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에서 섬, 다시 육지가 된 남국의 해안선

미륵도 해안 경관의 백미인 삼칭이해안길. 차 없는 자전거보행자겸용도로여서 안전하고 편하다. 저 앞에 우뚝한 복바위가 선경을 방불케 한다 

요즘은 길이 7km가 넘는 다리까지 놓으면서 섬들을 육지화 하고 있지만 해운(海運)이 중요하던 옛날에는 간혹 육지를 섬으로 만들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태안 안면도와 통영 미륵도다. 길고 좁은 반도는 운하를 파서 육지와 분리하는 것이 항해 거리가 짧아지고 안전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섬이었다고 알기 쉬운 미륵도는 겨우 90년 전인 1932년, 길이 1420m의 통영운하 개통으로 육지에서 떨어져나가 섬이 되었다. 운하 밑으로는 동양최초의 해저터널(길이 461m)이 뚫렸다. 지금은 통영대교와 충무교가 놓여 다시 육지로 편입되었으니 이 땅의 운명이 기구하면서도 운이 좋다고 할까.

통영에 가면 여수가 생각나고, 여수에 가면 통영이 떠오를 정도로 두 도시는 입지와 분위기 모든 것이 빼닮았다. 여수(27만)가 통영(12만)보다 인구는 2배가 넘지만 야자수 가로수가 살랑이고 환한 햇살이 비치는 아열대 해안,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 지중해풍 물씬한 다도해 풍경, 항구를 내려다보는 케이블카까지 흡사하다. 기이하게도 두 도시에 딸린 섬조차 형제 같다. 여수 돌산도에 그대로 병치되는 것이 통영 미륵도다. 돌산도(68.9㎢)가 미륵도(45.6㎢)보도 크긴 하지만 시내 중심가 남쪽에 붙어 있는 위치와 풍광은 기막힌 닮은꼴이다. 그래서 여수에 가서 돌산도를 빼놓을 수 없듯이, 통영에서 미륵도를 간과할 수 없다.

픙화리 일주도로 초입에서. 야자수가 도열해 남국의 아열대 무드가 물씬하다  

미륵도 주변은 굴 양식장이 지천이다. 가공 공장도 많아 주민들의 주 수입원이 되고 있다. 산더미처럼 쌓인 굴 껍질

미륵도 북쪽은 통영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어서 케이블카가 운행하는 미륵산(461m) 남쪽만 코스로 잡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다. 이 역시 돌산도 북부에 시가지가 분포한 것과 같다.

출발지는 축구장과 야구장 등이 모여 있는 산양스포츠파크로 잡는다. 나중에 박경리기념관을 거쳐 복귀하기도 편하다.

섬은 반시계 방향으로 일주해야 바다쪽으로 달릴 수 있어 풍경 감상이 편하고 쉴 때도 좋다. 먼저 산양읍사무소 앞을 지나 풍화일주도로로 들어선다. 풍화리는 미륵도에 딸린 길이 6km의 가늘고 긴 반도인데 한적한 해안도로가 나 있다. 반도 일주코스는 17km 정도 되고 특별한 명소는 없으나 작은 포구와 양식장 등 주민의 일상을 가까이서, 차분하게 볼 수 있다.

풍화리 반도 북안은 심한 리아스식 해안으로 좌우로 들쭉날쭉, 상하 요철이 쉴 틈 없이 이어진다. 내만의 바다는 호수처럼 작고 아담하다. 간혹 예쁜 펜션과 전원주택이 있지만 생계에 바쁜 주민들은 무표정이고 마을은 잿빛으로 우중충하다. 밭은 별로 없어도 바다에 양식장은 지천이어서 국내최대 굴 산지답다.

멀리 삼천포화력발전소 굴뚝의 수증기가 선명하다

풍화리반도의 소박한 포구(명지마을)

풍화리 남안의 한적한 바닷길. 정면으로 섬 최고봉인 미륵산(461m)이 보인다 

다시 산양읍사무소로 나와 1021번 지방도를 타고 남하해 작은 고개를 넘으면 임진왜란 때 당포해전이 벌어진 당포항이다. 지금은 삼덕항으로 부르고 욕지도행 여객선이 출항한다. 포구 뒤쪽에는 조선시대 수군만호진이 있던 당포성이 일부 남아 있다. 1490년(성종 21년)에 축성했고 길이 992m, 최고높이 2.7m이다. 우리나라 성은 석축 높이만으로 방어능력을 따지면 곤란하다. 자연지세를 최대한 활용해 기존 절벽을 활용하거나 석축 아래를 가파르게 삭토해 실제 성벽 높이는 훨씬 더 높았다. 다만 15세기에 쌓은 성곽인데도 6, 7세기 삼국시대 성곽과 거의 같은 구조인 것은 장기간의 평화시대로 인한 상무정신의 쇠퇴와 중국과 일본 등 해외실정에 어두웠던 ‘우물 안 신세’를 말해준다. 비교적 잘 보존되고 또 복원된 남벽에 오르면 당포항과 욕지도 방면이 훤하다.

