터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이런 복 많았던 세대 앞에 불행이 대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렇게 운 좋던 586에게도 누구에게나 닥치는 은퇴시기가 도래했고, 수명이 길어진 탓에 노인 아닌 노인이 되어가는 것 때문에 요즈음은 제2인생이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어릴 적에 어른들이 우스갯소리로 "너 커서 뭐 될래?"하며 사주팔자까지 따져가며 수립했던 그 목표나 결과가 종료되고, 이젠 "당신 늙으면 뭐할 거요?"라는 식으로 아직까지 역사적으로 따져보지 않은 문제가 닥치게 된 것이다. 한세대 전처럼 뒷방늙은이로 눌러앉기엔 생물학적 측면에서 너무 젊고, 일자리를 잡으려니 사회적으론 너무 늙었다는 것 말이다. 자영업자면 몰라도 월급쟁이에겐 너무나 현실적인 문제 아닌가. 게다가 저출산에 따른 인구구조의 고령화가 그 고뇌를 더욱 가중하고 있다.

갈수록 고령화가 심해져 '노년궁핍'이 보다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갈수록 고령화가 심해져 '노년궁핍'이 보다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책상과 소파만 오가는 실내형 생활 좀 벗어나자

요즈음 내 마음 속에 갈등이 한 가지 생겼다. 퇴직하기 직전인지라 제2인생에 관심이 당연히 많은데서 그렇다어떻게 벌어서 성공할 것인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오래 벌며 살 것인가 문제 때문이다.

또래의 은퇴예정자들이 대부분 부동산 중개사나 주택관리사 같은 일을 최상으로 꼽던데, 그 분야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치우쳐 있는데다 필자는 그 분야 공부도 부담되는데다 영업력조차 전무하다고 생각해서, 그냥 생산직이나 시설직 같은 블루칼라를 꿈꾸고 있다

사실 또래들에 비하여 지금까지 그리 잘 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흔히들 말하는 586세대로서 이전 세대에 비하면 그나마 잘 먹고 잘 살지 않았나 싶다. 이젠 나의 윗세대가 젊은 시절 저임금에 허덕이며 산업역군으로 일한 중소기업에 들어가서 단순노무로 일하는 게 뭔가 소명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은퇴 후 집 앞의 공단에서 생산직으로 일할 생각을 하고 있다. 게다가 뭐니 뭐니 해도 예전 같은 극한적인 중노동은 없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인력부족에 허덕이는 작은 업체일수록 정년제도를 적용하지 않을 거란 얄팍한 계산도 깔고 있기는 하다.

책상붙이에서 벗어나면 새 길이 보인다 
책상붙이에서 벗어나면 새 길이 보인다 

재미난 건 작년 주말마다 기능을 배우러 다녔는데필자 또래의 586 중에 극히 일부이기는 하나 필자와 같은 생각과 계산을 가지고 블루칼라로 제2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더란 거다이젠 책상에서 서류나 규정 가지고 깐깐히 따지는 게 싫고어느 정도 몸을 움직여서 일하고 싶더란 거다.

그럼 지금까지 왜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아마도 동원체제를 신분체제로 기만하여 고착시킨 왜곡된 사농공상 정서 때문에 블루칼라적인 삶을 피했다는 건데이제 은퇴하면 허접때기 명예보다는 알딸딸한 벌이가 더 소중하기 때문에 블루칼라로 전향하려 한다는 거다

이런 것 보면우리나라에서 과학부문 노벨상이 안 나온 이유가 짐작하고도 남는다과학 쪽으로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사농공상에 찌든 사회정서로 인해 의학 빼고는 기술이나 과학 부문으로 생을 허비(?)하기 싫은 정서 때문이리라결국 노벨상으로 평가한 우리 DNA의 열등성은 후천적인 것이다

그런데, 막상 퇴직하려니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나름대로 알아본 생산직의 월급과 연금을 합해도 지금의 월급수준을 맞추기가 좀 난감하기 때문이다그래서 기능자격증 따고 나서 기술자격증을 공부하느라 제2인생 출발을 미루고 있는데더 큰 불안은 이륙준비를 할수록 남은 활주로가 짧아지고 있다는 불안감이다. 60 넘으면 받아주지 않는다는데 어쩌지? 그 전에 빨리 진로를 틀어야 하는데?

쉼터보다 일터를 찾아야 하는 시대

요즈음 아파트가 남아돌아 문제다. 하긴 원래 남아돌았다. 그저 매매차익 챙길 곳에 과열된 것을 두고 전체적인 수급문제로 호도하면서 끌어올린 집값이 정책요인이 아닌, 시장요인인 금리상승과 입주폭탄에 따른 전세 하락 때문에 아파트 값이 붕괴되고 있는데, 여기에다 인구감소론이 추가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기 싫다.

