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종성(자유기고가)

오포(午砲) 사이렌과 함께 잊혀져 가는 일상들

내복 광고가 사라진 것은, 사람들이 내복을 잘 입지 않기 때문이다. 왜일까 
내복 광고가 사라진 것은, 사람들이 내복을 잘 입지 않기 때문이다. 왜일까 

항상 걸치고 다니는 신변용품 중에 알게 모르게 사라져가는 것이 있다.

다른 편리함에 가려져 목적을 상실한 것도 있지만, 오해로 인한 고집 때문에 필수품임에도 불구하고 외면당하는 시류에 말린 것도 있다. 건강하고 안전한 겨울과 합리성의 증진을 위하여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내복광고가 사라지다

요즈음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내복을 안 입는다. 특히 아랫도리 내복은 더 심하다. 왜 안 입는지는 말 안 해도 다들 안다. 정력에 좋아서라거나, 정력이 강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과시욕 때문이다. 그렇게 다리를 차게 하며 그냥 살면 되는데, 문제는 책상 아래에다 몰래 전기난로는 켜둔다는 거다. 그것도 자기 돈으로 전기요금 내는 가정이 아니라 직장 위주로 말이다.

그래서 다리가 춥냐고 물어보면, 아니란다. 그냥 날씨가 춥단다. 영하 10도도 안 되는데 뭐가 춥다는 건지? 가만히 보면 두터운 외투 때문에 상체가 추운 것 같지 않은데도 "다리가 춥다"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수치로 여기는 것 같다. 5천 원짜리 지하철표 타이즈 하나면 해결될 문제를 50만 원짜리 유명상표 방한외투 걸치고도 책상 밑에 전기난로 켜는 건 모순 아닌가.

사실 체질에 따라 상체가 추위에 약한 사람이 있고 하체가 추위에 약한 사람도 있는데, 다들 갑갑해서 못 입겠단다. 왜 이렇게 다리를 차게 해야 한다’, ‘다리가 춥지 않다는 강박에 걸린 것처럼 생활할까? 아마도 정력이 약하면 사람이 아니라는 식의 정력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40년 전쯤에 들었으니까, 필자보다 연배가 더 위인 분들은 그보다 더 이전에 들었을 수도 있으리라. 그것은 고환이 체온보다 2도 낮으면 정자생성이 잘 된다는 것인데, 그중 고환을 직접 표현하기 뭣하여 하체라고 했다가 그 하체 개념에 다리가 포함되어버려 엉뚱하게도 고환이 아닌 다리를 차게 한다고 집착하며, ‘2도 낮다'는 소리가 차가울수록 좋은 것처럼 과장되더니 나중에는 저체온에 가까울 정도로 혹사하는데 집착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언제부턴가 멀쩡히 잘 입던 내복바지를 벗어던져야 정자생성이 잘되는 정력남이라는 인식이 박힌 것 같다. 결국 갑갑해서 못 입는다는 허세 때문에 아예 안 입는 게 당연한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이는 여성의 경우도 별다르지 않다. 한때 하의실종이 유행하더니 겨울에도 다리를 차게 드러내놓고 다니는 사람 많다. 물론 다리가 추위를 덜 타는 사람도 있고, 내복 안 입다가 입으면 다리가 갑갑한 것은 맞다. 하지만 겨울철 차가운 다리로는 갑자기 힘을 써야 할 때나 위험에 급히 반응해야 할 때 상당히 굼뜨게 되며, 다리의 탄력이 줄어들어 허리와 무릎에 해롭다.

더욱 궁극적인 문제는 나이 들어 정자만 많이 만들면 뭐하냐는 거다. 힘이 없는데! 나이 들어 씨 없는 수박 되는 거 걱정할까, 힘없는 거시기 되는 거 걱정하는지 물어볼 일이다. 이런데도 진정 다리를 차게 하고 싶다면 책상 밑에 둔 전열기 치우는 진정성을 보여주기 바란다(안 그래도 책상 아래 전열기는 화재위험도 있지만 하지정맥류 등 다리건강에도 나쁘다).

난 부실해서 아랫도리 내복을 입는다. 그 때문에 옷을 갈아입을 때 정력이 부실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일까지 당해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 내복 때문에 책상 밑이 춥다고 느끼지 않아 전열기를 사용한 적이 없다. 그때 나를 힐난하던 그 사람들 지금도 정력 좋은지는 모르겠다.

