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용 넘치는 산세, 탁월한 조망

통신탑 아래서 바라본 남부 주능선. 오른쪽 아래 폐건물은 6.25 당시 포로수용소 외곽에 있던 통신대 흔적. 전망대 쉼터 뒤로 여시바위 전망대로 가는 계단길이 이어진다   

충남 계룡산(845m)과 이름이 같은 계룡산(570m)은 거제도에서 가장 높지는 않으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산이다. 거제도의 진산(鎭山)은 예나 지금이나 계룡산일 수밖에 없다. 현재는 거제시가지 남쪽에 우뚝 솟아 시내를 옹위하고, 조선시대에는 거제현 관아가 있던 거제면 동상리 뒤에 웅장한 장벽처럼 드리우고 있다.

충남 계룡산과 마찬가지로 닭벼슬을 쓴 용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계룡(鷄龍)인데, 주능선 위에 길게 돌출한 암릉이 그런 느낌을 준다. 계룡산 줄기는 거제도에서 가장 넓은 들판(거제면)과 인구밀집 지대인 시내를 양분하고, 세계 굴지의 조선소가 북단에 있으니 인문지리적으로도 중심 포인트가 된다.

서쪽 옥산리에서 바라본 계룡산. 왼쪽이 정상(570m), 가운데가 통신탑 봉우리(559m)다. 바위가 돌출한 암릉이 닭벼슬을 쓴 용을 닮기는 했다     

계룡산 동쪽에는 6.25 당시 포로수용소가 있어서 일찍부터 주능선까지 작전도로가 뚫려 있었고, 산을 일주하는 임도까지 개설되어 등산 겸 산악라이딩 코스로 알려져 있다.

이제 저 거대한 계룡의 목덜미까지 올랐다가 산을 한 바퀴 돌아올 것이다. 주능선 직전의 임도는 산 아래에서도 훤히 보일 정도로 트여 있어 시각적 고도감이 대단해서 마치 천상으로 통하는 길 같다.

출발지는 거제면소재지 외곽의 거제국민체육센터. 요즘은 면소재지에도 주차장과 화장실을 잘 갖춘 체육센터가 많아 거점으로 삼기 좋다. 면소재지이지만 1664년부터 조선말까지 거제도의 행정 중심지답게 마을이 상당히 커서 웬만한 읍에 버금간다.

남쪽으로 마을을 벗어나 산촌리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이제부터는 계룡산 남봉이라고 할 수 있는 선자산(519m) 자락이다. 길은 시멘트 포장과 오프로드가 반복되지만 노면이 좋고 길가에는 가족묘가 즐비하다. 초반은 상당히 가파르다가 이윽고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해발 275m 지점에서 삼거리가 나온다.

거제도에서 가장 넓은 오수리 들판을 가로질러 선자산 방면으로 가는 길. 남파랑길 이정표를 따라가도 된다. 왼쪽 맨뒤의 산이 선자산(519m)  

선자산 임도삼거리. 해발 275m 지점으로 이제부터 산허리를 가로질러 계룡산 방면으로 향한다 

계룡산 정상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이 정상, 가운데가 오늘 목표인 통신탑 봉우리다. 통신탑으로 오르는 임도가 선명하다 

주능선 안부인 고자산치(370m). 차단기가 없어 자동차도 올라올 수 있다 

선자산 임도삼거리에서 계룡산 방면으로는 산허리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등고선 길이고 조망도 간간이 트여 여유롭다. 2.8km 가면 거제면소재지에서 곧장 올라오는 임도와 만나 주능선 안부인 고자산치(370m)로 향하게 된다.

거제도 임도는 아주 개방적이어서 차단기가 막힌 곳이 없는 것은 물론 차단기 자체가 거의 없다. 때문에 자동차 출입도 자유로워 고지대에 차를 두고 등산이나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고자산치에도 이미 승용차 여러 대가 서 있다. 고자산치 즈음부터 주능선까지는 키 작은 관목과 억새지대여서 조망이 시원하게 트이고 급사면이 주는 고도감까지 극대화된다.

