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되기 힘들구나, 삼형제점 너마저도!

인기 드라마 '풀하우스' 촬영지였던 시도 수기해수욕장. 세트장은 철거되고 안내 간판만 남았다. 멀리 강화도가 흐릿하다  
인기 드라마 '풀하우스' 촬영지였던 시도 수기해수욕장. 세트장은 철거되고 안내 간판만 남았다. 멀리 강화도가 흐릿하다  

인천 옹진군 북도면의 신도·시도·모도는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와 강화도 사이의 좁은 바다에 열도를 이룬다. 세 섬은 서로 다리가 연결되어 있어 한번에 돌아볼 수 있으며, 인천공항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섬 여행지다.

‘삼형제섬’으로도 불리는 세 섬을 오랜만에 찾았더니 영종도와 신도 사이 바다에 띄엄띄엄 들어선 교각부터 보인다. 이런! 그나마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섬다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던 삼형제섬 역시 ‘시한부 섬 운명’에 처한 것이다. 길이 3.5km의 영종도-신도 연도교가 25년 완공 예정이란다. 탄식 반 반가움 반이다. 쉽게 찾을 수 있는 진짜 섬이 사라진다는 데서 탄식이고, 배 타지 않고 건너갈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움이다.

이른 아침인데도 삼형제섬으로 들어가는 차량이 적지 않다. 영종도 삼목항을 막 출항하며 

이제 2년 쯤 남은 시한부 섬이지만 수도권에서는 너무나 소중하고 특별한 곳으로 다시 간다. 아직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한다. 배를 타야 ‘떠나는’ 느낌이 더욱 절실하고 생생한 것은 육지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자 일종의 단절인 물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섬이 된 ‘신·시·모도’는 다 합쳐도 동서 6.3㎞, 면적 10.2㎢의 작은 크기다. 그중 신도(信島)가 6.92㎢로 가장 크고, 해안선 길이는 16㎞ 가량 된다. 신도는 영종도 북쪽에 있는 삼목선착장에서 2㎞ 떨어져 있어 배로 10분이면 도착한다.

시(矢)도는 이름 그대로 ‘화살 섬’이다. 옛날 강화도 마니산에서 군사훈련을 할 때 시도를 표적으로 활을 쏘았다고 한다. 강화도에서 쏜 화살이 시도에 꽂혔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활의 사정거리가 8㎞나(!) 되었다는 엄청난 허풍이다. 모도로 넘어가는 길목에 이 전설을 사실처럼 알려주는 화살탑까지 서 있다.

시도를 지나면 가장 작고 선착장에서 멀리 떨어진 모도(茅島)다. 모도 끝자락에는 에로틱한 조각공원이 들어서 있고 조각공원 바로 앞으로는 수시로 인천공항을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하늘을 가른다.

신도항은 큰 변화가 없다. 여객선 뒤로 신도2리 마을과 섬 최고봉인 구봉산(178m)이 보인다

아침 배를 타려고 서둘러 도착한 삼목선착장에는 사람은 적은데 자동차가 많다. 겨울 아침이라 갈매기도 늦잠인지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새우깡을 던져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내 뱃전에 서 있어도 다가오는 갈매기가 없는 걸 보면, 자전거와 같이 타는 사람은 번거로운 짐을 싫어해서 새우깡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저들도 경험으로 아는 모양이다.

그동안 여러 번 찾았지만 몇 년 만이라 섬이 얼마나 변했을지 궁금하다. 신도항은 그대로인데 바로 서쪽에 둑을 쌓아 물을 가둔 저수지 주변으로 수변공원을 조성한 것이 눈에 띈다. 데크산책로까지 나 있고, 일주 1.65km이다. 나중에 복귀할 때 들러보자.

신도항의 아침. 잔물결에 일렁이는 여린 햇살 옆으로 조각배가 외롭다  

먼저 신도를 반시계방향으로 일주한다. 해안에 펜션이 좀 더 생긴 것 외에는 큰 변화가 없다. 신도3리 푸른벗말 저수지를 지나 오른쪽 안산 방면으로 향한다. 작은 고개를 넘어 길이 끝나는 바닷가에는 드라마 ‘연인(2006년)’ 세트장이 있었는데 그대로인지 모르겠다. 혹시나 했는데 세트장은 사라지고 개인 사유지로 울타리가 쳐져 있다. 아무리 인기 드라마라도 그 여운은 10여년 정도인가 보다.

세트장터 맞은편 펜션을 지나면 안산 임도로 들어선다. 800m 남짓한 짧은 숲길이지만 바닷가에서 맛보는 산간 느낌이라 각별하다.