난 살아오면서 아직까지 조끼를 안 입는다. 그렇지만 조끼 입는 사람보고 쪼잔한 보신주의자라고 비난하진 않는다. 상체에 추위 타는 사람도 있을 것 아닌가.

어쨌든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는 메리야스 광고송이 유행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롱패딩이 유행이다. 그런데 내복은 입지 않고 장갑도 끼지 않아 롱패딩을 입고 추위에 웅크리는 모습이 흔하다  
롱패딩이 유행이다. 그런데 내복은 입지 않고 장갑도 끼지 않아 롱패딩을 입고 추위에 웅크리는 모습이 흔하다  

롱패딩 입고 번데기처럼 웅크린 사람들

이번 겨울 들어 두어 번의 강추위가 닥치면서 방한외투를 걸친 사람들이 길거리를 가득 채웠는데, 몇 년 전부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롱패딩이다.

패딩(Padding)이란 옷의 겉감과 안감 사이를 채운 충전재(원래는 솜, 요즈음은 거위털). 사실 패딩이 몸을 따뜻하게 하기 보단, 패딩이 겉감과 안감 사이에 공기층을 유지하기 때문에 체온을 덜 잃게 하는 기능을 한다. 마치 지붕과 천장 사이에 열전도성이 가장 낮은 공기 때문에 열이 차단되어 겨울에는 실내 열이 천장에서 지붕으로 덜 빠져나가고 여름에는 지붕의 열이 천장을 통해 실내로 미치지 않는 한옥의 원리와 같다(그래서 말인데, 아파트의 패딩은 발코니이므로 발코니 확장은 비과학적인 유행이라고 본다). 어쨌든 패딩은 유리창에 붙이는 뽁뽁이 비닐이나, 예전에 유행했던 에어메리 내의처럼 공기층 때문에 체온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원리이며, 겉감에다 비닐 같은 밀폐용 코팅을 입힐 경우 더욱 보온효과가 좋다. 산소차단과 땀 분비까지 고려하면 일반 패딩점퍼가 가장 보온효과가 좋은 옷이다.

패딩의류는 2차 대전 때 소련군이 누비옷 군복 형태로 사용한 이후 공산진영에서 방한복장으로 많이 쓰였다. 모피보다 훨씬 싸고 취급이 편했기 때문이다. 하긴 우리나라 군복도 예전에 깔깔이라는 누비내의 형태의 패딩을 입었었다.

패딩의류는 2차 대전 때 소련군이 누비옷 군복 형태로 사용한 이후 공산진영에서 방한복장으로 많이 쓰였다
패딩의류는 2차 대전 때 소련군이 누비옷 군복 형태로 사용한 이후 공산진영에서 방한복장으로 많이 쓰였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롱패딩을 보면, 이상하게도 장갑과 모자를 착용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장갑 없이 길고 두터운 외투에 손을 넣고 다니는 모습이 마치 번데기처럼 보이는 게 나만의 착각일까? 가만히 보면 보행 중에도 스마트폰을 조작하느라 방한장갑을 낄 수 없는 것 같고, 후드가 부착되어 있으니 모자를 따로 쓰지 않는 것 같은데, 하의를 보면 대부분 내복을 입지 않은 모습이다. 그 때문에 그 좋은 방한외투를 입고도 추워서 발을 동동거리며 걷는다.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후드보다는 모자를 쓰고, 장갑을 착용하고, 내복 하의를 입는다면 보장된 방한으로 활개 치며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외투만 두껍게 입은 채 웅크리며 보온에 집착하며 걷는 번데기 같은 모습을 보면, 저출산에 따른 젊은층 감소 때문에 우리 젊은이들이 활기차기를 바라는 필자의 시선엔 상당히 아쉬운 느낌이 든다.

키가 커진 우리 젊은이들이 외국 젊은이보다 강해야 좋은 것 아닌가. 보온을 위한 차림으로 웅크린 모습보다 보온된 차림으로 활개 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스마트폰이 몰아낸 손목시계

스마트폰이 몰아낸 것 중에 손목시계가 대표적인 것 같다. 스마트워치가 등장하기 직전까지 대부분 손목시계 대신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시간을 파악했다. 필자 아들들도 그렇게 하길래, 손목시계를 착용하도록 권유해봤다. 애들이 말하길, 손목시계 사용 결과가 아주 긍정적이었다. 스마트폰보다 손목시계를 보는 게 더 용이하다 보니 훨씬 시간을 자주 보는데다, 남은 시간에 대한 감각이 저절로 생겨서 생활이 조금은 더 계획적으로 변한다고 했다. , ‘'아차!’, ‘벌써!’ 하는 일보다 지금부터라는 식으로 생활패턴이 훨씬 침착한 쪽으로 바뀌더란 거다. 그리고 일상 중에 닥치는 일보다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 생긴다고도 했다.