주능선 마지막 구간은 그야말로 허공에 뜬 것만 같은 하늘 길이다. 최후의 100m는 경사도 25% 정도로 업힐의 클라이막스다.

통신탑 직전의 마지막 업힐은 경사도 25% 전후의 급경사다. 오른쪽 건물은 모노레일 이용자를 위한 계룡산전망대 쉼터  

뼈대만 남은 통신대 건물. 오른쪽 암봉이 통신탑 봉우리다

주능선 안부는 해발 510m로 계룡산 제2봉인 통신탑(559m) 턱밑이다. 벽체만 남은 옛 건물들은 6.25 당시 포로수용소 외곽에 있던 통신대 시설이다. 인근에는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까지 운행하는 관광모노레일 상부승강장이 있으나 22년 10월 하부승강장 화재로 인해 무기한 휴업 중이다. 모노레일이 운행 중이라면 일대는 관광객으로 넘쳐날 텐데 아무도 없는 적막만이 감돈다.

자전거를 두고 통신탑 봉우리를 오른다. 100m 밖에 되지 않으나 거칠고 급경사의 바윗길에다 클릿슈즈를 신어 걷기가 만만치 않다. 정상에 서면 통신탑 때문에 조망이 조금 가리기는 하지만 거제도 전역이 다 보이는 듯 장쾌한 풍경이 펼쳐진다. 서쪽으로는 출발지인 거제면 일대와 들판이 광활하고 그 너머로는 한려수도 다도해와 통영시가지가 희미하다. 북쪽으로는 계룡산 정상(570m)이 솟아 있고 거대한 삼성조선소도 일부 보인다. 동쪽 발밑은 거제시가지가 협곡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다. 남쪽으로는 여시바위를 거쳐 선자산까지 능선이 물결치고, 그 옆으로는 방금 지나온 임도가 꿈결처럼 흐른다.

서쪽으로는 출발지인 거제면 일대가 훤히 보인다. 그 너머는 한려수도의 다도해가 첩첩하다 

북쪽으로는 계룡산 정상이 700m 거리를 두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삼성조선소 일부가 보인다
남쪽으로는 여시바위를 거쳐 선자산까지 주능선이 흘러내리고, 하얀 임도는 꿈결처럼 일렁인다  

동쪽은 거제시내 방면이다. 오른쪽 건물은 모노레일 상부승강장. 멀리 좌우로 뾰족한 두 봉우리는 국사봉(465m, 왼쪽)과 옥녀봉(556m)

이제 ‘천상에서 지상으로의’ 에픽 다운힐이다. 고자산치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쾌속으로 내려가면 어느새 시가지가 눈높이로 다가선다. 해발 110m까지 내려선 임도는 다시 계룡산 동쪽 기슭을 타고 북상하는데 시내가 가까워서인지 산책객이 더러 있다. 간간이 숲 저편으로 거제 시가지와 삼성조선소의 거선들이 모습을 드러내주고, 계룡산 북사면의 임도전망대에서는 삼성조선소가 한눈에 들어온다. 세계제일 한국 조선업 3강 중 하나를 내려다보니 감개무량이다. 지금과 같은 거제도의 천지개벽은 삼성과 대우 2강을 품고 있는 조선업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임도전망대에서 길은 두 갈레로 나뉜다. 왼쪽 업힐은 김형령재(250m)를 거쳐 거제뷰골프장을 통과하고, 오른쪽은 산을 돌아 골프장을 우회한다. 하지만 우측길은 도중에 임도가 잠시 단절되어 길을 놓칠 우려가 있어 왼쪽 업힐을 택한다. 골프장이 생기기 전에는 계룡산 서편 기슭을 타고 거제면 방면으로 곧장 갈 수 있었지만 골프장으로 인해 길이 막혀 도로로 우회하는 수밖에 없다. 꼭 골프장이라서가 아니라 있던 길을 막는 것은 곤란하다. 골프장 직전의 고갯마루에는 작은 쉼터가 있고 주변은 편백나무가 빽빽한 산림욕장이다.