복원 관리가 잘 되어 있는 당포성 남벽. 1490년 축성됐는데 삼국시대 성곽과 차이가 없고 구조와 규모는 오히려 후퇴한 느낌이다

 

당포성에서 내려다본 당포항(삼덕항). 오른쪽 암봉은 장군봉(168m)

삼덕항을 출발해 욕지도로 향하는 여객선. 겨울 평일인데도 1층은 자동차가 만선이다  

섬은 작아도 해안선 일주는 간단치가 않다. 해안이 평탄한 제주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섬은 바다에 급하게 뛰어드는 산줄기로 가득 차서 고갯길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당포항에서 고개 하나 넘으면 중화항, 그 다음은 연명항, 달아항, 척포항 등등 고개 하나 넘으면 나타나는 만 안쪽에는 어김없이 포구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미륵도 최남단 달아항~척포항 사이 해안도로는 낚시꾼 몇 외에는 사람도 차량도 없는 적막의 바닷길이다. 섬이 많아 여전히 수평선은 귀하지만 추도, 두미도, 욕지도, 비진도… 밤하늘 별자리를 찾아보듯 먼 섬들을 알아보고 눈짓으로 인사를 나눈다.

달아항~척포항 사이의 해안도로. 낚시꾼만 몇 있는 한적한 길이다 

척포항에서는 일주도로에서 가장 높고 긴 새밭이고개를 넘어야 한다. 고개높이가 고작 110m인데 해수면에서 오르자니 만만치 않다.

고개를 내려가 봉전마을, 영운항을 지나면 미륵도 해안풍경의 절정인 삼칭이해안길이 시작된다. 미륵산에서 흘러내린 마지막 산줄기인 마파산(192m)을 도는 해안길은 4km 정도이며 자동차 진입이 금지되어 편안하고 안전하게 경관을 즐길 수 있다. ‘삼칭이’는 조선시대에 수군기지인 삼천진(三千鎭)이 설치된 포구라 하여 삼천포(三千浦)라 했고 동리명을 삼천진리(三千鎭里)라고 한 데서 유래한 토박이 지명이다. 길과 집이 예쁘면 풍경도 저절로 아름답게 느껴지는 법. 해안절벽을 끼고 이어지는 거북무늬 포장길 자체가 예쁘기 그지없다. 길가에 선 바위섬(복바위)은 신선경의 운치를 더해준다. 바다 저편으로는 한산도와 거제도가 시야를 채우는 호수 같은 내만이다.

영운항 언덕에서 바라본 삼칭이해안길과 복바위. 오른쪽 삼각봉은 한산도 고동산(189m), 왼쪽 멀리 높은 산은 거제도 산방산(507m)  

삼칭이해안길은 통영마리나리조트까지 이어지지만 도중의 수륙마을에서 1021번 지방도로 올라서서 남하한다. 앞서 지나온 미래사입구 고개마루에서 산길로 접어들면 울창한 편백숲 사이로 극심한 업힐이 이어진다. 미래사는 미륵산 남쪽 해발 230m 지점에 있다. 고찰은 아니지만 절 입구의 연못과 돌다리가 아름답고, 근세의 고승인 석두(石頭), 효봉(曉峰), 구산(九山) 스님의 비석과 부도도 반갑다. 구산 스님이 석두, 효봉 두 큰스님의 안거(安居)를 위해 1954년에 창건해서 세 스님과 인연이 깊은 절이다. 절 주변의 편백숲이 장관이다.

편백숲 사이로 난 미래사 업힐. 초반에는 급경사 커브가 연속된다 

미래사 입구의 연못과 돌다리(자항교). 해발 230m의 산중이라 이채롭다

미래사는 근래에 창건한 사찰이지만 석두, 효봉, 구산 같은 고승들과 인연이 깊다  

미래사 옆으로 작은 고개를 넘으면 만월노인요양원이 나오고 임도가 시작된다. 통영 출신 작가 박경리의 기념관까지는 다운힐이라 순식간이다. 박경리기념관에서 출발지인 산양스포츠파크는 지척이다.

박경리 묘소는 산의 지맥(支脈)이 쭉 뻗어내려 오다가 삥 돌아서 본산(本山)과 서로 마주보는 ‘회룡고조(回龍顧祖)’에 금빛 닭이 알을 품은 ‘금계포란(金鷄抱卵)’ 형국이 중첩된 풍수지리적 명당 터로 보인다. 애써 고른 것인지, 우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풍수지리 사상은 여전히 공고하다. 그러고 보면 바로 이웃한 스포츠파크도 좋은 곳이니 이곳에서 훈련하는 모든 선수가 승리하고 성공할까.

미래사를 지나면 박경리기념관까지 임도가 나온다

통영 출신의 작가 박경리 기념관 뒤로 미륵산이 우뚝하다 

 

tip

산양스포츠파크에 무료 주차장이 있고, 인근 남평리와 산양읍사무소 부근에 식당과 편의점이 있다. 삼덕항, 달아항, 영운항에도 식당 혹은 편의점이 있다. 미래사 임도는 다소 힘들어도 그리 길지 않고 편백숲이 아름다워 추천한다.

 

통영 미륵도 일주 5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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