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갑산이 어디뇨, 내가 오고 내 못가네

삼수읍에서 남서쪽으로 16km 떨어져 있는 천평 지역. 해발 1400~1500m의 고위평탄면으로 1460m 고지에 50가구 정도의 마을이 눈에 오롯이 갇혀 있다. 3월말 사진인데 비포장에 험준한 길은 언제 뚫릴지 기약이 없다. 이런 봉쇄상태로 긴긴 겨울을 나야 할텐데 주변이 헐벗어 식량과 땔감이 충분한지 안쓰럽다. 멀리 백두산과 남포태산이 보인다   

삼수와 갑산 위치도. 북쪽은 압록강, 남쪽은 개마고원을 끼고 있으며 삼수군 서쪽은 김정숙군으로 떨어져 나갔다. 백두산에서 삼수읍까지는 약 80km로 멀지 않은 거리다   

남북을 통틀어 ‘삼수갑산’은 최고의 오지를 뜻하는 대명사다. 때로는 ‘산수갑산’으로 잘못 쓰기도 하는데 삼수갑산이 맞는 말이다. 정확히는 함경남도(현재는 양강도) 북부의 삼수군과 갑산군 두 곳을 한데 아우르는 명칭이다.

개마고원과 압록강 사이라는 입지만 봐도 정말 아득한 오지 느낌을 준다. 한반도에서 가장 춥고 비도 적게 오는, 완전한 대륙성기후이며 산지가 90%를 넘고 인구는 희박한 극한의 오지다(양강도 전체의 산지 비율은 91%). 조선시대 유배지는 남해의 외딴 섬과 북쪽 변경지대가 최악이었는데 삼수갑산은 그중에서도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오기 힘든, 현실의 감옥이었다.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그 일만은 못 하겠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근래에 회자되던 ‘아오지탄광’과 같은 맥락이다. 삼수갑산은 여전히 최악의 오지로 고립되어 있다.

그나마 중평천 주변에 작은 평지가 있어 터 잡은 삼수읍. 해발 880m이며 주변 산은 대부분 경작지로 개간되고 헐벗었고 도로는 흙길 그대로다 

평안북도 영변 출신의 김소월도 삼수갑산을 읊은 적이 있다. 얼마나 놀랐으면 구마다 감탄사가 붙고, 끝내는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하고 절망한다.

삼수갑산 내 왜 왔노 / 삽수갑산이 어디뇨

오고 나니 기험(崎險)타 아하 / 물도 많고 산 첩첩이라 아하하

내 고향을 도로 가자 / 내 고향을 내 못가네

삼수갑산 멀더라 아하 / 촉도지난(蜀道之難)이 예로구나 아하하

 

삼수갑산이 어디뇨 / 내가 오고 내 못가네

불귀(不歸)로다 내 고향 아하 / 새가 되면 떠가리라 아하하

님 계신 곳 내 고향을 / 내 못가네 내 못가네

오다가다 야속타 아하 /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

(중략)

소월이 촉도지난(지금의 중국 사천지방인 촉나라는 내륙분지로 접근로가 매우 험하다)에 비유한 그대로, 삼수갑산 역시 일단 접근부터 힘들다. 압록강을 끼고 있으나 가항수로를 거의 벗어난 최상류에 있어서 하구에서 가자면 700km 이상 근 2천리 물길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 그렇다면 육로는? 개마고원을 남쪽으로 끼고 있어 해발 2000m 전후의 백두대간을 넘고 개마고원을 통과해야 한다. 삼수와 갑산 읍내에서 멀지 않은 혜산(양강도 도청소재지)에는 철도와 10번 국도가 통과해 산으로 막힌 삼수와 갑산 사람들이 외부로 나가려면 혜산을 경유하는 수밖에 없다. 삼수와 갑산 일대의 도로는 거의 비포장이고 혜산 방면 외에는 해발 1500m 전후의 험준한 고개가 가로막고 있어 외지와 연결되는 도로교통은 사실상 최소한의 수준만 유지되고 있다.