계룡산 북단에 있는 임도전망대. 거제시가지와 삼성조선소, 만 건너편의 앵산(513m)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거제뷰골프장 직전 김형령재 일대는 편백숲이 울창하다

들판 중에 우뚝한 옥산성. 정상의 정자가 오똑하다성벽은 잘 보존된 편이다. 평균 높이는 4.7m이며 둘레는 778.5m

골프장으로 내려서서는 길을 잘 찾아야하는데, 그대로 좁은 도로를 따라가지 말고 왼쪽 건물(중국집과 GS편의점 있음) 옆으로 턱을 넘어 가서 주도로로 나가야 한다. 도로를 따라 다운힐하다가 화원마을에서 마을길로 들어가 다시 계룡산 자락으로 붙는다. 출발지로 가기 전 거제면소재지 뒤쪽에 우뚝한 옥산성(玉山城)이 목표다. 마을 뒷산인 수정봉(143m) 정상부를 감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으로 평지에서 우뚝 솟아 있어 중세 일본성을 떠올리게 하며, 성 바로 앞까지 진입할 수 있다. 옥산성은 고종 10년(1873)에 축조한 것으로 되어있지만 대개의 산성이 그렇듯, 발굴 결과 7세기 유물이 출토되어 삼국시대에 처음 쌓은 것이 확인되었다. 현존 성벽은 높이 4.7m, 둘레 778.5m로 내부면적은 3,200평 정도여서 규모는 크지 않다.

복원된 다단 우물은 전형적인 삼국시대 양식이다. 뒤로 계룡산 주능선이 날개를 편 독수리처럼 웅장하다 

옥산성 정상의 전망정자. 거제면소재지가 발밑으로 펼쳐진다거제도에서 가장 넓은 오수리 들판. 왼쪽 맨뒤에 삼각뿔 모양 노자산(565m)이 희미하다거제현 관아터에 있는 기성관. 정면 9칸, 측면 3칸의 장대한 규모다. 앞쪽에 도열한 것은 조선말 관리들의 송덕비로 철비가 이채롭다  

기성관 너머로 옥산성과 계룡산이 중첩되어 보인다. 두 곳은 당시 주민들에게 마지막 의지처였을 것이다  

우물과 건물터가 확인되었고 정상에는 작은 정자를 세워놓았다. 여기서 바라보는 계룡산은 이름 그대로 계룡이 꿈틀대듯, 거대한 독수리가 날개를 편 듯 웅장하다. 성벽 외부는 삭토를 해서 성벽의 높이를 과장하고, 내부에는 단층을 두고 문에는 복잡한 옹성(甕城)을 설치해 방어능력을 높였다. 전국의 산성 중에 가장 쉽게 찾으면서 성곽 시설과 위용을 느낄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옥산성에서 마을로 내려서서 옛 관아 터에 복원되어 있는 기성관(岐城館)을 마지막으로 들린다. 정면 9칸 측면 3칸의 장중한 규모로 통영 세병관, 여수 진남관에 버금가는 스케일이다. 중앙부 3칸을 한 단 높게 만들어 솟을지붕처럼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기성(岐城)은 고려 때의 거제 명칭이다.

면소재지로는 상당히 큰 규모에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이 오랜 전통과 자부심을 말해준다. 거제면 어디서나 고고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옥산성과 계룡산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을 것이다.

글/사진 김병훈 발행인

 

tip

출발지인 거제면소재지와 코스가 지나는 거제뷰골프장 초입에 식당과 편의점이 있다. 거제뷰골프장 통과구간은 따로 안내가 없어 길 따라 그대로 가면 주도로를 놓칠 수 있으므로 길가의 턱을 넘어 편의점 건물 앞으로 나가야 한다.

거제 계룡산 3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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