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봉에서 지리산까지 5천리 산줄기의 시작

백두대간이 시작되는 백두산의 남사면. 동서로 압록강과 두만강이 국경을 이룬다. 나무가 자라지 않는 수목한계선은 대략 해발 2000m 선이다    

한반도의 산줄기를 족보 식으로 정리한 신경준(1712~1781)의 <산경표(山經表)>는 ‘산은 곧 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는 상식적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현대적 개념의 산맥은 외부로 드러난 산 외에 지질적 구조까지 감안하고 있어 ‘산자분수령’에 의거한 산줄기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오감으로 느끼는 현실에서는 ‘산자분수령’이 산줄기 구분에 일목요연하다.

<산경표>에 따르면 한반도의 모든 산줄기는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정리된다. 그 중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가장 높고 큰 줄기로 한반도의 등뼈에 해당한다. 백두대간에서 보듯, 우리 선조는 백두산을 모든 산의 조종(祖宗)으로 삼은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백두산은 중국 곤륜산(타클라마나칸 사막 남쪽의 쿤룬산맥)에서 뻗어 나왔다고 보는 사대주의적 관점은 한계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한반도에서 가장 높고,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거대한 화산인 백두산은 특별한 존재다.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히말라야를 끼고 있고, 수많은 명산이 있는 중국에서도 백두산(중국명 장백산)은 10대 명산에 든다. 백두산은 현실적으로 북한과 중국이 양분하고 있어서 각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정상인 장군봉(2750m)이 북한 쪽에 있어서 중국지도를 보면 장군봉을 아예 누락하고, 자국 내의 천문봉(2670m)이나 백운봉(2696m)을 최고봉으로 표시하고 있다. 백두대간은 당연히 장군봉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니 백두산의 주맥은 만주가 아니라 한반도로 뿌리내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북한측에서 백두산을 오를 경우 그 거점이 되는 곳은 삼지연이다. 삼지연(三池淵)은 해발 1400m 지점에 형성된 연못으로 큰 못이 3개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확히는 크고 작은 못 10개 정도가 모여 있다. 지금은 못 남쪽에 형성된 백두산 관광 휴양도시의 이름으로도 존재감이 크다. 삼지연에서 10km 거리에 삼지연공항도 들어섰다.

삼지연공항은 해발 1350m이며, 여기서 장군봉까지 등산 도로가 나 있다. 이미 백두산 중턱인데도 삼지연공항에서 장군봉까지 40km나 되는 것은 그만큼 백두산이 넓게 퍼진 순상화산이기 때문이다.

장군봉에서 뻗어나와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시작 구간(파란 선). 왼쪽 와사봉 아래에 북한 수령체제 우상화 성지인 백두산밀영과 정일봉이 보인다 

장군봉을 기점으로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능선은 그리 확연하지는 않으나 압록강과 두만강의 분수령을 이룬다. 이 희미한 줄기는 첫 번째 봉우리인 2385m봉을 거쳐 대연지봉(2360m)을 이룬다. 2385m봉 북쪽, 능선에 한중 국경문제의 논란이 된 백두산정계비가 서 있다(지금은 초석만 남았다고 함). 당시 기록을 보면 조선과 청의 대표는 장군봉을 오르면서 압록강과 두만강(혹은 송화강)의 분수령 중 최고지점을 탐색했다. 문제는 정계비가 선 곳의 서쪽은 압록강 유역이 맞는데, 동쪽은 두만강이 아니라 송화강이라는 점이다.

정계비 비문에 동쪽 기준으로 삼은 ‘토문강(土門江)’이 송화강인지 두만강인지도 애매하다. 천지가 장백폭포로 흘러내려 송화강을 이루는 곳을 ‘달문(闥門)’이라 하는데 토문과도 뜻이 통한다. 하지만 정계비는 달문이 아니라 반대편인 장군봉 남쪽에 있어 난감하다. 청 대표는 이 정계비를 기준으로 서쪽은 압록강, 동쪽은 두만강으로 경계를 짓고 싶었을 것이다. 문제는 정계비 동쪽 수역이 능선 하나 차이로 두만강이 아니라 송화강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정계비 동서에서 발원하는 강줄기를 국경으로 삼는다면, 백두산 천지를 청에 내주는 대신 송화강 동쪽, 지금의 북간도는 조선 땅이 되는 셈이다. 지금의 국경선은 북한과 중국의 합의로 굳어진 지 오래이니 이를 바꿀 방도가 있을까.

삼지연 상공에서 바라본 백두산과 광대한 산록. 아래 삼지연읍은 백두산관광의 거점이지만 장군봉까지 50km나 된다. 삼지연공항 일대의 광대한 평원은 단군의 신시가 있었다는 '천리천평'으로 해발 1300~1600m 고지다  

백두대간은 장군봉에서 정계비 터를 거쳐 대연지봉(2360m)에서 정남으로 뻗어 내린다. 압록강 최상류 협곡을 끼고 있는, 탁상지 모양의 선오산(1986m)을 거쳐 간백산(2164m)~소백산(2174m)으로 이어지다가 삼지연에서 고도를 크게 낮춰 허항령(1403m)에 닿는다. 허항령은 백두산의 남동쪽 경계이기도 하며, 대간은 다시 고도를 높여 북포태산(2289m)을 거쳐 개마고원 내륙으로 줄달음친다.

삼지연과 삼지연공항 일대는 엄밀히 말하자면 백두산 기슭이지만 워낙 완경사여서 광활한 평야처럼 보인다. 이곳을 천리천평(千里千坪)이라고 하며 단군이 처음 터 잡았던 도시, 신시(神市) 자리라고 한다. 신화의 사실여부를 어떻게 확인할까만, 한반도와 만주 전체를 통틀어 가장 하늘에 가깝고 기이한 대지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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