2007년 완공된 삼수댐으로 길이 35km, 폭 1.5km 내외의 거대한 호수가 생겨났다. 댐 덕분에 용수는 획득했으나 혜산과 갑산읍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물에 잠겨 갑산은 한층 고립되었다

절반으로 줄어든 삼수군

삼수(三水)는 압록강에 흘러드는 허천강과 장진강 세 물줄기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원래 삼수군의 면적은 1795㎢로 제주도(1810㎢) 크기였으나 1952년 서쪽 절반이 분리되어 신파군(新坡郡)이 되었다가 1981년 김일성의 첫부인 이름을 따서 김정숙군으로 개칭되었다. 현재의 삼수군 면적은 대구광역시와 비슷한 874㎢이며 인구는 2 정도로 추정된다. 1월 평균기온이-18.8℃로 한반도에서 가장 낮은 편이다. 9월말에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리기 시작해 4월 말까지 계속된다니 겨울이 무려 8개월이나 된다. 가장 더운 8월의 평균기온도 18.9℃로 서늘하고, 연강수량은 628㎜로 남부지방의 절반 정도여서 비가 매우 적다. 당연히 농사에 어려움이 많아 논은 1.8%에 불과하고 대부분 밭을 일궈 귀리, 감자, 보리, 조, 콩, 피. 메밀 등을 경작한다. 중심마을인 삼수읍이 해발 880m나 되고 외곽 마을들은 해발 1500m 고지까지 개간한 곳이 많다.

삼수읍과 마찬가지로 헐벗은 산야에 둘러싸여 있는 갑산읍. 해발 800m이며, 갑산은 그나마 허천강 주변에 평지가 있는 편이다. 허천강 상류쪽(사진 위쪽)은 김형권군(광복 전 풍산군의 일부였다)

얼마나 땅이 없고 식량이 다급하면 민가 주변 산은 온통 헐벗었다. 갑산읍 북쪽, 허천강변의 팔봉덕(1072m)은 산줄기 전체가 밭으로 개간되어 있다. 삼수갑산 주민들의 고단한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산이 가장 많고 높은 곳, 갑산

갑산(甲山)은 이름 그대로 ‘산의 갑’이라는 뜻이니, 높고 험한 산이 가장 많다는 의미다. 삼수군과 인접해 있으며 산악지대 분위기는 삼수와 유사하다. 면적 1398㎢로 서울(605㎢)의 2배가 넘고 현재 인구는 3만 내외로 추정된다. 1월 평균기온 -19.1℃, 8월 평균기온 21.8℃로 연교차가 40℃에 달하는 전형적인 대륙성기후다. 연강수량은 삼수보다 적은 456.9㎜에 불과하니 그만큼 농경에 부적합해서 사람이 살기 어렵다는 뜻이다. 중심지인 갑산읍은 압록강 지류인 허천강변 해발 800m 지점에 있다. 조선시대에는 북쪽 국경 방어기지여서 1439년에 완공된 둘레 1km의 읍성이 있었으나 지금은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한여름에도 서늘하니 통일 후 삼수갑산은 피서 여행지로 각광받고, 고지대까지 뻗어있는 수많은 소로들은 최고의 산악라이딩 코스가 될 것이다.    

갑산은 근래 큰 변화가 있었는데, 2007년 허천강 하구에 삼수댐(댐은 삼수군에 속함)이 생겨 13억톤 규모의 거대한 삼수호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국내최대의 소양강댐 저수량이 29억톤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크기다. 삼수호는 길이 35km, 폭 1.5km 정도인데 혜산에서 삼수읍으로 이어지는 허천강변 교통로가 물에 잠기면서 삼수읍~혜산 간은 더욱 멀어지고 말았다. 가파른 경사면에 난 호반길은 위험하기도 해서 2016년에는 트럭이 추락해 1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주민들은 배편을 이용해 삼수댐을 경유, 혜산으로 가기도 하는데 작은 쪽배에 많은 사람이 타고 다니면서 2020년 7월에는 배가 전복되어 15명이 사망하기도 했으니 이래저래 더 위험한 오지가 되고 말았다.

갑산 동쪽 끝은 백두대간이다. 활기봉(2003m)과 동점령(1857m) 아래 유포리와 동점리 일대는 해발 1600m까지 개간이 되어 있다. 산록은 경사도가 30%를 넘어 인력으로만 농경이 가능하다. 이렇게 큰 산에 숲이 사라지면 계곡에 물이 없어지고, 비가 오면 쉽게 홍수가 나서 농경지를 쓸어버리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구조이니 참으로 딱하다     

삼수호의 물을 남쪽으로 돌려 동해안 방면 급사면을 활용해 발전하는 유역변경식 단천발전소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험준한 개마고원을 관통하는 장장 160km에 달하는 인공수로를 뚫어야 해서 인부들의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예산 부족으로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삼수갑산에 갔다가 놀란 소월의 탄식은 9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다가다 야속타 아하 /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

글 김병훈 발행인

저작권자 © 자전거생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