짧지만 호젓한 분위기의 안산 임도

신시도연도교 초입의 이정표

신도3리를 거쳐 북안을 돌면 신시도연도교다. 다리는 혹은 깊은 주름살 같고, 복잡한 나뭇가지 같기도 한 갯골을 지난다. 물 위를 넘는 순수 교량은 240m이지만 접속부를 포함하면 470m 정도 된다. 세 섬은 옹진군 북도면을 이루는데, 신도가 가장 크고 선착장도 있지만 중심지는 시도다. 면사무소와 파출소, 보건소 등이 모여 있고 마을도 가장 크다. 시도에 진입하니 전에 없던 체육센터와 종합운동장까지 조성되었고 한반도 모양 섬을 형상화한 유수지공원도 생겼다. 하지만 마을 초입에 있던 전통 막걸리 양조장은 사라져버렸다.

옹진농협 뒤편으로 산기슭 길을 따라 섬 남단의 장골해변과 느진구지해변으로 향한다. 아무도 없고 아무런 시설도 없어서 심상의 여운이 긴 해변이다. 하얀 조개껍질만이 열을 지어 간조의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

옹진농협 뒤편으로 느진구지 해변 가는 비탈길. 멋진 전원주택과 낡고 초라한 폐가가 뒤섞여 있다

시도 남서단 장골해변의 조가비 2열종대. 밀물 파도가 만든 자연의 표시선이다. 건너편은 모도

시도 남단 느진구지 해변. 조가비가 겹겹의 횡대를 지은 저편으로 시오도가 가깝다. 한적해 보이지만 인천공항을 이착륙하는 비행기 소음이 수시로 울린다

느진구지 해변에서 수기해변 가는 바닷길    

자연이 빚은 기하학은 무규칙, 예측 불허다. 나뭇가지처럼 뿌리처럼 패어있는 갯골

기우뚱 해도 이것이 배가 가장 편하게 쉬고 있는 모습이다  

시도 북쪽으로는 해안 제방을 따라 ‘해안누리길’이라는 트레킹 코스가 단장되었는데 자전거는 통행금지다. 바다쪽으로 경사 급해서 추락을 염려한 것 같지만 자율에 맡기면 될 일을…. 시도 최북단에는 삼형제섬 전체에서 가장 크고 시설도 좋은 수기해수욕장이 있고, 인근에는 인기 드라마 ‘풀하우스(2004년)’와 ‘슬픈연가(2005년)’ 세트장이 있었다. 아마도 시간이 많이 지나 두 세트장 모두 사라지지 않았을까.

예상대로, 먼저 찾은 슬픈연가 세트장은 없어지고 주택이 들어서 있다. 예전에 여러 번 왔었는데… 무엇이든 있던 것이 사라지면 허망하고 슬프다. 그것은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로 확장되고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의 절멸마저 무의식적으로 압박하기 때문이다.

수기해수욕장 초입에 있던 풀하우스 세트장도 역시 사라지고 편의시설로 바뀌었다. 해수욕장은 한결 정리가 되었고 시설도 많아졌지만 이질감과 공허감은 지울 수 없다. 꼭 드라마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기억과 추억을 뒷받침하던 현실의 초래하는 작은 절망이랄까.

시도 북부의 해안을 따라 조성된 해안누리길은 참 예쁘지만 자전거는 통행금지다 

연인 세트장 자리에는 화려한 주택이 들어섰다

텅 빈 수기해수욕장 저편으로 강화도 마니산이 희미하다. 앞의 부양식 보도는 보트탑승장 진입로다  

시도리 골목으로 잠시 들어갔다가 작은 고갯길로 진입하면 1989년 폐교된 시도초등학교 터를 지난다. 시도에 모든 행정기관과 주요 시설이 모여 있지만 초등학교만은 신도 선착장 인근 신도2리에 있는 것은 뱃길 접근이 편하기 때문 같다. 그나마 정식 학교가 아니고 공항초등학교 신도분교다. 지방을 다니며 사라진 초등학교를 볼 때마다 급감하는 출산율과 노령화를 통감한다. 시골지역에서는 도대체 어린이 자체를 볼 수가 없다. 동네마다 아이들 뛰노는 소리로 시끄럽던 그 시절은 어디로 갔을까.