헌데, 지금까지 분양하는 아파트마다 내놓는 광고에 천편일률적인 것이 눈에 띄는데, 교통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부대시설이나 기반시설이 지나치게 휴식공간과 웰빙시설 위주란 것이다. 단지 주변에는 공단이 없고, 있어도 표시 안 한다

이 추세에 문제가 있다. 쉼터보다 일터를 생각한다면, 오늘내일 할 정도로 늙은 사람이 아니면 공단으로 나가야 한다. 언제까지 간접적인 것 가지고 깐족거리는 말랑젤리 같은 분홍색 일거리만 찾을 텐가. 언제까지 맛집과 풍광만 찾을 텐가. 그런 패턴이 지겹지도 않은가.

이젠 공단을 마주한 값싼 아파트로 남아도는 586 같은 은퇴세대들이 가야 한다. 그런 식으로 세월이 흐르면 고령화비율이 높아져 아파트 가치도 주변공원이 아니라 주변공단에 의해서 결정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쉴자리보다 일자리가 많은 곳, 그것도 정년부담이 작은 중소기업단지들 말이다.

요즈음은 화력발전소를 비롯 굴뚝공장들은 전부 집진설비를 갖추었기에 굴뚝에서 하얀 수증기만 내뿜을 정도로 공단주변이라고 해서 공기가 나쁜 것도 아니잖은가. 차량배기가스 관리도 잘되어 90년대에 유행하던 산성비도 요즈음은 없다. 중공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만 유일한 대기오염원일 뿐이다. 늙으면 새소리보다 차소리 들리는 곳에 살아야 한다는데, 요즈음은 공단주변에도 새소리 많이 들린다.

  리더십은 지갑에서 나온다. 지갑의 두께가 발언권의 크기다 

인생불행 3가지로 들먹이는 게 소년등과(少年登科), 중년상처(中年喪妻), 말년궁핍(末年窮乏)이다. 노년에 궁핍하면 안 된다말로는 제2인생이라고 하지만노년의 가난은 활동범위를 위축시키고그에 따른 사고의 위축으로 인해 했던 말 또 하고 눈치 없이 처신하여 남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며 사는 노인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젊어서는 철밥통보다 뭔가 진취적인 게 멋지지만 늙으면 비록 째째해 보이더라도 진짜 철밥통을 찾아야 한다.

사실 일상을 영위함에 있어 10만원이 궁해서 적금을 깨지 못하고, 100만원이 궁해서 집을 팔지 못하듯, 쌈짓돈이라도 조금 넉넉히 갖고 손자들에게 멋진 할아버지가 되고 싶은 작은 소망이 더 근본적인 이유다.

게다가 늙어서 발언권은 지갑에서 나온다. 얻어먹으며 남 가르치는 소리 못한다

자기보다 젊은 사람에게 무슨 가르치는 소리 할려고 해도 식사 한 끼라도 사주면서 떠들어야지, 식사 얻어먹으면서 인생 가르치는 소리를 할 수 없는 식으로, 노년의 발언권은 지갑에서 나온다. 그래서 무료급식 먹으며 남 가르치는 소리 떠드는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또래들 중에서도 시끄러운 친구는 대부분 단체 식사를 한 턱 내는 친구일 때가 많으며, 이는 돈으로 자신의 합리성이 남보다 더 나음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그럼, 돈 안 쓰고 자기가 할 소리를 떠드는 방법은 뭘까? 입으로 떠들 게 아니라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공원에서 장기 두거나 막걸리 판 벌이느니 도서관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 모습이 돈이 없어도 보기에 좋고 용돈벌레들을 피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팔로워십(Followership)에 미래가 달렸다

리더십에 대해서만 교육받고 자극받은 세대는 교만하다.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언제나 리더십 교육만 받은 한국인, 그렇지만 따라주는 사람의 자세는 전혀 안 배웠다. 그러다 나이가 드니까 그 리더십이란 게 지갑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고는 입이 다물어진다. 그 때문에 술도 절제한다. 좀 마시면 말이 많아져서 과거가 노출되다가 더 마시면 개판 쳐서 전생까지 노출되고, 건강문제를 넘어 안전문제까지 다가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지갑 두께 탓이 제일 클 게다.

학생시절, 외국인에게 별 수준도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영어를 못하는 세대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 먹으면서 점점 영어를 쓰지 않게 된다. 젊었을 적에는 아무 책임도 없는 이야기야 나누겠지만, 법적 책임이 따르는 업무적인 부분에서 기억이 끊어져가는 영어를 잘못 구사하다간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앞으로 시험 치를 일도 없는 영어공부부터 때려치우고, 취업광고를 보더라도 세계로 뻗어가는좋은 회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런 좋은 직장은 어차피 정년제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다 고려해도 제2인생을 위한 직장에 들어가면 자기보다 어린 사람,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지시에 순응해야 한다. 아예 돈이 많아서 그런 직장을 다닐 필요가 없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엔 여기에 반항하면 답이 없다

그래서 팔로워십(Followership)이란 용어가 자꾸 뇌리에 떠오른다. 이게 리더십에 경도된 586세대에게 이제부터 필요한 덕목 아닐까 싶다. 실컷 엉뚱한 짓하고도 별일 없이 누리는 삶을 보장받았던 세월도 저물어간다이젠 개성 죽이고 말 좀 들어!   

 

필자 김종성(자유기고가)
필자 김종성(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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