남자용 손목시계는 1차 대전 때 등장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손목시계는 팔찌에다 시계기능 부분을 부착한 것인데, 팔찌가 여성용이다 보니 손목시계는 애당초 여성용이었고, 남성용 시계는 주로 조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회중시계였다. 그래서 옛날 신사용 양복의 조끼에 보면 회중시계 줄이 노출되어 늘어진 게 보인다.

그런데, 부대 간의 동시행동 시간을 맞추어야 하는 전쟁터에서는 외투를 파헤쳐 주머니에서 꺼내 봐야 하는 회중시계가 보통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손목시계가 절실히 필요했는데, 문제는 차마 여성용 팔찌 같은 손목시계를 남자가 착용한다는 거부감 때문에 곤란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해소할 방법으로 팔찌 같은 여성용 손목시계와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시계 몸체를 여성용보다 훨씬 크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 후부터 남성용 손목시계가 보편화되었다.

남성용은 회중시계가 기본이었으나 1차 대전을 거치면서 편리한 손목시계로 바뀌었다  
남성용은 회중시계가 기본이었으나 1차 대전을 거치면서 편리한 손목시계로 바뀌었다  

오포(午砲), 분유광고 그리고 지팡이

시계 때문에 생각난 건데, 어린 시절 학교에서 가계조사 하는 항목에 아버지 손목시계 보유여부를 따진 적이 있었으니 당시엔 손목시계가 고가품에 속했다. 시계가 흔치 않은 때여서 정오가 되면 관공서에서 사이렌을 울렸는데, 이를 오포(午砲)라고 했다.

오포는 개화기 인천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조선 말기에도 정오를 알리는 의미로 정오에 헛대포질을 했다지만 출전이 분명치 않고, 본격적인 것은 개화기 인천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위해 인천 앞바다에 묘박한 일본군함에서 대포를 쏘아 그 폭음으로 정오시각을 알려주었고, 이를 오포(午砲)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오포를 쏜 일본 군함이 마쓰시마(松島)호여서, 그 이름이 송도(松島)라는 지명의 원천이라고 한다(우리나라엔 송도라는 지명이 많은데, 전부 이와 관련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당시 오포소리를 듣고 성당의 종을 쳤다고 할 정도로 오포소리에 연계된 일상의 표준이 굉장히 많았다. 그 오포를 사이렌으로 대체하면서, 어린 시절 아이들이 울 때, ‘오포소리 분다고 했던 어른들의 얘기가 기억난다.

이제는 볼 수 없어진 분유 광고
이제는 볼 수 없어진 분유 광고

그건 그렇고 요즈음은 왜 분유광고가 없는지 섭섭하다. 다들 그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으리라고 본다. 그 시절 분유광고 모델 아기들의 지금 나이는 어떻게 될까? 내복광고 모델들보다 나이가 더 많을까? 여러 가지로 궁금해진다.

낙상 방지를 위해 노인은 지팡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청려장이 예스럽다면 호신을 겸할 수 있는 등산용 스틱도 좋다 

최근 노인연령 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높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생체나이가 젊어졌다는 뜻이리라. 그래서인지 요즈음 노인들 손에 예전의 청려장 같은 지팡이가 거의 없다. 그게 좋은 것일까? 생각해보면 나이 들어 가장 무서운 게 낙상이다. 그 낙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전천후 도구로 가장 용이한 게 지팡이다. 특히, 깔끔하고 가벼운 등산용 지팡이의 경우 청려장과 비교하면 노인 이미지로 비치는 정도가 덜하고, 때로는 유기견 같은 맹수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호신도구로도 유용하며 왕족들이 쓰는 홀()과도 비슷한 품위도 있다고 본다. 난 늙으면 모자 쓰고 등산지팡이를 들고 다닐 생각이다.

필자 김종성(자유기고가)
필자 김종성(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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