폐교 터 옆으로 고개를 넘으면 봉분이 가득한 공동묘지가 나온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하루 한편 운항하는 배가 닿던 노루메기 선착장으로 오가는 길목이었다. 지금이야 환한 햇살아래 묘지조차 명랑하게 느껴지지만 비가 오거나 밤이 되면 ‘전설의 고향’ 무대 같은 공포의 고갯길이었을 것이다. 이 길에 깃들었을 그 숱한 사연들, 전설들은 또 어디로 흩어져갔을까.

시도 서쪽에 가늘게 튀어나온 지형은 노루목을 닮았다고 해서 노루목 혹은 노루메기라고 한다. 바로 여기에서 옛날 화살촉을 발견해, 마니산에서 쏜 화살이 박혔다는 전설을 증명하듯 화살 모양의 기념탑이 서 있다. 먹고 살기도 힘들던 1973년에 세웠다니 놀랍고 반갑다.

시도리 뒷골목의 안쓰런 모습. 시골지역에 점점 늘어나고 있는 폐가는 전국적인 문제다  

시도리에서 노루메기로 넘어가는 공동묘지길. 옛날에는 공포의 고갯길이었을 것이다강화도 마니산에서 쏜 화살이 닿았다는 전설처럼, 옛 화살촉이 발견된 곳에 화살모양 탑을 세웠다. 1973년의 일이라 놀랍다  

마지막 모도는 작은 섬이라 남단 양쪽의 배미꾸미 조각공원과 박주기는 금방이다. 섬이 작아 일부러 당산(97m) 옆으로 올라가 보아도 언덕 위 주택지에서 길은 끝난다.

배미꾸미 조각공원은 적나라한 조각으로 유명한데, 김기덕 감독의 영화 ‘시간’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박쥐 모양 모도에서 꽁지에 해당한다고 해서 붙은 지명인 ‘박주기(박주가리)’에서 나올 때는 조붓한 해안 제방길을 따른다. 텅 빈 벤치 옆에 쉬고 있던 쇠갈매기가 놀라 달아다니 괜히 미안하다.

시모도연도교 옆 바위섬에 있는 조각상은 장시간 해풍을 맞으면서도 박력을 잘 유지하고 있다 

시모도연도교는 선박 통과를 위해 상판을 훌쩍 높인 새 교량이 건술중이다 

모도 끝단에 있는 배미꾸미 조각공원

모도 남단 박주기(박주가리)에 조성된 모도 조형물

벤치는 비어 있을 때 풍경에 녹아들어 더 아름답고 호소력 있다.  모도 해안 둑길

시도를 통과해 다시 신도로 넘어가 신도1리에서 구봉산으로 오른다. 구봉산 임도는 한바퀴 6.5km로 길지는 않으나 산 높이가 178m인 것을 감안하면 꽤 품이 넓은 산세다. 때때로 노면과 경사가 만만치 않아 어느 정도의 테크닉과 체력을 필요로 한다. 업다운이 적당해서 라이딩 재미와 조망을 만끽할 수 있지만 간혹 등산객이 다녀 주의가 필요하다. 정상 동쪽 해발 115m 지점에 있는 구봉정에서는 인천공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봉산 임도의 기점이 되는 배나무재 삼거리. 정면으로 진입해 구봉산을 일주 후 돌아나오게 된다

구봉산 임도에서 신도3리와 안산 방면 조망  

정상 동쪽 전망 좋은 능선 위에 있는 구봉정

구봉정에서 바라본 인천공항 방면

신도수변공원 산책로. 왼쪽은 저수지다

신도를 떠나 삼목항 가는 길에 바라본 영종도신도 연도교 공사 구간. 교각은 이미 다 세워져 있다  

임도 일주 후 앞서 올라온 배나무재 삼거리에서 왼쪽 신도2리 방향으로 내려가면 선착장으로 이어진다. 선착장으로 바로 가지 말고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낮은 언덕을 넘어 신도수변공원으로 가면, 저수지 외곽 둑을 한 바퀴 돌아 선착장으로 갈 수 있다. 아직 가꾸지 않은 저수지와 거친 둑길에서 두 바퀴는 원시적 육해공의 공감각을 한껏 누린다.

 

tip

삼목선착장에 넓은 무료주차장이 있다. 신도행 배는 오전 7시부터 19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있으며, 신도 출발편도 마찬가지. 편도 2000원, 자전거 1000원, 승용차 1만원(시기에 따라 유류할증료 200~400원 추가). 신분증 지참 필수. 선착장 주변에 식당이 있고, 신도1리에 중국집과 편의점이, 시도리와 모도리에 식당에 있다. 배편 문의 : 세종해운 032-884-4155 

 

옹진 신시모도 3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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